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 전쟁의 문화사
존 린 지음, 이내주.박일송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일단 이 책은 주인장이 몽고메리의『전쟁의 역사』이후로 2번째로 읽은 제대로 된 전쟁 관련 개설서이다. 맨 처음에 이 책을 구입했을 때 문화사(文化史)라는 단어에 약간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전쟁사나 군사사를 정치 · 경제 · 사회적인 부분에서 이해하려는 몇몇 연구성과들은 봤었지만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전쟁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처음 접해본 것 같았다. 그래서 신년을 맞이해 구입은 했는데 조금씩 조금씩 읽으며 끝을 보지 못 했다가 드디어 오늘 마지막 장을 덮었기에 이렇게 후다닥 서평을 쓰는 것이다.

책은 먼저 분량면에서 적은 것은 아니다. 주석을 제외하고도 근 700쪽에 달하는 책인데 내용이 재미있고 참신하기 때문에 분명 읽다보면서 책의 매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럼 주인장이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 몇가지들을 잠깐 적어보고자 한다.

먼저 책의 목차를 보면 이 책이 상당히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전쟁의 역사』에서도 느낀 점이지만 이 책 역시 서구만을 공간적 범위로 정하지 않았다. 고대 중국과 인도의 전쟁 관련 문헌을 통해서 '교묘한 전쟁'이라는 장을 설정하고 있었는데 이 부분은 분명 이 책만의 독창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기사도를 중세 유럽의 전쟁에 나타난 완벽한 모형이라고 평한 것, 독특하게 세포이 부대의 토착적 특성에 대해서 독립적인 장을 마련한 것 등은 분명히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부분들이다. 마지막으로 10월 전쟁에 나타난 이집트군의 효율성과 군사문화에 대한 부분, 테러리즘에 대한 새로운 군사 담론 부분까지 전체적으로 기존의 전쟁사 관련 서적과는 다른 구성과 내용들을 담고 있다는 점, 이것이 이 책의 특징 첫번째다.

특히나 마지막 부분의 테러리즘에 대한 부분은 지금까지 어떠한 전쟁사 · 군사사가들이 건드리지 못 한 부분이었는데 역자 후기를 보니 초판본에서는 에필로그였다가 개정판에서 독립된 장으로 확대된 부분이라고 한다. 특히 테러리즘이라는 전쟁의 실상에 대해 저자는 치밀하게 탐색하여 미국이 행한 최근의 몇몇 전쟁에 대해서 냉철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미군이 실질적인 군사작전이 종결된 이후에도 여전히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테러리즘을 전쟁의 한 형태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미군의 전쟁 담론으로 인한 한계라고 설명한 부분은 정말 망치로 한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기까지 했다.

이 책의 두번째 특징은 '담론(discourse)'이다. 이 책에서 담론이란 용어는 특정의 주제에 대한 가정, 인식, 기대, 가치관의 총체를 의미하는 것인데 저자는 하나의 사회 안에서도 계급, 성별, 직업(전문적인 직업군인의 출현과 더불어 직업이 중요한 구분 요소가 된다) 등에 따라 전쟁에 대해서 서로 다른 담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전쟁은 그 전쟁을 행하는 문화권 혹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인식하는 개념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음을 저자는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담론이라는 용어를 빌린 일련의 전쟁에 대한 모델 형성으로 인해서 주인장은 기존에 뚜렷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 했던 부분에 대해서 어느정도 가닥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일단 종래 학계를 지배해왔던 기술결정론적인 해석을 벗어나서 담론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하니 4~5세기 동아시아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중장기병의 존재, 북위와 백제와의 전쟁 등에 대해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해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쟁, 더 세부적으로 전투는 당시 그 행위를 담당하는 구성원들, 특히 군사정책 입안자들의 입장에서 바라볼때 그 본질을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해석에 있어 이 책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마지막 특징을 꼽자면 시 · 공간을 넘어선 서술이라 하겠다. 뭐 다른 책들도 다 그런 것 아니겠느냐~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르다. 전체적인 목차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분명 저자는 다양한 시 · 공간을 서술의 범위로 삼고 있다. 단, 다른 책들과 달리 세부적인 주제들을 정해 담론이라는 측면에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중세 유럽의 전쟁을 기사도와 기병대 초토화작전이라는 세부적인 주제로 삼은 것, 계몽주의 시대의 전투를 선형 전술로 설명한 것, 제국주의시대 국가들의 피정복민 군대에 대해서는 세포이 부대에 대해서, 낭만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결전, 10월전쟁의 이집트군의 군사정책 등등 상당히 세부적이고 흥미로운 주제들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일단 주인장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은 것은 이 3가지다. 더 세부적으로 꼽자면 어느 것 하나 독특하고 주의깊게 바라볼만한 것이 아닌게 없지만 이 정도만 하고 넘어가자.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이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하나 있다.

저자도 그렇고 역자도 밝히고 있지만 이 책에서 존 린은 군사사 분야에서 새로운 문화사적 접근법의 선구적 저작들이라 할 수 있는 키건의『A History of Warfare』(1993)와 핸슨의『Carnage and Culture: Landmarks Battles in the Rise of Western Power』(2001)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책의 앞부분에 특히 집중되어 있는데 그는 앞선 사람들이 다소 획일적으로 바라본 군사사에 대한 인식을 보다 유연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즉, 동양과 서구가 각각 다른 전쟁 방식을 고수한 것이 아니라 동양이든 서양이든 시대와 국가를 떠나 다양한 담론들이 존재했다는 것이 존 린의 주장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장이 앞서 존 린이 비판한 2명의 저작을 미리 읽지 못 했다는 데에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 책의 서평을 먼저 쓴 이유는 앞선 두 책을 본다해도 주인장이 저자와 똑같은 비판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분명 양자는 다른만큼 각각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앞선 연구성과들 역시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물론 존 린의 앞선 연구성과에 대한 비판이 차후 그 책들을 읽을 주인장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책은 지금까지 주인장이 읽었던 군사사 관련 연구성과 중에서 굉장히 참신하고 독특한 시각에서 바라본 것임은 분명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전쟁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 시간을 들여 이 책을 완독하시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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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문명충돌의 역사 - 종교갈등의 오랜 기원을 찾아서
자크 G.루엘랑 지음, 김연실 옮김 / 한길사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말 그대로 '성전(聖戰)'에 대해서 쓴 책이다. 처음 이 책을 사려고 목차를 둘러볼때 주인장이 신기하게 바라봤던 부분이 바로 '성전과 신성시된 전쟁'이라는 목차였었다. 성전이 신성시된 전쟁, 신성한 전쟁이라는 뜻이 아닐까? 왜 같은 뜻으로 알고 있는 단어를 저렇게 병렬시켰을까? 뭐 이런 의문 때문에 뭔가 이 책은 성전에 대한 새로운 내용을 주인장에게 전해줄 것이라는 강한 기대감에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간 주인장이 인식하고 있던 성전이라는 것은 가장 대표적인 십자군 전쟁이었다. 그리고 순간 성전과 신성시된 전쟁의 의미가 다르다면 십자군 전쟁은 전자일까, 후자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밖에 성전이라 꼽을 수 있는 것이 또 뭐가 있을까...고대 히브리인들의 전쟁, 이슬람교의 확장, 몽골의 침입에 대항한 호라즘제국의 전쟁 뭐 그 정도? 그야말로 성전이라는 개념은 주인장이 인식하기에 기독교나 이슬람교(불교에서는 이런 개념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므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목차에서 이렇게 의문점이 생겨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만족!

실제 전쟁은 한낱 인간의 행위일 뿐이므로 감히 성전이라고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성(聖)'과 '신성시(神聖視)'를 확실히 구분하고 있었다. 전자는 말 그대로 '하나님 자체의 신성(神聖)을 가짐'이라는 의미로 신의 초월성에 바탕을 둔다면, 후자는 '인간들의 숭배 대상이 됨'을 가리키는 말로서 초월론적인 것에 기초를 두는 것이라고 적고 있었다. 그간 주인장이 동일한 의미로 이해하고 있던 개념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첫 부분부터 그렇게 새로운 사실들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가뜩이나 200페이지도 안 되는 자그마한 책을 순식간에 읽어내릴 수 있었다. 덧붙여 말하면 영어로 전자는 'Holy'이며 후자는 'Sacred'이므로 성경은 'Holy Bible'이며 성가(聖歌)는 sacred를 쓴다고 적고 있었다. 단, 성인(聖人)의 경우는 비록 한 인간이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 신격화된 것이지만 신이 직접 그를 선택하여 신성을 허락했기 때문에 그때는 '신성시된'이라는 표현 대신 '성스러운'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사실도 밝혀두고 있었다.

저자는 고대 히브리인의 전쟁을 성전의 시초로 보고 그 안에서 성전의 3가지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1번째 개념은 이스라엘인들이 '선민'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특정 민족, 확실한 지리적 공간, 그리고 그 땅의 소유권을 보장해주는 신 이 3가지가 성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고 적고 있다. 즉,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전쟁이란 곧 정복이며 실리에 밝은 그들은 모든 정복 전쟁을 여호와의 전쟁으로 만들고 여호와 하나님을 '군대의 하나님'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시리아에게 패하고 바빌론 유수를 당하면서 히브리인들의 전쟁은 소부족 단위의 정복전이 아니라 강적들과 맞서 싸워 독립을 쟁취해야만 하는 '복수전'의 양상을 띠게 되었고 군대의 하나님은 '복수의 하나님'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이후 전쟁은 여호와의 토벌대 파견으로 인식되었으며 여기에서 3번째 개념이 생겨나게 된다. 마지막 개념은 요즘의 개념과 비슷한 '전쟁은 곧 파탄'이라는 개념이며 전쟁은 인간이 저지른 일이니 인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에 이르게 되면 더 이상 성전의 개념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서양인(?)이기 때문에 저자는 전체 10개의 목차 중에 초기 8개 목차를 기독교(혹은 고대 히브리인)와 결부시켜 이해하고 있었다. 나머지 2개는 '이슬람의 지하드'와 '독일과 일본의 자살 전술'이었고 말이다. 특히 독일의 자살 전술과 일본의 자살 전술을 논하는 부분은 상당히 신선했다. 저자는 일본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아주 또렷하게 내려오는, 그리고 수천년 된 문서와 전통에 의해 성립된 일본인들의 철학을 철인에 대한 허위 숭배를 포함한 나치들의 겉치레뿐인 잡동사니 철학과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극히 대립적인 견해를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장이 보기에는 일본이 전쟁에서 보여준 극단적인 결백함과 생명에 대한 절대적으로 무관심한 태도는 독일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보여진다. 이 역시 천황에 대한 전적인 숭배일 뿐이고 의미없는, 맹목적인 행위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암튼 이 부분 역시 신선한 내용을 전하고 있어 좋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히브리인의 1번째 개념이 이슬람의 지하드를, 지하드는 십자군과 레콩키스타를 낳았다고 했으며 2번째 개념은 3번째 개념을 낳았고 3번째 개념은 정당한 전쟁을, 그리고 그 정당한 전쟁이라는 개념은 '정당방위'라는 개념과 결합되어 최근의 미국과 이라크와 같은 정당한 전쟁의 현대적 개념을 낳았다고 도식을 설정하기도 했다. 성전이라는 개념을 상당히 개념화하여 도식화까지 해놓았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1번 책을 읽고는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현재 이 책을 2번 읽고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주인장이 저자의 생각을 얼만큼 이해했는지는 확언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여튼 저자는 진정한 평화에 대해 소리높여 외치면서 글을 마치고 있다. 평화란 단순히 '싸워야 할 적이 없고, 교전 상태에 있지 않은 한 나라나 민족의 상태'로서 전쟁의 반대 개념이자 스스로의 실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는 전혀 무관하게 이해되어야만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평화에 대한 개념이 자꾸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평화의 본질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성찰이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이런 일련의 내용들은 비록 적은 분량이었지만 임팩트있게 주인장에게 많은 사실들을 깨닫고 느끼게 해주었다. 전쟁이 어째서 단순히 사람들 사이의 대립과 투쟁이 아닌 사회적으로, 의식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성전'이라는 제목으로 '성전'에 대한 부분만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모든 전쟁의 개념에도 적용 가능한 것들을 싣고 있었다. 그래서 주인장이 앞으로 자주 펼쳐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전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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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 - 지금은 사라진 고대 유목국가 이야기
사와다 이사오 지음, 김숙경 옮김 / 아이필드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우연히 인터넷 서점 싸이트에서 이리저리 책을 검색하다가 발견하고는 바로 구입을 희망한 책이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흉노'라고 하는 유목세계 최초의 패자(覇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인 사와다 이사오는 고등학교 무렵부터 흉노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해 지금까지 어언 40여년간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오고 있는 인물인데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분야의 연구자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어쨌든, 이 책은 일단 흉노사를 일반인들도 쉽게 알 수 있게 쓴 최초의 개설서라 할 수 있다. 원서의 서문에는 1996년 9월 18일이라는 날짜가 찍혀 있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일본에서 출간된지 12년만에 한국에서 번역되어 소개된 것 같다. 책의 목차를 일일히 소개할 수는 없지만 대략의 내용만 봐도 흉노의 원류부터 흉노의 흥망성쇠, 흉노와 한의 대립과 그 사이에서 중요시되는 인물들, 흉노의 문화(의식주 포함 각종 경제와 산업 등등), 흉노의 사회조직, 흉노의 분열 등등 흉노사 전반에 대해서 폭넓게 서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주인장이 흉노에 대해 얻었던 자료들은 유목민족사를 포괄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책들에서 단편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다음 책들처럼 말이다.

르네 그루쎄 / 김호동 · 유원수 · 정재훈, 1998,『유라시아 유목제국사』, 사계절

박원길, 2001,『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역사와 민속』, 민속원

정수일, 2001,『고대문명교류사』, 사계절

고마츠 히사오 등, 2005,『중앙 유라시아의 역사』, 소나무

대강 이런 책들을 보면 흉노는 최초의 유목국가로서 일정 분량의 내용이 소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유목민족사라는 전체적인 틀 안에서 언급되는 것이지 흉노라는 타이틀을 갖고 독립적인 장이 마련되어 다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가운데 주인장이 눈여겨본 것은 이 책이 흉노에 대해 쓴 최초의 통사적 성격을 지닌 개설서라는 사실이다. 물론 일본인에 의해 쓰여진 책이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조각조각 이해하고 있던 내용들이 퍼즐맞추기처럼 하나로 통일되어 정리될 수가 있었다. 그 점이 아마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단 전체적인 내용은 통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일일히 거론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두번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면 저자가 단순히 (얼마 없는) 문헌에만 의존해서 흉노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흉노문화의 특징에 대해서 언급할때, 그리고 흉노의 시기별 영역, 중심지 변화와 지배층간의 계급변화 등을 거론할 때는 고고학적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어 눈에 띄었다. 최근 급증하는 흉노 관련 유적들을 소개함으로써 문헌자료가 제시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거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흉노사에 대해서 굉장히 광범위하면서도 세세한 부분까지 다 짚어내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주인장이 이 책의 특징으로 꼽은 것은 마지막 5장, '흉노의 분열과 그 후' 라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흉노에 대해서 언급한 책들을 보면 흉노의 흥망성쇠에 대해 일괄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특히 그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굳이 언급한다면 흉노와 훈족의 관계 정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흉노의 마지막을 오호십육국까지 연결시키고 있으며 마지막 흉노계 집안인 독고씨 집안까지 거론하면서 흉노의 역사에 대해 서술하고 있어 주목할만 했다. 대개 흉노의 남북분열과 남흉노의 소멸, 북흉노의 서천과 훈족의 등장 등으로 끝맺음을 하는 여타 책들과는 분명 다른 구성이었고, 주인장이 그간 미처 생각치 못 했던 부분들을 다루고 있어서 참신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책은 전체적으로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 조치원에서 서울로 오는 기차에서 책을 읽고 다시 서울역에서 집까지 오는 전철 안에서, 마지막으로 집에 와서 씻고 난 다음 자기 전까지 읽어서 결국 다 읽을 수 있었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서술에 별 어려움없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간만에 좋은 책을 하나 읽었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면서도 책장을 덮는 순간, 아주 약간 아쉬운 점이 들어 적어보고자 한다.

東伐朝鮮 起玄 樂浪 以斷匈奴之左臂

위의 구절은『漢書』卷73에 나오는 내용이며 해석하자면 '(한무제가) 동으로는 조선(朝鮮)을 정벌하여 현도군과 낙랑군을 일으켜 흉노의 왼팔을 잘랐다' 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대흉노정책을 대외적인 국가정책 일순위로 여기던 한나라에서 인식하기에 단군조선과 흉노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고, 그것이 차후 한나라에게는 위협적인 것이었음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흉노가 사방으로 정벌했던 정치세력을 봤을때 단군조선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점, 어떠한 대립적인 관계에 대한 기록이 없었던 점은 분명 눈여겨볼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쓴 저자는 거기까지는 언급하고 있지 않아서 다소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관련 사료도 극히 적고 고고학적인 연구도 거의 진행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한국에 소개된 최초의 흉노 통사라는 점에서 이 책은 높은 점수를 받아 마땅하며 그 내용면에 있어서도 손색이 없다고 주인장은 감히 말하고 싶다. 비단 흉노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으므로 시간이 날때 한번쯤 책장을 넘겨보면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손에서 뗄수 없는 책이라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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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발견 - 한국 고대사의 재구성을 위하여
이희진 지음 / 동아시아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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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처음 본 것은 작년 1학기였던 것 같다. 후배가 리포트를 작성할때 보고 있던 책이었는데 나중에 대학원 입학시, 연구계획서를 작성할 때 주인장 역시 한번 들춰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전쟁사 혹은 군사학 관련된 서적이 많이 없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키워드로 검색만 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책인데 전쟁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이는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작년 말에 한번 ?어봤다가 이번에 다시 한번 정독을 한 뒤에 이렇게 서평을 남기는 것인데 인터넷 서점을 가 보니까 굉장히 호평을 받고 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주인장은 그닥 호평을 줄 수 없다.

책의 전체적인 목차는 크게 두 파트로 나눠지고 있다. 첫번째는 한국사에서 중요하게 취급받는 몇몇 전쟁(예를 들어 관산성전투라든가, 고구려의 경자년 대원정과 같은...)에 대해서 저자 나름대로 체계적인 분석을 하는 부분이었고, 둘째는 전쟁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이었는데 책의 주요 내용은 첫번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저자가 전쟁에 대해서 언급할때 지나치게 신세대적인(?) 사고방식으로 전쟁을 해석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전략 · 전술을 설명할때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주인장으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물론 독자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게임을 거론한 것은 알겠지만 그 게임이 전쟁에 대한 설명에 있어 부가 자료로 쓰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어처구니없게도 전쟁에 대한 연구서적에 버젓히 요즘식(?) 용어라든가, 게임 관련된 용어를 여과없이 쓰고 있어 저자의 연구성과를 스스로 깎아먹고 있었다.

그럼 이제부터 하나씩 짚어가보자.

먼저 신라와 왜와의 전쟁에 대해서 저자는 공성전(攻城戰)에 대한 개념을 언급하면서 전략적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신라와 왜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먼저 '왜'라는 존재에 대한 개념을 명확하게 규명하기 전에는 사상누각에 불과한 논리 전개가 될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철저하게 왜라는 존재를 바다 건너의 해상세력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삼국사기』에 기록된 왜는 해상활동도 했지만 더불어 육상활동도 겸했던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부분을 저자는 왜의 해안거점 확보라는 식으로 해석했는데, 이는 전쟁을 떠나서 왜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학계에서 한반도 왜라는 용어도 사용하고 있는 마당에 왜를 무조건 바다 건너 살던 해양세력이라고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를 저자는 생각치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주인장이 첫번째 신라와 왜의 전쟁 부분에 대한 점수를 매기자면 100점 만점 중에 50점 이상을 받기 어려운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그 다음은 근초고왕에 대한 부분이었다. 우리가 흔히 마한의 멸망은 근초고왕 시절(4세기) 왜의 용병을 고용한 백제에 의해 이뤄졌다는 시각을 갖고 있는데 저자 역시 그와 동일한 시각 하에서 논리를 전개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어 주인장으로 하여금 실소를 금치 못하게 했다.

- 4세기 중엽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고대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일본 고대사에서 4세기는 '수수께끼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다. 일본 측에서는 3세기까지 일본 국가의 상태와 4~5세기 야마토 왜의 발전 상황에 너무나 큰 격차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엄청난 발전이 4세기라는 짧은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말이 된다.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이런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했는지, '수수께끼'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의 이면은 한국 고대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4~5세기 야마토 왜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고 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전방후원분 같이 거대한 무덤이 나타나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런 고고학적 근거는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너무나 많다. 고고학적 증거만 가지고는 어떤 주장이건 확실하게 증명하기가 곤란하다는 뜻이다.

야마토 왜가 4세기 이후 급성장했다는 주장에 힘을 실으려면 보다 확실한 문헌적 근거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주장을 하는 측에서는 4세기 중엽 신공황후가 가야를 정벌했다고 기록했던『일본서기』나 신라를 괴롭히는 왜를 몰아내기 위해 고구려가 5만이나 대군을 투입했다는 광개토왕 비의 기록을 들이댄다 -

위의 내용이다. 전방후원분 같은 고고학적 근거가 어떻게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러한 고고학적 근거를 해석하는데 있어 절대로 문헌사료가 우선시될 수는 없다. 오히려 고고학적 근거에 따라 문헌사료를 다시 한번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옳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도 4세기 근초고왕이 이끄는 백제군이 마한 잔여세력을 멸(滅)하고 한반도 서남부를 통일했다고들 말하지만, 오히려 5세기를 넘어서면서 영산강 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서남부 일대에 중앙정부(한성의 백제)와 대등한 규모의 정치세력이 등장하고 있음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걸 문헌사료에 끼워맞추라고? 풋~진짜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이런 고고학적 근거에 맞춰서『일본서기』나 광개토호태왕비문을 해석하면 답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다. 신공황후 기사에 대한 편년은 물론이고,  왜라고 등장하는 모든 세력을 바다 건너 존재했던 해상세력으로만 이해하니 전체적인 논리 전개에 있어서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기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 부분 역시 점수를 매기자면 60점 이상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세번째는 고구려 광개토호태왕이 싸운 왜라는 존재이다. 이 역시 앞에서 얘기했듯이 저자가『일본서기』에 나오는 왜,『삼국사기』에 나오는 왜, 광개토호태왕비에 나오는 왜를 모두 다 동일한 존재로 인식했기 때문에 내용면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100p에서 당시 동아시아의 양대 축은 고구려와 백제였다고 언급을 하면서도 정작 121~123p에 가서는 고구려가 임나에 터를 잡고 있던 왜를 초토화시키기 위해서 5만이라는 대군을 동원했고, 그로 인해 심리적인 전략적 효과를 얻었다는 비상식적인 언급을 하고 있었다. 분명 당시 시대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말이 흐지부지 되어버리고 말았다. 저자도 분명히 짚어내고 있듯이 당시 동아시아의 양대 축은 고구려와 백제다. 

당연히 동아시아의 패권을 잡기 위해 양측은 다방면에서 대립할 수 밖에 없었다. 즉, 고구려의 주적(主敵)은 백제였으며 고구려의 가장 큰 전략적 대상도 백제였으며 고구려가 대규모 군사력을 동원해 상대해야 할 세력 역시 백제라는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백제가 버티고 있는판에 5만이라는 대군을 동원해 심리적인 전략적 우위에 서기 위해 고구려가 대군을 동원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셈이다. 저자는 경자대원정 전후로 한 백제와의 대결(비문에 왜라고 적혀있는 상대와의 전쟁)에 대한 이해 없이 경자대원정만 갖고 이해하고 있으니, 이처럼 어이없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고로 이 부분 역시 점수를 매기자면 60점 이상 주기가 힘들다.

하지만 뒤에 등장하는 세가지 내용, 관산성전투에 대한 부분과 대가야를 합병한 부분, 백제의 멸망에 대한 부분은 눈여겨볼만 했다.

특히 관산성전투에 대한 해석은 참신했다 할 수 있는데 저자는 관산성을 백제가 함락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끝맺었지만 성왕이 전후 처리를 위해 관산성으로 가다가 잡혀 죽음으로써 전세가 뒤집혔다고 해석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연구성과에서는 관산성전투에서 백제가 패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전체적인 논리전개를 했었는데 저자는 관산성이 함락된 것으로 당시 전황을 일단락짓고 성왕의 죽음은 정말로 어이없는, 순전히 우연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었다. 주인장 역시 관산성을 둘러싼 공방전에서 수차례 백제와 신라가 접전했고 백제가 여러차례 승리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성왕의 전사로 전황이 뒤집혔을 뿐, 관산성전투가 백제의 승리로 일단락지었다고는 생각치 못 했는데 이 부분은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성이 함락되었느냐, 함락되지 않았느냐에 따라서 당시의 전략 · 전술은 물론 양측의 전략적 우위에 대한 해석이 충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은 점수를 매기자면 90점 가까이 줘도 아깝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신라가 동맹군으로 생각하고 있는 대가야를 급습해 멸망시켰다는 해석이나 백제의 멸망에 대해서 지금까지 잘못 생각해왔다는 저자의 해석은 분명 재론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주인장이 미처 생각치 못 했던 부분이기도 했지만 분명 참고할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백제 멸망에 있어서 저자는 백제가 손놓고 있다가 멸망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었다. 특히 탄현과 백강 방어에 대한 당시 백제 관료들의 논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는데 그 부분은 충분히 재고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었다. 백제 관료들이 바보가 아닌만큼 그들도 작전회의에서 충분히 백제의 승리를 위한 작전을 내놓았던 바, 그들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백제 관료들이 둘로 나뉘어 서로 극과 극의 주장을 내세운 것처럼 해석해 지만 저자는 그를 다르게 해석했다. 즉, 전략상 요충지를 버리고 미련하게 안으로 끌어들여 적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적들이 요충지에 도착하기 전이냐, 도착하자마자냐의 시간적 차이를 두고 공격 시점을 정한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었다. 이 부분 역시, 원사료를 해석하는데 있어 미묘한 어감의 차이에서 오는 해석이겠지만 분명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총평을 하자면 전반적으로 왜와 관련된 저자의 생각들은 뭔가 2%가 부족한 것들이어서 점수가 낮을지 몰라도 나머지 부분들은 분명 참신한 해석을 하고 있어서 참고할만 하다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뒷부분에 고대 전투의 기본 요소, 전쟁의 변수, 보급과 동원체제, 지리적 환경과 전략 · 전술이라는 챕터를 두어 전쟁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기본적인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어 독자들의 이해를 구하고 있는 점이 추가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연구서적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고 개설적인 내용이 많기 때문에 전체적인 책의 내용이 전쟁사 관련 연구서적의 선구자격인 책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앞에서도 분명 언급했지만 아무리 독자들의 이해를 구한다 하더라도 PC 게임을 예로 들면서 설명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타문화권의 전쟁이나 전투에 대해 언급하면서 비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자료 제시 방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책에서도 그런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체적인 책의 내용을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했으니 말이다.

암튼 우리나라에서 나온 몇 안 된 전쟁사 관련 서적인만큼 분명히 눈여겨볼만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전쟁사 관련된 공부를 하거나 전쟁이나 전투에 대한 개념을 익히고자 하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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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락공주
김중걸 지음 / 문학과의식사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최근에 주인장이 본 고구려 역사소설이 하나 있다. 제목은 위에 적혀있는 것처럼『장락공주』다. 아마 주인장 기억에 신도림역 헌책방에서 반값에 구입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읽고 나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까 출간할 당시, 꽤 화제가 되었던 책인 듯 싶었다. 동북공정에 맞서 고구려가 우리나라 역사임을 밝히고자 하는 의도에서 전적으로『자치통감』에도 기록되어 있는 실존인물 장락공주를 주인공으로 해서 당과 고구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실제 주인장이 읽어볼 때도 그러했고 말이다. 저자가 내세운『자치통감』의 기록을 보고 주인장이 확인했지만 저자가 내세운 기록은 찾을 수 없었고, 다음과 같은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長樂公主將出降,上以公主皇後所生,特愛之,敕有司資送倍於永嘉長公主

전체적인 내용은 저자가 내세운 기록과 일맥상통하기는 하지만 이것만 갖고는 장락공주에 대한 정보를 얻기란 분명 부족했다. 게다가 네이버 블로그 '무롱's 잡다구니'(http://blog.naver.com/lumia22?Redirect=Log&logNo=80027449201)의 게시물을 확인해보면 장락공주는 당태종 이세민이 그녀를 평소 너무 아껴서 꼭 장손황후의 친정 사람에게 시집가야 한다하여 장손충(長孫沖)에게 시집갔다고 한다. 이후 장손황후가 천식으로 세상을 뜨자 평소 장손황후와 많이 닮았던 장락공주 역시 천식으로 일찍 세상을 떴다고 한다. 물론 이 기록에 대해서 주인장이 확인은 안 해봤지만, 사료 상으로는 일단 장락공주를 고구려와 연결시켜 해석할 여지는 부족한 게 사실이다.

저자는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서 이런 소설을 썼다고 한다. 나이가 60이 다 된 영류태왕이 당주(唐主) 이세민에게 볼모로 삼을 여인을 요구했고, 당태종은 울분을 참으며 장락공주를 보내 고구려 안에서 내분을 조장하라는 밀명을 내리고, 그 결과 영류태왕이 죽고 태자 환권은 자결하고 연개소문에 의해 고구려가 장악된다는 설정이다. 대체 이게 동북공정에 어떻게 대항하고자 하는지 솔직히 주인장은 모르겠다. 저자가 책을 썼다고 하는 의도와 동북공정이 전혀 상관이 없게 느껴졌고, 단순히 당주 이세민이 고구려에 여자를 바쳤다, 라는 허구 속의 만족감만 불러일으키고 말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게 과연 동북공정에 얼만큼 대항할 수 있는 여건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암튼, 이런 부분 때문에 이 책은 근본적으로 역사소설이 아닌, 허구 속에서 출발한 소설이 되고 말았다. 이 책이 역사소설을 표방하는 것은 마치 연개소문이 정통 대하사극을 표방하는 것과 같은 엉성한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그 점이 참 아이러니하고 우습기도 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무슨 내용일까, 하고 책을 사서 봤는데 그닥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단, 이 책도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분명히 있다.

저자는 상황 묘사나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에 있어서 굉장히 탁월한 집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복식이나 음식, 생활하는 모습, 거처 등등 고구려 고분벽화에 대한 자료를 토대로 상당히 세밀하게 묘사해주고 있어서 글을 읽으면서 그 모습들이 상상이 갈 정도였다. 그리고 장락공주를 둘러싼 영류태왕, 고환권, 양만춘, 연개소문 등의 심리묘사가 주축이기 때문에 대규모 전쟁에 대한 묘사 보다는 섬세하고 세밀한 개개인의 모습을 잘 살려내고 있어 그 점은 분명 눈여겨볼만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여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분명 역사소설이라면 어느정도 실제 역사에 근거해서 당시의 상황을 포괄적으로 재해석해내야만 하는데 저자는 관련 사료를 많이 접하지 못 했다는 것이 소설 곳곳에서 드러났다. 특히『삼국사기』와 같은 우리측 사서를 충실히 따르지 않았음은 물론, 중국측 사료 역시 폭넓게 인용하지 못해서 세밀한 묘사가 빛이 바랠 정도로 전체적인 상황 설정에는 실패했다. 단 한권의 책으로 내용은 그리 많지 않지만 고구려 말기에 각 인물들이 정말 저랬을 수도 있겠구나~싶을 정도로 이것저것 생각할 걸 많이 준 책이었던 듯 싶다. 그냥 역사소설로서의 실제 역사 검증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저자의 집필력을 감상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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