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론 밀리터리 클래식 8
바실 헨리 리델 하트 지음, 주은식 옮김 / 책세상 / 199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주인장이 올해 상반기 들어 본 책 중에서 가장 괜찮은 책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솜 공세에 참여하기도 했던 바실 헨리 리델 하트가 쓴『전략론』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영국군 출신으로 기계화전, 기동전, 공중전에 대해 상당히 주목받을만한 이론들을 내놓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사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전략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암튼 이 책을 읽음으로써 주인장은 전략과 전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특히 대전략과 전략, 전술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한 부분을 읽을때는 뭔가 망치로 한대 맞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서양의 군사전략이고 특정 시기, 특정 국가를 상대로 한 이론이지만(책 맨 뒷부분을 보면 역자의 해설 부분이 있는데, 그는 리델 하트가 영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맞게끔 전략에 대한 이론을 정리하다보니 '간접 전근'에 주목할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분명 세계사적으로 적용 가능하며 또 주목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일단 책의 순서를 보면 맨 앞에 전쟁에 대한 몇몇 금언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견제와 기습, 우회진격 등을 거론하고 있어 저자가 앞으로 어떤 얘기를 할 것인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책은 총 4부로 꾸며져 있는데 1부는 기원전 5세기에서 20세기까지의 전략을, 2부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략, 3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략, 4부는 전략과 대전략의 근본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 외에 에릭 도먼 스미드 소장과 이가엘 야딘 장군의 편지 형식을 띤 논문(에세이 성격이 강한?) 2편이 부록으로 실려 있고 가장 뒤에는 역자의 해설 부분이 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혹시 도움이 되고자 미리 몇마디 적자면 책을 처음부터 읽지 말고 제일 뒤부터 읽기를 권하는 바이다. 주인장은 처음에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읽어갔는데 내용도 어렵고(아마 대부분의 사례가 서양전쟁사 분야여서 지명, 인명 등이 익숙치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군사용어도 생소한데다가 '간접전근'이라는 전략 · 전술적 측면이 쉽게 와닿지 않아서 읽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느꼈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제일 뒤에 역자의 해설 부분을 보니 역자 역시 주인장과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책의 내용이 어렵고 이해하기 난해한 부분들이 있으니 가장 뒤에 마련된 4부. 전략과 대전략의 근본 문제에 대해 먼저 이해하고 1부부터 읽으라고 말이다. 그래서 주인장은 이 책을 앞으로 읽을 분들에게 역시 뒤에서부터 읽기를 권하는 바이다. 역자의 해설 부분을 먼저 읽으면 리델 하트가 어떤 인물이며 어떤 사상을 갖고 있고, 어떤 상황에서 이러한 책을 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가 가진 사상적 배경을 잘 설명해놓고 있어서 그가 왜 그토록 '간접 전근'이라는 큰 줄기를 따라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 4부를 보면 그의 이론적인 틀, 그가 말하고자 하는 개념적인 내용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전술과 전략, 대전략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면 그가 역사 속의 수많은 전투와 전쟁을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이해하는지, 왜 그런 해석을 했는지 보다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대전략의 궁극적인 목표는 평화라는 그의 발상은 주인장에게 다소 엉뚱하면서도 참신했던 것 같다. 전쟁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결국 안정된 사회, 평화라는 것이니 이 어찌 아이러니한 내용이 아니겠는가. 혹자는 전쟁을 하지 않고서도 이런 것을 얻어야만 진정한 평화이기 때문에 결국 리델 하트의 간접 접근 역시 전쟁을 정치적 수단으로 보는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하지만, 어쨌든 주인장에게는 새로운 내용이기에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그리고 1부부터 3부까지 주욱 읽어내려가면 저자의 의도, 생각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에릭 도먼 스미드 소장과 이가엘 야딘 장군의 편지를 통해 실전에서 리델 하트의 간접 접근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응용되고 있는지도 읽을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전체적인 내용도 그렇고 구성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주목할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이 계속 고심했던 것은 간접 접근이라는 측면을 동양 전쟁사에도 적용할 수 있겠는가? 그런 사례가 있겠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예전에 배리 스트라우스의『살라미스 전쟁』이라는 책을 보면서, 전쟁에 패한 페르시아와 전쟁에 승리한 아테네의 전후 사정에 대한 참신한 해석에 놀랐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그와 비슷한 새로운 해석들을 접할 수 있어 신기했다. 간접 접근이라는, 직접 적의 주력을 공격하여 그걸 깨뜨리고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적의 취약점, 적이 미처 생각치 못한 부분에 대해 공세를 가하는 어떻게 보면 비겁할 수도 있지만 아주 유용한 방식에 대해 아테네와 페르시아는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었다. 아니 동양과 서양의 사상적인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저자가 책 서문에서『손자병법』을 비롯한 여러 고전, 금언들을 제시하며 그 안에 담겨진 간접 접근에 대한 내용들을 언급한 것도 다 이해가 됐다. 기습과 우회기동은 리델 하트가 생각한 아주 유용한 작전 방식이며 고금을 막론하고 그것을 잘 활용한 지휘관이 항상 큰 승리를 가져왔다고 저자는 자신있게 말하고 있었다. 그럼 그런 리델 하트의 생각을 동양 전쟁사에도 그대로 투영 가능할까?

저자가『손자병법』을 공부하고 그 안에 담겨진 전략적 요체를 인용했던 만큼 저자 역시 동양 전쟁사에 그런 면모가 많이 투영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동양의 그런 면모를 서양 전쟁사에서 찾을 수 없을까? 하는 마음에 이렇게 생각을 정리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주인장은 고-수, 고-당전쟁이라는 역사상 유례없는 거대한 문명대전을 치뤘던 나라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규모면에서 고구려는 수, 당에 비해 열세에 있었으며 총력전이라는 양상을 띤 문명대전에서 객관적인 수치가 떨어졌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는 수, 당을 이겨내 동방의 패자 지위를 사수할 수 있었고, 수 왕조는 전쟁 휴유증 때문에 망했으며 당 왕조 역시 과대팽창 욕구로 인해 스스로 내부 붕괴에 빠져들고 말았으니까 말이다.

수 양제의 군대는 고구려의 주 전력이 모여있는 요동 방어선을 그대로 돌파하기 위해 수많은 병력과 물자 손실을 입었으며 그 중심 방어지점인 요동성을 돌파하기 위해 수개월을 허비했다. 그러나 고구려의 주전력을 깨뜨리지 못 했고 결국 30만 대군을 별동군으로 편성해 평양성(고구려의 수도)으로의 우회 기동을 실시한다. 하지만 리델 하트도 지적하고 있듯이 적 후방을 향한 우회기동이 포착되면 그것은 더 이상 간접 접근이 아닌 직접 접근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역시 적 주력을 깨뜨리지 못한 수 왕조의 별동군은 전멸을 당하고 만 것이다. 당 태종의 군대 역시 마찬가지다. 힘으로 고구려의 주력이 모인 요동성을 비롯해 1차 방어선을 어느 정도 돌파했지만 주필산에 집결한 고구려의 주력을 깨지 못하고 결국 고구려의 우회 기동과 간접 접근에 의해 요택으로 몰려나 큰 피해를 입고 후퇴했던 것이다(하지만 당 왕조는 고구려의 후방인 백제와 신라를 장악하는 한편 거란, 부여 일대를 장악하고 소모전으로 고구려의 국력을 소모시키는 등 결국 간접 접근으로 고구려를 멸망에 이르게 하였다. 반면 고구려는 잦은 승리로 인한 전략적 경직성으로 인해 멸망을 초래하고 말았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또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그럼 과연 고-수 전쟁 후 을지문덕이나 고-당 전쟁 후 연개소문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 만리장성을 넘어 수나 당 왕조를 공격했을까? 리델 하트는 수많은 전쟁 사례들을 분석한 결과, 대전략의 궁극적인 목표는 적의 후퇴와 더불어 국제 정세의 주도와 평화 유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프랑스나 독일은 그것을 무시하고 과도한 전략적 목표를 향해 나아갔지만 영국은 그러질 않았다고 밝히고 있었다. 역시 간접 접근은 대륙의 정세를 관망하며 바다를 장악하는 것이 곧 세계를 지배하는 것임을 몸소 보여줬던 영국과 가장 부합하는 방식다웠다. 그럼 그 상황을 고구려에 대입시킬 수는 없을까? 우리는 을지문덕이 강경파장군이며 살수대첩에서 30만의 적군을 몰살시킨 뒤 여세를 몰아 만리장성으로 쳐들어갔을 것이라 생각하고 연개소문이 쫓겨가는 당 태종을 따라 역시 장안성으로 진격했을 것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혹은 그랬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그런 바램이 투영된『환단고기』를 거론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수, 당을 압도했던 그들이 과연 대전략이라는 측면상 그런 역습을 가했을까? 하는 부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는 고구려의 천하관 혹은 고구려 내부 정치적인 상황을 굳이 결부시키지 않고 순수하게 군사적인 부분에 대해서 재론의 여지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실제 고구려는 군사력을 동원하는 직접 접근을 통해 수, 당의 영토를 빼앗지 않았음에도 국제사회에서 동방의 패자 지위를 유지하고 예하 세력들에 대해 지속적인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더불어 신라가 당과 맞서 싸워 한반도 내의 통일정부를 세울때 토번에 의해 당이 위기에 처했던 것도 신라측의 어떠한 간접 접근의 결과물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됐다.

간접 접근은 어디까지나 적이 모를때에만 간접 접근으로 유효하다는 점, 적의 중심 방어지점 사이의 취약점을 공략하고 적을 점점 특정 방어지점에 고립되게 하여 대규모 우회기동을 통한 간접 접근을 시도하는 방식, 반드시 적의 주력을 공격하는 대규모 군사행동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 등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그간 간과했던 부분들을 재삼 인식할 수 있게 된 기회였던 것 같다. 저자가『손자병법』을 거론하고 있듯이, 그리고 그 안에 담겨진 전략적 요체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용하게 적용된다는 점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겠다. 그 말은 곧 오늘날 남겨진 것은 중국측 병법서 일색이지만 우리 고유의 전략과 전술, 병법서도 분명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삼국사기』를 보면 深溝高壘(도랑을 깊이 파고 진지를 높이 쌓는다)라는 관용어구가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산성이 많았던 고대 한국에 가장 적합한 방어형태이자 적이 가장 두려워하는 방어형태가 아니었나 싶다(실제 고구려를 침공하고자 하는 당 태종은 신하에게 이런 간언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에 걸맞는 우리만의 전략 · 전술이 분명히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군사상의 이론적인 부분이 많이 정리되어 있지 않고 연구가 많이 진행된 것도 아닌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전쟁에 관심이 많고 정말 전쟁을 잘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다만, 책이 어려울 수 있으니(주인장도 1번은 앞에서부터 읽고 뒤에서 1번을 다시 읽어봤다) 주인장이 말하는 방법대로 한번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조언도 남기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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