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탐험 - 도전 정신과 이기심이 만든 현대 문명 세계사 가로지르기 12
김용만 지음 / 다른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저자인 김용만이 고구려 수레를 연구한 전문가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항이다. 그리고 이를 확대시켜 수레에 대한 책을 냈고, 이번에는 탐험에 대한 책을 내면서 저자가 내고자 했던 인류 이동에 대한 책 3부작을 모두 마무리하게 되었다. 먼저 이 책들이 일종의 기획 시리즈라는 점에서 4년여에 걸쳐 3부작을 완성한 저자의 노고와 열정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더불어 수레를 고구려 성장의 근간으로 이해하고 수레에서부터 시작해 길(도로)과 탐험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연구 범위를 인류문명사적 시각으로 확대했다는 점에서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먼저 책 표지를 보면 밝은 노란색에 갖가지 탐험 관련 아이콘들이 그려져 있어 다소 정신없어 보이지만, 이 책의 주 독자층이 학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한편, 온라인 서점에서 책의 제목을 검색해보면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책 중세상을 바꾼 위대한 탐험이라는 책이 같이 뜬다. 하지만 저자는 탐험을 결코 위대하다고만 보지 않는다. 이 책의 부제가 도전 정신과 이기심이 만든 현대 문명이라는 것만 봐도 탐험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같이 서술하고자 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기존에 무수히 나왔던 탐험()와 관련된 책들과 어떻게 차별성을 강조할 것인지 기대하면서 책장을 펼치게 된다.

 

책의 전체적인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만 봐도 대략적인 책의 내용은 전달된다.

 

머리말: 탐험,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다

1. 탐험하는 인간

2. 탐험가의 시대

3. 탐험가가 바꾼 세계

4. 동아시아의 탐험가들

5. 현대인과 탐험

나가는 말: 과거의 탐험에서 배울 것들

 

특히 <탐험하는 인간>, <동아시아와 탐험가들>, <현대인과 탐험>이라는 부분은 다른 책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았던 이었다. 나머지 2~3장에 대한 내용이 우리가 흔히 탐험()에 대한 책을 보면 쉽게 나오는 부분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분량 면에서도 다른 책들에 비해 새로운 내용이 들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해준다.

 

저자는 책 첫머리에서 탐험의 종류를 크게 4개로 나눈다. ‘종교적 열정’, ‘명예 추구나 지적 탐구욕 등 개인의 자기만족’, ‘국가의 명령’, ‘경제적 이익까지. 그러면서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탐험을 해 왔지만 기록의 부재로 인해 인류사의 수많은 탐험가들은 그 존재를 알리지 못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제일 처음 고대 이집트 6왕조(B.C. 2,345~B.C. 2,181) 시기의 인물인 하르쿠프를 언급한다. 그 뒤로 라파타인, 페니키아인, 바이킹, 아라비아인까지 대항해시대(우리가 흔히 탐험과 직결시켜 떠오르는 이미지) 이전 인류의 탐험사를 개괄한다. 이들 사례는 앞의 네 종류에 해당되는 것들로서 인류가 굉장히 다양한 이유로 인해 자신의 거주지 바깥으로 나아가려 했음을 소개하고 있다.

 

탐험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가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곳을 살피고 조사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인간의 물질문화 이동에 대해서 고고학계에서는 크게 이주’, ‘전파’, ‘교류3가지 행위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그렇게 봤을 때 이주라는 것이 탐험과 연결되는 행위 일텐데 이주라는 용어에는 도전정신’, ‘위험성과 같은 의미는 내포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현생인류가 탄생하기 전부터 인류는 끊임없이 세계 각지로 이동 혹은 이주했으며, 그들의 행위 자체가 하나의 탐험이었을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더 좋은 보금자리를 위해서, 더 나은 자원(석재, 과실수, 사냥감 등)을 찾기 위해서였던 그 행위 자체가 하나의 위험을 무릅쓴 용기 있는 행위였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분명하게 얘기한다. 탐험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기록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여기에서 저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탐험의 기준과 정의가 드러난다. 어째서 오늘날 우리는 탐험이라고 얘기했을 때 대항해시대 이야기만 하는지 말이다.

 

각 장마다 副論처럼 실리는 이야기톡표류이야기가 나오는 것 또한 주목된다. 표류는 말 그대로 의도하지 않은 탐험이랄 수 있는데, 그 결과가 재미있다. 기록이 남아야 진정한 탐험이라고 했을 때 표류 또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기록으로 그 전말이 남겨져 탐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록이 지속적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읽히고, 그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완성된 의미에서의 탐험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최부의표해록이 조선과 일본에서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이후 조선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점, 문순득의 표류기인표해시말또한 몇몇 식자층의 지식 공유 이외에 조선 사회에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점을 보면 일본인 어부 나카하마 만지로의 경험을 잘 활용한 근대 일본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이상의 사례들을 봤을 때 탐험이란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가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곳을 살피고 조사하는 행위기록으로 남겨지고 그 기록이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우라야 진정으로 우리에게 제대로 된 탐험으로 와 닿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2장으로 넘어가다 보면, 저자가 단순히 탐험()의 사례만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탐험의 결과, 세계사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났고,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끌어내려고 하는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2장은 본격적인 대항해시대의 포문을 연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그리고 뒤이어 바닷길로 뛰어든 네덜란드와 영국, 프랑스에 대한 이야기다. 이 부분은 세계사를 공부하는 중고등부에게 교과서보다 흥미있고 생동감 있게 관련 내용을 전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후진 사회였던 유럽에서도 후진 국가였던 포르투갈이 어떻게 대항해시대를 주도하는 강대국이 되었는지 그 배경 설명과 뒤이어 에스파냐가 강대해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후발주자임에도 선두그룹 못지않게 세를 확장할 수 있었던 네덜란드, 유럽의 강대국이면서도 상대적으로 뒤늦게 바다를 돌아본 영국과 프랑스의 이야기까지 실로 구슬을 꿰듯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더불어 서로 다른 양자의 관점을 잘 전달하고 있다는 점 또한 특징이다. 유럽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이미 존재했던 수많은 다른 세계를 발견한 영웅적인 이야기겠지만, 평화롭게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던 수많은 다른 세계들 입장에서는 유럽은 불편한 불청객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탐험이 갖는 양면을 잘 표현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런 저자의 시각은 다음 장으로 이어지면 보다 확실해진다. 미국에서는 1012일을 콜럼버스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지만,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를 원주민 저항의 날로 부른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탐험가가 퍼뜨린 전염병(천연두)을 이야기한다. 이미 아메리카의 고대 문명과 인디언 사회가 유럽인이 갖고 온 전염병으로 인해 인프라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폐해졌다는 건 상식적인 이야기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서구인의 세계 제패를 가능하게 한 3가지 요소를 두고 총, (전염병), 쇠라고 한 것만 봐도 당시 유럽의 탐험가들이 안고 온 전염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발견된쪽에게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안겨준 탐험이지만 발견한쪽에게는 엄청난 혜택을 준 것 또한 사실이다. 저자는 탐험가들에 의해 개척된 교통로가 결국 전 세계 경제 생활권을 하나로 묶었으며, 이것이 전 세계 경제구조마저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신대륙의 은이 유럽을 매개체로 중국으로 흘러가고, 중국의 금과 각종 산물이 유럽으로 흘러갔으며, 그 과정에서 팔기 위한 상품의 생산이 촉진되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생산된 도자기가 유럽에서 유행이 되다보니(동시기 조선의 도자기가 왜 그렇게 되지 못 했는지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중국과 일본은 돈 되는 상품을 집중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하고, 유럽 각국의 식민지에서는 돈 되는 상품을 생산하기 위한 플랜테이션이 곳곳에 만들어진다. 이렇게 전 세계의 물품이 돌고 돌아 인류는 이전 시대에는 누리지 못했던 풍부한 물산과 문화를 접하게 되지만, 여기에서도 중요한 점은 그런 모든 교역의 이익을 누린 것은 바로 유럽이라는 점이었다. 탐험을 생활화하고, 탐험에 많은 자본을 투입한 유럽이었기에 탐험의 이익을 가져간 것 또한 유럽이었던 셈이다.

 

저자는 유럽에서 시민사회의 성장이 가장 먼저 생겨날 수밖에 없었고, 자본주의의 씨앗 또한 유럽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이에 대해서 송나라때 동아시아에 이미 자본주의의 모든 요소가 생겨났다는 주장도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다시 한 번 송나라때 중국이 이미 자본주의의 요소를 다 갖췄는지 의문도 들게 한다-중국화하는 일본 서평 참고). 그 과정에서 유럽인이 갖게 된 오만한 계몽주의의 폐해에 대해서 지적하면서도, 현대 문명이 그런 유럽인의 계몽주의 위에 쌓아진 것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더불어 탐험으로 인해 전 세계의 산물이 각지로 퍼져나감에 따라 인류는 다른 지역의 음식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덕에 김치처럼 그 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음식이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모피처럼 전 세계적으로 돈이 되는 상품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지역이 개척되고, 그 지역의 전통문화가 파괴되기도 했다. 저자는 탐험이 갖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탐험이라는 행위에 대해 어느 한쪽만의 시각이 아닌,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하려고 애썼다.

 

그러면서도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을 언급한다. 어째서 유럽에서만 저런 탐험가들이 나타날 수 있었을까? 라는 주제 말이다.

 

정화의 대원정을 이룩할 정도로 고도로 뛰어난 기술력과 자본을 갖춘 명나라였지만, 상인을 무시하고 상업과 해상활동을 억제하는 국가 정책은 대항해시대를 앞두고 중국이 발을 빼버리게 하는 惡手를 두게 했다. 조선은 해상왕국 고려의 뒤를 이었음에도 농경 위주의 경제구조를 확립하고, 진취적으로 바닷길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 건너 적들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공간으로만 바다를 관리하였으며, 上國이었던 명의 견제와 보호 아래 바닷길을 개척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다. 한편 일본은 일찍부터 동남아 각지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확보했으며, 유럽과 가장 활발하게 교류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지역(다이묘)의 성장에 불안을 느껴 쇄국정책을 실시하였으니 이 또한 대항해시대때 소극적인 자세로 임하여 그 주체가 되지 못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보면 중국은 대항해시대를 맞아 바닷길 개척에 대해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오만함, 한국은 해야 할 필요성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무지함, 일본은 하면 안 된다는 불안감 때문에 결국 세계사의 흐름에서 튕겨나와 동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한 채 오래도록 지내온 것이 아닌가 싶다. 첨언하자면 그 와중에서도 작은 창구를 열어 유럽 각국과 끊이지 않고 교류했던 일본이 있어서 유럽에서는 네덜란드가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었으며, 일본은 훗날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었으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는 아직도 탐험을 끝내지 않고 있다. 이미 탐험을 통해 지구의 대부분이 밝혀졌는데 무슨 탐험이냐고 하겠지만, 우리는 지적 탐구를 위한 과학적 용도의 탐험을 지속하고 있으며, 북극과 남극뿐만 아니라 지구의 과반수를 넘게 차지하고 있는 바다 속에 대해서도 100% 알려진 것이 없다. 더불어 인류의 탐험 목표는 지구 밖 우주로 향하고 있으며, 이제 겨우 달과 화성 정도에 대한 정보만 지속적으로 획득하고 있는 정도다.

 

우리는 앞서 탐험이라는 행위가 현대 문명을 형성하는데 있어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장단점이 있었는지를 알아왔다. 그리고 과거의 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며, 이는 지금도 탐험이 지속되고 있는 현재에 많은 것들을 시사해준다. 그리고 앞으로 탐험을 지속해야만 하는 인류 문명의 숙명을 고려했을 때 과거에 저지른 실수는 지양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저자가 책의 부제로 선택한 이기심이라는 단어는 아마 이런 것들을 경계하기 위한 단어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탐험가들의 도전 정신과 이기심이 현대 문명을 만들어 왔지만, 앞으로는 이기심을 버리고 도전 정신과 순수한 탐험 정신을 갖춰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저자는 남기면서 책은 끝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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