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렇게 영화 정보가 없다니...

추석때 우연히 TV를 돌리다가 보게 된 영화다. 뭔가 옛날 영화같기는 한데, 화질은 나름 깔끔하고. 배우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용은 몽골고원 어딘가를 다루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상당한 스케일과 나름 정교한 전투씬 등 '이 정도 영화면 내가 모를리가 없을텐데 무슨 영화지?' 라는 생각으로 채널을 멈추고 본 영화다. 처음부터는 못 봤지만 뭐 안 봐도 대강의 내용은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었으며, 중반부터 봐도 상당히 흡입력있기에 괜찮았다.

주인공은 고대의 예언을 안고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카자흐 부족의 현자가 자신들을 다스릴 위대한 지도자가 태어날 것이라고 했고, 그 예언대로 키워져 실제로 그 꿈을 이루게 된 인물이다. 영화 안에서의 모습을 좀 찾으려고 했는데, 이미지 파일조차도 돌아다니는게 없었는데, TV.co.kr이라는 싸이트(http://tv.co.kr/pum/tvcell_basic.swf?category=movie&channel=&code=14481&skinID=white)에서 이미지를 구할 수 있었다. 

뭐 너무 서양인틱하게 생겼다 싶기도 했지만, 당시 몽골과 카자흐인들이 뒤섞여 살았다고 본다면 괜찮은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말 앞에 탄 여인은 주인공의 연인이다. 상당히 얼굴이 눈에 익었는데, 몽골인이라면 흔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영화 얘기를 좀 하자면 영화 속 시대배경은 준가르 부족(몽골어: Зүүнгар, Züüngar, Dzungar, Jungar, Zungar, 중국어 간체: 准噶尔, 중국어 정체: 準噶爾)이 맹위를 떨치고 있던 시기다. 르네 그루쎄에 의하면 갈단(Galdan, 1676~1697)의 치세 하에서 준가르 제국이 형성되었는데, 그는 1677년 호쇼트의 칸 오치르투 세첸을 공격해 멸망시키고, 일리에서 홉도 남쪽에 이르는 영토를 확보하였다고 한다. 직후 카슈가르를 점령하고, 몽골족을 통합하기 위한 내전에 돌입하게 된다. 1690년 무렵 준가르 제국은 오르콘과 툴라 유역을 점령하고 케룰렌 하곡을 따라 만주 하곡까지 진출하여 모든 할하 지방에 대한 정복을 완수하게 된다. 1696년 친정을 나선 강희제에게 준가르군은 병력의 반을 잃고 패퇴하였으며, 이로써 청 제국은 할하 지방에 대한 영구적인 지배권을 확보할 수 이었다. 갈단의 뒤를 이어 즉위한 그의 조카 체왕 랍탄(1697~1727)은 이 무렵 일리 지역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했는데, 당시 발하쉬 호에서 우랄 강에 이르는 지역을 장악하던 무슬림 투르크 유목민인 카자흐와 충돌하게 된다. 16세기 말경부터 카자흐인들은 부하라의 우즈벡 혹은 샤이바니조로부터 투르키스탄과 타쉬켄트와 같은 도시를 빼앗아 세를 확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1698년 체왕 랍탄은 카자흐의 테우케를 공격하여 승리하였고, 그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하였다. 한때 티베트의 라사까지 점령하는 등 준가르 제국은 맹위를 떨치지만 청 제국과 본격적으로 격돌한 데다가 1720년 무렵에는 투르판의 무슬림이 반란을 일으켜 준가르 제국은 큰 타격을 입기도 하였다. 이후 체왕 랍탄의 아들 갈단 체렝(1727~1745)이 청 제국에 적개심을 드러내자 옹정제는 1731년 준가르 제국이 심장부까지 진격하지만 2달 뒤 궤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고, 홉도뿐만 아니라 투르판에서도 군대를 철수하기에 이른다. 이후 주거니 받거니 대립하던 양국은 휴전을 맺게 되고, 청 제국은 항가이 산맥의 동쪽(할하 지방)을 차지하고 준가르 제국은 항가이 산맥의 서쪽과 서남쪽(준가리아와 카쉬가리아)을 차지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갈단 체렝 사후 내분을 겪은 준가르 제국은 18세기 중후반을 못 넘기고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이상의 역사적 사실을 고려했을 때, 영화는 16세기 카자흐인이 부하라, 샤이바니조를 격파하며 성장하는 딱 그 시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뭐 18세기 초 무슬림들의 반란을 그린 것일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이런 영화의 특성상 앞부분 프롤르그에 시대적 배경에 대한 자막이 좌악 올라갈 법도 한데, 그 부분을 보지 못 했으니 참 아쉽다). 어쨌든, 유목부족에 불과한 카자흐인에 대해 조명한 영화라는 점이 독특했고, 그들이 당시 유라시아 일대에서 맹위를 떨치던 준가르 제국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흥미로웠다. 어떻게 보면 러시아에서는 소수민족이라고 할 수 있고, 오히려 다른 나라의 역사인 카자흐스탄에 주목한 감독이 신선했다. 하지만 세르게이 감독이 다른 민족의 역사를 영화로 만든 것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필자가 세르게이 감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한국의 대표적인 무술감독 정두홍과 관련된 기사를 보면서부터다. 그가 <몽골(2007)>이라는 영화를 찍으면서 정두홍을 무술감독으로 선발했기 때문이다. 실제 영화를 보면 몽골의 정예호위부대인 케시크텐의 화려한 기마무술 장면이 돋보이는데 기존의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이보다 앞서 몽골-일본이 합작한 영화 <푸른늑대>와 비교하면 훨씬 작품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배우 고아라가 칭기즈칸의 애첩 쿨란 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규모 기마부대끼리의 전투씬도 그렇고, 칭기즈칸의 호쾌한 정복의 발자취를 잘 그려낸 영화라고 생각한다(실제 국제 영화제에서 많이 주목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도 <몽골>에서 보여주던 그런 거대한 스케일과 대규모 전투씬이 잘어우러졌던 것 같다(단, 화려한 개인의 무술실력보다는 대규모 집단전의 모습이 더 잘 묘사되었던 것 같다).

영화의 스토리는 어떻게 보면 식상한데다가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도 앞선 영화 <몽골>에서 차용한 부분이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 카자흐인들의 전설이나 신화, 역사를 필자가 잘 모르기 때문에 영화에 어느 정도로 역사성을 부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복장이나 전투 장면, 성곽, 무기 등은 고증이 잘 되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몽골과 무슬림 문화와의 교묘한 접점을 잘 표현했다고나 할까? 그런 면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또 흥미로웠다. 르네 그루쎄는 그의 명저『유라시아 유목제국사』에서 마지막 유목 제국인 준가르 제국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로, '시대 착오적인 칭기즈칸 시대의 생각을 갖고, 13세기의 무장으로 18세기와 맞붙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상당히 혹평을 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준가르 제국군은 상당히 잘 갖춰진 현대식 무장을 통해 청 제국과 러시아 등 당시 난다긴다하는 제국과 싸워 당당히 영토를 지키기도 했다(물론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는 측면은 동의하는 바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투 방식은 마지막에 준가르 제국군과 공성전(주인공은 방어하는 측)을 벌이는 장면에서 잘 묘사되고 있었다. 물론 헐리웃 영화인 <킹덤 오브 헤븐(2005)> 마지막에 묘사된 예루살렘 공방전과는 CG나 물량면에서 차이가 났지만, 그 나름의 매력이 넘쳤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를 구해 보려고 했는데, 음성적인 방법으로는 못 할 것 같고, 현재 DVD를 팔고 있으니 한번 다시 보려고 한다. 평소 전쟁영화나 시대극은 DVD로 몇장 구입하곤 하는데, 두고두고 볼만한 녀석들로 엄선해서 소장하는 편이다. 그러던 차에 추석때 뒹굴거리다가 건진 영화치고는 상당히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몇자 적는 바이다.

혹여 안 보신 분이 계시다면, 한번 구해서 보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TV에서는 또 언제 해줄지 정말 의문이므로).

우리가 잘 모르는 다른 나라의 역사를 이렇게 접한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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麗輝 2010-09-25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을 꾸준히 검색해보니 영화 제목은 노매드(Nomad), 즉 유목민이란다. 또한 다시 영화를 보니, 영화 속에서 준가르 제국의 대칸으로 갈단이 나오고 있어 17세기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7세기에는 카자흐인들에게 있어 이렇다할 번영기가 아닌데, 아무래도 시기를 약간 무시하고 카자흐인들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다루려고 했던 것 같다. 또 어떤 이는 아블라이 칸은 18세기 카자흐의 영웅이라고도 하고...에휴~모르겠다. 어쨌든, 이 시대와 이 지역에 대해 다룬 영화는 많지 않으니 한번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