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형전술의 어제와 오늘
디르크 W. 외팅 지음, 박정이 옮김 / 백암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임무형전술에 대해 인터넷 상에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독일어로 Auftragstaktik이라고 표기하는 임무형전술은 임무(Auftrag)와 전술(Taktik)의 합성어이다. 수행의 세부사항까지 구속하는 명령형에 반대되는 것으로 수단을 위임하고 실행을 위한 자유를 보장해 주면서 달성해야 할 목표를 부여하는 지휘방식이다. 어떤 이가 이 임무형전술을 고구려에 적용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실제로 충분히 가능성 있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다원적 구조와 사고방식을 지닌 국가일수록 임무형전술이 적용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조선의 군사활동이 이전 왕조들과 다른 면도 임무형전술을 대입시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서 이 책을 바로 구입해서 읽어봤다.

일단 첫 느낌은 신선한 충격? 을 받았다고나 해야할까? 임무형전술에 대해 몰랐었기 때문에 책을 보면서 아~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계속 책을 읽어나갔었다. 일단 임무형전술하면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독일의 사례가 책의 주요 내용이다. 책의 순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수십년간 최강으로 군림하던 프러시아군이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에게 패하면서 임무형전술은 빛을 보게 된다. 프러시아의 패배 요인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장군과 장교단의 고령화 추세, 군대지휘의 무능력화 현상인데 이런 부분들을 개선하기 위해 프러시아는 대대적인 군사개혁을 실시하게 된다. 프러시아의 경우, 프리드리히 이후로 전장에서 막강 전력을 발휘한 선형전술(Lineartaktik)을 지속적으로 보완 · 발전하는데 주력하게 된다. 왜냐하면 7년전쟁 등 수십년간 벌어진 전쟁에서 프러시아는 엄청난 전과를 올렸기 때문이다.

프러시아의 이런 전략적 경직성과 달리 프랑스는 '산병전술'과 '애국주의' 2가지 무기로 프러시아와 전혀 다른 강력한 군대를 운영할 수 있었다. 숲이 우거진 산 속에선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기계적인 행동에 숙달되어 있으나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기술도 없고 소산해서 상호 지원할 줄도 모르는 프러시아 병사들이 프랑스 산병들보다 열세에 처하는 것이 당연했다. 산개하는 것은 천성적인 비겁자(탈영병 및 도망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믿음이 강했던 프러시아 입장에서 프랑스가 새로운 전술에 도입한 무질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승패를 보증하는 것은 야전지휘관 혼자만의 의지가 아니라 한 목표를 지향하는 각자의 모든 의지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지휘책임의 위임이 분명히 고려되어야만 했고, 역시 각각의 군인에게 자주성을 위임해줘야만 한다. 이로 인해서 애국주의에 바탕을 둔 자발적인 복종이 군에서 필요한 새로운 규준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다양한 병과 부대들을 혼합 편성함으로써 제병합동 전투능력을 지닌 상비사단 및 군단의 편성과 경무장한 부대의 집중 운영 등은 이러한 현상과 맞물려 더욱더 프러시아의 군개혁에 박차를 가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프러시아는 결국 '무조건적인 프러시아적 복종과 기동성 있는 유럽적인 독자성'이라는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것의 합일을 이뤄냈다. 그것은 바로 독일 내에 이전부터 알게 모르게 존재하던 임무형전술적 전통이었으며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그것은 수면 위로 부상해 이후 독일군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상당히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군사적 전통이 있음에도 이와 전혀 다른 군사적 전통을 수십년간 발전시키며 군사적 위업을 달성했던 국가가 결국은 종래의 군사적 전통에서 해답을 찾는다는 점이 말이다. 주인장은 고구려를 이와 비교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구려는 국초부터 유목세력과의 조우 속에서 힘을 길렀던 나라이며 그 대상은 선비, 말갈 등 다양했다. 하지만 국가가 제국화되고 거대해지면서 중장기병이라는 새로운 병종을 다량 보유하게 되었으며 기존의 기동성있는 전술은 많이 변화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란, 실위, 서방제국과의 교류 속에서 기동성있는 전술은 다시금 주목받게 되었고 이를 통해 고구려는 후반까지 주변 제국들에 대해 군사적 우위에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고구려보다 더 유연하게 전략 전술적 선택을 한 당군을 제압하지 못 했기에 멸망에 이르고 말았지만 말이다. 암튼 책을 읽는 내내 다른 시각에서 한국사상 전쟁을 바라볼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점 때문에 점점 책에 빠져들게 되었다.

위에서 살펴봤던 이런 현상은 세계사적으로도 많이 확인되는 부분이긴 하다. 이집트인들은 힉소스인의 침입을 맞아 전차 기술을 도입할 수 있었고, 로마 역시 영토가 확장되면서 주변 제국들의 군사적 전통을 습득하여 우뚝 설 수 있었다. 하지만 프러시아의 임무형 전술은 조금 다른 부분이 아니었나 싶었다. 이는 프러시아가 내부적으로 예전부터 지니고 있던 군사적 전통이었음에도 그 유용성을 파악하지 못한 채, 외부 충격을 통해 재삼 깨달은 경우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깨달은 군사적 전통의 유용성은 이후 역사적으로 막강한 위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이는 국경이 맞닿아있는 국가들이 많은 데다가 주변 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지 못 했음에도 독일이 상당히 오랜기간동안 군사적 우위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을 임무형 전술에서 찾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전투원, 모든 상황을 심사숙고하여 결심하고 예리하게 이용해서 성공을 확신하는 전투원으로 구성된 부대야말로 진정 강한 군대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제국주의 일본이 독일군의 군사적 전통을 받아들여 군대를 육성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그럼에도 양자의 차이가 분명히 발생한 것은 바로 이런 내재적인 원인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에서는 제국주의 시절 독일군과 일본군을 비슷하게 보기도 하지만 주인장은 분명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임무형 전술의 기본 전제조건으로 저자는 '교육과 훈련'을 강조하고 있다. 끊임없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 전투원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근세 유럽의 전투장면을 보면서 '왜 바보같이 한줄로 서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는 통제와 질서 속에서 전장을 장악하기 위함이다. 병사 개개인의 자율성보다는 부대 전체의 조직력과 단위성을 더 강조했기 때문에 그런 식의 전투가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병사 스스로 전투에 책임을 지고, 승리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지니고 있다면...그리고 그럴만한 능력이 보유된다면 전투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여기까지 봤을때 순간 떠오른 것이 고구려의 '경당'이었다. 우리측 기록인『삼국사기』나『삼국유사』보다는 중국측 기록에 더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경당에서 고구려인들은 글쓰기와 활쏘기 등을 배웠다고 한다. 이를 통해 봤을때 고구려인들이 경당에서 단순히 심신단련을 위하여, 까막눈을 겨우 면하기 위해서 글과 활을 배웠다고 볼 수는 없다. 즉, 이는 가장 기본적인 군사훈련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라 봐야 옳을 것이다. 태학 또한 마찬가지이다. 흔히 상류층 자제들이 입학했다고 알려져 있는 국가 교육기관인 태학에서 과연 그들이 어떤 것들을 배웠을까? 조선시대를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구려인들이 그 안에서 '공자 왈 맹자 왈'을 배웠을리는 만무하다. 이처럼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국적인 조직망을 보유한 교육체계를 갖춘 고구려라면 임무형 전술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은 충분히 만족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이런 교육기관은 백제나 신라, 혹은 유목국가나 중국에 비해 고구려에만 있던 특징적인 부분이었으므로 이 부분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단, 임무형 전술에도 단점은 있다. 복종과 독자적인 결심, 책임감 사이의 갈등, 독단활동(Abweichen vom Auftrag)의 허용, 전투상황과 형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임무형 전술의 기본적인 모토는 자율성이다. 그리고 이는 그만큼 단순한 명령형 전술보다 더 많은 책임감이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사이에서 어디까지가 책임감의 범위에 해당하는지가 상당히 불분명하다. 사단급 이상의 참모장교부터 말단 제대 병사 개개인까지 모두 개개인의 자율적인 의지에 따라 전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과연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 과연 어떻게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 임무에 투입되어야 하는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어떤 뚜렷한 기준이 없다면 독자적인 결심은 자유롭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는 독단활동의 허용과도 직결된다. 과연 어느 부분까지 임무형 전술적인 차원에서 허용되어야 하는지 뚜렷하게 정의하기란 어렵다. 일반적으로 상황 변동이 근본적으로 이뤄지는 경우, 변동된 상황이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하는 경우, 명령을 하달한 상급자와의 접촉이 불가능하거나 즉각 접촉할 수 없는 경우 등 3가지 경우에 독단활동은 허용되는데 이 기준 또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즉, 지휘관의 지휘 역량이나 경험이 이때는 크게 작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연개소문에 맞선 안시성주(양만춘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가 떠올랐다. 당 태종이 연개소문에 맞선 안시성주를 언급한 것은 연개소문 정권의 정당성을 훼손하기 위한 언론플레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고구려 내부적으로 그런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고구려에도 임무형 전술을 적용할 수 있고, 안시성주와 같은 대성급 성주라면 최고 통수권자와 다른 견해를 지닌채 군사적인 활동을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연개소문이 안시성을 공격하는 정도의 내분이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보지만 고구려 내부적으로 그런 군사적인 갈등은 충분히 발생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차후에 다시 신중하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임무형 전술의 단점을 꼽자면 공격과 방어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적용 가능한 전술적 차이다. 독일 육군의 강점은 공격과 지연전 수행시 전술적이든 작전적 차원이든간에 고도의 기동성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수적으로 열세임에도 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방어는 이와 반대로 정적인 요소들이 강조된다. 왜냐하면 방어는 선, 진지와 지역을 고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로 방어작전시 예하 지휘관들에게 공격과는 달리 재량권을 덜 부여해도 무방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역습과 반돌격 등 기동성이 강조됨에 따라 방어작전의 정체성이 상당히 줄긴 했지만 가용병력의 제한과 방어라고 하는 전장의 상황은 임무형 전술을 더 이상 가능하게 만들지 못 한다. 즉, 작전지역이 넓고 적의 저항이 약할때라면 상관이 없지만 적의 저항이 강력해서 행동의 자유가 극히 제한될 때는 임무형 전술이 명령형 전술보다 덜 유용적이라는 소리가 된다. 종종 공성전 수행시 상급제대 참모장의 지시가 하달되기 전까지 성밖으로 나가 싸우지 말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전투를 벌이다가 성을 빼앗기는 장면을 볼 수가 있다. 당군에게 항복한 백암성주 손대음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임무형 전술과 명령형 전술의 차이에서 해석해야만 할 것이다.

즉, 임무형 전술은 장점과 단점을 고루 갖춘 전술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장점을 극대화할 수만 있다면 전장에서 상당히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고구려에 임무형 전술이라고 볼만한 군사적 전통이 있었다는 것 또한 충분히 검토해볼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몇몇 단편적인 부분만을 두고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일단, 고구려 자체적인 기록이 없으며, 군사 관련 기록은 더더욱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록이 상당히 잘 남아있는 중국측 기록에서 고구려의 임무형 전술적인 면을 추론해낼만한 것들을 추려내는 작업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군의 임무형 전술적인 측면은 독일 자체적인 기록 이외에도 주변의 기록을 통해서 그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본다면 고구려에 대해서도 주변 국가들이 그런 기록을 남겼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경당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놓은 것처럼 말이다.

일단은 충분히 가능성있는 부분인만큼 차후 더 공부가 필요할 듯 싶다. 현재 한국 사학계나 고고학계에서 이런 군사적인 부분은 그야말로 피상적인 면에 머물러 있는데, 이런 군사 이론적인 부분이 도입된다면 기존과는 전혀 다른, 보다 적극적인 분석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선은 임무형 전술에 대해 기본적인 개념을 정립하고 그 개념을 고구려군에 적용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이 이론을 단순히 겉으로만 보고 적용할 것이 아니라, 보다 심층적으로 파고 들어서 한국사상에 적용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주인장의 차후 연구주제와도 연결되는 부분인만큼 이에 대해서는 차후에 다시 한번 주인장의 생각을 정리할 것을 다짐하고 이만 줄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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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과 백제부흥운동 엿보기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연구총 제5집
양종국 지음 / 서경문화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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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평을 쓰는데 오늘은 좀 흥미로운 책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의자왕이 다스리던 백제 말기와 백제부흥운동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알다시피 백제사 관련 책 중에서 특정 인물에 대해 서술한 책도 많이 없지만, 더불어 백제 멸망기만 따로 다룬 책도 별로 없다(실제 온라인 서점을 검색했더니 관련 서적이 전무하다시피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의자왕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면서 더불어 백제 멸망기의 상황, 이후 전개되는 백제 부흥운동에 대해 서술하고 있었다. 지난달 호서고고학회를 갔다가 눈에 확 들어오는 책 표지때문에 집어들었는데 목차를 살펴보니 재밌을 것 같아서 바로 구입했던 것이다.

저자도 밝히고 있지만 이 책은 역사 전공자나 공부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부담없이 읽게끔 하기 위해 설명내용은 1,200자 이내로 줄이고 대신 사진과 지도, 도표 등을 많이 싣고자 하였다. 그래서 전체 100개의 주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장이 2~3장 정도에 불과하다. 읽는 내내 시간가는 줄 모르고 후다닥 읽었는데 서술은 가벼웠지만 결코 쉽게 생각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이 책에서 주인장이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다양한 주제를 다양한 자료를 통해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100개의 주제들은 대부분 백제 멸망기를 다루는 거의 모든 주제에 해당한다. 특히 100개의 장은 크게 의자왕의 진실 엿보기, 백제 멸망의 진실 엿보기, 백제부흥운동의 진실 엿보기, 백제유민과 의자왕의 후손 엿보기 등 4개의 큰 테마로 나뉘는데 정사부터 야사, 전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의자왕에 대해 사람들이 그간 갖고 있는 이미지가 잘못된 것임을 항변한다. 그가 국제 시류를 읽지 못 하고 횡음과 주색에 빠져 백제를 멸망에 빠트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백제 멸망기때 태자가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서 따로 장을 마련했다. 이 부분은 주인장이 평소 생각치 못했던 부분이라 더욱 흥미있게 봤던 부분이다. 더불어 나제통문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바로잡고, 백제와 관련된 각종 전승지와 전설들을 소개하고 있어 처음부터 독자로 하여금 책에 빠져들게 하고 있었다. 

또한 신라군의 진격로와 황산벌 전투에 대한 저자의 생각, 탄현에 대한 생각, 계백장군이 설치했다는 3영의 위치, 웅진강구 전투 및 부여나성의 전투 등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모두 다 참신하고 흥미로운 내용이라 주인장에게 많은 공부가 됐다. 특히 황산벌전투에 대해서는 예전에 김성남의『전쟁으로 보는 한국사』, 이희진의『전쟁의 발견』을 보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다. 그 밖에 소정방에 대해 적지 않은 내용을 소개한 것도 이색적이었다. 대개 백제 멸망기를 다루면서 당군과 소정방 등에 대해서는 별로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데 여기서는 적지 않은 내용을 소개하고 있었다. 또한 상주 당교전설을 거론하며 이는 야사일 뿐, 믿을만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못 박아두고 있어 그 점도 눈에 띄었다.

더불어 귀실씨의 유래 문제라든가, 백촌강전투 및 주류성의 위치, 연미산과 취리산의 위치 비정, 당 유인원 기공비의 건립연대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어 백제 멸망기에 대해 폭넓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 하나 주인장이 눈여겨 본 것은 웅진도독부를 당에 예속된 군현이 아닌 독자적인 정치체로 보고자 했다는 점이다. 그는 웅진도독부의 치소는 공산성이고, 소정이펄은 당군의 주둔지였으며 웅진도독부가 그 당시 독자적으로 신라와 영토전쟁을 벌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당의 기미정책을 언급하면서 중국인들이 백제 멸망 후 당의 영토를 한반도 남부까지 확장해 표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다. 단지 부여륭은 의자왕과 달리 사대외교에 충실한 것 뿐이지 웅진도독부가 백제의 실질적인 군현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의 조공책봉체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더불어 백제사에서 웅진도독부 시기를 빼놓는다면 백제사의 중요한 한 부분을 잃어버리는 것이라 강변하고 있었는데, 마치 예전에 한국사에서 의도적으로 낙랑사를 축소은폐하거나 아님 확대해석하려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아마 이 부분에서 주인장이 가장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두번째로 이 책의 장점을 꼽자면 다양한 도판과 지도 등을 꼽을 수 있겠다. 매 장마다 빠지지 않고 도판과 도면 등이 실려 있어 전체적인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정도다. 다만, 지면의 한정 때문인지 도판과 도면을 너무 작게 줄여놔서 그 점이 아쉬운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도 8,000원의 가격에 이 정도 쪽수를 유지하다보니 그런 것이라 이해하고 넘어가면 큰 문제는 아닐 듯 싶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장점을 꼽자면 현실 문제와 연결시켜 백제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돋보인다는 점이다. 현재 존재하는 전설이나 전승지를 언급하면서 역사적인 사실 여부를 가리는 점이라든가, 부여 능산리 의자왕, 부여륭 묘단비의 내용 수정이 요구되어야 한다는 점, 백제문화제와 백제대왕제에 대한 생각, 백제역사재현단지에 대한 우려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백제사를 공부하는데 있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는 점에서 이런 식의 접근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분량은 얼마 안 되지만 이래저래 주인장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다. 아마 이 책을 아직 안 읽어봤다면 한번 읽어보면 재밌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백제 멸망기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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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처 2008-05-14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같은 일반인에게도 친절한 책이라니, 읽을 목록에 추가해 놓아야겠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麗輝 2008-05-15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말씀을요. ^^ 재밌게 읽으시길 바라겠습니다. 님도 건강하세요~^^
 
무기의 역사 역사 명저 시리즈 12
찰스 바우텔 지음, 박광순 옮김 / 가람기획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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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책을 하나 읽었다. 처음에는 무기의 역사~라고 해서 표지를 보고 서양 무기의 역사인가 보다, 했는데 제목을 보니 보다 세분화된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고대와 중세시기 서양의 무기와 갑옷 등을 다룬 연구보고서(?)의 성격을 지닌 책이었기 때문이다. 유명한 프랑스의 고물애호가 'P. 라콤'의 책을 '찰스 바우텔'이 영어로 옮기고 라콤이 잘 다루지 않았던 부분이나 주관적으로 빠뜨린 점 등을 주석으로 달고, 서문을 집어넣은 뒤에 영국 무기의 역사에 대해 독립적인 장을 추가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19세기 학자의 눈으로 본 19세기까지의 서양 무기의 역사와 그 이후에 발전될 무기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 주로 들어있는데 지금 보면 물론 잘못된 해석도 있지만, 당대 학자의 눈으로 당대 무기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라고 생각했다. 19세기라면 한창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발전해가는 시기(프랑스에서 이 시기 이미 석기시대의 편년, 개념정리가 이뤄지고 있었다)였고, 고물애호주의가 학문적인 관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시점인데 책에 실린 도판을 보면 자세하게 갑옷이나 무기, 문장 등을 실측해놓고 있어 시대적인 학풍을 느낄 수도 있었다.

일단 이 책을 볼때 여러 서양 무기 변천사를 다룬 책 중 하나이겠거니~하는 생각에 큰 기대를 안 하고 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목차부터 주욱 살펴보면서 '흠~상당히 재밌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석기시대 무기들을 다루는 것부터 청동기시대 아시리아, 갈리아, 영웅시대 그리스의 무기를 다루고 철기시대로 넘어오면 그리스와 페르시아, 에르투리아의 무기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서양 전쟁사 혹은 무기발달사에 일대 획을 그었던 로마를 다루고 고대 무기와 갑옷의 장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야만족들(이는 지극히 로마시대적 관점을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에서 프랑크족만은 독립적인 장을 두어 다루고 있는 점이 독특했다)과 프랑크족의 무기에 대해, 마지막으로 중세시대 유럽의 무기와 갑옷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일단 아시리아나 갈리아의 무기를 따로 다루고 있는 것도 독특했고, 에트루리아나 프랑크의 무기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특히나 21세기 학자의 눈이 아닌 19세기 학자의 눈으로 고대 무기나 갑옷의 변천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의 시각을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석기시대 무기부터 주욱 살펴보면 저자의 다양한 삽화가 실려있어 보기 좋았다. 출토된 유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그렇다고 정확한 치수를 재고 정확한 비율로 삽화를 실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을 토대로 무기의 각 부분을 설명하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19세기면 사실주의가 대두되어 역사적이고 연대기적인 문학작품이 등장하고, 회화 작품에서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화풍이 등장하는 시기인데 아마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그런 삽화를 다수 남긴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나름 편년까지 해 석기시대 무기를 다루고 있는 것을 보고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제국주의 학자의 연구성과물이라 그런지 여러 식민지의 민족지적 사례를 기준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만했다. 특히 석기시대 무기를 만들때 나무에 생채기를 내고 무기를 꽂아두면 나무의 자연 치유력으로 석기를 꽉 조이게 되고 그 뒤에 도구를 만들어 썼다는 내용은 분명 참고할만 했다. 아직 이런 식으로 석기시대 무기에 대해 해석한 연구성과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심지어 일본측 연구에서도).

그 밖에 아시리아나 페르시아의 무기 및 갑옷을 거론하면서 유럽의 무기 체계와 비교 설명한 것도 재밌었다. 십자군 전쟁 당시 아시아와 유럽의 서로 다른 무기 체계가 전투 결과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한 것도 흥미있었다. 그리고 로마사를 언급할때 등장하는 에트루리아의 무기에 대해 따로 장을 두어 설명한 것도 독특했다. 11개의 장 중에 중세시대 무기를 다룬 장이 4개 (영국의 무기를 설명한 장도 포함해서)인데 반해 고대 무기를 다룬 장이 5개나 되어서 처음 생각과는 달리 상당히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야만족이라고 표현된 고대 로마영토 밖에 거주했던 민족이나 프랑크왕국을 세워 유럽을 제패한 프랑크족에 대해 설명한 부분도 좋았다. 인디언이나 프랑크족은 투척용 도끼를 잘 활용했는데 마치 활이나 투창을 사용하는 것처럼 능숙했다는 대목 등이 주목됐다. 이처럼 당시 여러 민족의 무기 체계와 갑옷 체계를 설명하고 그것을 통해 전투 양상이나 전쟁 등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19세기 학자의 학문적 수준으로 완성한 연구성과가 오늘날의 시각으로 봐서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삽화나 설명에 있어 훌륭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마치 일제강점기때 고유섭이 이뤄놓은 연구성과가 오늘날 학계의 그것에 비해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한동안 멍~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저자는 비록 야만족이라 하더라도 석기를 이용한 원론적인 무기 제작 기술은 오히려 그들이 뛰어나다는 평까지 하고 있어 제국주의 학자의 평가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다. 석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무식하거나 문명이 덜 떨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오늘날 그런 생각을 서슴없이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 석촉은 중요한 무기로서 활용됐고(심지어 5세기 고구려 군사기지인 홍련봉 2보루에서도 잘 만들어진 석촉이 출토됐었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쓰던 석부나 석창, 석검은 오늘날 봐도 감탄을 자아내게 할 정도다. 그리고 그런 군사문화의 전통을 계승한 후대의 사람들 역시 갑주나 무기를 만들던 재료만 바뀌었을 뿐이지 계속 새로운 무기를 만들고 더 발전된 무기를 만들어 사용했었다. 그리고 저자는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는 그리스를 두고 기존의 군사문화는 계승하되 다른 세계의 군사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더 발전했다는 말도 적고 있다. 그렇다. 전쟁은 서로 다른(물론 같을수도 있지만) 두 군사집단의 충돌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군사문화의 직접적인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19세기 제국주의 사회의 배경 아래서 지배받는 식민지의 역사와 군사문화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처음에 프레이저의『황금가지』를 보면서 그 참신한 해석과 시각에 놀랐던 기억이 났다) 저자는 그런 부분에서 많이 관대한(?)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연구성과가 완성된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벌써 그때 중세시대 갑옷에 대한 세세하고 정확한 편년이 완성된 것도 놀라웠다. 찰스 바우텔이 모든 시대의 문장(紋章)에 관한 권위자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중세 영국 갑옷을 크게 몇개의 시기로 편년하고 다시 각 시기별로 세분화해서 설명한 부분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조선시대 갑옷을 그렇게 편년해서 연구한 결과물을 주인장은 본 적이 없다. 유럽의 경우 고대 왕조에서 만들어낸 동전이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이 동전에 대한 권위자들이 상당수 있었고 이를 통한 연구성과 또한 엄청나게 많다(물론 동양의 경우, 동시기 동전이 그리 활발하게 쓰이지 않았고 그 연구성과가 상대적으로 활발하지도 않다). 그처럼 각 왕조의 문장이나 장식품, 깃발에 그려진 문장 등을 무기 변천사에 활용한 면도 독특했다. 주인장이 종종 갖는 의문이지만 한국은 서양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군사문화 부분의 예술작품이나 기록 등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렇기에 그림에 그려진 기사의 모습이나 문양에 새겨진 기사의 모습을 토대로 당시의 갑주 및 무기 체계를 복원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역시나 이 책에서는 중세시대 다양한 고고자료를 통해 갑주와 무기의 변천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상당히 부러움을 자아내게 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책은 더 나오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소총과 권총, 대포 등에 대해 따로 장을 마련해서 미래의 전쟁양상에 대해 평을 가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 화약을 매개로 한 원거리 무기가 마련되면서 더 이상 두꺼운 갑옷의 의미는 사라졌다. 하지만 저자는 대포와 권총 등 화약화기의 위력이 강해지면서 두꺼운 갑옷은 두꺼운 철판으로 옮겨가면서 큰 전함 등에서 그 의미를 찾게 되었다고 평했다. 물론 이는 미사일이나 기뢰 등 현대적인 무기를 예상치못한 얘기겠지만 분명 일리있는 해석임에는 틀림없었다. 여러 종류의 총이 개발되면서 전쟁 양상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고, 19세기를 넘어서면서 저자는 그 과도기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미래전을 예상하는 당시 저자의 모습이 절로 상상됐다.

상당히 세분화된 주제를 다루고 있었고, 2세기 전의 학자의 시각으로 완성된 연구성과라는 점에서 굉장히 가치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안 그래도 찰스 바우텔의 이 책 초판본은 상당한 희귀본으로 사랑받고 있다니, 그 인기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한국 무기 변천사를 서술한 제대로 된 연구성과도 없으니 뭐 어쩔 수 없지만, 차후에 이런 세분화된 주제에 대해 다룬 연구성과도 나오길 바라마지 않으며...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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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론 밀리터리 클래식 8
바실 헨리 리델 하트 지음, 주은식 옮김 / 책세상 / 199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주인장이 올해 상반기 들어 본 책 중에서 가장 괜찮은 책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솜 공세에 참여하기도 했던 바실 헨리 리델 하트가 쓴『전략론』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영국군 출신으로 기계화전, 기동전, 공중전에 대해 상당히 주목받을만한 이론들을 내놓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사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전략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암튼 이 책을 읽음으로써 주인장은 전략과 전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특히 대전략과 전략, 전술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한 부분을 읽을때는 뭔가 망치로 한대 맞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서양의 군사전략이고 특정 시기, 특정 국가를 상대로 한 이론이지만(책 맨 뒷부분을 보면 역자의 해설 부분이 있는데, 그는 리델 하트가 영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맞게끔 전략에 대한 이론을 정리하다보니 '간접 전근'에 주목할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분명 세계사적으로 적용 가능하며 또 주목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일단 책의 순서를 보면 맨 앞에 전쟁에 대한 몇몇 금언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견제와 기습, 우회진격 등을 거론하고 있어 저자가 앞으로 어떤 얘기를 할 것인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책은 총 4부로 꾸며져 있는데 1부는 기원전 5세기에서 20세기까지의 전략을, 2부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략, 3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략, 4부는 전략과 대전략의 근본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 외에 에릭 도먼 스미드 소장과 이가엘 야딘 장군의 편지 형식을 띤 논문(에세이 성격이 강한?) 2편이 부록으로 실려 있고 가장 뒤에는 역자의 해설 부분이 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혹시 도움이 되고자 미리 몇마디 적자면 책을 처음부터 읽지 말고 제일 뒤부터 읽기를 권하는 바이다. 주인장은 처음에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읽어갔는데 내용도 어렵고(아마 대부분의 사례가 서양전쟁사 분야여서 지명, 인명 등이 익숙치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군사용어도 생소한데다가 '간접전근'이라는 전략 · 전술적 측면이 쉽게 와닿지 않아서 읽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느꼈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제일 뒤에 역자의 해설 부분을 보니 역자 역시 주인장과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책의 내용이 어렵고 이해하기 난해한 부분들이 있으니 가장 뒤에 마련된 4부. 전략과 대전략의 근본 문제에 대해 먼저 이해하고 1부부터 읽으라고 말이다. 그래서 주인장은 이 책을 앞으로 읽을 분들에게 역시 뒤에서부터 읽기를 권하는 바이다. 역자의 해설 부분을 먼저 읽으면 리델 하트가 어떤 인물이며 어떤 사상을 갖고 있고, 어떤 상황에서 이러한 책을 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가 가진 사상적 배경을 잘 설명해놓고 있어서 그가 왜 그토록 '간접 전근'이라는 큰 줄기를 따라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 4부를 보면 그의 이론적인 틀, 그가 말하고자 하는 개념적인 내용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전술과 전략, 대전략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면 그가 역사 속의 수많은 전투와 전쟁을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이해하는지, 왜 그런 해석을 했는지 보다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대전략의 궁극적인 목표는 평화라는 그의 발상은 주인장에게 다소 엉뚱하면서도 참신했던 것 같다. 전쟁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결국 안정된 사회, 평화라는 것이니 이 어찌 아이러니한 내용이 아니겠는가. 혹자는 전쟁을 하지 않고서도 이런 것을 얻어야만 진정한 평화이기 때문에 결국 리델 하트의 간접 접근 역시 전쟁을 정치적 수단으로 보는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하지만, 어쨌든 주인장에게는 새로운 내용이기에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그리고 1부부터 3부까지 주욱 읽어내려가면 저자의 의도, 생각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에릭 도먼 스미드 소장과 이가엘 야딘 장군의 편지를 통해 실전에서 리델 하트의 간접 접근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응용되고 있는지도 읽을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전체적인 내용도 그렇고 구성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주목할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이 계속 고심했던 것은 간접 접근이라는 측면을 동양 전쟁사에도 적용할 수 있겠는가? 그런 사례가 있겠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예전에 배리 스트라우스의『살라미스 전쟁』이라는 책을 보면서, 전쟁에 패한 페르시아와 전쟁에 승리한 아테네의 전후 사정에 대한 참신한 해석에 놀랐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그와 비슷한 새로운 해석들을 접할 수 있어 신기했다. 간접 접근이라는, 직접 적의 주력을 공격하여 그걸 깨뜨리고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적의 취약점, 적이 미처 생각치 못한 부분에 대해 공세를 가하는 어떻게 보면 비겁할 수도 있지만 아주 유용한 방식에 대해 아테네와 페르시아는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었다. 아니 동양과 서양의 사상적인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저자가 책 서문에서『손자병법』을 비롯한 여러 고전, 금언들을 제시하며 그 안에 담겨진 간접 접근에 대한 내용들을 언급한 것도 다 이해가 됐다. 기습과 우회기동은 리델 하트가 생각한 아주 유용한 작전 방식이며 고금을 막론하고 그것을 잘 활용한 지휘관이 항상 큰 승리를 가져왔다고 저자는 자신있게 말하고 있었다. 그럼 그런 리델 하트의 생각을 동양 전쟁사에도 그대로 투영 가능할까?

저자가『손자병법』을 공부하고 그 안에 담겨진 전략적 요체를 인용했던 만큼 저자 역시 동양 전쟁사에 그런 면모가 많이 투영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동양의 그런 면모를 서양 전쟁사에서 찾을 수 없을까? 하는 마음에 이렇게 생각을 정리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주인장은 고-수, 고-당전쟁이라는 역사상 유례없는 거대한 문명대전을 치뤘던 나라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규모면에서 고구려는 수, 당에 비해 열세에 있었으며 총력전이라는 양상을 띤 문명대전에서 객관적인 수치가 떨어졌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는 수, 당을 이겨내 동방의 패자 지위를 사수할 수 있었고, 수 왕조는 전쟁 휴유증 때문에 망했으며 당 왕조 역시 과대팽창 욕구로 인해 스스로 내부 붕괴에 빠져들고 말았으니까 말이다.

수 양제의 군대는 고구려의 주 전력이 모여있는 요동 방어선을 그대로 돌파하기 위해 수많은 병력과 물자 손실을 입었으며 그 중심 방어지점인 요동성을 돌파하기 위해 수개월을 허비했다. 그러나 고구려의 주전력을 깨뜨리지 못 했고 결국 30만 대군을 별동군으로 편성해 평양성(고구려의 수도)으로의 우회 기동을 실시한다. 하지만 리델 하트도 지적하고 있듯이 적 후방을 향한 우회기동이 포착되면 그것은 더 이상 간접 접근이 아닌 직접 접근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역시 적 주력을 깨뜨리지 못한 수 왕조의 별동군은 전멸을 당하고 만 것이다. 당 태종의 군대 역시 마찬가지다. 힘으로 고구려의 주력이 모인 요동성을 비롯해 1차 방어선을 어느 정도 돌파했지만 주필산에 집결한 고구려의 주력을 깨지 못하고 결국 고구려의 우회 기동과 간접 접근에 의해 요택으로 몰려나 큰 피해를 입고 후퇴했던 것이다(하지만 당 왕조는 고구려의 후방인 백제와 신라를 장악하는 한편 거란, 부여 일대를 장악하고 소모전으로 고구려의 국력을 소모시키는 등 결국 간접 접근으로 고구려를 멸망에 이르게 하였다. 반면 고구려는 잦은 승리로 인한 전략적 경직성으로 인해 멸망을 초래하고 말았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또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그럼 과연 고-수 전쟁 후 을지문덕이나 고-당 전쟁 후 연개소문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 만리장성을 넘어 수나 당 왕조를 공격했을까? 리델 하트는 수많은 전쟁 사례들을 분석한 결과, 대전략의 궁극적인 목표는 적의 후퇴와 더불어 국제 정세의 주도와 평화 유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프랑스나 독일은 그것을 무시하고 과도한 전략적 목표를 향해 나아갔지만 영국은 그러질 않았다고 밝히고 있었다. 역시 간접 접근은 대륙의 정세를 관망하며 바다를 장악하는 것이 곧 세계를 지배하는 것임을 몸소 보여줬던 영국과 가장 부합하는 방식다웠다. 그럼 그 상황을 고구려에 대입시킬 수는 없을까? 우리는 을지문덕이 강경파장군이며 살수대첩에서 30만의 적군을 몰살시킨 뒤 여세를 몰아 만리장성으로 쳐들어갔을 것이라 생각하고 연개소문이 쫓겨가는 당 태종을 따라 역시 장안성으로 진격했을 것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혹은 그랬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그런 바램이 투영된『환단고기』를 거론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수, 당을 압도했던 그들이 과연 대전략이라는 측면상 그런 역습을 가했을까? 하는 부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는 고구려의 천하관 혹은 고구려 내부 정치적인 상황을 굳이 결부시키지 않고 순수하게 군사적인 부분에 대해서 재론의 여지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실제 고구려는 군사력을 동원하는 직접 접근을 통해 수, 당의 영토를 빼앗지 않았음에도 국제사회에서 동방의 패자 지위를 유지하고 예하 세력들에 대해 지속적인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더불어 신라가 당과 맞서 싸워 한반도 내의 통일정부를 세울때 토번에 의해 당이 위기에 처했던 것도 신라측의 어떠한 간접 접근의 결과물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됐다.

간접 접근은 어디까지나 적이 모를때에만 간접 접근으로 유효하다는 점, 적의 중심 방어지점 사이의 취약점을 공략하고 적을 점점 특정 방어지점에 고립되게 하여 대규모 우회기동을 통한 간접 접근을 시도하는 방식, 반드시 적의 주력을 공격하는 대규모 군사행동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 등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그간 간과했던 부분들을 재삼 인식할 수 있게 된 기회였던 것 같다. 저자가『손자병법』을 거론하고 있듯이, 그리고 그 안에 담겨진 전략적 요체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용하게 적용된다는 점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겠다. 그 말은 곧 오늘날 남겨진 것은 중국측 병법서 일색이지만 우리 고유의 전략과 전술, 병법서도 분명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삼국사기』를 보면 深溝高壘(도랑을 깊이 파고 진지를 높이 쌓는다)라는 관용어구가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산성이 많았던 고대 한국에 가장 적합한 방어형태이자 적이 가장 두려워하는 방어형태가 아니었나 싶다(실제 고구려를 침공하고자 하는 당 태종은 신하에게 이런 간언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에 걸맞는 우리만의 전략 · 전술이 분명히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군사상의 이론적인 부분이 많이 정리되어 있지 않고 연구가 많이 진행된 것도 아닌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전쟁에 관심이 많고 정말 전쟁을 잘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다만, 책이 어려울 수 있으니(주인장도 1번은 앞에서부터 읽고 뒤에서 1번을 다시 읽어봤다) 주인장이 말하는 방법대로 한번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조언도 남기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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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프랭크 밀러 글.그림, 린 발리 채색, 김지선 옮김 / 세미콜론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오늘은 주인장이 만화책 1권을 더 소개하고자 한다. 이현세의 만화책을 살때 같이 구입했던 건데 지금도 가끔씩 펼쳐보는 만화책이다.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300'의 원작 만화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데어데블', '씬씨티'의 원작자이기도 한 프랭크 밀러가 그려 더 이슈가 됐던 이 만화는 영화로 만들어져 또 큰 인기를 모았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일본이나 한국, 대만만화와 전혀 다른 스타일의 새로운 만화책!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만화책이다.

일단 주인장은 이 책을 구입하고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배송된 책을 펼쳐봤다. 순간 드는 생각은~아! 영화랑 똑같다, 라는 것이었다. 무엇이 똑같냐~하면, 단순히 내용이 같다는 차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기존에 만화나 소설을 영화화했을때 원작의 내용을 충실하게 따른 작품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만화책에 그려진 모습, 색상, 배경 등등을 그대로 화면에 재현한 영화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길때마다 영화를 볼때 느꼈던 전율감이 그대로 전해질 정도로 강렬한 붓터치와 원색을 그대로 쓴 화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정말 '강렬한 남성을 위한 만화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테르모필라이 전투는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졌으니 재삼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잠깐 언급하자면 수만의 페르시아의 대군을 맞아 소수의 스파르타군이 죽음을 각오하고 맞서 싸운 전투다. 결과적으로 스파르타군은 전멸하고 그 왕이 전사했지만 결국 그리스는 페르시아군을 몰아낼 수 있었다. 여기에서는 거창한 모토나 어마어마한 스케일, 화려한 미사여구 등이 생략되어 있다. 단지, 평소 수천번 수만번 훈련하고 단련해왔던대로 무덤덤하게 승리할 가망성이 없는 전장으로 떠나는 스파르타 전사들의 비장함과 긴장감만이 묘사되어 있을 뿐이었다. 몇번의 접전 끝에 중과부적으로 무너지는 스파르타군과 그들을 짓밟았지만 그리스군에게 결국 패한 크세르크세스 대왕. 모든 것이 짤막짤막한 장면과 몇번의 붓터치로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그런 만화 스타일 자체가 우리가 흔히 접하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더 인상깊었고, 이런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라면 더 적합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격은 꽤 비싸지만 올 컬러에다가 와이드 비전(?)처럼 넓다란 크기이기 때문에 색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더욱 더 재밌게 볼 수 있는 만화책, 영화를 안 봤다면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만화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강렬하고 거친, 스타일리쉬한 액션 만화! 아마 앞으로도 이처럼 순간의 미학을 잘 표현한 만화책은 없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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