루만이네
생태적 위협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1.
집에만 있으면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집밖을 나서야지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있다. 현실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 경계를 벗어나서 사고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새로운 것도 새로울 것도 없다. (인식은 차이에서 나오는 것인데 지금말고 다른 것을 가정하지 않는 이상, 지금은 보일 수 없다. 잘살고 있다면 아무것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문득 생각이 들 때, 잘살고 있는 지금의 나를 인식하게 된다. 잘살고 있지 않다는 다른 생각과 지금의 차이가 ..)
(政만-經만-敎만-法만-運만--)은 현실을 알 수 없다.
經만이는 돈과 소유라는 코드로만 생각하고 움직인다. 이놈은 모든 것이 효율과 비용과 효용뿐이다. 이놈의 사고에 제 집이 불타고 있는데도 손해냐 보험으로 이익을 볼 것이냐만 왔다갔다할지도 모른다.
法만이는 무척이나 보수적인 놈이다. 불법이나 합법이냐 제법 공평한 척하는데, 자의적이고 명료하고, 모든 일이 벌어진 뒤에나 수습하는 지극히 보수적인 놈이다.
敎만이는 다르다고 여길지 모르는데, 이녀석 역시 좋은 성적, 나쁜 성적으로 세팅되어 있는 놈이다. 그나마 조금 나을까?
政만이는 법적, 경제적, 과학적 제한이 없음에도 빌붙기를 좋아하는 놈이라 요동을 별로 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동요의 코드이다.
運만, 사회운동을 하는 이놈은 가능성이 있을까? 일이 있을때만 불쑥불쑥 닥치는 놈이라 대안적 가치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쉽게 흥분하고 자극하는 경향이 있다고 할까? 이분법 코드에 인이 배긴 놈들과 섞여있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080401 읽고나니 역자가 중요도에서 빠트린 것이 있는 듯. 마지막장 도덕 역시 동일하게 이분법 코드에 이에 대한 관찰의 관찰, 도덕의 성찰로서 윤리에 대해 비중을 많이 두고 있다. 이것과 결합되어 논의가 진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든다.
2.
누만이의 변용
꿈조차 새롭게 꿀 수 없다면, 레파토리가 변하지 않는다면

3.
모임
4.

5.
일상
5.1
5.2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