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참 눈에 들어오는 소설이었다. 후임병이 보고 있던 책이었는데 무슨 책이냐고 물어봤더니 역사 소설이란다. 글쎄~왠만한 책은 제목만 보고는 그 내용이 뭔지 잘 모르지만 역사 소설은 달라서 제목만 보고도 대강의 내용을 짐작할 수가 있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전혀 그러지가 않았으니 당연히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원래 책을 보기 전에 무슨 내용인지 한번 ?어보고 볼만한 책이면 보는 편인데 이 책은 그러질 못 해서 볼까 말까 고민을 좀 했었다. 하지만 역사 소설이라고 하질 않는가. 역사라고 하면 죽고 못 사는 주인장이기에 후임병이 보는걸 거의 뺏다시피해서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후임병이 책을 주면서 하는 말이 좀 의외였다. 중남미 멕시코 일대로 이주한 이주민의 역사라는 것이다. 글쎄, 호기심 반, 기대 반에 보기 시작한 책을 다 덮고 난 후 내가 느낀 감정은 정말 뭐랄까? 가슴 깊이 뭉클거리는 것이 생겼다는 것이다.

대한제국 말기, 해외 이주가 한창이던 때, 하와이 이주민들이 이미 정착하기 시작한 시기, 러시아와 일본이 국운을 걸고 대회전을 버리던 시기인 1905년 4월, 영국 기선 일포드호는 조선인 1,033명을 싣고 멕시코로 떠난다. 거기서 그들은 멕시코 전역에 널려있는 에네켄 - 속칭 애니깽 - 농장의 노동자로 4년간의 계약을 맺고 팔린 것이다. 외교관 1명 없고, 전혀 외교 관계도 맺지 않았던 조선으로서는 불모의 나라 멕시코. 그 곳으로 떠난 1,033명의 조선인은 전혀 낯선 문명, 처음 보는 세상에 발을 들여놓고 곧 그 곳에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치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이 멕시코 이주민의 삶을 마치 단막극처럼 보여준다.

- 소설 '검은꽃'은 역사적 사실을 다큐멘터리 필름이 아닌 숏컷 스냅 사진처럼 처리하면서 그 위로 사람들의 생을 판화처럼 떠오르게 서술해 나간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어쩐지 빈 먼지 바람이 가슴 속을 스치고 지나간 듯 하다 -

소설가 황석영의 평처럼 이 책은 숏컷의 스냅 사진이다. 마치 제 3자가, 정말 철저하게 제 3자가 멕시코 이주민의 삶을 전부 꿰뚫어 보고 있는 것처럼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글쎄, 대한제국 건국이 천명되고 그들은 조국에서 발행한 여권을 지닌채 금의환향할 기대에 한껏 부풀어있다. 이처럼 조국을 꿈꾸며 사는 사람들의 삶이 책 안에서 정말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져 소름이 돋을 정도다. 이들 조선인들은 비참한 삶을 살다고 스스로 자존의 길을 찾게 됐고, 결국 마지막에는 하나로 뭉쳐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데 그것도 잠시, 과테말라에서 일어난 반란에 그들이 연루되면서 그들은 정부군과 반군과의 싸움에 끼여 개죽음을 당한다. 책의 마지막 장면, 박광수 - 전직 신부 - 가 모든 것을 체념한채 정부군에 의해 죽고 그의 품에서는 정부군이 전혀 읽을 수 없는, 대한제국의 관인이 찍힌 너덜너덜해진 여권만이 남아있었다. 그 가슴 뭉클한 고향에로의 귀환, 어머니의 품으로, 대지로 다시 돌아가는 인간이란 존재는 그렇게 사라져간 것이다.

에네켄 농장에서의 생활, 한인회의 설립, 점차 멕시코 생활에 적응하는 그들은 점점 자아의 주체로서 생활하게 된다. 말도 안 통하고, 사람을 동물처럼 채찍으로 때리며 부리는 전혀 상상도 못할 그런 불모의 땅에서 그들은 하나로 뭉쳐 자립해나가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더이상 처음에 멕시코에 왔을 때처럼, 알아보지도 못하는 계약서에 몸이 묶인 미약한 채무 노동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악착같이 일을 했고, 돈을 벌어 계약서에 명시된채로 돈을 지불하고 자신의 경제적 가치를 농장주로부터 회수했다. 그리고는 숭무 학교라는 군관 학교를 세우고 조선인들로 이뤄진 조직을 만들어 하나로 뭉쳤으며 조국(祖國), 이미 사라지고 없어진 조국 - 일제에 강제합병당하고 대한제국은 멸망한다 - 을 위해 노력한다.

주인장은 여기에서 두 종류 세상으로 양분된 모습을 보았다. 그 두 종류의 세상이란 어느 한쪽이 잘 됐거나 선이며, 다른 한쪽이 못 됐거나 악인 그런 두 종류의 세상이 아니다. 주인장이 더욱 이 책이, 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쓰여졌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마치 하나의 사실을 두고 서로 다른 시각에서 재해석한 것 마냥, 소설은 그렇게 흘러간다. 대화체가 없이 소설이흘러가는 것도 역시 이런 분위기 조성에 일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한편으로는 딱딱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더욱더 조선인들의 삶을 애잔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러가지 시각으로 해석이 가능한 그들의 삶을 최종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리라.

대한제국 수립이 선포되고 왕은 황제로, 왕실은 황실로 격상됐지만 제국의 운명은 나락으로 한없이 떨어진다.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은 기어코 멸망하기에 이른다. 그즈음 하와이와 멕시코로 대규모 이주가 시작된다. 하와이의 농장에서 일하는 조선인들은 그나마 미국이라는 나라의 영향으로 어느정도 풍족한 삶을 영위하지만 멕시코에 간 조선인들은 채찍으로 맞는 등 비인간적인 처사에 하나둘씩 쓰러진다. 자본주의 국가 미국과 자본주의화를 실행하려고 하는 독재자 국가 멕시코의 두 시대, 두 문명의 환경 속에 떨어진 같은 조선인들의 삶은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또한 멕시코에 도착한 조선인들도 각각 삶의 방향이 다르다. 통역관의 신분으로 처음부터 지배자적인 위치에 있었던 권용준, 황실이지만 무너져가는 제국을 피해 해외로 도피한 이종도, 전자는 자본주의 세계에 걸맞게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부와 지위를 상승시킨다. 하지만 이하응 - 대원군 - 만 아니었어도 자신이 왕이 될 수도 있었다고 자괴하는 이종도는 전형적인 유학자의 삶을 포기하지 못한채 새 세상에 적응하지 못 한다. 결국 황족의 집안은 분열되어 그 아들은 권용준에게 통역일을 배우며 성장하고 딸은 이 남자, 저 남자와 몸을 섞다가 결국은 통역관의 첩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부인 역시 농장의 노동자 감독관과 결혼해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두 사람은 곧 근대 국가로 넘어가는 대한제국의 음과 양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이랄 수 있는 김이정과 조장윤 무리들, 전자는 보부상의 잔심부름꾼으로 지내다가 멕시코로 떠난 인물이다. 어린 시절, 이정도의 딸인 이연수와 멕시코로 떠나는 배 안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왔지만 결국 둘은 헤어지고 만다. 어머니에게서 한번 떠나야 했고 조국에서 떠나야 했으며 사랑하는 연인에게서도 떠나야만 했던 그는 멕시코 내전에 이어 과테말라 내전에도 휩싸인다. 거기서 그는 수십명 무리들을 이끌고 밀림 오지에 '신대한(新大韓)'이라는 나라를 세운다. 그들이 아는 세상은 대한제국이 전부였기에 근대를 향한 그들의 몸부림도 결국은 나라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신대한이 고작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도 결국은 과테말라 정부군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뜨거운 피와 열정을 가지고 살았던 남자,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머나먼 이국에서 살다가 죽은 사람, 마치 근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새로운 문명을 접하고 자아와 정체성을 상실한 당시 조선인들을 대변해는 듯 하다.

그에 비해 조장윤과 그 무리들, 과거 러시아식 훈련을 받던 대한제국의 군인 출신들이었던 그들은 멕시코에 설립된 한인회의 지도자로 여생을 편안히 보낸다. 농장에서 폭동을 일으켰을 때도, 한인회를 설립했을 때도, 과테말라 반군에게 군사 지원을 해주기 위해 수십명을 데리고 밀림으로 떠날 때에도, 그들은 항상 앞장서서 일을 지휘했지만 위급할때는 가장 먼저 사라졌었다. 대단한 협상가, 지도자처럼 굴었지만 결국은 아주 약삭빠른 기회주의자였을 뿐이다. 당시 사람들 눈에는 그런 그들이 어떻게 보였을까? 주인장이 보기엔 그들은 근대 자본주의에 빠르게 적응해버린 인간들이었다.

책은 이렇게 이원화된 시각으로 당시 사회를 조명하고 있다.

역사 소설? 글쎄, 그렇다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만 주인장은 이것이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니라 아주 잘 쓰여진, 감동적인 문학 작품이라고 해두고 싶다. 이런 류의 역사 소설은 처음이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폐부를 찌르는 듯한 감정적 통찰을 이 책은 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오래된 기록 사진첩을 보듯이 이 책은 멕시코 이주민들의 삶을 그만큼 역동적으로 보여줬던 것이다.

책의 결말은 더욱 그런 모습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소설 속에 나오는 권용준, 이종도, 이진우 - 이종도의 아들로 권용준에게 통역일을 배운 사람 - , 박정훈 - 대한제국 군인 출신으로 훗날 이연수와 재혼함 - 등은 모두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근대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 하고 스러져간다. 마치 IMF 시대 속의 기업들처럼 힘없이 말이다. 주인공이 이 책에는 없다. 모든 등장 인물이 주인공이며 하나하나의 사건 중 중요하지 않은 것이 어느것 하나 없다. 그 모든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가슴 아프게 하는 건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멕시코 이주민에 대해 이렇게 책으로 써서 알려주기 위해서 수많은 자료를 뒤지고 현지를 답사하는 등 무한한 노력을 기울이신 작가 김영하님께도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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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구하기
조나단 B. 와이트 지음, 안진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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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선, 이 책은 신문에서 처음 접했다. 신간 도서를 매주 정리하는데 그때 봤던 책이었다. 그 뒤에 군대 선임병 한명이 구입해 보던 것을 빌려봤는데 책을 빌려주며 하는 말이 '재미가 별로 없다. 그래도 볼래?' 였었다. 중간에 내용 전개가 억지스러운 면이 많고, 억지로 짜맞춘듯한 내용 때문에 별로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글쎄, 주인장은 일단 직접 보지 않았으니깐, 하면서 책을 펼쳤다. 이유는 애덤 스미스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이 소설을 통해서 뭔가 새롭다고 할만한 지식을 얻어보기 위해서였다. 또한 경제 소설이라고 할만한 것도 처음이었고, 그게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애덤 스미스에 대한 것이어서 더욱 그랬다.

책을 보면 볼수록 주인장이 느꼈던 것은 뭐가 그렇게 대단하길래 세간에서 이 책에 대해서 떠드는걸까? 하는 것이었다. 신문에서 이 책에 대해 말하길, 애덤 스미스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책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장은 그게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첫장을 열면서부터 이 책은 주인장에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경제 소설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구성으로 이뤄진 것일까? 하는 주인장의 의문점에 대해서 이 책은 신선하게 다가온 것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애덤 스미스, 즉 18세기에 살았던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대학자의 혼(魂)이 21세기로 넘어와 어떤 차량 정비사의 몸에 빙의된다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물론 왜 하필, 경제학과 전혀 상관없는 차량 정비사의 몸에 빙의되었을까 하는 점, 대체 자신이 현재로 넘어와 자신의 업적을 현대인이 잘못 이해하는데서 오는 문제점들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뭘 얻으려고 하는 것일까 하는 점, 자신의 과거 친구들 - 루소, 볼테르, 흉 등 당대의 지식인들 - 이 다 현대인에게 빙의되어 한자리에 모여 포커를 치고 예전처럼 정기적인 만남을 갖는다는 점 등이 물론 내용 전개상에서 어설픈 점은 있다.

애덤 스미스의 혼이 해럴드라고 불리는 사람에게 들어가 있는 동안 해럴드는 심각한 체력 소모를 겪으면서 힘들어한다. 하지만 후에는 아예 애덤 스미스가 해럴드의 몸을 완전히 지배해 마치 자신의 몸인 마냥 행동하며 그의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로 행동하는 것이었다. 소재는 참신할지 몰라도 내용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미흡한 면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용 전개의 미흡한 부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들은 충분히 그런 약점을 보완할만큼 흥미롭고, 또 재미있다. 더구나 음모를 꾸미고 있는 한 단체에서 이 해럴드 몸 속에 있는 애덤 스미스를 노리고 있다는 설정 또한 흥미로웠다. 즉, 이 책은 단순한 경제 소설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모험 소설의 요소도 적절하게 갖추고 있는 셈이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이 책은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재미가 있었다.

일단,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으로 너무나 유명한 애덤 스미스의 책 중에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이라는 책이 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주인장에게는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경제 활동,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철저한 자유 시장 경제 체제를 주장하고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라는 너무나 유명한 얘기를 했던 그가, 실상은 그보다 덕과 양심이라는 부분에 대해 더 주장하고 중요시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일단은 지금까지 배워왔던 것과 전혀 다른 내용에 사람들은 충분히 신선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리고 책을 읽어가면서 점점 빠져들게 된다.

이 책을 쓴 저자 조나단 B. 와이트(Jonathan B. Wight)는 워싱턴 D.C.에서 태어나 밴더빌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댄포스(Danforth) 특별연구원을 역임했다. 리치먼드 대학의 로빈스 경영 대학원에서 경제학 및 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같은 대학에서 우수 교육자상과 우수 봉사가상을 수상했으며 논문 '애덤 스미스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는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로 2001년 팍스톤 우수 논문상을 수상했던 인물이다. 그는 그의 논문에 이어 이 책을 쓰면서 애덤 스미스 바로보기에 열성을 다 했다. 풍부한 자료들을 인용했으며 실제 소설은 역사에 근접한 상황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 사실감에 읽는 사람들은 더욱더 빠져들고 말이다.

특히나 주인공인 경제학자 번스는 애덤 스미스의 혼이 씌인 해럴드와 대화를 하면서 경제학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있게 성찰하기 시작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오늘날 애덤 스미스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국부론'이다. 그러나 스미스 자신은 사람들에게 잘 읽히지 않는 '도덕감정론'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있다. '도덕감정론'은 인간이 행복과 덕성의 근원을 탐구하는 고전으로서 시장에도 덕성은 존재한다는 기본 전제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자신이 주고 난 다음에 주욱 살면서 인간 관계보다 부를 우선으로 치는 세상에 환멸을 느끼곤 했다. 시장의 기본요소인 도덕 구조가 결여된 세상, 철저한 경쟁을 통한 시장 경제 체제를 숭배하는, 오늘날 전세계를 지배하는 절대 자본주의 세상! 즉,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말이다.

그처럼 이 소설은 오늘날의 우리 모습을 놀랍도록 날카롭게 묘사하고 있으며 또한 소설 속 애덤 스미스의 입을 빌려 통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비판이 아닌, 비난이다. 그가 꿈꿨던 자유 시장 경제 체제는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지금 그런 것들이 애덤 스미스의 이름으로 이 세상에 무절제하게 퍼져있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만약 이 땅 위에 다시 태어난다면, 전 세계가 자신의 이론을 받들어 자본주의 체제가 이 땅위에 뿌리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겠는가? 아니면 경악하겠는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역사적 상상력 위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누구나 당연하다고 여겼던 내용에 대해서 이렇게 반론을 펼쳤기에 소설이 더욱 빛나는 것이라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원래 동양에서의 상업 활동은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 장사로 인식된지 오래였다. 사람 장사라고 해서 사람을 사고파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아닌, 사람과 인간 관계를 남기는 장사였다는 소리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쌓이는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한 상도(商道)를 중시하는 것이 바로 동양에서의 상거래의 기본 도리였었다. 그에 반해 애덤 스미스로 대표되는 서구주의 경제학자들은 철저히 원리원칙에 입각해 계산적이고도, 합리적인 사고 방식으로 상업 활동을 전개했었다. 동양에는 없는 서양의 길드나 조합같은 조직의 개념도 알고보면 독점적 상업활동을 위한 이기적인 집단의 발로나 마찬가지다. 즉, 서양의 합리주의와 동양의 덕리주의의 대립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미국에서는 대학 경제학 수업의 교과서로도 쓰일 정도로 큰 호응을 불러 일으킬지는 몰라도 동양인이나, 한국에서는 크게 와닿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쨌든 그런 동-서양의 이질적인 감정적인 면을 떠나서라도 이 책의 내용은 흥미롭다. 왜냐하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 경제사에 대한 기존 개념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늘 느끼지만 고정 관념을 깨뜨리는 새롭고도 참신한 생각은 늘 그걸 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쁨을 주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분명 이 책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기쁨을 충분히 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돈과 이득보다 사랑과 애정, 올바른 경영 윤리가 중요시되는 세상, 애덤 스미스가 진정으로 바라는 경제 사회는 바로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주인장이 경제사나 기타 경제학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이 책을 접해씨에 2번을 읽어야만 했었다. 내용을 읽는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 내용안에 나오는 경제학자의 의견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뭐랄까? 주인장에게는 이 책이 어떤 시금석과도 같은 존재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알고 있는 시장 경제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직접 피부에 와닿게 했다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는 중요하고도 재밌는 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주인장이 다는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서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애덤 스미스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에 감사한다. 마지막으로 소설 속에 나오는 부분 중 애덤 스미스가 자신의 이념에 대해서 강렬하게 반론을 펼치는 부분을 한번 인용하고 글을 마치려고 한다. 이 부분만 보더라도 애덤 스미스가 오늘날의 자유 시장 경제 체제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얼마나 통탄할지가 눈에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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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중요한 듯 힘주어 말했다. 엄습해 오는 피로가 오히려 그의 말에 힘을 실어 주는 것 같았다. "시장을 돌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은 바로 인간 본성이야. 그것이 자비심 및 정의와 균형을 이뤄야만 시민사회가 형성되는 것이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행동에 대한 도덕적 잣대가 무시된다면 어떻게 되겠나? 탐욕만이 넘처난다면 사람들이 자유시장이라는 체제를 변함없이 지지할까? 비인간적인 논리와 합리성을. 옳지 못한 결과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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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몽
최항기 지음, 한동주 그림, 김용만 감수 / 함께읽는책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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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보려던 책을 이제야 보게 됐다. 처음에는 이런 책이 나온지도 몰랐다. 저번 휴가때 김용만 선생님에게서 선생님이 감수한 책이 있는데 한번 보라는 얘기를 듣고 이제야 보게 된 것이다. 일단, 책을 처음 접한 소감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역사, 누구나 쉽게 저할 수 있는 역사에 대해서 썼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 고주몽을 기억하며 잃어버린 강토를 언젠가 수복하자는 3류 극우주의를 부추기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우리의 역사를 딱딱하지 않게 얘기하고 토의해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

솔직히 이 책을 보는 사람들 중 일부는 미리 알고 있겠지만 일부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역사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인장이 이 책을 두고 부대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고주몽'이 뭔지 아냐고 말이다. 고구려의 시조라고 답변하는 사람들도 몇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후임병 중 한명은 혹시 술 잔뜩 취한 '고주망태'를 말하는게 아니냐고 했다가 주인장의 분노섞인 역사 얘기를 꽤 오랫동안 들어야만 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이 고구려사를 알리는데 더 한층 일조하기를 바란다.

전체적으로 스토리는 기본 역사에 충실하게 전개된다. 부여에서 탈출한 왕자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유리명태왕에게 왕위가 넘어가는 순간까지 흔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나온 기존 사실을 토대로 전개된다. 물론 역사 소설이라는 점때문에 작가 특유의 사관도 엿볼 수 있었으며 참신한 해석도 주목할만 했다. 또한 삼국사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 등장시킨 자체가 보기 좋았다. 삼국지연의에만 재미있는 영웅들의 이야기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하겠다. 정사(正史)에 한줄 혹은 몇단어로 설명이 끝나는 인물들을 수십쪽에 걸쳐 살과 뼈를 붙여 하나의 인간상으로 만드는 작업은 언뜻 보면 쉬워보이지만 상당히 어려움을 요하는 작업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에서 극히 자료가 희박한 고구려 건국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뼈와 살이 있는 인간으로 재생시킨 것이다.

삽화까지 그려넣은 이 책은 한편으로는 동화책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동화책은 아니다. 이 책은 단순히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재미만을 주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중국이 고구려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지금! 이 책을 썼다고 강조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고구려 초기사를 조명한 소설 자체가 출판됬다?것이 큰 의의를 지니고 있고 그게 어렵지 않고 쉽게 접할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어서 더욱 괜찮은 것 같다. 아무래도 일반인들이 보기에 역사라는 분야는 아직까지 딱딱하고 고리타분한 학문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역사 해석에 있어서 주인장과 생각이 다른 면도 있겠지만 이건 아니다~싶은 것도 있었다. 먼저 월군녀와 소서노라는 명칭 중에서 월군녀를 택한 부분이다. 그는 전자가 이름이고, 후자는 부족명으로 봤지만 삼국사기를 비롯한 각종 사서를 보면 오히려 소서노가 이름으로 더 잘 어울린다. 월군녀는 월군 지배자의 딸이나 여식 정도로 이해하는게 옳을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기록들은 추모왕이 고구려 건국시 연합한 세력을 두고 소서노, 졸본부여의 둘째 딸, 월군녀 이렇게 3명으로 적고 있는데 보다 비중있는 기록들은 소서노를 지칭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만 하다. 고대 여인들의 이름이 사료를 통해서 확인되는 길은 극히 드문데 국조태왕의 어머니가 단순히 부여 출신 여자라고만 적혀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소서노는 고구려, 백제 2국 건설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이 시대 최고의 여걸이었기 때문에 그 이름 3자 정도는 충분히 남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딱히 이 정도를 제외하면 내용적인 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없다. 부분노와 부위염 등 인물 설정에 있어서 주인장의 생각과 맞지 않는 부분도 간혹 있지만 그것은 각자의 주관적인 입장 차이일 뿐이기에 넘어가고, 그 밖에 부분에 있어서는 대부분 실제 사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내용면에서는 충실하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아울러 저자는 책을 쓰면서 앞부분에 이렇게 밝혔다.

- 우리나라 최초의 벤처 창업가 고주몽,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인간경영을 배운다 -

동명성왕의 벤처 창업가적 면모,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능력에 대해 말하려고 했지만 그런 면의 묘사에 대해서는 부족한 것만은 사실이다. 딱딱한 역사 기록을 대화체로 바꾸고, 살을 붙여 내용을 만들어내는 데에 자료 부족의 한계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자료가 허락하는 한, 그 시대 인물들의 입장이 되어 그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데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소설적 재미와 역사적 사실 전달이라는 두가지 중에서 결국에는 소설적 재미 부각에 치중한 흔적이 강하다.

이처럼 책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할 2가지 소재가 바로 이것이다. 소설적 재미를 추구하다보면 자연히 책의 무게는 가벼워질 수 밖에 없으며 역사적 사실 전달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자연스레 아쉬움을 남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표적인 책이 유현종의 '연개소문'이 아닐까 한다. 역사적인 사실과는 거리가 먼, 오직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책이 바로 이것이다. 물론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 책은 고구려에 대해서 무한한 상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소설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가는 역사를 잘못 알게 되는 더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양자는 병행할 수 없는 양날의 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주인장이 부대 안에 있으면서 글을 쓴게 하나 있다. 제목은 '유리명태왕과 초기 고구려에 대하여 - 유리명태왕과 그의 친족, 외척을 중심으로 본 지배계층 고찰' 이다. 마침 이 글을 쓸때 이 책을 봤기 때문에 더욱더 주인장이 쓴 글과 비교했던 면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주인장이 이 책을 읽고 부족했던 점, 추모왕의 인간적인 면과 경영적인 면에 대해서 적은 부분을 간략하게 여기에 옮겨볼까 한다.

- 개인적으로 주인장은 추모라는 인물에 대해서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가 고구려의 시조라는 사실을 떠나서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는 정말 대단하다.
우선, 그는 젊은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대단히 치밀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부여에서 지낼 때 대소를 비롯한 다른 왕자들의 시기와 질투, 견제에도 불구하고 그는 꿋꿋히 자기 세력을 키우며 겉으로 표시내지 않았다. 물론, 그가 마굿간에서 일하며 지낼 때도 마찬가지다. 흡사 유비가 유황숙으로 불리며 皇都에서 지낼 때 조조의 눈길을 피하려고 야채나 기르며 悠悠自適, 지내던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지내면서 유화부인의 지혜를 빌려 名馬를 골라내고 훗날을 기약하며 지내는 그의 인내심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단하다고 느끼게끔 한다. 그가 부여를 탈출할 때 집안 기둥 밑에 부러진 칼조각을 묻어놓고 떠나는 대목에서 그의 치밀함은 극에 달한다. 반드시 훗날 大成하겠다는 결심과 후계자를 위한 배려까지.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추모는 앞날까지 생각해둔 셈이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부여를 떠난 그의 곁에는 3명의 충신이 함께 하는데 이들은 아마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던 추모를 믿고 모든 것을 맡겼을 것이다. 그렇게 추모는 자신을 따르는 일행을 데리고 남하하는데 중간에서 여러 소규모 세력을 흡수하기에 이른다. 그의 정책 수립에 있어 衆臣들의 힘도 컸겠지만, 그 본인의 능력이 그만큼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이미 부여를 떠날 때 후계자에 대한 생각까지 해 뒀던 그가 재혼을 했다는 사실은 그 혼인이 政略的이었음을 암시한다. 하물며 자기보다 8살이 더 많은 자식이 하나 딸린 과부와 혼인했다는 사실은 더욱 그런 확신을 뒷받침한다 하겠다. 그렇게 고구려를 건국하고 왕좌에 오른 그는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과감한 팽창정책을 실시한다.
건국하자마자 주변에서 말썽꺼리였던 말갈을 정복해 굴복시키고, 비류수 상류의 터줏대감이었던 비류국과 오랜 기간동안 대립한 끝에 결국은 비류국마저 고구려의 발 아래 무릎 꿇리는데 성공한다. 그러면서 비류국을 제후국으로 삼고, 졸본 세력을 견제하는데 이용한 것을 보면 과연 그가 23세의 청년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오녀산성이라는 거대 성곽 도시 건설을 주도한 때의 그의 나이가 25세임을 감안한다면 그의 놀라운 지도력에 혀를 내두르고 싶다.
마지막으로 어린 나이에 남이 오르지 못할 높은 지위에 오른 그가 각 정벌지에서 얻은 부인과 재물이 산더미처럼 쌓였을텐데, 부여에 두고 온 부인과 자식을 잊지 않고 죽기 직전까지 후계자를 위한 배려를 해가며 初心을 잃지 않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살펴보면「高句麗本紀」에 적혀있듯이 유리와 예씨 부인이 고구려로 왔을 때 추모가 기뻐하며 그를 태자로 맞이하는 당시 상황이 눈에 선하다. 얼마나 기뻤을까? 주인장은 설사 그의 기록들이 과장되고 신격화되었다고 해도, 그가 살면서 보여준 치밀함과 인내심, 끈기, 놀라울 정도의 지도력, 문무를 겸비한 뛰어난 재능, 먼 앞날까지 예측하는 銳智力 등은 분명 그가 한시대의 英雄이었음을 다시 한번 刻印시켜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

위의 내용이 바로 주인장이 추모왕에 대해 간략하게 묘사한 부분이다. 아마 최항기도 그의 책에서 이런 부분들을 강조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미 역사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집필에 임하면서 이런 부분이 쉽게 묘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약간의 사론을 더 붙여보도록 하자. 당시 동명성왕과 유리명태왕은 오늘날로 치면, 최고의 벤처 창업가로 CEO에 오른 거물이다. 치밀함과 끈기, 과감한 결단력, 뛰어난 정세 판단 능력과 수많은 참모진들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리더쉽과 안목. 정말 지도자로서의 모든 것을 갖췄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게 불과 20대 중반의 두 사람이 보인 능력이라는 점이다. 그런 두 사람이 고구려를 차례대로 다스리면서 이후 고구려는 1세기초, 동북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벤처 창업가로서의 동명성왕을 부각시키고 싶었다면 그런 세밀한 부분에 대한 묘사가 더 있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런 부분이 부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고구려 건국사를 배경으로 쓴 최초의 역사 소설이라는 점에서 봤을때 그런 아쉬운 부분들을 제쳐두고서라도 충분히 가치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덮으면서 이런 책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주인장도 늘 말하지만 오늘날 국가 위기를 맞이해 우리는 선조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얻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선두에 고구려가 있음을 항시 명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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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 - 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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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서두를 꺼내야 할까? 이 책을 막 읽고난 지금 주인장의 기분은 들떠있다. 뭐랄까? 대단한 걸 접하고 난 다음의 희열감이랄까? 맨 처음 이 책을 본건 신문에서였다. 우리 부대에서 보는 조선일보 - 아마 전군이 이 신문을 보지 않을까 한다 - 에서 매주 토요일이면 '조선BOOKS'라고 하는 조그만 정보지가 곁들여져 나오는데 거기에는 신간 도서에 대한 것과, 그런 책에 대한 다양한 내용들이 실려있다. 거기에서 황석영에 대한 소개와 함께 나온 책이 바로 이 심청이었다. 한 여인네의 운명을 통해 본 민족적 애환이라고 해야할까? 뭐 그런 내용이란다. 솔직히 주인장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주제요, 스타일의 책이었다. 황석영도 그 이름이 유명하고 그의 작품도 몇몇 읽어봤지만 - 최근에는 그가 쓴 삼국지를 4권까지 읽었다 - 그의 문학 세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에 그냥 책 잘쓰는 유명한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는게 전부였었다.

그런데 왜 이 책을 보게 됐나? 지금은 전역하고 없지만 선임병 중 한명이 이 책을 보고 있는 걸 우연히 본 것이다. 어떤 내용이냐, 재미있냐 등등 물어봤을때 그 선임병이 한말은 "야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게 됐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남자들만 있는 군대라는 집단에서 그런 류의 정보는 상당히 인기가 있다. 하지만 다 읽고난 지금은 상당히 기분이 좋다 -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기를, 그런 쪽으로 기분이 좋다는게 아니니까 - 동기야 어쨌든 - 황석영님한테는 죄송하지만 - 읽고나니 이 책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책이 대단하다기보다는 쓴 사람이 대단하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지만 말이다.

심청 하권을 다 보면 이 책에 대해 어떤 사람이 쓴 비평이 실려있고, 작가 자신이 쓴 후기도 담겨있다. 모더니티니, 자본주의니 뭐니 별의별 말이 다 나오지만 주인장은 그런 어려운 말은 잘 모르겠고, 그저 책을 읽은 그대로 느낀 것만을 여기에 한번 적어보고 주인장 나름대로의 생각도 같이 곁들일까 한다.

내용은 15세의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는 조건으로 공양미 3백석을 받아가는 뺑덕어미와 심봉사,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심청의 우여곡절, 80세가 다 되어 겨우 조선으로 돌아와 삶을 끝마칠때까지 한 여인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이 가장 신기해했던 것은 황석영이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구체적으로 - 그것도 상당히 자세히 - 설정해 놓았다는 사실이다. 구한말, 더 자세히 말하면 서양 열강들이 동점해 중국을 난도질하고, 러-일 전쟁, 청-일 전쟁 후 일본이 조선을 강점할 때까지 반세기, 그야말로 역동의 반세기 이상을 청이는 겪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심청이에 관련된 소설이 여럿 있었다고 하는데 주인장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심청은 인당수에 던져졌다가 다시 건져졌고 렌화 - 연화의 중국식 발음 - 라는 이름으로 중국 부잣집 할아버지의 시첩으로 팔린다. 당시 중국 상인들이 조선의 가난한 집 딸들을 이런 식으로 사다가 뱃사람들의 제물로 쓰고, 또 다시 부잣집 시첩으로 팔아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서부터 심청은 더 이상 조선땅에서 태어나자란 심청이 아니다. 그녀는 '렌화'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첫번째 변신이다.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녀는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그녀는 우선 난징으로 갔다가 다시 진장으로, 다시 타이완의 지룽으로 흘러가고 그 곳에서 만난 외국인의 첩으로서 싱가풀로 가면서 다시 로터스 - 연화의 영문식 표기 - 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여기서 그녀는 '로터스'라는 사람으로 다시 한번 태어난다. 또한 그 곳에서 다시 돌아와 류쿠를 거쳐 나가사키로 가기까지 심청은 렌카 - 연화의 일본식 발음 - 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렇게 일본으로 가면서 '렌카'로 다시 태어난 심청은 일생동안 4개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분명 그녀는 한명의 자아체다. 그리고 렌화-로터스-렌카 역시 연화, 연꽃이라는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개의 자아에 3~4개의 명칭, 이것만으로도 그녀의 삶의 애환을 대표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그렇게 여러개의 명칭을 얻기까지 그녀 자의적인 의지라기보다, 외부에 의한 타의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이 더욱 보는 이로 하여금 절실한 심정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다양한 삶을 살던 그녀는 나중에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면서 비로소 심청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기까지 무려 65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흘렀고 이미 고향땅은 자신이 예전에 보고 듣고 자라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세계의 흐름에 부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편안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었다. 그동안의 고생에 보답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자세한 시대적-공간적 배경의 제시는 이 소설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이상 판소리, 전래동화의 한 종류로만 느끼게 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작가의 의도였겠지만 구한말 격동의 시대만큼 여인의 애환을 그려내기 쉬운 배경도 없었을 것이다. 그 수많은 우여곡절은 한 여인의 삶을 통해 당시 조선이 처했던 상황, 아시아가 처했던 상황을 잘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중심에 심청이 서 있는 것처럼 느끼게끔 해준다. 그로 인해 독자는 현실성있게 그녀를 이해하는 것이리라. 막연히 조선시대에 살던 한 여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구한말 격변하는 시대에 살던 한 억센 여인의 이야기로서 말이다.

보면 알겠지만 '매춘'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청이의 삶은 흘러간다. 어린 나이에 늙은 할아버지의 회춘용 시첩이 되고 그 할아버지가 죽자 그 셋째 아들에게 몸을 허락하는 대신 그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녀가 배운건 일급 창기로서의 자세였다. 아울러 심청은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그녀의 생각을 정립해 나간다. 그녀는 세상을 힘이 지배하는, 격동하는 존재로 인식했으며 그 세상을 지배하는 건 남자, 그리고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여자라는 간단한 원리를 깨닫는다. 이제 남자는 그녀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용해야 할 존재다.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 심청이 살아가면서 성숙해지면서 점점 드러나는 그녀의 성격이 바로 이것이다.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그녀의 삶은 보는 이로 하여금 대단하다고 느끼게끔 한다. 하물며 남자가 봐도 이럴진대 같은 여자가 보면 어찌할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책 중간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남자는 돈 버는 것에 매달려 허덕인다. 그 짓밖에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뭐 대강 이런 대사인데 심청이 세상에 대해 내뱉은 강렬한 비난같이 들린다. 마치 권상우가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에서 "대한민국 학교! 다 X까라 그래!"라고 외치는 것처럼 말이다. 주인장은 예전에 '노는 계집 창'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역시 신은경이 나오는 야한 영화였기에 본 거였지만, 볼수록 신은경이라는 여자가 점차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무슨 메세지를 남기려는 듯 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미군 기지 부근에서 양공주를 했던 여자가 썼던 자전적 소설도 본 적이 있었다. 한결같이 밑바닥에서부터 살아온 여인의 삶을 통해서 사회에 대해 뭔가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렇게밖에 자신이 살 수 없게 된 사회와 그 사회를 그렇게 만들어낸 남성들에 대한 강한 저항감, 여자의 위대함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세상 모든 것의 어머니, 대지의 여신이라고 불릴만큼 무한한 포용력을 가진 그런 여자의 위대함 말이다.

심청은 여기서 더 나아가, 포용력에서 끝난게 아니라 남자를 주도할 수 있는 적극성, 강한 개척 정신까지 내포하고 있다. 그 표현이 바로 심청이 싱가폴과 류쿠에서 실시한 고아원 설립이다. 지룽에서 기녀 생활을 하면서 창녀가 낳은 자식이 어떻게 길러지는지 깨달은 심청은 자신이 아끼던 동생이 애를 낳다가 죽자, 그 아이를 자신의 딸처럼 기른다. 그리고 양인의 첩으로 싱가폴에 가서 살면서 그녀는 고아원을 짓는다. 주인장은 왜 하필 고아원 사업일까하고 생각해봤다. 그것은 바로 아이와 모성애로 대변되는 여인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함일 것이다. 심청은 20대가 되면서 성숙한 여인의 내면을 다질 수 있겠 됐고, 그러면서 여인의 본성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자신의 버려진 처지, 먼 이국땅에서 몸과 마음을 원하지 않는 타인에게 빼앗긴 그녀는 자신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의 삶을 다독거려 준다. 여기서 여자의 포용력이 극에 달한다. 자신의 상처를 뛰어넘어 남의 상처까지 다독거리며 끌어안을 수 있는 그런 포용력 말이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책을 읽는 독자는 황석영이 심청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게 무엇인지 느낀다. 거기다가 시대적 배경에 맞는 심청의 삶은 당시 한국인과 아시아인의 삶마저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서양인의 잣대, 서구주의가 팽만한 세상에 마치 경종을 울리듯이 말이다.

심청은 상처입은 소녀에서 성장해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아가씨,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으며 그것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여인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며 세상 속에서 잊혀져가는 노부인으로 그 모습을 변모시킨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삶의 굴곡은 근대화 시기, 아시아와 그 아시아를 노리는 서양인의 모습과도 잘 들어맞는다.

상권은 중국과 타이완 등이 배경이지만, 하권은 류쿠, 나가사키 등 일본이 주무대다. 수많은 남자들, 심청이 만난 수많은 남자들이 대표하는 공간적 배경은 우리들에게 색다른 느낌을 준다. 일반적으로 이 책을 본 사람들은 하권이 상대적으로 재미없고 지루하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야한 내용들이 상권에 많이 있기도 하지만 일본 문화가 우리들에게 익숙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일본이 유일하게 서양식 근대화에 성공해 아시아 각지를 침입했다는 사실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일본의 사회적 환경은 상당히 엄격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통제된 사회였다. 그녀의 운명을 예견이라고 하는 것일까? 일본에서의 그녀 역시 중년 부인의 절제되고 완벽한 어머니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일본에서의 삶도 마무리하고 개항기를 맞이한 조선으로 돌아온다. 그녀에게 조선이란 고향은 그렇게 가고 싶었던 곳이건만, 정작 이 책에서 고향인 조선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이 여겨진다. 조선이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한 것은 책의 맨 처음과 제일 마지막 일부분일 뿐이다. 심청은 3개의 이름으로 3개국을 거쳐 살았지만 그녀가 마지막에 당도한 곳은 결국 심청이 태어나 자라던 조선땅이었다. 우리 민족의 애환이랄까? 심청을 통해 본 이 사회는 가슴아픈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내가 심청이었다면 과연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그녀에게 무한한 경외심을 표하고 싶을 뿐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이 느껴지는 건 유독 주인장만이 느끼는 감정일까?

주인장이 이런 문학 작품을 즐기지 않아서 있는 감정, 느낀 그대로를 두서없이 썼는데 부족한게 분명 있을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주인장에게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행여나 주인장이 쓴 글이 이 작품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깍아내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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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평! 1 - 명을 치련다 길을 내어라
방기혁 지음 / 비봉출판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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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平)' 저자는 책의 제목이 평수길 - 풍신수길의 원래 이름 - 의 평, 혹은 평화라는 것을 평범하게 서술하고자 하는 바램에서 이렇게 정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매한 독자가 생각하기에는 그 의미말고도 임진왜란에 대해 평(評)했다는 의미도 하나 추가시켰으면 한다. 그 이유는 이 책이 그만큼 임진왜란, 정유재란이라는 7년간의 대전(大戰)에 대해서 잘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주인장은 조선사를 굉장히 싫어한다. 특히 조선 후반기의 역사는 증오하기까지 한다. 왜란과 호란으로 얼룩지고 당쟁으로 뒤덮인 시기, 이 시기를 주인장은 조선사의 암흑시대라고 생각한다. 그 암흑시대가 있었기에 '영조-정조의 르네상스' - 주인장의 중학교 국사선생님의 표현, 그 분은 조선사에서 태종-세종 시대가 아닌 이 시기가 가장 번영하고 발전했다고 보셨다 - 가 찾아왔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그 시기만큼은 부끄러운 역사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 연유로 인해 조선사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약간의 개요만 알고 있을 뿐, 체계적이고도 구체적인 이해는 없던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임진왜란에 대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임진왜란 하면 이순신과 조선 수군에 대한 책 몇권을 읽어봤을 뿐이며 기타 유명한 전쟁에 대해서 약간의 지식을 섭렵했을 뿐이었다. 또한 당쟁사를 공부하며 임난 당시의 정치판을 수박 겉?기 식으로 ?어봤을 뿐이며 - 이마저도 그나마 학교다닐때 교수님이 지시한 리포트만 아니었으면 전혀 공부를 안 했을 것이다 - 송시열에 대한 평전 하나로 조선 시대의 정치판에 대한 공부는 끝내다시피 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임난 전반적인 것에 대해 서술한 이 '평' 이라는 책은 주인장에게는 상당히 많은 도움을 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서평을 쓰는데 주관적인 선입견이 상당히 작용할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것이다. 일단, 이 책은 역사적인 사실에 상당히 충실하면서도 저승세계에서의 재판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빌어 서술한 역사 소설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역사 개설서로 봐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임진왜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예전에 '한사모'에서 어떤 회원분이 삼국시대 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재판이라는 형식을 빌린 극을 써야 한다길래 김춘추와 이세민 등이 원고측, 연개소문, 의자왕 등이 피고측으로 등장하는 극 개요를 대강 잡아준 기억이 생각났다. 그때 학교 숙제였었다는데 잘 해갔는지 모르겠다.

암튼 다시 돌아와서 이 책에서 얻은 또 하나의 도움은 임진왜란에 대해서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일단, 주인장이 조선사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도 있겠지만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많은 지식들을 얻었다는 것에 충분히 만족하고 또 고마워하고 있다. 후금의 누루하치가 조선에 보냈던 국서가 위조돼 이덕형이 추진한 명나라와의 교섭에서 활약했다는 사실이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정벌 이전에 류쿠 - 오키나와 - 일대를 복속시켜 명나라를 양면공격하려 했다는 사실이나, 명-일본-조선 3국간의 미묘한 외교 심리 등에 대해서 말이다. 책에서 저자가 밝혔듯이 자세하지 않거나 잘 모르는 곳, 사료에 나오지 않는 곳은 저자 스스로 상상력으로 메꿨다고 했는데 주인장이 뵈에는 저자 나름대로의 가설이 많이 작용한 것 같다. 많은 관련 서적과 자료를 섭렵한 후에 이 임진왜란, 정유재란 7년사를 총정리했는데 그러면서도 저자 스스로의 사관(史觀)이 세워진 것이라 생각한다.

임진왜란의 전체적이고도 자세한 서술, 인물 하나하나에 집중한 스토리 전개 - 데프콘이라는 가상 전쟁 소설을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런 스타일의 소설이다 - , 저승세계에서의 재판이라는 특이한 소재, 비록 소설의 형식을 빌렸지만 역사에 근접한 자세한 서술 등, 일반인이나 전문인(?)에게 좋은 서적이 될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어설프게 독자들에게 소설이라는 것을 알리려는 듯한 대화체 문구나, 저자 본인이 말하고 싶었다는 세가지 즉, 첫째, 국방에는 남녀노소가 없다. 둘째, 조선의 전근대적 사회제도 때문에 초반에 고전했다. 셋째, 자주 국방의 중요성 설파에 대해 역설하려는 의도는 약했다는 것을 지적해두고 싶다. 앞서 말했지만 주인장이 조선사를 잘 알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평은 주인장에게 단순한 지식 전달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소설이라고 분류하기보다도, 일반 역사 개설서로 불리는게 더 나을 법했다는 생각도 한다. 즉, 소설적 재미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더 근접하다 보니, 본래 자신이 원하던 바를 얻지 못 했고, 아울러 저자가 바라던, 알리고 싶었던 세가지도 제대로 알리지 못 하게 된 것이다.

재미와 지식 전달, 두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가 다 놓쳐버린 격이랄까? 하지만 그 시도 하나만큼은 좋았다. 적어도 주인장이 느끼기에는 그렇다. 어쨌든, 주인장에게는 여러모로 좋은 도움이 된 책이었으며 임진왜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책이라고 말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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