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학 이해의 길잡이>>,조동일,1996 가운데 <한국인의 웃음, 그 모습과 의미>
조동일 교수는 연극사의 전통을 언급하면서 중국, 일본, 우리의 웃음의 차이점에 주목한다. 중국은 애처롭고 비장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 많고, 일본은 상층 취향의 엄숙하며 자학적인, 신파극이 자리잡고 있으나, 유독 우리는 희극만으로 이뤄져 있으며 발랄한 웃음으로 사회를 풍자하는 것을 거의 일관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한다. 탈춤, 꼭두각시, 판소리, 불교 웃음, 고금소총, 춘향가, 방학중, 김선달, 민화,양반전,성호사설,원효, 도깨비기와, 인면와,토우....
이런 웃음에 현실이 제거되거나 소멸된 것 가운데 일제치하 일본풍의 영향이 보다 강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한다. 일본풍의 유행가, 신파극, 무리한 짓거리로 단순한 웃음을 일으키는 폭소극의 등장. 그것과 함께 탈춤은 억압되고, 판소리는 박제화되고, 잡가와 만담이 밀리게 되면서, 주제 또한 공허하기 짝이 없게 된다고 한다. 그나마 신문 만화가 대행은 하고 명랑만화로 빨려들어가긴 하지만 매스미디어의 웃음은 여전히 빈곤하고 단조롭다 한다.
안타깝게도 웃음은 수입할 수 없다. 탈춤도 여전히 20-30년전의 현실을 녹아내는 계승이 있었지만, 그저 박제화해나가는 속도는 감당할 수 없다. 일상은 비웃음이 난무하고, 마음에 울어나오는 진실된 웃음이 묻어나지 않는다. 억지 웃음에 길들여지고, 생활과 애잔한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 웃음마저 박제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양반과 시어머니, 시아비, 땡중과 할미를 박대하는 영감... 정치가뿐만이 아니라, 정치목사, 땡중과 누리꾼, 한자쓰는 양반과 영어쓰는 미국발 교수, 꿈뻑꿈뻑하는 자본가들. 말빨..아이에 사로잡히 아줌마,아빠
왜 우리의 일상에 웃음이 소멸되었나? 일상에 소재의 금기를 여실히 지키고 있는 습속은 여전한가? 정숙하기만 한 모임들, 웃음을 잃어버린 단체회의, 옛날 어르신들이 당대를 살고 있으면 기가 막힐 노릇은 아닌가? 재미도 없고, 풀지도 못하는 ... ..
아리랑엔 떠나는 임에게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애조와 정반대되는 반어와 역설이 들어있다. 심형래의 아리랑 사운드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진지함과 돈맛만 들어있다. 억지웃음은 현실의 어려움도, 아픔도, 건강성도 지켜내지 못한다. .......(횡설하다 갈무리도 짓지 못한다...이런 진지함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그래서 어설픈 서생은 탈고하고 벗겨져야 한다. 홀따 ㄱ~)
이런 현실의 소재들이 일상에서 희화화되고 대상화되고, 똥침효과가 있게 되지 않으면, 스스로 건강하지도, 눈물어린 웃음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지도 못하게 된다. 그런면에서 이미 문학도, 연극도, 마당극도 종언을 고했는지도 모른다. 텔레비전과 예술의 전당에서 집중만으로 관전만하게 한다면, 동네장터에서 내 문제가 남 문제가 웃음이 되는 분산이 없고서는 좋아하는, 더 시니컬하고 수려해지는 일본풍을 또 다시 답습할 지 모른다. 골계미도 웃음도 잃어버려 건강성도 잊어버려 그저 밋밋하기만 한 일상. 출구를 찾지 못하는 감정의 진폭. 변태들만 양산하면서 제갈길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 덧붙여 횡설, 그저 단상이니 심오한 분석은 하지마세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