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사의 재조명 - 삼국사기 사서비교를 통한 삼한사의 재조명 1
김상 지음 / 북스힐 / 200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한때 인터넷 상에서 뜨거운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김상이 쓴 2번째 책이다. 첫번째 책인 네티즌과 함께 풀어보는 한국 고대사의 수수께끼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읽은지는 꽤 됐지만, 어떻게 하다보니 이제서야 이 책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적게 됐다. 이 책의 제목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거창하면서 희한(?)하기까지 하다. 삼국사기를 통해서 삼한사를 재조명한다고? (대개『삼국사기』에는 삼한의 역사가 잘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삼국지』동이전에 더 많은 기록이 있다고 보지) 거기다가 辰王은 알겠는데, 전기진왕시대는 뭐야? 그럼 후기진왕시대도 있다는 소린데? 그런 시기구분은 처음 보는데? 라고 느낄만한 사람이 여럿 있을 것이다. 맞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삼한의 마한, 진한, 변한은 지금껏 우리가 접했던 것과는 다른 시각에서 살펴본 삼한이다. 거기다가 진왕에 대한 해석도 기존에 나온 학설들과 달라 굉장히 신선하고 참신하다. 어떻게 보면 첫번째 책보다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더 어려운 내용들이 수두룩하다. 필자 역시 1번 읽고는 내용이 제대로 이해돼지 않아 2번 이상 읽었으니 말이다. 그만큼 기존에 필자가 갖고 있던 생각과는 많이 다르며, 필자가 그간 봐왔던 방법론과 달랐기 때문이라는 소리도 되겠다.

현재 각 서점 싸이트를 보면 이 책에 대한 리뷰는 거의 없다. 찾아보니 알라딘에 1개가 있는데, 그닥 많은 내용은 아니다. 그래서 혹시 이 책을 안 읽어본 분들에게 이 책이 어떤 것이다~라고 소개하는 의미도 있고, 필자가 읽고 난 생각을 정리한다는 의미도 있고 해서 오늘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아! 미리 말해두지만, 김상의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김상의 새한국고대사'라는 인터넷 공간이 따로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도 살펴볼 수 있다. 책으로 보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내용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굳이 책을 보지 않겠다~하는 분은 이 곳에 가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에 대해 간단히 말하면...첫번째 책이 광개토태왕능비와『삼국사기』를 비교하고, 백제사 중심이었다면 이 책은『삼국사기』와『삼국지』를 비교하고, 가야-신라사 중심이라는 차이점이 있단다(저자의 말). 이 책의 목차를 봐도 저자는 가야사를 상당히 앞부분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이는 가야사가 한-일 고대사를 모두 엮고 있는 열쇠와도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뭐 이전에 가야사에 대해 공부한 것이라고는 철제집단의 형성과 활약상(?)에 대해 쓴 글이 전부([뿌리아름]가야와왜 게시판 13~21번 글)인지라 그닥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에 가야가 한-일 고대사에서 그렇게 중요한 존재였나? 싶었다. 실제 저자는 칠지도도 백제 파트가 아닌 가야 파트에서 다루고 있어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나중에는 왜 그런지 알게 됐지만, 암튼 이처럼 신선한 시각으로 한국 고대사를 바라본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종종 유사역사학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본질을 오도하고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어 비판받고 있는데, 그렇게 봤을때 이 책 역시 유사역사학의 한 축에 속할 수 있겠다. 하지만 유사역사학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단 한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비판은 일단 Pass하도록 하겠다).

저자가 보는 가야사는 전기가야와 후기가야로 나눈다. 물론 이는 한국 고고학계나 고대사학계에서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단, 둘 사이에는 약간 차이가 있다. 예전에는 6가야로 가야를 구분하는 경우가 많은데(단순히『삼국유사』의 영향?), 최근에는 김태식 선생님의 연구로 인해 가야사를 전기가야와 후기가야로 구분하고, 전기의 맹주를 금관가야, 후기의 맹주를 대가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김태식 선생님의 저서나 논문을 보면 이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이 설을 따라 패널을 만들어두고 있다. 즉, 가야가 단순히 6국만 있었다고 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헌사학적 입장에서 보면 전기와 후기는 하나의 연결선상에 있는 것 같지만, 고고학적으로 봤을때 분명 가야지역에는 문화적으로 단절된 시기가 온다. 금관가야가 몰락하고 바로 대가야가 득세하여 후기가야시대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저자 역시 이러한 고고학적 근거를 통해 당시 가야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즉, 중간에 가야 지역의 삼한백제에게 정복당하여 국권을 잃고 광개토태왕이 삼한백제를 깨부시자 그 휘하에서 다시 독립한 것이 5세기 초라고 보는 것이다. 기존의 학설은 고고자료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지 못 했다고 한다면, 저자의 생각은 상당히 참신하면서도 합리적으로 보인다. 물론 고고자료에 금석문이나 문자기록이 주루룩 적혀 있지 않는 이상, 문헌기록과 일 대 일로 완벽하게 등치시키지는 못 하는 것이 사실이다. 단, 어느 정도 개연성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여부 정도는 따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시작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셈이다. 

일단 이 책이 어떤지 간단하게 얘기했으니 뒤이어 책 전체 내용을 다 열거하지 않고, 중간중간 필자가 눈여겨 본 부분 위주로 언급하고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1.『삼국사기』에 기록된 '왜'에 대한 새로운 해석

저자는『삼국사기』나 <광개토태왕릉비>에 나오는 왜의 실체가 다른 것이며(뭐 엄밀히 말하면 같다고도 할 수 있다. 저자는 전자의 왜는 임나, 후자의 왜는 삼한백제로 보는데 백제에 임나가 속해있던 시기가 있었으니 양자는 같다고도 할 수 있고, 다르다고도 할 수 있는 셈이다),『삼국사기』의 왜는 신라와 지겹도록 대결하는 것으로 봐서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왜로서 임나를 지목하고, 왜의 세력 변화에 따라 왜인, 왜국 등으로 신라측에서 부르는 명칭이 달랐다고 적고 있다. 한반도 남부와 일본 열도의 서부에 한인, 왜인, 중국인 할 것 없이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살았다는 것은 뭐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명백하게 왜라고 기록된 세력이 임나라는 주장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2. 백제 3루왕의 재위기간 복원 시도

예전에 필자가 까페에 썼던 글을 저자가 인용하면서, 백제 3루왕의 재위기간은 문제가 있다는 내용을 적고 있다. 필자는 그때 백제 초기 6왕의 재위기간이 비정상적으로 길지만, 한번 뒤집어보면 뭐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라는 식의 결론을 내렸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생물학적으로 비정상적인 것을 일반화하려 했던 것 같다. 암튼, 이것을 저자는 辰王이라는 존재를 내세워 새롭게 해석하고 있었다. 한성백제가 결국은 삼한백제(필자가 말하는 비류백제, 난 둘 사이의 용어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게 더 구분하기 쉽다고 보기 때문에 이 용어를 고집하는 편이다)에 속하게 되고, 그 담로국으로 지위가 전락함으로써 백제 왕력에 들어가지 않는 인물들이 생겼는데, 백제 초기 왕들의 재위기간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진 것은 이때문이다~가 저자의 주장이다. 이 역시 참신한 주장인 것은 마찬가지.

3. 말갈백제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

말갈백제. 말갈이 어떻게 백제랑 한데 엮일 수가 있지? 저자는 고이왕과 眞氏를 말갈계로 해석했다. 그리고 한반도 중부 한강유역에서 확인되는 거대한 적석총(밑변의 규모만 따지면 장군총보다도 큰)을 말갈계 무덤으로 보고 있었다. 단, 여기에서 말하는 말갈은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물길-읍루-말갈-여진 등의 계보를 가진 집단은 아니며, 한반도 말갈로 따로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들은 고구려 산하에 소속된 집단으로서 적석총도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고분이라는 주장을 한다. 일반적으로 대학교에서 한강유역의 적석총을 백제 묘제 중 하나로 가르치면서 하는 말이 '전성기인 근초고왕때 고구려와 대등해진 백제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고구려의 묘제인 적석총을 차용해 만들었다'인데, 필자는 수업시간에 이 이야기를 들으면 늘 의문이 들었다. 거짓말~당시 고구려가 백제에게 그 정도로 의미가 큰 대국일리도 없을 뿐더러, 근초고왕이 정말 그렇게 영토를 확장하고 고구려를 까부시는 등 활약을 했다면 굳이 고구려 묘제를 차용했을까? 싶기도 하다. 마치 우리나라 대통령이 통일을 하고 만주 지역을 되찾아 한국 현대사에 이름을 길이 남기고는 중국식 무덤이나 미국식 무덤(뭐가 있을까?)을 따라했다는 소린데...그게 합당할까 싶다. 말갈백제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필자가 동의하지는 않지만 3세기 한강유역의 역사를 공부할 때 상당히 자극이 되게 했던 내용이다.

4. 북방 이주민의 유입과 신라의 강성

전기신라, 중기신라, 후기신라 등 저자는 신라 역시 왜와 비슷하게 국력의 변화에 따라 시기 구분을 하고 있다. 신라 역시 한성백제(온조백제)나 가야처럼 삼한백제에 속한 적이 있는데, 이때 신라 왕력에도 백제 초기 왕력과 같은 비정상적으로 긴 재위기간들이 확인된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그러다나 북방에서 여러차례 유목세력이 이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힘을 키운 신라가 점차 세력을 불려 결국은 고구려, 백제를 누르게 된다는 것이죠. 이 부분은 한창 고고학계에서도 논란이 됐던 부분이다. 북방에서 남하한 세력이 비단 유목세력뿐만 아니라 고구려도 있기 때문에, 현재 학계에서는 영남 지역에서 확인되는 북방계 문물을 고구려계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보다 직접적으로 흉노-선비계로 해석한 것 같다. 뭐 필자 또한 충분히 가능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논리는 오히려 장한식의『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보다 더 나아보인다. 

뭐 이 정도?

인터넷 상이나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많은 연구가 진전된 주제들이 이 책에서 대부분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상당히 도전적인 필체로 그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있다. 전체적인 큰 틀은  김성호 선생님의 비류백제와 관련된 학설과 대동소이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필자 역시 김성호 선생님의 비류백제에 대한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공황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완존히! 하지만 저자의 책은 그보다 더 논리적이며, 그보다 덜 추측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도전적인 얘기를 하고 있지만, 공격받을만한 여지는 적다. 기존의 학설과 많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런 여지가 적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좋은(?) 현상이다(최근 후속편을 책으로 내신다고 하니 또한 크게 기대하고 있는 바이다). 

물론, 이 책에서 보완해야 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고고자료로 역사를 가늠하는 필자에게 있어 뭐랄까, 문헌을 끊임없이 재해석해서 이렇게 새로운 견해를 내놓는 것이 그닥 달갑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기존의 통설이나, 파격적인 새로운 견해나 고고자료로 가늠했을 때 어느 정도까지 그 진실성을 밝혀줄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영남 지역에서 나오는 북방식 문물, 이동식 솥과 같은 유물은 분명 북방식이다. 이는 신경철 선생님도 수차 언급한 바 있는데, 북방식 문물이 고구려 것인지, 아니면 흉노-선비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흉노-선비나 고구려에서 출토된 이동식 솥에 대한 고찰없이는 정확한 판단이 내려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부분에 있어 확실하게 흉노-선비계로 규명하고 있다(비단 이 책뿐만이 아니라 첫번째 책과 인터넷 공간 등에서). 그런 부분은 분명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영산강 유역의 거대 옹관묘 등에 대해 일제시대때 도굴이 다 되었기 때문에 그 안에 우리가 원하는 유물이 없다고 하기도 한다. 물론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현재 학계에서도 평양 일대의 낙랑고분이 일제강점기때 무수히 파헤쳐지고 유물이 대거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인정한다. 그건 분명히 그걸 파간 사람에 대한 자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산강 유역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그런 연구가 있는지 모르겠다. 즉, 이 역시 추측성이 가미되었기 때문에 공격의 여지가 있다. 마지막으로 전기가야와 후기가야의 공백기간에 대해서도. 분명 고고자료 상으로도 공백기간이 시작될 즈음 금관가야가 무너지는 경향이 보인다. 그리고 그 공백지대로 백제와 신라의 문화적 요소가 투입되는 것도 확인된다. 하지만 이것을 딱! 삼한백제의 가야지역 정벌과 삼한으로의 편입으로 볼 수 있을지 여부는 좀 더 신중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필자는 한때 국내에 남아있는 삼한 70여개국을 비정한 연구성과들을 찾아본 적이 있다. 그리고 놀랐다. 비정의 근거는 다 지명을 갖고 하는 말장난(죄송합니다만, 고고자료 없이 그런 비정은 분명 추측 50% 이상이기에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선학들께 죄송합니다)이었다. 즉, 이것들은 참고사항은 될 수 있지만, 필수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삼한의 70여개국을 찾을려면 각 지역마다 그 중심 취락 혹은 중심 성곽이 될만한 것들은 추려서 토기, 철기 등과 같은 유물 1~2점이라도 제시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필자는 그런 연구성과를 본 적이 없다. 물론 엄청나게 규모가 큰 연구가 될테고, 어려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것도 제대로 체계화되어 있지 않은 마당에 무슨 삼한백제를 따지겠는가. 

이처럼 고고자료를 갖고 한국 고대사를 재단하면 아직도 부족한 것이 수두룩하다(재야든, 강단이든). 하지만 고고자료의 한계성만을 고집할 수만은 없다. 역사고고학이라면, 어떻게든 고고자료를 통해 역사적 사실과 관계를 맺고 그것이 사실(fact)인지 아닌지 입증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문헌의 기록을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모델, 해석이다. 그렇게 봤을때 저자의 이 책은 그간 한국 고대사에 있어 막힌 부분을 어느 정도 뚫어줄 수 있는 열쇠가 된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처음 보는 분들, 역사를 재미있게 접근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솔직히 비추지만, 조금만 더 관심갖고 본다면 분명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 될 것이다. 결과야 어떻든, 기존의 생각에 자극을 주고 다소 혼란함을 주는 책이야말로 그 사람의 지식을 끊임없이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스문명의 탄생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5
피에르 레베크 지음 / 시공사 / 1995년 2월
평점 :
품절


올해 예비군 훈련의 마지막은 그리스 문명과 함께 했다. ^^
이 책의 원제목은 'La Naissance do la Grèce'. 즉, 번역된 제목 그대로 그리스 문명의 초창기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선사시대부터 다루는 것은 아니고,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과 미케네 문명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책표지를 넘기면 크노소스 궁전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거대한 크노소스에서 발견된 황소 머리 모양의 술병, 아서 에번스가 도안한 크노소스 궁전의 화려한 복원도가 쫙 펼쳐진다. 마치 그리스 문명은 미노아 문명 아니면 없었다! 라고 과시하듯 말이다. 저자는 '미궁'으로 대표되는 설계법이 크레타인만이 가진 독창적인 설계법이라고 하면서, 궁전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를 칭찬하였다. 뭐 미노아 문명 하면 크노소스 궁전이 연상되고, 다시 미궁과 프레스코화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겠다. 뒤이어 미케네 문명과 아카이아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그리스 문명은 아카이아인의 대외정보과 해상활동부터 시작되었다고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저자는 헤라클레스나 야손의 모험담이 다 아카이아인의 대외활동과 연관있는 신화적 이야기라고 하고 있다. 그동안 헤라클레스나 야손의 이야기를 그냥 한 영웅의 이야기(그렇다고 너무 허구는 아닌) 정도로만 인식했는데, 그것이 그 민족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다른 시각으로 신화를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저자는 트로이 전쟁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본토를 오래도록 비우고도 무사히 원정을 마칠 수 있었던 점, 근접한 히타이트 제국에게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는 것만 봐도 그들이 강력한 존재였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간 트로이 전쟁은 지중해 일대에서 벌어진 일개 전쟁이며, 규모가 그렇게 크지도 않았을 뿐더러 세계사적으로 얼마나 큰 의미가 있겠냐~싶었는데, 히타이트 제국과 연결시켜 생각하니 그 또한 다르게 보였다. 당시 히타이트의 문헌을 보면 아키야와(Akhkhiyawa: 아카이아인의 나라)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히타이트 제국의 대왕이 아카이아 왕을 자기와 동등하게 취급했다고 하는 것 또한 처음 알았다. 암튼, 여기에서도 저자는『오디세이』와『일리아드』가 헤라클레스, 야손의 이야기처럼 아카이아인의 대외활동과 관련된 이야기임을 강조한다. 이처럼 책의 초반부에서 필자가 그동안 갖고 있던 생각과 다른 좀 더 신선한 생각들이 등장하고 있어서 상당히 집중하면서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이야기의 중심은 그리스인의 정신세계(주로 종교와 신화), 식민지의 확장과 연결되는 민주주의(를 비롯한 정치제도의 변화상)로 옮겨간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신화가 주변 지역(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기타 동방사회 등)의 신들을 끊임없이 흡수하고 이를 재생산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저자는 여기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었다. 아카이아의 신앙과 미케네 신앙은 크레타의 신비주의에 기반한 신앙과 맞물려 새로운 종교를 낳게 되니, 인도-유럽신인 제우스와 지중해의 신인 헤라가 부부로 맺어지게 된다. 이런 흔적은 우리나라의 민간 신앙에서도 어느 정도 살펴볼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을 역사적 사실과 적극적으로 연결시켜 해석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없어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영웅이라는 낱말이 크레타에서 온 것도 놀라웠다. 흔히 영웅이라고 하면 그리스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크레타에서 영웅이란 '자손이 정성껏 바치는 제사를 받아 무덤 너머까지 그의 권능을 행사하여 사후에도 생전에 다스리던 공동체를 보호해 주는 위대한 인물'이라는 뜻인데 이 정도면 거의 조상신이나 마찬가지다.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이 인간과 신의 중간적 존재로서 계속 사랑받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필자가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그리스인들이 식민지를 확장하면서 그들의 세계(동양식으로 하면 천하)를 키워가는 대목이었다. 자급자족 체계가 무너지고, 각 도시국가들마다 경쟁적으로 상업활동에 뛰어들면서 각지에 식민지가 세워지게 된다. 실상 그리스는 곡물을 재배하기 어려운 땅이며, 목재나 구리, 주석 등의 천연자원도 나지 않는 나라였다. 그러나 그들은 철제 농기구를 이용해 포도와 올리브 경작지를 크게 확충했고, 금속이나 구운 흙, 직물을 재료로 매우 정교하게 제작한 상품과 포도주, 올리브 기름 등을 수출상품으로 개발하여 활발하게 돈벌이(?)에 나섰던 것이다. 필요성에 의해 상업이 발달한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농업이 중요한 생업경제의 하나지만, 한편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업경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윽고 흑해는 그리스인의 내해가 되었으며, 이는 지중해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코트도르 지방의 빅스에서 발굴된 켈트족 왕녀의 무덤에서 발견된 각종 그리스풍의 유물을 통해 그리스인이 당시 갈리아 지방과 영국까지도 교역로를 넓혔음을 알 수 있었다(그리스인이 당시 거기까지 갔다는 것이 상당히 신선했다. 그렇게까지 멀리 갔을 줄 몰랐기 때문에).

암튼, 이러한 그리스의 식민지 확장은 단순히 그리스인의 의지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뒷부분(148~149쪽)에 나오지만, 이집트 영토 내의 그리스 조계지였던 '나우크라티스'의 경우, 그리스인이 현지 권력층의 승인을 얻어 개설한 상인들의 조계지였다. 이 곳에는 아프로디테, 헤라, 아폴론, 디오스쿠리 신전 등이 존재했으며, 키오스, 테오스, 포카이아, 클라조메네스 등의 이오니아 도시국가, 로도스, 크니드, 할리카르나스, 파셀리스 등 도리아의 도시국가, 아이올리아의 도시국가 미틸레네가 힘을 합쳐 공동으로 설립했다고 한다. 이 곳은 이집트의 유일한 상업항으로서 이곳을 통해서만 모든 물자가 교역되었다고 하니 그 번영과 부가 대단했을 것이다. 마치 장보고의 청해진과 고려의 벽란도 등이 연상되는 대목이었다. 그럼 이런 것을 또 어디에 적용할 수 있을까? 순간 떠오르는 것이 바로 낙랑군이었다. 한때는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한사군의 대표적인 악당(?)으로, 그 이후 민족주의적인 재야사학자들에 의해 창피한 우리 역사, 왜곡된 우리 역사로 인식되었던 낙랑군에 대해 대중국 교섭창구로 인식하는 견해들이 꽤 많다. 필자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고구려 영역 안의 중국인 조계지라고나 할까? 이 부분을 읽으면서 역사를 바라보는데 있어 다양한 견해와 유연한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이후 뒷부분은 페리클레스로 대표되는 아테네 민주정치의 발달과 직후 무너지는 아테네의 제국주의,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 등으로 얼룩진 그리스에 대한 언급이 이어졌다(미술작품과 희극의 내용이 변화하는 것이 그리스의 정세 변화와 맞물린다고 해석한 저자의 주장이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마케도니아의 침략에 그리스 문명이 완전히 무너지기까지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는데, 중간중간 필자가 기존에 생각했던 것과 다른 부분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저자는 소위 암흑기에 도리아인의 침입으로 부유한 미케네 왕국이 무너졌으며, 동시기 아나톨리아 지방에서는 북부에서 내려온 '바다의 민족' 때문에 히타이트 제국이 멸망했다고 적고 있는 부분이다.『고대 그리스의 역사』(토마스 R. 마틴/이종인, 2003, 가람기획, 역사명저 시리즈 13)을 보면 이 책의 저자는 당시 도리아인들은 소규모 그룹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그리스의 대재앙을 몰고 오지는 않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현지 집권세력들 사이의 내분과 과도하게 특화되고 집중된 경제체제 속에서 천연자원을 지나치게 남용한 결과, 그리스 문명이 붕괴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용병을 하던 집단들이 순전히 먹고 살 길을 찾아 여기저기 집단을 이뤄 약탈을 자행하고 떠났고 이들이 바로 '바다의 민족' 혹은 '해상민족'이라고 보고 있었다. 즉, 원론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 같았다. 암튼 필자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새로운 외부의 정복집단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리스의 암흑기가 도래했다~라는 주장은 아닌 것 같았다. 실상 해상민족 안에도 도리아인이 포함되어 있었을 테지만, 그들로 인해 미케네 왕국이 무너졌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페르시아와의 대전을 언급한 부분이다. 예전에 살라미스 해전 : 세계의 역사를 바꾼 전쟁(http://cafe.daum.net/yeohwicenter/MqPf/156)을 보면서 '아! 내가 기존에 생각했던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의미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데, 이 책에서는 기존의 일반적인 통설처럼 가볍게 다루고 있어서 조금 아쉬웠다. 왜냐하면 살라미스 해전을 중심으로 한 페르시아 전쟁을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후기 그리스사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부분을 빼고는 간단한 개설서(포켓북 형식의)로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풍부한 도판과 간결한 문장, 빠른 전개감 등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의 특징을 잘 살린 책이라고 생각한다(그런 면에서 앞서 언급한 토마스 R. 마틴의 책은 이 책과 정반대의 특징을 가진 책이라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제목 - 은발의 아기토(銀色のアギト, 2006)
· 장르 - 드라마, SF, 약간 액션과 로맨스?
· 국가 - 일본
· 상영시간 - 95분
· 감독 - 스기야마 케이이치
· 등장인물 - 아기토(카즈치 료 목소리), 토라(미야자키 아오이 목소리) 등
· 평가 - ★★★★☆
· 批評

오랜만에 일본 애니를 봤다. 애니 보고 감상쓰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은데, 나름 신선해서 글 몇자 적어두고 싶어졌다.

뭐부터 말할까나? 그래~이 애니에 대한 평가부터 한번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
인터넷 상에서 검색하면, 여러 평가가 나오는데, 대체로 평가가 中~中上 정도인 것 같다.
몇개의 평가를 보면 짧은 시간 안에 너무 큰 스케일의 내용을 담으려 했다~가 가장 보편적인 평가였던 것 같다. 그리고 필자 역시 애니를 보면서 그렇게 느꼈던 것이 사실이고.

내용을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배경은 뭐 느꼈다시피 먼 미래다. 얼마나 먼 미래인지는 모르지만.
지구가 산업화와 공업화로 인해 오염이 심해지게 되자, 어떤 박사가 지구녹화계획을 추진한다. 그래서 달(지구 밖의 행성이었는데, 아마 달이었던 것 같다)에 연구소를 두고 나무를 이빠이 심어 거기서 연구된 결과물로 지구를 녹화하려고 한다(그러니깐, 단기간에 녹지 조성이 되게끔 하는 성장이 빠른 식물? 을 연구하는 그런 식이었다). 그러다가 연구는 실패해서 달에서 미친듯이 자라난 식물이 지구로 날아와(설정이 웃기긴 한데, 화면상으로는 멋있었다) 지구를 먹어버리고 점령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이 그 나무(생명수 개념을 도입시킨 것 같았다)가 스스로 인식을 하고, 어떤 魔力도 지니고 있었으며, 살아 움직이기도 한다. 암튼 그렇게 지구를 점령한 나무는 물의 공급을 철저히 제한하고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즉, 인간 사회와 자연이 대립각을 세우는 설정인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세상은 '숲-중립도시-라그나'라는 3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야기는 대강 이런 배경 속에서 진행된다.

주인공 아기토는 중립도시에 살고 있으며, 그의 아버지를 포함한 2명의 지도자(?)는 강화체로서 중립도시 건설에 크게 이바지한다. 대충 눈치채셨겠지만, 중립도시는 옛 인간 문명의 폐허 위에 다시 세운 마을로서, 숲과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동네다. 숲이 전해주는 물을 조금씩 일정량 받아가면서 먹고, 숲의 규칙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살아간다. 그와 달리 라그나는 숲을 정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도시다. 그는 숲을 적으로 간주하고, 숲이 물을 쥐고 흔들며 인간의 문명을 위협하는 작금의 사태에 분노한다. 그래서 '트리아시티'라고 하는 군수산업과 공업만을 위한 도시(엄청나게 대기오염이 심한 동네)를 세워서 나무가 지구를 지배하기 이전의 문명 단계를 어느 정도 이룩하고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세상을 뒤집으려면 한가지 방법 밖에 없다. 그건 바로 지구를 '이스토크'(지구환경을 리셋하는 것, 간단히 말해 지구에 엄청난 핵폭발을 일으켜 지금 세상을 다 소멸시키고 다시 가공되지 않은 태초의 자연으로 돌아가게끔 하는 것) 프로젝트로 되돌려 자연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스토리는 그 이스토크 프로젝트를 하게 하려는 사람과, 못 하게 하려는 사람들의 대립 구도로 진행된다.

뭐 내용을 다 소개해 버리긴 했지만, 세부적인 내용들이 많이 나오니깐 한번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럼 여기에서 필자가 신선하다고 여긴 부분을 소개하고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1.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기존 관념을 뒤집어 버렸다.

인간의 역사는 자연에의 극복의 역사라고 누가 그랬던가. 하지만 자연과 인간은 공존할 수 밖에 없고, 자연을 거스르려는 문명은 항상 대재앙에 휩싸였던 것이 사실이다. 즉, 자연 앞에 인간은 너무 작은 존재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자연이 인간을 공격하고, 자연이 인간 문명을 통제한다는 설정이다. 자연, 즉 숲은 스스로 자아를 갖고 인식을 하고 대화를 하며, 진화를 통해 발전한다. 삼림수(森林獸)라는 줄기와 뿌리, 잎 등으로 이뤄진 용과 같은 녀석도 만들어내는 등 암튼 자연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존재로 나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그런 숲의 힘을 받아들이면 머리카락이 은색이 되면서 엄청난 힘을 얻는 강화체라는 존재가 되는데, 그 힘을 폭주하거나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스스로 나무가 되어 숲의 일부로 돌아가기도 한다(아기토의 아버지는 중립도시를 세우는데 힘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결국 나무가 되어버린다). 즉, 자연의 무서움을 적극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신선했다.

2. 미래 인간 문명의 멸망을 새롭게 해석했다.

원래 이런 류의 SF 영화를 보면 대개 2가지다. 인간 문명이 고도로 발달된 사회를 이룬다는 설정, 그리고 인간 문명이 결국 스스로 화를 불러 일으켜 멸망한다는 설정...그렇게 봤을때 이 작품은 후자에 속한다. 다만, 멸망하는 과정이 좀 신선하다. 인간이 자연을 계속 개발하면서, 숲을 황폐화하면서 녹지를 없애면서 고도의 산업화를 이뤘기 때문에 멸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그런 환경을 극복하고자 지구 녹화 계획을 세웠지만 그것이 거꾸로 독이 되어 문명이 멸망한다고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터미네이터> 류의 영화와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지만, 기계 문명에게 잠식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하긴, 형태만 다르지 스카이 워커나 여기에 나오는 숲이나 거기서 거기긴 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지구 녹화 계획이 왜 실패했는지가 나오는데, 그건 바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 과학자가 빨리 결과를 보려고, 성급하게 실험을 했다가 그게 실패하면서 식물이 급격하게 팽창하게 된 것이다. 즉, 인간이 지금처럼 산업화를 고도로 진행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막고자 인위적으로 자연을 다시 되살리려는 모든 노력이 결국에는 잘못이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뭘해도 문명의 멸망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결과론적 입장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점이 새로웠다. 뭐 마지막에는 다 화해하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삶을 살지만 말이다.

 
이상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큰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고, 실제 스케일도 작지는 않다. 하지만 내용 중간에 계속 나오는 인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자연과 공존하며 기계화된 삶을 버리고 살아가거나, 자연을 인간 문명의 도구로 인식하고 계속 활용해야 한다는 2가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답변 요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좀 지루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터넷을 보니 애니의 감독이 자연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이걸 만들었다고 하는데(실제 마지막에도 뭐 자연 옹호론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내용이 전개되기는 한다), 현재 우리 문명이 모든 것을 되돌리고 원시적인 형태로, 순수한 형태로 돌아가는 것이 적절한지 되새겨보게 된다. 암튼 짧은 편에 속하는 작품이었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잘 본 것 같다. 스토리가 좀 급진적이라는 점, 내용 전개상 생략된 부분이 많다는 점, 캐릭터의 성격을 확실히 인지시키기에 부족하다는 점 등이 지적되면서 별 3개를 주고 싶었으나, 위에 적은 신선한 점 2가지로 인해 별 4개를 주고자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고구려를 찾아서 - 환인.집안.심양.단동.고구려 천리장성.수도 방어성
동북아역사재단 엮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한 주간 논문 막바지 작업을 끝내고 오랜만에 리뷰를 쓰는 것 같다.

이 책은 최근에 구입한 고구려 관련 서적인데(요즘에는 고구려 관련해서 어린이용 책들은 봇물 터지듯이 나오는데, 전공서적이나 교양서적은 딱히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논문이야 계속 나온다한들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는 어렵고 말이다), 딱히 책을 읽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참고할만한 것이 없나~하는 마음에 구입한 것이다. 이렇게 화려한 칼라사진과 간략한 글 몇 줄이 들어가 있는 답사기(?) 같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많이 갖고 있지도 않고(전선영의 『천리장성에 올라 고구려를 꿈꾼다』도 있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잘 구입하지도 않는데 고구려 답사를 갈 때 참고할만한 책이라는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구입하게 된 것이다. 뭐 내용면에서는 역시나 딱히 새롭게 볼만한 부분이 없었다.

아! 그나저나 왜 이 책이 필요하게 됐는지를 얘기 안 한 것 같다. 이번에 필자가 몸담고 있는 연구소에서 5년 프로젝트로 중국 답사를 가게 됐는데, 그에 따른 답사코스를 체크하고, 답사자료집(이후 책으로 발간할 예정임)을 작성하기 위한 가벼운 정보를 얻을 수 없나 해서 이 책을 추천받아 사게 되었다. 매년 2차례씩(아마 봄과 가을쯤) 답사를 나가야 해서 거의 1년 내내 자료집을 만들고, 답사 후 자료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긴 하다. 암튼 필자도 다른 책들을 보고 대강 답사코스를 작성한 뒤에 이 책을 받아봤기 때문에 일단 겹치는 부분도 많이 있었고, 참고가 된 부분도 많이 있었다.

이 책은 기존에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나온 『고구려 문명기행』과 『高句麗城 사진자료집-遼寧省 · 吉林省 東部』을 저본으로 삼아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해서 가볍게 만든 책이다. 목차는 역사적 중요도에 따라 먼저 1부에서는 환인과 집안에 대해 소개하고, 뒤이어 심양과 단동을 소개하고 있으며, 2부에서는 천리장성 루트와 고구려 수도 방위성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뭐 환인-집안이야 고구려 초기 중심지인데다가 중국에서도 꽤 공을 들여 개발해놨기 때문에 한번쯤 꼭 가봐야 하는 거고, 심양과 단동은 한국에서 비행기타면 내리는 공항 둘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집어넣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즉, 1부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중국 경내의 고구려 유적 답사를 갈 때 갈 수 있는 코스와 지역들을 소개한 내용들이 많았다. 이 책에서는 환인 지역에서 볼만한 것으로 오녀산성, 오녀산 박물관, 상고성자 무덤떼(하고성자 성터) 등을 소개하고 있고 더불어 미창구 장군묘까지 소개하고 있었다. 미창구 장군묘는 그다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고분은 아닌데, 필자도 예전에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내부에 연화문이 빼곡히 그려진 벽화고분으로서 장천 2호분에서 확인되는 ‘王’자형 도안으로 멋을 부려놔서 독특했었다. 아마 왕족의 고분으로 판단되는데, 책에서는 신대왕의 장남 발기가 반역을 꾀하고 실패한 뒤 그 후손들이 이 곳에 살면서 남긴 것이라는 설을 소개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발기의 반란 이후 그 후손들이 이 정도 규모와 이러한 벽화를 남길만한 勢를 유지했을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남도와 북도를 가볍게 소개하고 있는데, 태자성만 달랑 소개하고 있어서 뭐 큰 의미는 없었다.

집안은 2일 코스로 소개하고 있었는데, 성곽보다는 고분에 많이 치중한 것 같았다. 기본적인 코스는 집안 박물관, 국내성, 환도산성, 산성하 무덤떼, 오회분 5호묘, 태왕릉, 광개토태왕릉비, 장군총, 우산하 무덤떼, 국동대혈, 모두루총, 칠성산 무덤떼, 마선 무덤떼 등이다. 개인적으로 이걸 제대로 살펴보려면 2일 갖고는 좀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일단 위에서 소개한 산성하 무덤떼, 우산하 무덤떼, 칠성산 무덤떼, 마선 무덤떼 등은 거리상으로도 상당히 넓게 분포해 있는데다가 그 안에서 봐야하는 적석총이 한 두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도 2008년 여름에 6박 7일 코스로 중국에서 ‘고구려 왕릉’으로 비정한 고분 전부를 보고 온 적이 있는데, 2일만으로 이것들을 다 소화하려니 정말 빡쎘던 기억이 난다. 당시를 회상해보면 일부는 답사 도중 GG치고 버스에서 쉬기도 했고, 단순히 내려서 사진 몇 장만 찍고, 휙~ 다음 장소로 이동한 적도 꽤 많았다(경주에 가서 짧은 기간 내에 시내에 있는 고분들을 보게 되면 아마 이렇게 이동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지역을 소개해놓은 것 치고는 내용이 부실한 부분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108쪽에 백암산성 사진과 함께 소개한 사진은 왜 여기에 들어가 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심양 고궁 같기는 한데...뒷부분에 들어가야 맞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심양이나 단둥은 앞서 말했지만, 비행기를 타고 환인-집안 지역을 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직항이 없으므로. 그래서 환인-집안 지역을 답사할 때면 왕복 이틀은 꼭 여기에서 잡아먹는데, 다행이 고구려 유적도 좀 있어서 적적하게 보내지만은 않는다. 먼저 심양에는 요령성 박물관이 있는데, 규모도 클 뿐더러 중국 동북방의 고고자료들을 많이 전시하고 있어서 정말 한번쯤 꼭 가볼만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갔을 때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홍산유적과 고구려-삼연 문화만 보고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또 하나 안 좋은 점(?)이라면 요령성 박물관에는 통합적으로 소개한 박물관 전시도록이 없고, 각 전시실마다, 각 기획전시마다 도록이 따로 있어서 주머니 사정을 고민해야 하는 연구자들에게는 별로 친절하지 못 했던 기억도 났다. 그리고 책에서는 심양 고궁과 신락 유적 박물관, 서탑 거리 등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의 주제와는 좀 맞지 않아서(이 책이 단순히 심양 지역 관광지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지 않는가) NG였다. 공간 메우려는 蛇足같다고나 할까? 백암산성이야 워낙 많이 알려진 것이므로 Pass하고.

단동은 박작성(호산산성)과 애하첨고성, 오골성(봉황산성) 등이 위치하고 있는데, 요동반도의 대흑산성(비사성), 위패산성(오고산성), 성산산성, 낭랑산성, 득리사산성(용담산성) 등으로 구축된 해안 방어선(2부에서 언급됨)과 연장선상에서 압록강 하구를 방어하는 성들이라 할 수 있다. 필자도 한 번도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여기에 소개된 대부분의 성들이 현재 출입 불가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 답사를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긴 한다. 암튼 각 성들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잘 담고 있어서 괜찮았던 것 같다.

2부에서는 먼저 고구려 천리장성 루트를 따라 여러 성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역사상 안시성, 건안성, 요동성, 신성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 성들을 비롯해 길림 합달령산맥과 천산산맥 능선 상에 위치한 북동-남서 방향의 성들을 주로 소개하고 있었다. 예전에도 느낀 거지만, 이 일대의 성들은 높은 산지에 위치하는 것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요동성은 뭐 이제 시가지와 완전히 겹쳐져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국내성처럼 성벽 쪼가리도 찾아볼 수 없다), 상당수가 보존이 이뤄지지 않은데다가 경작지로 훼손된 지역도 많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지역에는 볼만한 성들이 수십 곳이기 때문에 한번에 다 보겠다는 생각은 접어야 한다. 책에서도 이들 지역을 소개하면서 모두를 답사할 수는 없으니, 주요 성 몇 곳 위주로 답사하기를 권하고 있었다.

뒤이어 소개하는 나통산성, 흑구산성, 구노성, 오룡산성, 고검지산성 등은 환인-집안 지역을 環形으로 방어하는 성곽들인데, 고구려 초기부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오녀산성, 국내성, 환도산성처럼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일반인들이 답사를 자주 가지도 않는다. 역시 천리장성 루트에 있는 성들처럼 훼손된 부분이 상당히 많았으며, 이번에 답사를 가게 되면 어느 정도나 남아 있을지 걱정이기도 하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일반인들의 고구려 유적 답사를 위해 내놓은 책이라고는 하지만 뚜렷하게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는 않는다. 즉, 중국에 답사를 가게 되면 흔히 그 곳에서 답사 가이드 팀이 짜주는 일반적인 일정에 충실히 따른 면모가 보였다. 물론 전문가도 아닌 일반인들이 산간 벽지의 산성이나 고분들을 찾아가지는 않겠지만, 너무 간단하게 소개한 면이 없지 않나 싶다. 아까도 말했지만 명색이 고구려 유적 답사가이드를 표방한 책이면서, 오히려 관광 소개서 정도밖에 내용을 담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필자 개인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혹여나 아직 중국 답사를 가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기본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책으로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이 책에 수록된 사진의 상당수를 제공받았는데,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무슨 연유가 있어 이런 사진들을 많이 갖고 있는지가 좀 의문이었다. 고구려 관련 전공자가 많은 것도 아니고, 고구려 연구기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암튼...소소한 생각을 하면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 이렇게 영화 정보가 없다니...

추석때 우연히 TV를 돌리다가 보게 된 영화다. 뭔가 옛날 영화같기는 한데, 화질은 나름 깔끔하고. 배우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용은 몽골고원 어딘가를 다루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상당한 스케일과 나름 정교한 전투씬 등 '이 정도 영화면 내가 모를리가 없을텐데 무슨 영화지?' 라는 생각으로 채널을 멈추고 본 영화다. 처음부터는 못 봤지만 뭐 안 봐도 대강의 내용은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었으며, 중반부터 봐도 상당히 흡입력있기에 괜찮았다.

주인공은 고대의 예언을 안고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카자흐 부족의 현자가 자신들을 다스릴 위대한 지도자가 태어날 것이라고 했고, 그 예언대로 키워져 실제로 그 꿈을 이루게 된 인물이다. 영화 안에서의 모습을 좀 찾으려고 했는데, 이미지 파일조차도 돌아다니는게 없었는데, TV.co.kr이라는 싸이트(http://tv.co.kr/pum/tvcell_basic.swf?category=movie&channel=&code=14481&skinID=white)에서 이미지를 구할 수 있었다. 

뭐 너무 서양인틱하게 생겼다 싶기도 했지만, 당시 몽골과 카자흐인들이 뒤섞여 살았다고 본다면 괜찮은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말 앞에 탄 여인은 주인공의 연인이다. 상당히 얼굴이 눈에 익었는데, 몽골인이라면 흔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영화 얘기를 좀 하자면 영화 속 시대배경은 준가르 부족(몽골어: Зүүнгар, Züüngar, Dzungar, Jungar, Zungar, 중국어 간체: 准噶尔, 중국어 정체: 準噶爾)이 맹위를 떨치고 있던 시기다. 르네 그루쎄에 의하면 갈단(Galdan, 1676~1697)의 치세 하에서 준가르 제국이 형성되었는데, 그는 1677년 호쇼트의 칸 오치르투 세첸을 공격해 멸망시키고, 일리에서 홉도 남쪽에 이르는 영토를 확보하였다고 한다. 직후 카슈가르를 점령하고, 몽골족을 통합하기 위한 내전에 돌입하게 된다. 1690년 무렵 준가르 제국은 오르콘과 툴라 유역을 점령하고 케룰렌 하곡을 따라 만주 하곡까지 진출하여 모든 할하 지방에 대한 정복을 완수하게 된다. 1696년 친정을 나선 강희제에게 준가르군은 병력의 반을 잃고 패퇴하였으며, 이로써 청 제국은 할하 지방에 대한 영구적인 지배권을 확보할 수 이었다. 갈단의 뒤를 이어 즉위한 그의 조카 체왕 랍탄(1697~1727)은 이 무렵 일리 지역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했는데, 당시 발하쉬 호에서 우랄 강에 이르는 지역을 장악하던 무슬림 투르크 유목민인 카자흐와 충돌하게 된다. 16세기 말경부터 카자흐인들은 부하라의 우즈벡 혹은 샤이바니조로부터 투르키스탄과 타쉬켄트와 같은 도시를 빼앗아 세를 확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1698년 체왕 랍탄은 카자흐의 테우케를 공격하여 승리하였고, 그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하였다. 한때 티베트의 라사까지 점령하는 등 준가르 제국은 맹위를 떨치지만 청 제국과 본격적으로 격돌한 데다가 1720년 무렵에는 투르판의 무슬림이 반란을 일으켜 준가르 제국은 큰 타격을 입기도 하였다. 이후 체왕 랍탄의 아들 갈단 체렝(1727~1745)이 청 제국에 적개심을 드러내자 옹정제는 1731년 준가르 제국이 심장부까지 진격하지만 2달 뒤 궤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고, 홉도뿐만 아니라 투르판에서도 군대를 철수하기에 이른다. 이후 주거니 받거니 대립하던 양국은 휴전을 맺게 되고, 청 제국은 항가이 산맥의 동쪽(할하 지방)을 차지하고 준가르 제국은 항가이 산맥의 서쪽과 서남쪽(준가리아와 카쉬가리아)을 차지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갈단 체렝 사후 내분을 겪은 준가르 제국은 18세기 중후반을 못 넘기고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이상의 역사적 사실을 고려했을 때, 영화는 16세기 카자흐인이 부하라, 샤이바니조를 격파하며 성장하는 딱 그 시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뭐 18세기 초 무슬림들의 반란을 그린 것일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이런 영화의 특성상 앞부분 프롤르그에 시대적 배경에 대한 자막이 좌악 올라갈 법도 한데, 그 부분을 보지 못 했으니 참 아쉽다). 어쨌든, 유목부족에 불과한 카자흐인에 대해 조명한 영화라는 점이 독특했고, 그들이 당시 유라시아 일대에서 맹위를 떨치던 준가르 제국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흥미로웠다. 어떻게 보면 러시아에서는 소수민족이라고 할 수 있고, 오히려 다른 나라의 역사인 카자흐스탄에 주목한 감독이 신선했다. 하지만 세르게이 감독이 다른 민족의 역사를 영화로 만든 것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필자가 세르게이 감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한국의 대표적인 무술감독 정두홍과 관련된 기사를 보면서부터다. 그가 <몽골(2007)>이라는 영화를 찍으면서 정두홍을 무술감독으로 선발했기 때문이다. 실제 영화를 보면 몽골의 정예호위부대인 케시크텐의 화려한 기마무술 장면이 돋보이는데 기존의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이보다 앞서 몽골-일본이 합작한 영화 <푸른늑대>와 비교하면 훨씬 작품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배우 고아라가 칭기즈칸의 애첩 쿨란 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규모 기마부대끼리의 전투씬도 그렇고, 칭기즈칸의 호쾌한 정복의 발자취를 잘 그려낸 영화라고 생각한다(실제 국제 영화제에서 많이 주목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도 <몽골>에서 보여주던 그런 거대한 스케일과 대규모 전투씬이 잘어우러졌던 것 같다(단, 화려한 개인의 무술실력보다는 대규모 집단전의 모습이 더 잘 묘사되었던 것 같다).

영화의 스토리는 어떻게 보면 식상한데다가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도 앞선 영화 <몽골>에서 차용한 부분이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 카자흐인들의 전설이나 신화, 역사를 필자가 잘 모르기 때문에 영화에 어느 정도로 역사성을 부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복장이나 전투 장면, 성곽, 무기 등은 고증이 잘 되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몽골과 무슬림 문화와의 교묘한 접점을 잘 표현했다고나 할까? 그런 면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또 흥미로웠다. 르네 그루쎄는 그의 명저『유라시아 유목제국사』에서 마지막 유목 제국인 준가르 제국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로, '시대 착오적인 칭기즈칸 시대의 생각을 갖고, 13세기의 무장으로 18세기와 맞붙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상당히 혹평을 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준가르 제국군은 상당히 잘 갖춰진 현대식 무장을 통해 청 제국과 러시아 등 당시 난다긴다하는 제국과 싸워 당당히 영토를 지키기도 했다(물론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는 측면은 동의하는 바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투 방식은 마지막에 준가르 제국군과 공성전(주인공은 방어하는 측)을 벌이는 장면에서 잘 묘사되고 있었다. 물론 헐리웃 영화인 <킹덤 오브 헤븐(2005)> 마지막에 묘사된 예루살렘 공방전과는 CG나 물량면에서 차이가 났지만, 그 나름의 매력이 넘쳤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를 구해 보려고 했는데, 음성적인 방법으로는 못 할 것 같고, 현재 DVD를 팔고 있으니 한번 다시 보려고 한다. 평소 전쟁영화나 시대극은 DVD로 몇장 구입하곤 하는데, 두고두고 볼만한 녀석들로 엄선해서 소장하는 편이다. 그러던 차에 추석때 뒹굴거리다가 건진 영화치고는 상당히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몇자 적는 바이다.

혹여 안 보신 분이 계시다면, 한번 구해서 보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TV에서는 또 언제 해줄지 정말 의문이므로).

우리가 잘 모르는 다른 나라의 역사를 이렇게 접한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니까 말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麗輝 2010-09-25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을 꾸준히 검색해보니 영화 제목은 노매드(Nomad), 즉 유목민이란다. 또한 다시 영화를 보니, 영화 속에서 준가르 제국의 대칸으로 갈단이 나오고 있어 17세기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7세기에는 카자흐인들에게 있어 이렇다할 번영기가 아닌데, 아무래도 시기를 약간 무시하고 카자흐인들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다루려고 했던 것 같다. 또 어떤 이는 아블라이 칸은 18세기 카자흐의 영웅이라고도 하고...에휴~모르겠다. 어쨌든, 이 시대와 이 지역에 대해 다룬 영화는 많지 않으니 한번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