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 전쟁의 문화사
존 린 지음, 이내주.박일송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일단 이 책은 주인장이 몽고메리의『전쟁의 역사』이후로 2번째로 읽은 제대로 된 전쟁 관련 개설서이다. 맨 처음에 이 책을 구입했을 때 문화사(文化史)라는 단어에 약간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전쟁사나 군사사를 정치 · 경제 · 사회적인 부분에서 이해하려는 몇몇 연구성과들은 봤었지만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전쟁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처음 접해본 것 같았다. 그래서 신년을 맞이해 구입은 했는데 조금씩 조금씩 읽으며 끝을 보지 못 했다가 드디어 오늘 마지막 장을 덮었기에 이렇게 후다닥 서평을 쓰는 것이다.

책은 먼저 분량면에서 적은 것은 아니다. 주석을 제외하고도 근 700쪽에 달하는 책인데 내용이 재미있고 참신하기 때문에 분명 읽다보면서 책의 매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럼 주인장이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 몇가지들을 잠깐 적어보고자 한다.

먼저 책의 목차를 보면 이 책이 상당히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전쟁의 역사』에서도 느낀 점이지만 이 책 역시 서구만을 공간적 범위로 정하지 않았다. 고대 중국과 인도의 전쟁 관련 문헌을 통해서 '교묘한 전쟁'이라는 장을 설정하고 있었는데 이 부분은 분명 이 책만의 독창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기사도를 중세 유럽의 전쟁에 나타난 완벽한 모형이라고 평한 것, 독특하게 세포이 부대의 토착적 특성에 대해서 독립적인 장을 마련한 것 등은 분명히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부분들이다. 마지막으로 10월 전쟁에 나타난 이집트군의 효율성과 군사문화에 대한 부분, 테러리즘에 대한 새로운 군사 담론 부분까지 전체적으로 기존의 전쟁사 관련 서적과는 다른 구성과 내용들을 담고 있다는 점, 이것이 이 책의 특징 첫번째다.

특히나 마지막 부분의 테러리즘에 대한 부분은 지금까지 어떠한 전쟁사 · 군사사가들이 건드리지 못 한 부분이었는데 역자 후기를 보니 초판본에서는 에필로그였다가 개정판에서 독립된 장으로 확대된 부분이라고 한다. 특히 테러리즘이라는 전쟁의 실상에 대해 저자는 치밀하게 탐색하여 미국이 행한 최근의 몇몇 전쟁에 대해서 냉철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미군이 실질적인 군사작전이 종결된 이후에도 여전히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테러리즘을 전쟁의 한 형태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미군의 전쟁 담론으로 인한 한계라고 설명한 부분은 정말 망치로 한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기까지 했다.

이 책의 두번째 특징은 '담론(discourse)'이다. 이 책에서 담론이란 용어는 특정의 주제에 대한 가정, 인식, 기대, 가치관의 총체를 의미하는 것인데 저자는 하나의 사회 안에서도 계급, 성별, 직업(전문적인 직업군인의 출현과 더불어 직업이 중요한 구분 요소가 된다) 등에 따라 전쟁에 대해서 서로 다른 담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전쟁은 그 전쟁을 행하는 문화권 혹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인식하는 개념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음을 저자는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담론이라는 용어를 빌린 일련의 전쟁에 대한 모델 형성으로 인해서 주인장은 기존에 뚜렷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 했던 부분에 대해서 어느정도 가닥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일단 종래 학계를 지배해왔던 기술결정론적인 해석을 벗어나서 담론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하니 4~5세기 동아시아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중장기병의 존재, 북위와 백제와의 전쟁 등에 대해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해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쟁, 더 세부적으로 전투는 당시 그 행위를 담당하는 구성원들, 특히 군사정책 입안자들의 입장에서 바라볼때 그 본질을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해석에 있어 이 책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마지막 특징을 꼽자면 시 · 공간을 넘어선 서술이라 하겠다. 뭐 다른 책들도 다 그런 것 아니겠느냐~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르다. 전체적인 목차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분명 저자는 다양한 시 · 공간을 서술의 범위로 삼고 있다. 단, 다른 책들과 달리 세부적인 주제들을 정해 담론이라는 측면에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중세 유럽의 전쟁을 기사도와 기병대 초토화작전이라는 세부적인 주제로 삼은 것, 계몽주의 시대의 전투를 선형 전술로 설명한 것, 제국주의시대 국가들의 피정복민 군대에 대해서는 세포이 부대에 대해서, 낭만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결전, 10월전쟁의 이집트군의 군사정책 등등 상당히 세부적이고 흥미로운 주제들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일단 주인장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은 것은 이 3가지다. 더 세부적으로 꼽자면 어느 것 하나 독특하고 주의깊게 바라볼만한 것이 아닌게 없지만 이 정도만 하고 넘어가자.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이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하나 있다.

저자도 그렇고 역자도 밝히고 있지만 이 책에서 존 린은 군사사 분야에서 새로운 문화사적 접근법의 선구적 저작들이라 할 수 있는 키건의『A History of Warfare』(1993)와 핸슨의『Carnage and Culture: Landmarks Battles in the Rise of Western Power』(2001)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책의 앞부분에 특히 집중되어 있는데 그는 앞선 사람들이 다소 획일적으로 바라본 군사사에 대한 인식을 보다 유연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즉, 동양과 서구가 각각 다른 전쟁 방식을 고수한 것이 아니라 동양이든 서양이든 시대와 국가를 떠나 다양한 담론들이 존재했다는 것이 존 린의 주장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장이 앞서 존 린이 비판한 2명의 저작을 미리 읽지 못 했다는 데에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 책의 서평을 먼저 쓴 이유는 앞선 두 책을 본다해도 주인장이 저자와 똑같은 비판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분명 양자는 다른만큼 각각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앞선 연구성과들 역시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물론 존 린의 앞선 연구성과에 대한 비판이 차후 그 책들을 읽을 주인장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책은 지금까지 주인장이 읽었던 군사사 관련 연구성과 중에서 굉장히 참신하고 독특한 시각에서 바라본 것임은 분명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전쟁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 시간을 들여 이 책을 완독하시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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