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빈민의 차이 (댓글:2)
2007-06-11 12:00

"대중에 대한 공포는 미신적인 공포이다. 이 공포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예를 들어 니그로와 백인처럼 두 개의 다른 인종이나 되는 듯이, 어떤 신비로운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수입에 의하여 그리고 오직 수입에 의해서만 구분되고, 일반적인 백만장자는 새 양복을 입은 일반적인 접시닦이일 뿐이다. 자리를 바꾸어놓을 테니 어느 쪽이 재판관이고 어느 쪽이 도둑인지 알아맞혀 보시라. 가난한 사람들과 동등한 조건으로 어울렸던 사람은 모두 이 점을 아주 잘 한다. 그런데 문제는 지적이고 교양 있는 사람들, 자유주의적 견해를 가진 것으로 예상될 만한 바로 그런 사람들이 결코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가난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는가? 배고픔조차도 교육 받은 사람의 경험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이러한 무지에서 대중에 대한 미신적인 공포가 생기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접시닦이는 노예이고, 대개는 불필요하고 쓸모없는 일을 하는 낭비되는 노예이다.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그에게 계속 일을 시키는 것은 그가 여가를 얻을 경우에는 위험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마땅히 접시닦이의 편을 들어야 하는 교육 받은 사람들은 접시닦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그 결과로 그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묵인하고 있다. 내가 접시닦이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그의 사례를 고찰해왔기 때문이다. 다른 무수한 유형의 노동자에게도 이것은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오웰이 얘기하는 빈민, 혹은 하층민이란 최소한의 수면 시간 외의 거의 모든 시간을 오직 일하는데 바쳐야만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마이페이퍼 링크 주소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262264

 

 

이 페이퍼에 생각이 오래 머문다. 머문다고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맴돈다라는 표현이 맞겠다.

또 다른 우리에게 사회운동하는 사람은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대안교육이 중요하겠지만,  생성되고 층이 넓어지는 우리에게 그 비용은, 나 혼자 해결한다고 대안이 생성되는 것일까? 가난해서, 맞벌이해서 힘든 현실은 어떻게 해야되는지?

생태-환경운동이 필요하지만, 유기농을 먹을 수 없는 처지라면 어떻게 해야되는지?

노동운동해서 내 권익을 보장되지만,  2의 3의 기본권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여성운동은 중산층을 대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또 다른 우리의 입장에서 배태될 수는 없는 것인지? 육아는?

국익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인지? 국가를, 민족을 염두에 두어야하는 것인지?

 보건, 건강... ...

 

 공포 만큼이나  변혁주체이니 무조건 선하다고 믿는 미화도 문제겠다. 응시하는 시선만으로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  대상화하는 운동의 접근법, 구별짓는 운동을 총합으로 수평적이고 입체적인 시선으로 되물음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나라가 잘산다고 내가 잘사는 것도 아니고, 잘산다고 질높게 사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많다고 재미있게 사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세상이 뒤짚어지는 거창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닐 수 있고, 합리적인 한발을 딛고 싶은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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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6-11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무조건 '미화'하는 행위는 한 굴만 파는 격이죠.
환경공부를 하면서 아주 길을 잘못 들었다 여기는 요즘입니다, 골이 아파요^^

여울 2007-06-12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지요. 너무너무...골이 아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