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영화 감상평을 쓰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주인장이 처음 개봉됐을 때부터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 하다가 최근에야 다운받아서 본 영화다. 일단 영화의 주제가 '마야 문명'에 대한 것이어서 보고 싶었고 멜 깁슨이 만들었다기에 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멜 깁슨의 '브레이브 하트'를 재밌게 봤던 터라 기대하는 바가 컸던 것이다. 어쨌든 현장에서 다른 연구원들과 함께 이 영화를 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밌다는 반응이었다.

일단 줄거리는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주욱 나오기 때문에 간략하게만 소개하도록 하겠다. 영화의 시 · 공간적 범위는 16세기 초, 마야문명이다. 주인장이 알기로 당시 중앙아메리카에는 아즈텍문명과 마야문명이 공존하고 있었으며 이 시기 마야문명은 하향세를 걸으며 여러 소국으로 난립해 있었다고 알고 있다. 이후 1524년 에스파냐에서 온 코르테스의 부장 '알바라도'의 과테말라 지역 정복을 시작으로 에스파냐의 유카탄 반도 정복이 시행되었고 16세기 중반이 채 되기 전에 마야는 멸망하였다. 아즈텍문명 역시 이 즈음 멸망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영화는 마야문명 내 소규모 부락민의 처절한 삶에 대해 그려내고 있었다.

당시 아즈텍은 물론 마야문명 역시 인신공희(, human sacrifice) 풍습이 있었는데 이는 전세계에서 골고루 확인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신공희 하면 높고 웅장한 피라미드 위에 놓인 제단에서 제물의 배를 갈라 심장을 적출해 신에게 바치는 중앙아메리카의 풍습이 연상되는 것이 사실이다. 주인장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영화에서는 그 장면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었다. 너무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섬뜩하다 보고 있으면 못해 멍해질 정도로 말이다. 

주인장이 보기에 감독이 어떤 생각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상황을 잘 묘사하려는 노력은 많이 엿보였다. 마야의 지방 소부락민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았는지를 보여줌은 물론 그들이 어떤 무기와 도구를 사용해서 생활했는지, 어떤 생각과 사상을 갖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 자세히 묘사하기 위해 노력한 면이 돋보였던 것이다. 영화평이나 각종 인터넷상에서는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나 그들의 복장, 전투 장면 등이 놀랍다고 많이 평하고 있지만 주인장은 개인적으로 주인공의 부인이 아들의 찢어진 다리를 고치는 장면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불개미로 하여금 벌어진 상처를 물게 하고 목만 남기고 몸통을 뜯어내 찢어진 상처에 대해 응급처치를 하는 장면이 그것이었는데 세심한 부분까지 묘사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엿보여서 참신했다고 생각한다.

'홀캐인'이라는 가상의 전사 집단이 등장하고 이들이 마야 중앙정부의 사주를 받아 변방의 소수 부락민들을 잡아 제물로 바치고 노예 장사를 해서 먹고 사는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기 전, 영화의 첫 장면에는 다음과 같은 자막이 올라간다. 
 
 

"A great civilization is not conquered from without until it has destroyed itself from within."

W.durant

 
"거대 문명은 외세에 정복당하기 전에 내부에서부터 붕괴되었다." 

 

『역사 속의 영웅들(Heroes of History)』을 비롯해 11권에 달하는『문명 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를 쓴 윌 듀런트의 말이다. 즉, 마야문명은 에스파냐에 정복당하기 전에 이미 내부에서부터 붕괴되고 있었고 감독은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영화에 묘사하려고 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 자막은 자세히 살펴보면 마야문명이 서구 문명에 의해 멸망한 것이 아니라는 일종의 면죄부를 넌지시 보여주면서 자기네들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라는 식의 논리를 얼핏 담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을 느끼게도 한다. 그래서 많은 영화팬들이 이 부분을 보고 비판을 가하는 것이고 주인장 역시 이 자막은 감독이 순수한 의도로 넣은 것인지 의문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실상 중앙아메리카의 독자적인 문명을 파괴하고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말살한 것은 에스파냐인들이 맞기 때문이다. 설사 마야문명이 서구문명의 시각에서 봤을때 미개하고 무지하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들 나름의 역사를 수십세기 동안 이어져온 집단이라는 점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어쨌든,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영화는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당시 마야인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대사 처리, 다이나믹한 화면 구성들까지 역시 멜 깁슨이다, 라는 말이 나오게 했다. 주인장이 아즈텍문화와 마야문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구분하지는 못 하지만 양자가 오랜 시간을 걸쳐 비슷한 문화권 속에서 공존해왔던 만큼 감독은 이 영화에서 아즈텍문화와 마야문화의 여러 요소들을 두루 뽑아서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서 에스파냐가 마야를 발견했을 무렵, 마야의 중앙 정부는 철저한 인신공희를 통한 지배자의 통치력을 보여줄만한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소국으로 나뉘어져 약체화된 상태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영화, 아포칼립토.
  



흑요석으로 만든 석창

하지만 주인장과 다른 사람들은 흑요석으로 만든 정교한 석제단검과 석창 등의 무기를 보면서 감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면 이 정도의 고증은 불가능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위의 사진은 미국 오하이오주의 칠러코시에 소재하는 아메리칸 인디언 문화의 보고인 호프웰 국립역사지구에서 발견된 흑요석제 석창인데 실제 영화상에서 그 날카로움이 확실하게 표현된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흑요석은 선사시대 각 문명간의 교류와 문화 전파의 산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나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서인지는 몰라도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살펴보면서 영화에 몰입했다.

최근 유동근씨의 등장으로 겨우 본전(?)을 찾고 있는 SBS측이 단군을 소재로 한 100부작 드라마를 만든다고 한다. 단군의 건국은 문헌상으로 기원전 23세기에 해당하며 이때는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마제석검이나 흑요석제 도구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데 과연 우리나라가 이 정도의 고증이 가능할까? 뭐 기대는 안 한다. 그리고 과연 그들의 복장이나 대사, 생각, 행동 등등에 있어서 얼마나 그 시대를 이해하고자 할 수 있을까? 물론 이 역시 크게 기대는 안 한다. 아마 조선시대 사극을 만들던 분위기, 뒤이어 고려와 삼국시대 사극을 만들면서 중국식 문화에 젖은 제작자나 독자의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게 만들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암튼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영화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자료실에 올려놨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씩 보길 바란다. 내용면에서는 인터넷 상에 많은 비평들이 있기에 주인장은 나름의 생각만 간략하게 정리했는데 보고 나면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p.s) 참고로 아래 사진들은 마야와 관련된 몇몇 이미지들이니 참고하길 바란다.


마야 관련 지도


치첸이트사의 사원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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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영국 BBC와 미국 HBO가 합작으로 만든 로마(ROME)는 우리가 흔히 아는 로마사 중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대를 묘사한 사극이다. 시대적인 배경은 오랜 시간끝에 갈리아를 정복한 직후의 시저가 부르투스의 칼을 맞고 죽기까지의 상황이다. 하지만 흔히 예상하는 것과 달리 주인공은 시저가 아니다. 시저는 여러명의 주인공 중 하나일 뿐이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기본 줄거리를 담당하는 인물임에도 전체적인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 주인공은 바로 루시우스 보레누스와 타이투스 폴로라고 하는 2명의 병사다. 엄밀히 말하면 보레누스는 백부장이며 폴로는 일반 병사다. 물론 역사상 이런 인물이 존재하는지는 로마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아마 없는 듯 하며, 시저가 아닌 일반 병사의 눈으로 본 로마사이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에게 생소하면서도 새롭게 다가온다. 대부분의 역사가 지배계층의 역사들이기 때문에 일반 민중에 대한 부분은 알기가 어려운게 사실이다.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역사 또한 지배계층과 일반인들이 보는 시각이 달랐을 것이 분명한데 그런 면에서 이 드라마는 기존의 여러 사극과는 달리 새로운 면을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두 주인공 이외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여러명의 주인공들이 있었기에 극은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여러명의 주인공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다시각 관점이 이 드라마에 존재한다는 뜻이 될텐데 그 점이 이 드라마의 첫번째 특징이다. 마치 잘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 여러 캐릭터들이 얽혀 있는데 영화는 단 한편으로 끝난다면 이건 10편이 넘는 장편인데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복선에 복선이 깔려있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실제, 주인공들 대부분은 행복하지 않은 결론을 맞이하고 극중에서 내내 악역(?)을 담당했던 폴로만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고 있어 그 또한 특이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특징을 꼽으라면 이 드라마에서는 철저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극을 꾸려나갔다는 것이다. 이거야 뭐 사극이라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겠지만 자칫 사극같은 시대물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역사적 사실의 재구성에만 치중하다보면 재미를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에 치중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일반 사극과 다르냐, 하면 이른바 야사의 기록, 정사와 다른 또 다른 기록들에 대해서도 절충해서 묘사해주는 센스(?)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저의 동성애에 대한 구설수, 시저 아들에 대한 많은 의혹 등 여러가지 역사적 사건을 절묘하게 표현해내고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아하~저랬을 수도 있구나'하고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다.

마지막으로 사극이면서도 이렇다할 전쟁씬 없이 캐릭터들간의 감정 표현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이 점이 가장 눈에 띄었는데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사극의 수준이 상당히 뛰어나다고 느끼는 주인장으로서도 이 점만은 로마에 비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용의 눈물'이라는 사극에서 태종과 세자간의 뛰어난 감정 연기가 큰 호응을 받았었는데 마치 그때와 같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쟁씬이라고는 첫회에서 갈리아 정벌 장면을 살짝 보여줄때 등장하는 것이 전부였을 뿐이다. 즉, 역사를 보는데 있어서 정치사 혹은 전쟁사 중심이 아닌 인물을 중심으로 봤다는 면에서 나름대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느끼는게 많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OCN에서 한편씩 보다가 너무 재밌어서 불법(?)으로 다운받아서 10편이 넘는 장편을 며칠만에 단숨에 봤던 기억이 새삼 난다. 거의 영화라고 해도 믿어도 될 정도의 대규모 셋트장과 수많은 캐릭터의 등장, 생생한 당시대의 복원 등 여러가지 면에서 사극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줬던 것이 아닐까 싶다. 다만 조금 그랬던 것은 외국 작품이다보니 잔인한 장면이나 야한 장면에 대한 여과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원작이야 그렇다쳐도 TV 방송에서도 어느정도 모자이크 처리만 했을뿐,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부분만 제쳐둔다면 한번쯤 보길 권해보고 싶은 작품이다.

특히 검투경기를 복원한 장면에서는 '글레디에이터' 못지 않은 긴장감과 전율감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전체적인 경기장을 복원함은 물론이고 잔인한 경기장면까지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이러한 검투장면을 비롯한 개개인 캐릭터들의 복장을 비롯해서 그 당시 일반인들의 삶을 잘 표현해낸 것이 상당히 눈에 띄었던 것이다. 또한 이 드라마를 본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는데 주인장은 옥타비아누스와 폴로가 보레누스의 부인과 바람을 핀 남자를 추궁하기 위해 끌고간 장소를 보고 놀랐다. 그곳이 바로 하수도였기 때문이다. 로마 시대의 하수도라. 우리가 흔히 영화에서 보면 하수도에서 추격전이나 총격전이 벌어지는 것을 종종 보는데 로마시대에서도 그 배경을 하수도로 처리한 점이 주인장에게는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었던 것이다.

분명 사극임에도 기존 사극과 다른 모습을 선보였던 로마. 

앞으로도 이런 좋은 작품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면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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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적 증거가 너무 부족한 비약들

이 사람 책은 한번도 안 읽었던 것 같은데...암튼 리뷰를 보니 별로 좋은 책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한번 보기는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 사람 주장이 그렇게 신기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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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도 알겠지만 이 프로그램은 영화 트로이와 동일한 시대를 그린 서사극이다. 주인장이 전역을 앞두고 부대에서 빈둥빈둥 놀면서 봤던 영화 중의 하나인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감명깊게 본 영화였다. 일단, 극장용으로 개봉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시나리오와 탄탄한 배우들의 연기, 뛰어난 전투씬 등 일반적인 사극의 이미지를 탈피한 작품이었다. 요즘 흔히 하는 말들로 젊은이들의 인기를 받고 있는 퓨전 사극이라고 해야할까? 굉장히 잘 만들어졌고, 또 허물없이 만들어졌기에 주인장이 좋아하게 된 외화 시리즈물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브래드 피트가 나오는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우선 트로이를 만든 볼프강 페터젠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신화로 남아있는 트로이의 역사와 그 안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로 재구성하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주인장이 보기에 그런 면은 조금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대단히 효과적인 결과를 거두지 않았을까 한다. 전체적인 내용이 서사시에 나온 내용을 역사적으로 충실히 재현했으며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그 안에서 영웅들로 알려져 있는 여러 사람들의 일대기도 신화적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사실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로 묘사되어 있었기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 작품을 비교하게끔 만들기 충분할 것이다.

우선 영화가 아킬레우스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면 이 드라마는 여러 사람들의 시각을 다양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냉정하고 지도력있는 지휘관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드라마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어 영화에서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탐욕스런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그 동생이자 헬렌의 남편이었던 메넬라오스는 영화에서 거칠고 무식하며 부인을 빼앗겼다는 복수심에만 불타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드라마에서는 부인을 진정 사랑하며 그 부인이 사랑하는 파리스와 대결하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굉장히 상반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영화에서 뭇 여성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던 아킬레우스는 파리스 대신 결투에 나선 헥토르를 비겁하게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고는 파리스에게 발목에 화살을 맞아 허무하게 죽음을 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식으로 드라마는 몇몇 영웅적인 인물들의 극적인 묘사에 치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 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이야기를 실으려고 노력했으며 그 모든 이야기들을 무리없이 조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했음이 역력히 드러났다. 자뭇 영화의 내용이 트로이와 관련된 모든 것이라는 편중된 시각이 조성될 수도 있겠지만 이처럼 전혀 새로운, 신선한 내용의 드라마가 있기에 우리는 또 다른 트로이를 느낄 수 있지 않나 한다. 대규모 전쟁씬이나 결투씬이 물론 영화보다 드라마가 훨씬 못 하는 것도 사실이요, 등장인물들 역시 영화보다 드라마가 못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장은 드라마가 영화에 비해 부족함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앞서도 누누히 얘기했지만 오히려 극적 흥미라는 부분을 제외한다면 사실적으로 묘사한 드라마가 더 가치가 있지 않나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에서 말도 안 되는 규모의 수만명의 그리스 연합군과 역시 수만명의 트로이군이 전투를 벌이는 것보다는 오히려 드라마에서 수백, 수천명의 사람들이 어지러이 혼전을 벌이는 것이 더 사실적이었으며 영화에서 나타났던 거대하고 드높은 트로이의 성벽보다는 그리스군이 만들어놓은 목마를 성안으로 가지고 가기 위해서 성벽 일부를 부셨던 드라마가 오히려 더 사실적이었다. 이처럼 무심코 지나지 않고 세세히 살펴본다면 영화와 상당히 다른 부분들을 드라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며 그 안에서 시청자들은 색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외화물을 봐서 개인적으로 대단히 좋았다. 예전에 훈족의 위대한 영웅 아틸라의 일대기를 그린 '아틸라'라는 외화를 미국에 갔다가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굉장히 실망을 했던 터에 이런 좋은 작품을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드라마는 굉장히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보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한번쯤 이 드라마를 둘러보고 영화와 비교해보는 것도 역사와 신화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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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우리가 동방의 정복자하면 칭기즈칸하고 외치는 것처럼 서구인들이 그들의 정복자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 알렉산더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알렉산더를 드디어 헐리웃에서 그렇듯하게 재현해냈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또한 주인장이 늘 말하지만 헐리웃이 멋있게 포장한 문화들은 거의 대부분 미국화되어 버렸는데 이번에는 알렉산더까지 그렇게 된게 아닐까 하고 걱정도 되긴 했다.

트로이와 킹 아더 이후로 오랜만에 등장하는 시대물이기도 했고, 또 이런저런 말들도 많았기 때문에 몇달 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여서 개봉 첫날 예약해서 봤는데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별 5개 중에서 3개만을 주고 싶다. 왜 그런가하면, 영화는 다른 대중매체와 달리 '흥행'이라는 강박관념을 안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비평단의 호평을 받고, 좋은 상을 많이 탄다고 하더라도 돈을 못 벌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알렉산더는 주인장같은 스펙타클한 시대물 애호가가 아니면 즐겨 보기 힘든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 알렉산더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그에 대해서 대강이라도 알고 있고, 늘 그렇듯이 영화붐을 타고 지금 시중에 여러 좋은 책들도 많이 나오고 있으니 길게 언급하지는 않고 간단하게 그의 생애에 대해서 정리해보도록 하자.

그는 정통(?) 그리스인들이 북방 바바리안으로 취급하던 그리스 변방의 마케도니아의 왕자로 태어났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그의 아버지 필립포스 2세는 당시 그리스인들이 두려워하던 정복 군주요, 강력한 왕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와 결혼한 그리스 여인 올림피아스 밑에서 알렉산더는 부모님의 지대한 영향을 받으면서 자랐던 것 같다. 아버지가 암살된 이후, 군부의 추대로 정통 후계자의 지위를 인정받아 그는 마케도니아를 지배하게 됐고, 이후 4만의 원정군을 이끌고 페르시아로 출발해 다리우스의 제국을 붕괴시켜 버렸다. 이후 동으로, 동으로 진출한 그의 군대는 결국 인도까지 진군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기를 원했지만 결국 군부의 반대로 회군을 결심한다. 그 이후 다소간의 정치적인 변란이 일어나고 급작스런 병으로 알렉산더는 12년 8개월간의 왕좌에서 물러나 33살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영화는 알렉산더에 대한 묘사에 대단히 많은 치중을 한 흔적이 역력하다. 대규모 전쟁씬이나 강렬한 장면들보다는 알렉산더와 주변 인물들의 심리적 묘사, 혹은 역사에서 확인할 수 없는 감정적인 면에 대해서 주로 언급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결과 알렉산더라고 하는 영화는 대부분의 관객들을 흡족하게 할 수 없고, 또 생각보다 큰 흥행을 이루지 못 할꺼라고 본다. '잔다르크' 라는 영화가 그랬듯이 말이다. 오히려 요즘같은 시대는 '트로이' 처럼 관객들의 재미도 함께 가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인 것 같다. 어쨌든, 내용면이나 구성면에서는 별 5개 만점을 주고 싶은게 내 마음이지만 전체적인 영화평에서 보면 별 3개에 그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것들 때문이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알렉산더가 어렸을 때부터 죽기까지 그의 정신 세계를 잘 보여줬다고 생각하는데 차후에 그의 만인동포관(萬人同胞觀)과 세계주의에 대한 부분에 이르게되면 절정에 치닫게 된다. 그는 그 자신이 그리스인들로부터 속으로는 변방의 바바리안으로 멸시받았지만 겉으로는 마케도니아의 힘에 굴복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그리스 이외의 족속은 야만족이며 노예일 뿐이라는 철저하게 한정된 세계관을 그에게 주입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알렉산더가 정책적이었든, 아니면 사고의 변환을 꾀했든지간에 그는 이런 기존의 생각을 버리고 여러 민족을 '해방'한다는 미명 아래 정복을 계속해 나갔다. 도시를 건설하고 마케도니아식 교육을 시키고 모든 민족의 혈통과 지위, 신분을 떠나 모두 하나로 엮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 정책이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졌는지 떠나서 그의 이런 생각은 당시로는 혁명적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콧대높은 문화민족 그리스인들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실리보다 명분만 찾았던 조선인들처럼.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이런 문화적 상대주의에 대한 묘사가 주인장은 마음에 들었다. 한편으로는 인종차별로 인해 골치를 앓는 미국의 추악한 모습을 비난하는 것 같아서 우스운 생각도 들기도 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알렉산더가 주위의 비난을 물리치고 주장한 이 세계주의가 아닐까 생각하니 다시 한번 알렉산더라는 인물에 대해 뒤돌아보게 됐다. 올리버 스톤 감독이 이 영화를 어떤 의도에서,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장은 그가 영화에 담고자 했던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대강 알 수 있었고 그 대부분이 잘 전달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알렉산더라는 신격화된 영웅을 인간의 지위로 끌어내려 묘사했으며 '킹 아더' 에서 안톤 후쿠아 감독이 실패했던 인간 내적인 묘사와 실제적인 역사 재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움켜잡았다고 생각한다.(이 영화는 흥행도, 비평도 그다지 곱지 않았다) 단지, 관객이라는 가장 중요한 요소에 대해서는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루하다 싶은 3시간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영화를 즐길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될 것 같다. 어떤 시각으로 영화를 보든지간에 괜찮다~정도의 얘기는 나올 수 있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가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조금 더 아쉬운 부분을 말한다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에서처럼 그 시대 당시의 원어를 사용하지 않고, 모두 영어식으로 표기하고 발음했다는 것이 역시 안타까웠다. 위대한 헐리우이여 만만세~하지만 세세한 이런 부분까지 꼬집는다는건 조금 의미없는 짓이라고도 생각하면서 이만 글을 마칠까 한다. 영화는 아무래도 비평가가 아닌 관객들이 판단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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