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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바꾼 전쟁의 역사
에릭 두르슈미트 지음, 방대수 옮김 / 이다미디어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저자는 오래도록 종군기자로서 생활하면서 대부분의 현대 전쟁을 몸소 겪은 독특한 경험의 소유자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뉴스위크>는 그를 '탁월한 재능으로 매스컴의 역할을 바꿔낸 인물'이라고 평했으며, 프랑스의 <르몽드>는 '생존해 있는 그 어떤 장군보다 더 많은 전쟁을 겪고 생존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것이 쉽게 이해가 갔다. 처음 책을 사서 표지를 넘겨보고는, '적과 직접 교전하고,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전쟁의 참화를 누구보다 생생하게 전달해왔기 때문에 그런 시각으로 전쟁과 관련된 책을 썼다면, 어떤 내용들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날씨라고 하는 테마와 전쟁을 어떻게 잘 연결시켰을까? 하는 기대감도 존재했고 말이다.
책의 전체적인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괴멸된 바루스의 로마 군단 (로마 vs 게르만족)
2. 가미카제, 신의 바람 (원 제국 vs 일본)
3. 비 내리는 파리의 밤 (프랑스대혁명)
4. 두 개의 다리를 건너라 (프랑스 vs 러시아)
5. '테쿰세' 라 불렸던 용사 (미국 독립전쟁)
6. 아일랜드의 대 감자 기근 (아일랜드)
7. 눈 속의 죽음 (제1차 세계대전 이탈리아 vs 오스트리아)
8. 얼어붙은 독일의 전차부대 (제2차 세계대전 독일 vs 소련)
9. 바다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제2차 세계대전 필리핀)
10. 불바다 (제2차 세계대전 서유럽)
11. 삼각주에서의 죽음 (베트남 전쟁)
시기적으로는 서기 9년 로마군의 게르만 침공에서부터 1965년 베트남 전쟁까지 역사적으로 유명한 전쟁들을 연대기 순으로 나열한 것인데, 뭐 대부분은 근-현대 전쟁에 치중하고 있어서 아쉽긴 하다. 근-현대에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최첨단 장비들이 나온다 하더라도 인간이 치루는 전쟁이라는 행위에 있어 자연의 위대한 힘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라면 그것에 대해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단, 반대로 근-현대전도 이러할진대 고대에는 오죽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면, 고대의 전투(혹은 전쟁)에 대해서도 적정량의 지면을 할애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고대 전투(혹은 전쟁)에 대해서는 단 2개, 로마에 대한 것과 원나라에 대한 것(그것도 시기 차이가 큰 동-서양 전쟁 각 1개씩)뿐만 있어서 개인적으로 고대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 필자에게는 아쉬운 부분이었다(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성향일 뿐이니 혹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은 괘념치 마시길).
또한, 목차를 가만히 보면 3장과 6장은 전쟁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물론 3장의 경우, 로베스피에르의 정치적 행보 및 혁명과 관련하여 전투라고 할만한 요소와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의 제목과 꼭 부합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6장의 아일랜드 대기근 또한 마찬가지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총 · 균 · 쇠』를 보고 처음으로 알게 된 이 내용은 자연과 인간의 상관관계(혹은 농경이라는 산업과 인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언급할 때도 꾸준히 나온다. 이는『박정근의 고고학 박물관 - 선사시대를 이해하는 42가지 열쇠』에서 확인할 수 있다)에 대해 언급할 때 한번도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즉, 전투나 전쟁과는 큰 상관없는 내용인데 어째서 여기에 이렇게 포함시켜 놨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원제를 다시 살펴봤더니 'The Weather Factor'가 아닌가. 그래서 혹시 원래 저자는 딱히 전투(혹은 전쟁)에만 국한시켜 날씨에 대해 쓴 것이 아닌데(물론 전쟁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있긴 했지만,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전쟁 말고 딱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도 역사적으로 큰 사건으로 기록될만한 것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국내에서 번역할 때 이렇게 해석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암튼, 제목이나 목차에 있어서 조금 아쉬웠다는 점을 지적하고, 그만 넘어가도록 하겠다.
전체적으로 각 장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이미 알고 있었거나, 내용면에서도 새로운 것이 없었던 부분
1장. 괴멸된 바루스의 로마 군단(서기 9년 9월 11일) : 토이토부르거 발트 전투
2장. 가미카제, 신의 바람(1281년 8월 15일) : 쓰시마섬과 이키섬, 큐슈 북부에서의 전투
몇가지 지적사항! (전반적으로 작가의 동양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난 부분이었다)
1) 59쪽을 보면, 몽골기병이 말 위에서 복합궁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석궁을 사용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석궁과 활은 분명히 다른 무기인데, 왜 이렇게 서술했는지 의문이다.
2) 또한, 같은 쪽에 나와 있는 기마수병(騎馬水兵)이라는 표현이 생소해서 저자의 주석을 보니, 몽골군이 배를 타고 물을 건널 때에도 항상 말을 데리고 있어서 이런 표현을 썼단다(이 무슨 -.-;).
3) 60쪽의...'무방비 상태의 한족과 고려인을 학살하는 것과, 자신의 가문과 명예를 위해서 목숨까지 내놓은 일본 무사를 상대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라는 표현은 또 뭣인지. 그럼 몽골이 중국 대륙과 고려를 정복했을 때에는 수월하게 일이 진행됐다는 뜻인가? 고려의 대몽항쟁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런 표현을 안 썼을텐데 심히 의심스럽다!
4) 61쪽의 미즈키[水城] 해안 성벽에 대해 저자는 주석을 달아 '6세기 이전에 한반도 사람들의 노역으로 축성되었다'고 적고 있다. 6세기 이전에 한반도의 정치 세력이 일본의 정치 세력보다 국력이나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 우위에 선 상태에서 단순히 한반도 사람들이 왜 일본 해안가에 성을 쌓는 노역을 했을까? 이들 성은 북한에서 말하는 소위 '조선식 산성'으로서 당시 이 성을 수축한 주체세력은 일본 내의 한반도 도래인계열이었다. 그런 전후 사정에 대한 이해없이 단순히 '연대+축성의 주체'만 기술하게 되면 누가 봐도 이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히 많은 내용일 수 밖에 없다. 전반적으로 고대 한-일 관계사에 대한 저자의 인식 부족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5) 61쪽의...'한번 적진 속에 뛰어든 사무라이들은 무서울 정도로 살상력이 뛰어난 검을 휘둘렀다. 그런 전투가 계속되자 몽골군은 자신들의 전투 방식을 잃어버린 채 보조군인 고려 병사들마저 포기했고, 이후 고려군은 가축처럼 도살되었다.'라는 표현도 참...전쟁의 주체는 몽골이지만, 고려를 단순히 보조군(아마 로마 군단에 예속된 보조군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 했다)으로 이해하고, 주병력인 몽골군이 퇴각하자 모두 도살되었다고 쓴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6장. 아일랜드의 대(大) 감자 기근(1845년 9월~1849년 7월)
2.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재밌게 재구성 혹은 각색되어 흥미롭게 본 부분
4장. 두 개의 다리를 건너라(1812년 11월 25일) :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스투디안카 마을 근처에서 나폴레옹이 2개의 다리를 급조한 것은 잘 몰랐었다. 한겨울에 공병대장 에블레의 지시에 따라 토목병 300명이 과감하게 명령을 수행했고, 결국 그들은 믿기지 않는 임무를 완수했다고 한다. 저자의 주석에 의하면, 이로부터 130년 뒤에 독일 전차부대가 이 부근을 지나갈때 그 다리의 일부를 보았다고 하니 당시 프랑스 토목병들의 헌신과 희생이 대단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순간, 당시 상황은 수 양제의 별동군 30만 5천명이 고구려에서 느꼈던 그것과 비슷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11월 26일 정오에 다리가 완성되고 1시간에 500명씩 천천히 도하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만들어진 다리는 위태위태했다. 27~28일 양일간 나폴레옹군 중 상당수가 얼음물 속에 쳐박혔고, 봄이 되어 얼음이 녹은 뒤에 러시아 농노들은 3만 6천구의 프랑스군 시체를 그곳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50만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병력이 여기저기 6개월간 두들겨맞아 넝마처럼 변했고, 결국은 수천명만이 목숨을 부지해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나폴레옹의 실책은 129년 뒤 어느 독일의 한 최고 통수권자에 의해 또 다시 되풀이 되었고, 그 내용이 이 책의 8장에 서술되어 있다. 이 부분을 또 재밌다고 느낀 이유는 최근에 읽은『프로이트 : 20세기의 해몽가』에서 나폴레옹에 대한 내용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 책의 123~125쪽을 보면, 나폴레옹 1세에 대한 프로이트의 생각이 간략하게 담겨 있었는데 프로이트는 그를 두고 '나폴레옹은 그의 형 조셉프(Joseph)를 운명적 경쟁자로 느끼고, 기본적인 적대감을 느꼈다. 그가 미망인 조제핀(Josephin)에게 열정적인 집착을 보인 것, 그가 이집트 원정을 나선 것, 그가 제대로 준비도 안 하고 러시아 원정을 갔다가 망한 것은 조제핀에 대한 불성실과, 조제프에 대한 사랑이 원래의 적대감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데 대한 자기 징계였다'는 재밌는 해석을 하고 있다. 굳이 비슷한 예를 따지자면, 수 양제의 고구려 침공과 당 태종의 고구려 침공에 있어서 단순히 정치-군사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군주 개인의 심리적인 상태를 분석한 것과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5장. '테쿰세'라 불렸던 용사(1813년 10월 5일) : 쇼니족 추장의 인디언 독립전쟁
미국 정규군과 인디언의 전투라고 하면 아마 1876년에 리틀 빅 혼에서 미육군 제7기병연대 700명이 전멸한 것을 많이들 떠올릴 것이다. 그 전투의 주인공은 '웅크린 황소(Sitting Bull)'라고 불리는 인디언 추장이었다. 그밖에 '제로니모'라고 알려진 아파치족 전사가 있었으며, 이러한 인디언의 강렬한 저항 대한 오래된 추억은 영화 <라스트 모히칸>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또 다른 인디언의 영웅, 테쿰세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테쿰세의 저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그가 영국군과 군사동맹을 형성한 것도 몰랐던 사실이며, 동시기 그가 영웅으로서 대접받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책을 읽으면서 테쿰세가 템즈 강 전투에서 승리했어도 역사의 큰 흐름을 바꾸지는 못 했을 것이라는 주장에 필자 역시 동의하게 되었다. 전투에서 이겼더라도 미국인 이주민들은 꾸준히 인디언의 영토로 유입되었을 것이고, 그것은 골드러쉬와 상관없이 진행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결국 인디언을 압도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실제 위대한 아파치족 전사 제로니모 역시도 미국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술에 정복당해 죽지 않았던가(그의 어이없는 죽음 클릭 ☞). 현지 원주민이 그들을 식민지배하려는 서구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 지형상의 이점을 챙긴다는 것은 어찌보면 상식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테쿰세와 관련된 내용을 잘 정리하고 있어 좋았던 부분이다.
8장. 얼어붙은 독일의 전차부대(1941년 12월 5일) : 독일 중부집단군의 러시아 진격
전체적인 내용은 기존에 인지하고 있던 부분이었는데, 세부적인 전쟁 진행 과정에 대한 묘사가 좋았고, 세세한 몇몇 부분은 몰랐던 것이라서 좋았다. 예를 들면 '스탈린의 유목민 부대(Hordes)'와 아파라트와 리하르트 조르게 등 일본 내 소련의 첩자에 대한 부분, 그와 관련하여 소련이 극동군,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일대의 모든 군 병력을 동원해 독일군을 막아낼 수 있었던 부분 등은 몰랐던 사실이었다. 소련의 거대한 영토와 자원, 막대한 인구와 물자도 그렇지만 동장군이라는 재난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새삼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10장. 불바다(1944년 12월 24일) : 벌지 전투
1944년 12월 16일에 시작하여 1945년 1월 27일까지 진행된 벌지 전투는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으면서도 가장 성과가 없었던, 무의미한 전투가 아닐까 싶다. 몽고메리 장군이 야심차게 준비한 마켓가든 작전이 실패하고, 히틀러는 '라인을 수호하라' 작전을 벌인다. 흔히 아르덴 대공세로 알려진 전투가 바로 이것이다(제2차 세계대전을 그린 유명한 미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보면 대강의 전쟁 진행 과정을 알 수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그리고 독일군은 제공권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아르덴 숲이 안개로 뒤덮이는 겨울을 작전 시기로 잡는다. 하지만 정원도 부족하고 모든 것이 열악한 상황에서, 결국 작전은 제대로 수행되지 못 하고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아 연합군의 부활한(?) 제공권에 의해 독일군은 격멸된다(저자의 표현이 참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천상의 문이 열렸던 바로 그 날, 히틀러의 군대는 아우성을 지르며 지옥의 불길 속으로 떨어졌다!'). 이상의 과정이 쉬우면서도 흥미롭게 서술되고 있어 옛 생각을 하면서 즐겁게 볼 수 있었다.
3. 잘 모르고 있었거나 아예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 재밌게 본 부분
3장. 비 내리는 파리의 밤(革命曆 2년 테르미도르[熱月] 9일 - 7월 27일) : 프랑스 대혁명
날씨와 관련된 내용보다는 당시 정치적인 상황은 어떠했는지~가 주된 내용이지만, 로베스피에르라는 인물, 그리고 당시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전혀 몰랐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볼만 했다. 특히 혁명이라는 거국적인 사건이 파리라는 도시 안에서 어떻게 진행되어 갔는지, 그 긴박감이 잘 묻어나왔고, 그 과정에서 여름 폭풍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던 것 같다.
7장. 눈 속의 죽음(1916년 12월 13일) : 1915~1918년에 벌어진 1차 세계대전 중 알프스 전쟁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 아는 바가 많이 없지만, 특히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벌어진 전쟁은 금시초문이었다. 당시 알프스 전쟁이 벌어진 전장을 그린 지도를 보니 '뜨악!' 소리가 날 정도로 주요 전선이 위치한 곳은 험난한 산악지대였다. 베르넬 산(3,035), 마르몰라다 산(3,342), 메초디 산(2,734), 세라우타 산(3,035), 콜디라나 산(2,462), 시에프 산(2,426), 카스텔로 산(2,360), 토파나 산(3,720), 팔차레고 산(2,071), 오르틀러 산(3,902) 등등 엄청난 고지대에서 벌어진 전쟁이라니...쉽게 상상이 안 갔다(역사가들이 그 곳에서 벌어진 전투를 설명할 때 '바위와 얼음 속의 전선'이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절대 공감했다!). 알프스라고 하면 한니발이 로마군의 허를 찔렀을 때 넘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기에 아주 생소한 내용이었다.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양자는 알프스 산맥에 형성된 전선을 중심으로 대치했지만 지리한 싸움만 계속되고, 무의미한 희생만 지속될 뿐이었다. 이탈리아는 최정예 산악 군단인 알피니(Alpini) 군단의 병력을 연이어 투입했지만, 산 정상을 장악하기 위한 공방전은 그칠 줄 몰랐다. 그에 대해 오스트리아의 황제수비대는 산 여기저기에 벌집처럼 구멍을 뚫어 질서정연한 빙하도시를 만들면서 이탈리아군의 공세에 대응했다. 특히 콜디라나 산(양털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에서 이탈리아군이 하도 많이 죽어 이탈리아군은 이를 피의 산이라는 뜻으로 콜디상귀라고 불렀다고 한다)을 둘러싼 쟁탈전이 치열했는데(마치 한국전쟁 당시 백마고지, 피의 능선과 같은 의미였을 것이다), 6개월 동안 이 곳에서 이탈리아군이 입은 손실은 어마어마했다. '부상 장교 199명, 사망 장교 104명, 작전 중 실종 장교 14명, 부상 사병 5,160명, 사망 사병 1,050명, 작전 중 실종 사병 435명'. 교전으로 인해 죽거나 부상당한 사람 못지 않게 눈사태로 파묻힌 병력의 수치가 상당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한뼘의 영토도 넓히지 못 했다고 하니...인간의 어리석음이 거대한 자연 앞에 여실히 드러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9장. 바다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1944년 12월 18일) : 미 태평양함대의 수난
다가올 필리핀 전투를 앞둔 미 해군 38기동부대 소속의 132척에 달하는 함선들은 역사상 가장 최악의 태풍 궤도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만다. 그 결과, 항공기 146대와 헐 호, 모니건 호, 스펜스 호 등이 실종되었으며 몬터레이 호, 케이프 에스페란스 호, 알타마하 호, 마이애미 호, 산하신토 호, 카우펜스 호, 알윈 호, 듀이 호, 히콕스 호는 전투 불능 상태에 이르렀다. 또한 790명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얼핏 보면 거의 진주만 공습때의 피해에 맞먹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12척의 함선 전투 불능 혹은 침몰, 항공기 188대 손실, 2,400여명 사망). 하지만 이건 순전히 무시무시한 자연의 힘에 의한 피해였다니,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타이타닉'이라는 거대한 여객선의 침몰을 비롯해 해양 재난사고에 대해서는 종종 그 무서움을 듣곤 하지만, 미 태평양함대가 이러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정말 일본 입장으로서는 '카미카제[神風]'를 믿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아무리 최첨단 설비를 갖춘, 위용이 대단한 함선이라 하더라도 태풍이 불어닥친 망망대해에서는 한낱 종이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현대식 장비를 갖춘 전함들도 그러한대, 고대 해전에서의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예측할 수 없는 전황의 두려움은 어느 정도였을지 쉽게 짐작이 갔다.
11장. 삼각주에서의 죽음(1965년 8월 2일) : 베트남 전쟁
이번에는 정글이다. 지금까지 험난한 숲(1장)과 망망대해(2장과 9장), 험준한 산지(7장), 광활한 벌판(4장과 8장) 등이 나왔지만 그에 못지 않게 열대우림 지역 역시 무시무시한 자연환경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는 10년 가까이를 베트남에서 보냈다는 얘기를 서두로, 경험에 대한 좋은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디엔비엔푸에서 식민지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지 못 했던 프랑스군 7,000명이 포로가 될 수 밖에 없는 역사적 사실을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들이 외면했다고 말이다. 미군 장성들은 프랑스군의 대패에 대해서는 수없이 들어왔지만, 프랑스군이 쓴 보고서도, 보구엔 지아프 장군의 보고서도 읽지 않았다(당시 베트남의 지아프 장군이 그 전투에 대해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상세이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미얀마나 뉴기니아 같은 열대지역에서 정글전을 경험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특히 미군이 최첨단 장비를 보유했지만, 베트남에 대한 사전 준비가 부족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장에서는 바오섬에 기습강하 작전을 나선 미군 부대의 상황을 마치 현장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어, 정글에서의 전쟁이 어떤 느낌인지 더 잘 다가올 수 있었다. 확실히 진창에 습한 날씨, 시도때도 없이 쏟아지는 폭우, 얼마 되지 않은 가시권, 물에 젖어 먹통이 되는 장비 등 정글에서 벌이는 전투는 최악의 조건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베트남 전쟁 역시 앞서 살펴봤던 몇개의 전투처럼 실패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유주의는 지켜지지 못 했고, 베트콩들은 결국 승리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베트남의 기후는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마지막에 실린 에필로그 '2025년에 기후 지배하기'는 날씨라는 것이 현재 사회와 얼마나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는 기후를 예보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문하는 시대가 왔다는 사실, 군사력 증대 요인으로 기후 지배하기 등 그간 미처 생각하지 못 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었다. 미군 기상전문가들은 미국이 다음 세기 초의 기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이제는 인간 대 인간이 아니라 인간 대 자연의 싸움이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할 정도로 인간의 기후 지배史는 날로 발전하고 있었다.
인위적인 홍수, 대양 해류의 변경, 열대 폭풍의 진행 방향 변경, 대기구멍 내기, 극지방 만년설 범위 팽창, 인위적으로 유도한 지진 등 군사기술로만 쓰이던 기술들이 이제는 전지구적으로 인간이 기후를 지배하는데 쓰이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었다(이 대목에서 <은발의 아기토>라는 일본 애니가 떠올랐다. 인간이 지구를 인위적으로 녹지화시키려다가 그 식물들에게 지구가 먹혀버렸다는 설정이 아주 독특했던 애니다). 예를 들어 2025년경 전 세계의 예상 인구는 90억에 이를 것이라 한다. 하지만 지구 전체의 물 중 마실 수 있는 물은 0.26%에 불과하고, 잘 사는 유럽에서조차 7명 중 1명만이 '건강에 좋은 식수'를 마신다고 한다. 심지어 이스라엘에서는 물 배급이 '국가 안보'에 속하고 군에 의해 통제될 정도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인간은 거의 모든 것을 잘 이용해 왔다.
그러나 신은 여전히 날씨를 부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