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최고의 반전을 선사한 책
요즘 라이히에 빠져있다. 동네 인문강좌가 시발이 되어 논문 몇편이 관심을 끌었는데, 님의 모호한 답변이 더 깊이 들어가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허접하게 반복하는 스스로 되비추는 모습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라이히 덕에 무더운 여름을 머리카락 쭈빗하도록 서늘하게 보내는지 모르겠다.
젊은 청년 라이히는 여러모로 매력이 많다. 세상바꾸기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 끊임없는 연구,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공학,의학을 넘나드는 연구 또한 그러하다. 아니 연구가 아니라 지칠 줄 모르는, 확증되지 않은 것에 대한 발표를 미루는 마음가짐, 그리고 그의 마음을 가득채우고 있는 것은 세상에 대한 조금이라도 나은 삶, 변화, 사랑이다.
20년, 30년쯤 학습열풍 사이에 이런 소책자 하나 끼어들었으면 어떨까 싶다. 뿔뿔이 흩어져있는 사랑, 노동, 지식을 관통하게 만들고, 살아있어, 일상으로 가지고 싶어하게 만드는 '그'가 살아숨쉬었다면 어떨까? 물론 여전히, 지금도, 20년뒤도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 그렇게 마음에 불을 당기는 사람들이 가져간다면 다른 일이 되겠지만. 그는 자신의 연구결과가 100년 뒤든, 200년 뒤든, 항상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할 수 있게 만든 것 같다.
당대의 호사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시작하고 품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 그는 지금의 우리에게 보여주고, 그점이 청년 라이히의 고민이었을게다. 그는 밥벌이의 비루함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권력의 선결조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권력이란 것이 늘 진실을 빗겨나가기에 오히려 떨어져 있을 것을 요구한다. 그러함이 더욱 더 대중을 미워하고 짝사랑하는 문제가 아니라, 입체적으로 느낄 것을 요구한다.
똑 같이 살아가는 '우리', 늘 나눌 수 있는 '우리', 같이 웃고,고민하는 '우리'에 대한 덧셈으로 이끈다.
청년 라이히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그의 고민과 열정 속으로, 부단한 사고의 폭을 넓혀가고, 끊임없이 실천하는 '그'를 보면, 당대의 천재로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행간을 따라다니다 보면, 아 그렇지. 다 알고 있는 것이었는데, 서로 연관을 왜 시키지 못했던가?. 아 이런 아쉬움, 이런 문제가 있구나를 느끼게 된다. <그>는 낯설지 않다. 옆집 형아처럼, 오빠처럼 끊임없는 새로움에 어제의 생각을 접어야 되는 경우도 생기겠지만, 여전히 놀랍고, 신기하고, 그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열이면 아홉이 곡해할 <성정치학>, <오르가즘>, 그리고 곡해한 경험이 있는 68혁명의 실험들이 있어왔지만, 겉만 핥지 않는다면, 성방탕과 구별할 수 있다면, <신비주의>와 <권위주의>를 혐오했던 그를 조금이나 이해하는 지름길로 가지 않나 싶다.
그런 그가 친숙하다. 권위와 신비, 하지만, <가족>에 머무르는 시선, 나이가 듦에 따라 점점 갑옷을 입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뒤따르지만...
그를 자취를 조금 쫓아다니다 보니, 맑스를 아버지로 프로이트를 어머니로 태어난, 학문의 시발점, 청년 라이히가 고민한 연구결과는 깔끔하고 이해하기 쉽다. 어쩌면, 지젝이나 고진이 출발하고 있는 전제나, 문제점에 대해서도 발화지점을 살핀다면, 훨씬 사고-실천을 폭을 넓히는데 유용한 발화지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가지 더, 사회 활동가들이 단순히 양적인 확대수준에서 회원확장에 머물고 있다면, 양적인 당원확대에 집착하고 있다면, 밥벌이의 비루함과 삶을 결합시키지 못하고 있다면 한번 청년 라이히와 친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폭염의 시대에 조금이라도 냉정히 자신과 우리를 돌아보고 싶다면, 뭔가 새로운 접근을 갈망하고 있다면 정녕 추천해드리고 싶다.
우리에게 최고의 반전을 선사할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