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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그의 적은 출판사이고 출판사 편집장이다. 그의 적은 매스컴의 위력을 등에 업은 기자와 편집장이 작당한 연합세력이다. 그의 적은 수없이 많다. 그의 적은 자본의 조직에 복속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원초적으로 불가능한 산업사회 전체다. 그의 적은 속물근성에 가득 찬 더러운 독자들이다. 이 독자들은 끊임없이 소설가의 포즈를 보기를 원한다. 그는 이 독자들에게 반가사유의 포즈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독자들을 쫓아버린다. 그의 적은 또 있다. 가장 무서운 저은 그 자신의 생물적 조건이다. 쌀이 있어야 글을 쓸 수가 있다. 그에게는 천만 원씩 나누어주는 은혜로운 정부도 없다. 그는 한 편의 소설을 써서 그걸로 겨우 밥을 먹으면서 그 다음 소설을 쓴다.
-김 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中-
몸이 불편하니 마음이 갑갑하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청소기하나 윙윙 돌리지 못하니 마음이 돌 지경이다. 몸이 쾌활하게 열지 못하니 마음이 우중충하다. 몸이 닫히니까 마음도 덩달아 문을 닫는다. 어제는 온종일 사박사박 비가 내렸고 집 앞 논에는 물이 가득하다. 물. 맑음과 정돈의 성질을 지닌 물의 속성은 흙탕물로 번졌다가 이내 고요로 정제된다. 반드시 그 발광의 몸살을 앓아야 만나게 되는 평화다. 몸과 마음이 갇힌 오월에 오후 내내 창가에 앉아 물에 잠기는 들판을 바라봤다. 한 시간, 두 시간... 열고 받아들인다는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며 몸의 언어를 떠올린다. 몸의 언어는 곧 마음의 언어다. 그래서 김 훈은 문체는 몸의 일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흐르고 흘러가지 않아도 물은 고적함과 더불어 안식을 준다. 호수의 물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눈물을 닦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제까지 흐르는 것만 정결의 세상을 찬양하는 줄 알았다. 몸에서는 밥도 요구하고 햇살의 아늑함도 요구한다. 그러니까 작가는 자신을 뜯어 먹으려고 덤비는 그 많은 상어 떼들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방어 장치가 필요하다. 간신히 쌀을 준비하고 쓴 글이니 더더욱 그렇다. 몸과 밥을 옹호하고, 적과 공업적인 사유를 거부하는 김 훈, 그다운 글이다.
오늘은 햇살이 눈부시다.
이제 막 제색을 찾기 시작하는 오월의 대지는
방금 색색으로 물들여 놓은 옥양목처럼 너울너울 씩씩하게 펄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