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문명충돌의 역사 - 종교갈등의 오랜 기원을 찾아서
자크 G.루엘랑 지음, 김연실 옮김 / 한길사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말 그대로 '성전(聖戰)'에 대해서 쓴 책이다. 처음 이 책을 사려고 목차를 둘러볼때 주인장이 신기하게 바라봤던 부분이 바로 '성전과 신성시된 전쟁'이라는 목차였었다. 성전이 신성시된 전쟁, 신성한 전쟁이라는 뜻이 아닐까? 왜 같은 뜻으로 알고 있는 단어를 저렇게 병렬시켰을까? 뭐 이런 의문 때문에 뭔가 이 책은 성전에 대한 새로운 내용을 주인장에게 전해줄 것이라는 강한 기대감에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간 주인장이 인식하고 있던 성전이라는 것은 가장 대표적인 십자군 전쟁이었다. 그리고 순간 성전과 신성시된 전쟁의 의미가 다르다면 십자군 전쟁은 전자일까, 후자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밖에 성전이라 꼽을 수 있는 것이 또 뭐가 있을까...고대 히브리인들의 전쟁, 이슬람교의 확장, 몽골의 침입에 대항한 호라즘제국의 전쟁 뭐 그 정도? 그야말로 성전이라는 개념은 주인장이 인식하기에 기독교나 이슬람교(불교에서는 이런 개념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므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목차에서 이렇게 의문점이 생겨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만족!

실제 전쟁은 한낱 인간의 행위일 뿐이므로 감히 성전이라고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성(聖)'과 '신성시(神聖視)'를 확실히 구분하고 있었다. 전자는 말 그대로 '하나님 자체의 신성(神聖)을 가짐'이라는 의미로 신의 초월성에 바탕을 둔다면, 후자는 '인간들의 숭배 대상이 됨'을 가리키는 말로서 초월론적인 것에 기초를 두는 것이라고 적고 있었다. 그간 주인장이 동일한 의미로 이해하고 있던 개념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첫 부분부터 그렇게 새로운 사실들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가뜩이나 200페이지도 안 되는 자그마한 책을 순식간에 읽어내릴 수 있었다. 덧붙여 말하면 영어로 전자는 'Holy'이며 후자는 'Sacred'이므로 성경은 'Holy Bible'이며 성가(聖歌)는 sacred를 쓴다고 적고 있었다. 단, 성인(聖人)의 경우는 비록 한 인간이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 신격화된 것이지만 신이 직접 그를 선택하여 신성을 허락했기 때문에 그때는 '신성시된'이라는 표현 대신 '성스러운'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사실도 밝혀두고 있었다.

저자는 고대 히브리인의 전쟁을 성전의 시초로 보고 그 안에서 성전의 3가지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1번째 개념은 이스라엘인들이 '선민'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특정 민족, 확실한 지리적 공간, 그리고 그 땅의 소유권을 보장해주는 신 이 3가지가 성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고 적고 있다. 즉,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전쟁이란 곧 정복이며 실리에 밝은 그들은 모든 정복 전쟁을 여호와의 전쟁으로 만들고 여호와 하나님을 '군대의 하나님'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시리아에게 패하고 바빌론 유수를 당하면서 히브리인들의 전쟁은 소부족 단위의 정복전이 아니라 강적들과 맞서 싸워 독립을 쟁취해야만 하는 '복수전'의 양상을 띠게 되었고 군대의 하나님은 '복수의 하나님'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이후 전쟁은 여호와의 토벌대 파견으로 인식되었으며 여기에서 3번째 개념이 생겨나게 된다. 마지막 개념은 요즘의 개념과 비슷한 '전쟁은 곧 파탄'이라는 개념이며 전쟁은 인간이 저지른 일이니 인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에 이르게 되면 더 이상 성전의 개념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서양인(?)이기 때문에 저자는 전체 10개의 목차 중에 초기 8개 목차를 기독교(혹은 고대 히브리인)와 결부시켜 이해하고 있었다. 나머지 2개는 '이슬람의 지하드'와 '독일과 일본의 자살 전술'이었고 말이다. 특히 독일의 자살 전술과 일본의 자살 전술을 논하는 부분은 상당히 신선했다. 저자는 일본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아주 또렷하게 내려오는, 그리고 수천년 된 문서와 전통에 의해 성립된 일본인들의 철학을 철인에 대한 허위 숭배를 포함한 나치들의 겉치레뿐인 잡동사니 철학과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극히 대립적인 견해를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장이 보기에는 일본이 전쟁에서 보여준 극단적인 결백함과 생명에 대한 절대적으로 무관심한 태도는 독일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보여진다. 이 역시 천황에 대한 전적인 숭배일 뿐이고 의미없는, 맹목적인 행위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암튼 이 부분 역시 신선한 내용을 전하고 있어 좋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히브리인의 1번째 개념이 이슬람의 지하드를, 지하드는 십자군과 레콩키스타를 낳았다고 했으며 2번째 개념은 3번째 개념을 낳았고 3번째 개념은 정당한 전쟁을, 그리고 그 정당한 전쟁이라는 개념은 '정당방위'라는 개념과 결합되어 최근의 미국과 이라크와 같은 정당한 전쟁의 현대적 개념을 낳았다고 도식을 설정하기도 했다. 성전이라는 개념을 상당히 개념화하여 도식화까지 해놓았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1번 책을 읽고는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현재 이 책을 2번 읽고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주인장이 저자의 생각을 얼만큼 이해했는지는 확언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여튼 저자는 진정한 평화에 대해 소리높여 외치면서 글을 마치고 있다. 평화란 단순히 '싸워야 할 적이 없고, 교전 상태에 있지 않은 한 나라나 민족의 상태'로서 전쟁의 반대 개념이자 스스로의 실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는 전혀 무관하게 이해되어야만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평화에 대한 개념이 자꾸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평화의 본질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성찰이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이런 일련의 내용들은 비록 적은 분량이었지만 임팩트있게 주인장에게 많은 사실들을 깨닫고 느끼게 해주었다. 전쟁이 어째서 단순히 사람들 사이의 대립과 투쟁이 아닌 사회적으로, 의식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성전'이라는 제목으로 '성전'에 대한 부분만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모든 전쟁의 개념에도 적용 가능한 것들을 싣고 있었다. 그래서 주인장이 앞으로 자주 펼쳐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전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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