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호
고교친구다
군대갔다와서 그때부터 인쇄밥을 먹었다.
군대가기전 제본소에서 몇달 같이 있었고
연락이 끊기다 몇년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다. 여전히 인쇄소 막일을 했고, 장가
가지 못했고, 데리고 간 집은 블록으로 지
은 몇평짜리 집에 어머님을 모시고 살고
있다. 어머니가 준비한 보신탕을 그렇게 권했다.
깡패
동네에 깡패가 하나 있었다.
시장터는 온통 그놈이 행패를 부려, 소문이 자자했고
깡패 몇놈이 대로에서 싸움을 벌리곤 했는데,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데모하는 학생들과 함께
그 깡패를 삼청교육대에서 잡아갔다.
몇달 뒤 돌아온 그는 순한 양이 되어있었고, 눈빛은 살기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말못하는 먼 외할아버지가 있었다.
말못하는 먼 외할머니,
어릴 적, 마당에 널린 탐스런 사과, 시원한 건너방이 좋았던 기와집.
먼 외할아버지가 서울에 엄마를 만나러 온 적이 있었다.
돈이 필요했던 것 같았고,
살림을 맡고 있던 어머니는 한사코 반대를 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어머니가 모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집을 고치고, 수리하는 일을 잘하셨던 먼 외할아버지는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물론 십년도 더 된 일이지만.
태환,
제본소에서 만난 그 친구는,
파마머리에 가끔 눈동자가 풀리는 적이 있었다.
쉬는 날이 거의 없었고,
쥐꼬리만한 월급에 호사부릴 여유는 조금도 없었다.
가끔 그는 감기약을 과다복용했다. 알약을 모아서
환각작용이 있어, 아주 힘든 날 그렇게 풀었다.
누나네 아파트, 옆집의 인기척을 느낀 적이 없다.
어느 날, 옆집 인기척, 그리고 문이 열려 있다.
장애,
그렇게 햇살없는 나날을 보내야했다.
황씨 아저씨,
셋방을 들어사는 황씨아저씨는 갈고리 손이었다.
핫도그 장사를 하는 그는 늘 얼굴이 술로 얼콰했다.
아주 키가 작은 아주머니는 부지런했다.
그리고 두분은 가끔 심하게 싸웠다. 지긋지긋한 가난이었을 것이다.
티켓다방,
인신매매 고전적인 수법은 기본적인 화장품과 옷을 제공하고, 벌금을 물려, 채무를 크게하는 것이다.
그 틀에 갇히게 되자 마자, 몸은 내 소유가 아니다.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없다.
황**,
10년전, 그는 축구회의 몇푼되지 않는 돈마저 가지고 달아났다.
몇달 뒤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관계된 사람은 거의 모두.
사업을 하던 그는,
모든 관계를 없음으로 돌려놓았다.
정 **,
5년전, 그는 일터에 나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다음날도
영업관리 일을 맡고 있던 그는 전화부터, 잡무란 잡무는 모두 그의 몫이었다.
온순하고, 중성적이고 약한 외모, 술도 잘 마시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글자 그대로 증발해버린 것이다.
그냥 흔적일뿐입니다. 저를 스쳐지나가버린 것들, 제 마음에 다가서지 못한 것들. 지금이라고 별반 달라진 것은 없네요. 실명이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