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 조유전의 한국사 미스터리 - 발굴로 풀어본 살아 있는 우리 역사 이야기
조유전 이기환 지음 / 황금부엉이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서론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서평을 쓰는 것 같아 약간 설레는 바이다. 방학을 맞이하여 후배들과 함께 고고학 관련 서적들을 읽고 서평이나 독후감을 쓰면서 자유롭게 토론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자그마한 스터디를 시작했고, 그 결과물로 이렇게 첫 번째 책의 서평을 쓰게 되었다. 솔직히 매일 발굴현장에서 일하는 필자에게 있어 방학이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하루하루가 똑같은 일상으로 끝나기 쉽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수료한 마당에 강제적으로 공부를 할 만한 어떠한 장치도 없어서 이처럼 책을 읽고 서평을 쓸 만한 여유(?)가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어찌됐든 스터디를 하게 됨으로써 책도 읽고 서평도 쓰게 됐으니 후배들한테 고맙다고 밥이라도 사야할 것 같다.

오늘 필자가 쓸 서평의 주인공은『고고학자 조유전의 한국사 미스터리 - 발굴로 풀어본 살아 있는 우리 역사 이야기』이다. 필자 생각에 이 책만큼 고고학을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설명한 책이 또 있나 싶을 정도로 이 책은 잘 쓰인 책이다. 필자 역시 ‘고고학을 공부하겠다.’ 고 본격적으로 마음먹고 이 책을 읽었는데, 4년 만에 다시 읽으니 그 역시 느낌이 달랐다. 그때 서평이나 독후감을 남겼으면, 지금 다시 읽어보고 어떻게 다른 느낌이었는지 알 수 있었겠지만 그때는 그런 것까지 생각하지 못 했기에 그저 아쉬움만 남을 따름이다. 아무튼 이제라도 이 책을 읽고 서평을 남겨 차후 이 책에 대한 필자의 생각이 어떠했었는지 알고자 하는 바이다.  

Ⅰ. 책의 차례와 구성

먼저 이 책의 공저자인 조유전은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너무나 유명한 한국 고고학계의 산 증인이다. 무령왕릉 발굴부터 시작해 안압지, 황룡사지, 감은사지, 황남대총, 천마총 등 초등학교 1학년생들도 다 알만한 너무나 유명한 유적지들을 발굴하고 문화재연구소 미술공예연구실장, 유적조사연구실장, 국립민속박물관장,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등을 역임한 분이다. 그렇기에 그분의 30여년 현장 경험이 이처럼 좋은 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공저자 이기환은 현재 경향신문 문화팀장으로서 조유전의 글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해서 각 장마다 부연설명식의 Tip을 정리했는데, 그러한 구성이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1. 신라는 소돔과 고모라 성이었나 - 신국의 도가 있었던 신라
2. 27만 년 전 구석기인의 세계
3. 1,500년 만에 다시 터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전쟁
4. 되찾은 500년 도읍지, 비운의 한성백제를 깨우다
5. 강아지까지 금목걸이를 찼던 황금나라, 신라의 금관
6. 남한산성이 치욕의 성이라는 편견 뒤엎기
7. ‘대박발굴’을 터뜨린 ‘시험용 발굴’
8. 고인돌의 천국 한반도
9. 경애왕은 그때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었다
10. 왜 일본식 무덤이 한반도에 있을까
11. 60대 남성과 15세 여성의 비극적인 사랑?
12. 충도를 하늘에 맹세한 화랑들
13. 왜 ‘일제’ 빨갱이 고분이 경남 고성에 있었나
14. 2,300년 전의 최첨단 산업, 거푸집
15. 백제 말 무왕의 행정수도, 익산
16. 칠지도는 근초고왕의 하사품?
17. 물구덩이에서 건진 걸작 백제금동대향로
18. 신라의 심장부 경주에서 발견된 광개토대왕의 흔적
19. 신라 귀족의 무덤으로 부활한 개무덤, 경주 용강동고분
20.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킨 문무대왕의 나라 사랑
21. 고등학생이 찾아낸 아라가야의 편린 함안 마갑총
22. 해상왕 장보고의 야망과 좌절이 깃든 청해진 본영
23. 여말선초의 국찰, 또 하나의 궁궐 양주 회암사
24. 영원한 평등세계를 위하여! 대동방국의 기치를 높이 든 궁예
25. “조선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그는 고려의 충신이다”
26. 지금은 아파트촌이 된 고구려 최전방 초소
27. 고려 광종의 야망, 어머니 사랑이 담긴 국찰
28. 고구려 남침의 통로, 경기 연천 호로고루성
29. 기원전후 마한인들의 생활공간 신창동유적
30. 고대사의 블랙박스를 열다 - 공주 무령왕릉 발굴

이 책의 차례를 보면 총 30장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대표적인 사진과 큼직한 글씨로 이뤄져 있어 마치 인터넷 블로그상의 웹진을 보는 듯 한 느낌을 준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5년 전에 만들어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세련된 디자인으로 이뤄졌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하지만 차례를 보면서 필자가 아쉽게 생각한 것은 구성에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분명 저자는 구석기 유적인 ‘전곡리 유적’부터 시작해서 조선시대 유적인 ‘송은 박익의 벽화무덤’까지 골고루 다루고 있으면서 이를 뒤죽박죽 나열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유적의 발견년도대로 나열한 것도 아니고, 저자가 현장에 참여한 순서대로 나열한 것도 아니라면 그저 저자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혹은 살면서 중요하게 여겼던) 순서대로 나열한 것에 불과할 텐데 그것이 조금 아쉬웠다.

또한 책의 제일 뒷부분에 보면 각 장을 쓰면서 봤던 참고문헌들을 정리해 놨는데, 이는 이 책이 학술서적이면서도 대중서적의 스타일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음을 알려준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추후 다른 고고학 서적들에 대한 서평도 계속 쓰겠지만, 우리나라 고고학자들이 쓴 책들 대부분은 이처럼 개인의 경험담을 토대로 한 발굴현장과 관련된 내용이 들어간 대중서적 아니면 자신의 전공분야를 전문적으로 풀어쓴 학술서적 뿐이다. 그 중도(中道)를 지키는 책은 별로 없다. 아니 이 책 말고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아직 고고학 혹은 발굴, 유적, 문화재라고 하는 키워드가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서지 않았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핫 이슈가 될 만한 문화재(여기서 핫 이슈라 함은 국제적인 관광자원으로 활용할만한 문화 콘텐츠를 의미한다)가 적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이 현장에서 발굴조사에 치중하거나 강단에서 후학 양성에 몰두하다 보니 대중들에게 친밀한 글을 자주 남길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이 갖는 의미는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럼 책의 대략적인 구성에 대한 평(評)은 이만큼만 하고 세부 내용에 대해서 간략하게 언급하도록 하겠다. 


Ⅱ. 각 장에 대한 비평

1. 역사적 · 사회적인 의미가 큰 유적 소개

저자는 실제로 한국사에 길이 남을 유적들을 많이 발굴했고, 그와 관련된 경험담을 책에 풀어쓰고 있는데 그러한 유적들이 저자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만큼, 우리나라 혹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저자는 세계 고고학계에 한국이라는 이름을 알린 ‘전곡리 유적’부터, 수많은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풍납토성’, 전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고 있는 ‘신라 금관과 여러 고분들’, 한-일 양국 간의 뜨거운 감자라고 할 수 있는 ‘칠지도’, 너무나 아름다워 눈이 부실 정도로 정교한 ‘백제금동대향로’ 등 대중들이 친숙하게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자세하고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그냥 박물관에 가서 볼 수 있는 유물들, 책에서 볼 수 있는 유적들에 대한 단편적인 암기용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어떻게 발견됐고, 어떤 연구 및 조사를 받아서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저자는 자신의 경험담(신뢰도 100%)을 토대로 재미있게 풀어쓰고 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독자는 절로 흥미를 느끼고, 저자의 심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고고학계의 대부(大父)라고도 할 수 있는 김원룡 선생님과 김영배 선생님이 무령왕릉 입구에서 ‘寧東大將軍百濟斯 麻王年六十二歲癸’라는 2줄의 명문을 발견하고 가슴이 덜컹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필자 역시 저런 삼국시대 명문을 발견하면 기분이 어떨까~싶었다. 이처럼 저자는 이 책에서 그간 널리 알려진 유명한 유적, 유물들에 대해 살아있는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게 하고 있다.  

2. 대중적이지 않은 유적 소개

그와 더불어 이 책이 갖는 장점은 대중적인 문화재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문화재 역시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송학동고분이나 완주 갈동유적, 감은사 금당터의 지하공간, 밀양 송은 박익의 벽화무덤, 예성동호회의 활약으로 확인된 충주 숭선사와 밀봉된 장군 등에 대한 내용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봤던 내용들이었다. 문헌사학과 달리 고고학은 매일매일 새로운 고고자료가 현장조사를 통해 밝혀짐에 따라 사료가 무한정 늘어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전공분야와 관련된 자료만 따져도 매일매일 업데이트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비전공분야에 대한 정보는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문헌사료가 한정된 것과는 정반대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유적들은 일반 대중들뿐만 아니라 필자와 같은 고고학도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필자는 고분 내부가 전부 빨갛게 채색되어 있는 송학동 제1호분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 이건 일본계 고분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안에는 가야, 신라, 백제, 왜계 유물이 가득 들어 있었는데 마치 6세기 이후 백제와 신라를 중심으로 가야, 왜 등이 각축전을 벌이던 당시 상황이 눈에 선한 듯 했다. 무덤이라는 것이 상당히 보수적인 문화적 요소이기 때문에 남의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데(그렇기에 무령왕릉은 한국사에 있어 아주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일본식 장식고분이 한반도에 조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당시 가야-왜의 관계가 아주 밀접했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당시 가야와 영산강 세력을 두고 삼국시대가 아닌 오국시대라고 부르자는 주장이 있을 만큼 가야는 백제, 신라 사이에서 독자적인 문화권을 이룬 국가였기 때문에 가야사에 대한 연구가 앞으로 더 활발히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도 들었다.

3. 한국 고고학계의 발전상을 잘 소개

한국 고고학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 땅에 넘어와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경주에 존재하는 수십 여기에 달하는 왕릉급 무덤들이 일제강점기 시절 어떠한 고통을 겪었는지 잘 소개하고 있었다. 금관 혹은 금동관이라고 하는 돈 되는 보물에 눈이 어두운 자들에 의해 벌어진 가짜 금관 도난 사건이나 스웨덴 구스타프 황태자의 현장 참관 때문에 이름 붙여진 서봉총에 대한 얘기는 씁쓸하게 들렸다. 하지만 해방 이후 천마총을 성공적으로 발굴한 이야기나 저습지 발굴을 하기 위해 2년간 나라문화재연구소에서 저습지 발굴기법을 공부하고 돌아온 조현종의 사례 등은 그간 한국 고고학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발전해왔음을 알려주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한국 고고학은 기존의 문헌사학이 해낼 수 없었던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밝혀낼 수 있었다. 진위 논란이 뜨거웠던『화랑세기』에 묘사된 신라의 지극히 개방적이었던 성문화도 안압지에서 출토된 목제남근과 성적 행위를 묘사한 토우에서 입증이 되었으며, 자세한 성격을 알 수 없었던 풍납토성이 백제의 한성임을 증명하기도 했으며, 제천 황석리 고인돌의 인골을 통해서 청동기시대 인적 자원의 교류에 대해서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밖에 문헌에서는 알 수 없던 화랑들의 약속이 담긴 ‘임신서기석’이나 고대 백제와 왜 사이의 관계를 알려주는 ‘칠지도’는 물론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알려주는 ‘호우총’과 문헌에 나타나지 않는 한강 일대의 ‘고구려 보루’들까지 고고학이 아니고서는 풀 수 없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밝혀냈는데 이 모든 것이 선학들이 어렵게 쌓아놓은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여 풍납토성에 대한 글을 읽으면 문화재와 땅값이라는 공존할 수 없는 2가지 현안에 대해서 잘 알 수가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문화재 신고에 따른 보상이 적다고 남대문을 홀랑 태워먹은 사건이나 큰 빚을 갚기 위해 바다 속에서 잠든 고려청자를 몰래 숨겨놨다가 들킨 잠수부의 사건 등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필자가 보기에 풍납토성만큼 큰 문제가 있었던 유적은 없었으며, 앞으로 풍납토성 내부가 사적지 등으로 보존되기까지는 해결해야만 부분들이 너무나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역시 오늘날 한국 고고학계가 떠안고 있는 문제점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더불어 앞으로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나 이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도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생생한 현장 사진과 진실한 저자의 독백

이 점을 필자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하는데, 여느 책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고고학 관련 서적들을 보면 도면이나 도판이 많이 실려 있기는 하다. 하지만 유적이나 유물의 실측도면, 수습한 후 복원이 끝나 완벽한 형태로 찍힌 사진들보다는 당시 현장을 어떻게 발굴했고, 어떤 이들이 그 안에서 꿈을 키웠고,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 등 ‘있는 그대로의 고고학’을 소개한 것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발굴현장이나 지도위원회 전경을 찍은 사진이나 유물이 출토된 당시의 모습을 찍은 사진 등은 고고학에 대한 상상(인디애나 존스 같은)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좋은 유희거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밖에 김원룡 선생님의 유지를 이어받아 구석기 고고학을 전공한 배기동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실은 것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실제 고고학을 전공하면서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끼리 부부의 연을 맺은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사실적인, 그러면서도 고고학을 전공하지 않으면 잘 모르는 에피소드를 소개한 것이 좋았던 것 같다. 고고학자들 중에는 인디애나 존스 같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려주니 말이다. 또한 무령왕릉 발굴에 대한 저자의 독백과 후회를 보고 있노라면 고고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유적, 유물을 대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다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유적 발굴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던 당시 고고학계의 가슴 아픈 현실이 이해되기도 했다.

결론

대략 전술한 점들 때문에 이 책은 중도를 잘 지킨 최고의 고고학 개설서라고 필자는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필자가 고고학 관련된 책을 전부 읽은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책들을 읽어본 결과, 이 책과 같은 책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 책이 나온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책 수준의 책은 없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고고학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딱딱한 학술서적보다는 이 책을 먼저 읽으라고 권하곤 하다. 굳이 고고학이라고 선을 그을 필요도 없겠다. 단순히 어떤 책에 무슨 기록이 있고,『삼국사기』가 어쩌고 『삼국유사』가 어쩌고 하는 것보다는 이 책의 생생한 기록들을 읽는 것이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데 더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지만 이 책 역시 사람이 쓴 것이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수많은 생각을 하는 인간인지라 이 책이 장점만 가진 책은 아니라는 말도 해 두고 싶다. 필자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고고학계의 대원로에게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지만 필자가 보기에 틀렸다고 생각하는 부분과, 필자가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어 여기에 간단하게 소개하고 서평을 마치도록 하겠다.

저자는 고구려에서 10월이 되면 나무로 다듬은 남근을 신좌(申坐) 위에 두고 제사를 지냈다고 했는데(p.18), 이는 나름 고구려사를 공부한 필자가 보기에 잘못된 해석임에 분명했다.『위서(魏書)』와『북사(北史)』열전에는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나라의 큰 모임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구당서(舊唐書)』열전을 보면 제사를 지내는 장소가 수신(襚神)이라고 하는 큰 굴이라는 기록이 추가되어 있다. 그밖에『주서(周書)』열전을 보면 나라에 신을 모신 곳이 2곳 있는데, 하나는 나무를 새겨 부여신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시조신 혹은 등고신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삼국사기』잡지에는 이 내용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저자는 아마 2곳의 신묘에 마련된 나무로 만든 부여신, 고등신 등을 남근으로 해석하는 듯 했지만『삼국사기』에 분명히 적고 있듯이 그것 중 하나는 부인의 형상을 한 부여신, 즉 하백의 딸 유화이며 나머지 하나는 국가시조인 주몽의 모습을 한 고등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내용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구의동보루에 대한 내용 중에서는 구의동보루가 백제군의 기습에 의해 손 쓸 겨를도 없이 불에 타 전멸했다고 하면서, 아차산 보루 고구려부대는 구의동의 비보를 접하고 철수하기 시작했다고 적고 있다(p.361). 과연 그럴까? 양자는 2시간 정도 거리 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만약 구의동보루가 적의 기습에 의해 전멸한 것이라면, 아차산보루에서는 이를 어떻게 알았을까? 지금처럼 핸드폰이나 무전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2시간 만에 100~150여명이 주둔하는 군사시설이 토기 약간을 제외하고 전부 소개되는 것도 무리가 있고 말이다. 필자는 구의동보루에서 1천점이 넘는 철촉이 발견된 점, 내부에서 찰갑편 하나 발견되지 않은 점, 아차산보루의 단계적 철수가 가능한 점을 근거로 구의동보루의 주둔 병력이 전멸하지 않고 오히려 보루를 버린 채 전략적 후퇴를 했다고 생각한다. 뭐 이 부분은 연구자마다 개인적인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 밖에 최신 연구 성과가 반영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것은 매일매일 신 자료가 나오는 고고학이라는 학문의 성격상 어쩔 수 없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미 은퇴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추후 2005년 이후의 고고자료를 이처럼 정리해서 한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이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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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9-08-27 0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분명히 읽은 것 같은데 별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대충 봤었나 봐요. 열정적인 리뷰를 읽으니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麗輝 2009-08-27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열정적인 리뷰라. 암튼 시간나면 한번 다시 읽어보세요. ^^
 
8, 9, 10 - 아르네 벨스토르프 작품집, 청년사 작가주의 03 청년사 작가주의 3
아르네 벨스토르프 지음, 윤혜정 옮김 / 청년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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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속도로 휴게소를 잠깐 들렸다가 책을 싸게 파는 코너에 들려서 구입한 것이다. 책을 한번 주욱 훓어봤더니 간단한 내용이 들어있는 만화책 같아서 구입했는데 뭔지는 모르지만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올해의 신인상'까지 받았다니 왠지 재밌을 것만 같았다. 이 책의 작가인 아르네 벨스토르프는 함부르크 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고, 다양한 단편 만화와 일러스트를 출간했다고 한다. 일러스트 작가야 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니깐 크게 신경을 안 썼는데, 뭣 때문에 상까지 받았을까~하는 마음에 책장을 한장씩 살펴봤다.

이 책은 작가의 첫 만화 단행본인데...책의 제목부터가『8, 9, 10(acht, neun, zehn)』으로 이상했다. 8, 9, 10?? 무슨 뜻이지? 그래서 한번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당연히 어떠한 리뷰나 코멘트가 없었다. 그리고 인터넷 서점을 찾아가도 다음과 같은 내용만 정리되어 있을 뿐이었다.  

- 주인공 크리스토프는 이번 학기 낙제를 했다. 부모님은 이혼했으며, 마음에 드는 여자 친구와도 잘 풀리지 않는다. 마치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버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처럼 무료하고, 지치고, 불만이 쌓여 간다. 하지만 크리스토프는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대신, 무심한 듯 보이려고 가면을 쓰듯 얼굴에서 표정을 거둔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된 아르네 벨스트로프는 간결한 연출과 흑백의 톤으로 크리스토프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나간다. -

이게 뭐야?? 알고보니 책 뒷표지에 적혀져 있는 내용을 그대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었다. 원래 왠만한 책들은 기자가 쓰든, 출판사에서 리뷰를 남기든 그 책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인터넷 서점 등에 소개하는 것이 마땅한데 이 책은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아마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하지도 못 했고, 그다지 출판사에서 광고를 적극적으로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하긴 이런 류의 책은 뭔가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할만한 내용이 없는 경우, 비주류 도서라고 해도 무방할만큼 잘 안 읽는 분야이긴 했다. 일단 책에 대한 무미건조한(?) 소개글에 의하면, 이 책의 작가는 인생의 낙오자(?)와도 같은 주인공의 삶을 무덤덤한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한 일상을 소개함으로써 사회에 대한 어떤 비판적인 메세지를 내비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암튼 주인장은 이 책이 무슨 내용을 갖추고 있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 한채 책장을 한장씩 한장씩 펼쳐봤다.

일단 이 책의 구성은 8, 9, 10이라는 약 90쪽 가까이 되는 본문 내용 말고도 여러가지 단편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 단편들은 이 책의 프롤로그 · 에필로그 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작가의 개인적인 사상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먼저 '무제_내가 만화를 사랑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작가는 무한한 상상력의 나래를 펼 수 있는 만화를 좋아하는 한 아이를 등장시킨다. 그는 무료하게 학교에서 일과를 보내고 반복되는 지루한 삶을 사는 것 같다. 그러면서 저녁에는 재빠르게 돌아와 만화책을 읽는다. 아마 작가에게 있어서 만화는 일상을 탈피할 수 있는 삶의 도구이면서 그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길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뒤이어 등장하는 '눈'을 보면 작가의 성격이랄까? 그런 것을 내비치는 것 같았다. 작가는 눈밭에서 눈싸움을 하는 연인을 등장시키고 있다. 남자는 약간 이기적이면서도 여자를 잘 배려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과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여자가 왜 화가 났는지를 모르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작가 본인이 그러한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이 2편의 단편을 보면서 '광수생각'이 떠올랐다. 다만 둘의 차이점을 고르자면 광수생각에 비해 이 작가는 텍스트를 거의 넣지 않아 대부분을 이처럼 상상과 추론에 맡기고 있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본문을 잠깐 언급하자면...그야말로 크리스토프라는 학생의 삶을 무덤덤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편의 드라마라고 말하기도 뭐한 너무나도 일상적인 한 아이의 삶을 말이다. 그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어머니와 둘이서 살아가고 있었다. 크리스토프는 가족의 불화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낙제를 했고, 무료한 삶에 빛을 제공한 여자친구 미리암과의 만남으로 근근히 생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모든 일에 소극적이며, 별 관심을 가지지 못 하고 있다. 미리암과의 만남 속에서 그는 키스나 섹스와 같은 스킨쉽을 통해 자신의 불만이나 생각을 분출하려고 하는 듯 하지만 그것 뿐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하고 정이 들기 위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고, 크리스토프는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온다. 가정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그는 그렇게 본래의 삶으로 돌아온다. 제목인 8, 9, 10은 어쩌면 그저 그렇게 시간이 흐르듯이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삶을 사는 주인공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크리스토프의 삶이 유럽(더 세부적으로는 독일)의 일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대변한 것인지, 어떤 건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가는 불행한 한 아이의 삶을 잘 그려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밖에도 몇편의 단편들이 책 뒷부분에 실려져 있는데 주인장이 이 책을 보면서 놀란 것은 이 책에 정말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사실이었다. 다양한 캐릭터는 서로 다른 그림체로 그려져 있으며, 서로 다른 분위기를 내고 있어 마치 여러 명의 작가가 한 책에 각자 자신의 작품을 실은 것과 같은 느낌을 들게 할 정도였다. 그리고 장르도 굉장히 다양한데, 드라마나 코믹적인 요소는 물론 약간 몽환적인 분위기의 작품까지 작품의 범위가 굉장히 폭 넓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서양인(작가)과 동양인(주인장)이라는 문화적 차이점 때문에 이 책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을 수도 있다(결국 이 작가가 신인상을 왜 탔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 그렇기 때문에 2번 정도 책을 봤음에도 불구하고(200쪽이 조금 안 되는 분량이지만 만화이기 때문에 2번을 읽어도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는다)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작품들이 있었다. 물론 주인장은 제대로 이해했나~싶었지만 분명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이해한 작품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작품 속에 텍스트가 별로 없다는 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이건 작가의 개인적 성향이니 어쩔 수 없는 도리일 것이다.

암튼 일반적인 만화와는 상당히 다른 작품을 보면서 나름 철학적(?)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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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의 역사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
조르주 장 지음, 이종인 옮김 / 시공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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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권을 읽고 서평을 쓴다. 뭐 늘 그렇듯이 서평이라고 해봤자 대단한 것은 아니고 단순히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정리하는 차원이지만 한권, 두권 쓰다보니 어느새 약간의 의무감(?)을 동반한 취미 생활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전에는 그냥 그때 그때 읽은 책, 혹은 누구의 추천을 받아서 읽은 책, 공부하면서 읽은 책 등을 무작위로 골라 서평을 썼는데 어느날 갑자기 서평을 시리즈로 나오는 책에 따라 주욱 정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예전에도 시리즈로 나온 책의 서평을 적어본 적은 있지만, 앞으로 계속 출간될 책의 서평을 그에 맞춰 주욱 정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그것도 나름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얼마 전 예비군 훈련을 가면서 부터이다. 2박 3일 예비군 훈련을 하는 동안 비가 많이 왔었는데, 그때 군복바지 건빵주머니에 시공 디스커버리 1~2권씩 넣어두고 읽다보니 꽤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물론 이 시리즈는 예전부터 분량이 작으면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주인장이 즐겨봤던 책인데, 예비군 훈련을 받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한번 꺼내 읽어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짬짬히 시간을 내서 1권부터 주욱 읽어보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안 읽어본 1권을 구입해서 이렇게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이다.

1권은 제목 그대로 문자의 역사, 즉 사람이 사용하는 문자가 어떻게 생겨났고, 인류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현재 어떤 형태인지를 서술하고 있었다. 책의 첫장을 펼치니 딱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있었다. '사건을 문자로 기록하는 사람은 왕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다.' 과연 그럴까? 하긴 조선시대 양반들을 생각하면 그렇긴 했다. 하지만 문자가 없이도 세계를 정복했던 칭기즈칸과 몽골의 기병들이 있었고, 문자가 없이도 신석기시대 ·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국가를 형성하고 대규모 전쟁을 수행하질 않았던가? 가까운 한국 고대사만 살펴봐도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글자를 아는 식자(識者)가 왕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다는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최고 군통수권자인 왕의 자질을 웅대한 기상과 당당한 체격, 뛰어난 군지휘력 등으로 평가하지 않았는가?

어쨌든 그냥 계속 읽어나갔다. 저자는 14세기 중엽 프랑스의 성직자이자 궁신인 장 프루아사르를 언급했다. 그는 푸아티에 전투로부터 시작되는 그 시대의 전사(戰史)를 쓰기로 마음먹었고, 영국의 귀족과 전투에서 포로가 된 프랑스 기사들을 찾아다니면서 기록을 수집해『프랑스, 영국, 스코틀랜드, 스페인, 브리타니, 그리고 플랑드르의 연대기』라는 책을 썼던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자가 남긴 역사에 길이 남기고 싶은 사실들. 그것을 문자로 남김으로써 우리는 그 시대의 역사에 대해 보다 생생히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순신이 남긴『난중일기』나 유성룡이 남긴『징비록』같은 기록들이 남아있어 전쟁에 대해 선조들이 남긴 기록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과연 이러한 문자 생활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어째서 특정 시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을까?

책의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저자는 인류가 전해오는 이야기를 보존하기 위해 문자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보다 더 세속적인 이유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물론 전해오는 이야기를 보존하기 위함도 있지만, 인류는 문자를 만들어서 농축산물의 수확량을 기록하거나 신전의 종교 공동체의 구성원이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를 기록했으며, 역사적 사건을 보존하기 위해 특정 사건에 대해 연대기적 성격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면서 법전과 과학서, 문학작품들이 문서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문자체계를 통해 각각의 기록들을 남겼던 것이다. 모두들 알다시피 가장 최초의 인류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흥하게 된다. 그리고 문자체계 역시 이 곳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였으며, 얼마 안 있어 중국과 이집트 등지에서도 독자적인 문자체계를 갖추게 된다. 그러면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권력자가 등장하게 된다.

『총 · 균 ·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문자가 집약적 농경을 실행하여 잉여 생산물이 많았으며, 인구의 숫자가 많아 다른 지역보다 정치적 집단으로 성장할 여지가 많은 곳에서 빨리 생겨났다고 말한다. 이는 글 써서 먹고 사는 사람들을 먹여 살릴 정도의 경제 구조가 갖춰져 있다는 의미가 되며, 그렇기에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중국 등지에서는 글 공부로 먹고 사는 소수의 사람들이 권력의 정점에 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남자아이의 귀는 등에 달려 있다. 등을 때리면 말을 잘 듣는다.'는 격언이 있었던 것처럼 어릴때부터 글공부를 시키기 위해 혹독하게 다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집트에서는 왕이 자기를 신이라 생각하여 쓰기, 읽기, 산수 등을 배우려 하지 않았을 때 필경사들의 위력이 더욱더 강해졌다고 적고 있다. 세계사 어디에서나 등장하는 허수아비 왕에 대한 내용 같았다.

덧붙여 저자는 중국의 문자체계를 언급하면서 B.C 2,000년 경에 만들어진 문자가 아직까지 큰 변화없이 계속 쓰인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적고 있다. 사실 그렇다. 서양에서는 알파벳이라고 하는 아직 획기적인 문자체계가 각지로 뻗어나가면서 크레타 선문자, 이집트 상형문자와 신관문자,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 등이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된 것에 비해 중국에서 뻗어나간 한자는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지로 뻗어나가 오늘날까지 쓰이니 말이다. 저자는 한자에 아직도 모든 문자의 첫걸음이자 중요요소인 그림문자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지적했으며(日, 山, 木, 田 등은 모두 그림문자라고 해도 무방한 글자들이다), 정교한 원칙을 따르는만큼 굉장히 시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했다. 가령 '용(龍)'자에 '귀(耳)'자를 붙이면 '귀머거리 농(聾)'이 되는데 용의 귀로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을 표현한 것이니 이것이 굉장히 시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또한 반듯한 네모꼴을 유지하며 사전에 정한 필순에 따라 글을 쓰기 때문에 시각적 효과가 뛰어난 아라비아 문자처럼 장식성이 굉장히 강하다는 것도 지적했다. 여담이지만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한글의 네모난 규격성은 중국의 한자에서 따온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저자는 알파벳의 탄생을 문자의 역사에 있어 혁명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알파벳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언어들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쓰이니 말이다. 물론 알파벳의 등장으로 인해 사라진 다른 어려운(?) 문자들한테는 안 됐지만 말이다. 암튼 이 부분에서 주인장이 놀랐던 것은 29자로 이뤄진 아라비아 알파벳이 굉장히 아름답고 장식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저자는 아라비아 서체의 진정한 장점으로 '무궁무진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알라와 마호메트의 얼굴을 그리지 못 하게 한 이슬람교 덕분에 아라비아 문자는 모스크나 기념비를 장식하는 주된 요소가 되었고, 아라비아 서예 그 자체가 뛰어난 예술품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와 문자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는 동양에서도 그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군주나 조상의 이름과 똑같은 한자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자가 아라비아 문자처럼 장식성이 강한 글자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피휘(避諱) 역시 특정 문화와 문자와의 밀접한 관계를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중세 유럽으로 시 · 공간을 바꾼다. 중간에 저자는 문자의 출현시기를 지도로 표현했는데 B.C 600년 그리스인들과 에트루리아인들이 로마에 정착하여 공회당의 '검은 돌'에 라틴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중세가 될 때까지 새로운 문자의 출현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즉, B.C 3,500~2,500년 사이에 선진적인 몇몇 지역에서 문자가 발생하기 시작하여 B.C 1,000~700년 무렵 페니키아 알파벳이 각지로 퍼져나가는 등 혁신적인 변화가 이뤄진 다음, 라틴어의 등장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혁신적인 문자의 변화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페니키아 알파벳에서 기원한 여러 알파벳들이 사용하기 편하고, 발전속도나 전파속도가 빠른 실용적인 문자체계였음을 반증하는 사실일 것이다.

이후 중세시대에는 로마에서 기원한 라틴어가 여러 필경사들에 의해 쓰이게 되는데, 대략 1,000년간 수도사들이 필경기술을 독점하였다. 당시 유럽에서 글을 쓸 줄 아는 세속인은 거의 없었으며, 심지어는 서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였던 샤를마뉴 역시 문맹이어서 모든 결재 문서에 십자표시만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들 수도사들은 고대 문명국가에서 활약한 필경사들과는 다른 존재였다. 앞선 시대의 필경사들이 혹독하게 훈련받아 국가 통치수단의 하나로 활약하면서 권력의 정점에 섰던 것과 달리, 중세 유럽의 훈련받은 수도사들은 스스로 문장을 만들지도 않았고, 창작작품을 하지도 않았으며 단지 글씨를 베끼기만 했었다. 이는 문자의 수요에 따른 공급에 기인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대신 그들은 서예의 대가로서 아름다운 서체를 많이 만들어냈다고 한다. 즉, 앞선 시대와 달리 문자가 권력의 한 도구가 아닌 상품가치가 있는 발명품으로서 활용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수도원의 필경사들은 예술가가 되었고, 그들의 작품은 걸작으로 취급되었다. 심지어 12~13세기가 되면 대학교 주변에 수많은 책들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을 위한 필경사들이 더 많이 필요해졌고, 길드와 협동조합이 생길 정도였으니 이들이야말로 제대로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글을 아는 관리와 달리 정말 순수하게(?) 글씨만 주구장창 베껴쓰고 돈을 벌었으니 말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니 한국사도 대략 이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조선때부터 중국과 교류하면서 한자를 사용했을 것이라 추정되는데 이는 B.C 1세기 창원 다호리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유물을 통해 증명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의 한자는 실용적인 목적이 강했으리라. 하지만 고대 삼국시대가 되면 문자(한자)는 역사 서술, 법전, 약학서, 문학작품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면서 이전 시대에 비해 한자를 활용하는 사람의 숫자가 많이 늘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자는 일반인들이 배우기에는 어려운 문자체계였으며, 이 당시의 필경사들은 권력의 정점에까지 서지는 못 했지만 권력 통치의 일부분을 담당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동시대 중국에서 문자 사용을 기준으로 관리를 선별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렇기에 동시대 중국에서는 여러가지 서체가 만들어져 쓰였으며, 명필(名筆)이 쓴 글자 몇자는 큰 상품가치가 있는 물품으로 취급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은 이후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가 되면 심화되기에 이른다.

여기까지 읽으니 어디나 문자의 역사는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오래전부터 문자를 사용해온 경험과 기억이 있는 지역에서의 이야기다. 저자는 철저히 그런 지역들(소위 4대 문명이라고 불렸던 4개 문명권) 위주로 언급하고 있다. 아무래도 그 지역들에서 이른 시기부터 문자를 사용해온 역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문자가 없다고 해서 그 지역이 낙후되었거나 문화적으로 후진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만, 아무리 위대한 역사를 지닌 지역이라 해도 그 지역에 대한 역사나 관련 기록이 문자로 남아있지 않으면 오늘날 별로 쓸모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구려가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결국은 당과의 전쟁에서 패했고, 관련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그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페르시아가 그리스와 대결하여 국제적으로 정치적 우위에 섰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리스측 기록을 통해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 등의 역사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것도 꼽을 수 있겠다. 그렇기에 오늘날 문자는 그 민족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날 전세계의 지식은 70% 정도가 영어로 표현되기에 전세계 사람들은 영어를 공부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전세계 지식의 70%가 이집트 상형문자로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영어를 그렇게 공부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저자는 인쇄술의 보급으로 인해 문자는 더 이상 필경사들의 밥벌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과 밀접하게 결합하게 되었다고 서술한다. 초창기 문자는 중앙정부의 권력장악에 큰 도움을 주었으나 알파벳과 같은 문자체계가 각지로 전파되면서 각국의 문자해독률이 높아졌고, 문자는 더 이상 중앙정부의 권력신장을 촉진시키는데 도움을 주지 못 했기 때문이다. 투표를 할 수 있는 인구가 늘어났고, 결국 국민이 정부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된 것도 모두 문자의 발달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문자를 해독할 줄 알면서 입으로만 전해지던 지식이 눈에 보이게 되었고, 인간의 지능과 인식능력 등 잠재적 가능성이 문자 체계 속에서 빛을 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자는 인쇄술이 개발되면서 대량으로 원고를 생산함으로써 한층 더 발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봤을때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목판 · 금속인쇄술을 발달시킨 우리 역사상 어째서 많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갖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쇄술이 대중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발달했는지를 살펴보면 그것은 또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문화가 세계적으로 볼품없거나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책의 뒷부분에는 역시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도 인위적인 한글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는데, 보면 볼수록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 이하 집현전 학자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소리가 나는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자형을 만들고 초성, 중성, 종성으로 이뤄진 구조를 갖춘 것을 보면 얼마나 대단한가 절로 감탄하게 된다. 비록 한자를 비롯해서 주변 국가의 글자들에서 모티프를 따오기는 했지만 그 결과물은 철저히 인공적인, 기존의 문자체계와 전혀 새로운 문자가 아닌가. 어렵게 만든 한글이 당시 기득권층의 한자 사랑(?)에 힘입어 사라지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암튼 얼마 안 되는 분량이지만 한장 한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다. 물론 지면상 많은 내용을 싣지 못 했기에 내용의 중심이 유럽과 중국 등에 치우쳐졌겠지만(상대적으로 인도나 마야, 잉카 등에 대한 서술은 거의 없었다) 그런 부분은 확실히 아쉬웠다. 또한 문자의 역사라고 해서 반드시 문자가 있었던 지역에 대해서만 서술할 이유는 없으며, 문자가 없는 지역과의 비교 · 분석도 있었으면 좋았을 껄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에 반해 중세 유럽의 수도사, 필경사들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한 부분은 눈여겨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주인장은 중세 유럽에서는 기존에 만들어진 단어를 그냥 사용했을 뿐이며, 동양처럼 과거제도를 통한 공부만 하는 범생이들을 관리로 임용하는 제도도 없었던 바 문자의 발달상 별로 볼게 없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종교적인 이유에서든지, 실용적인 이유에서든지 문자 활용도가 발전했다기보다는 서체 그 자체가 발전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떤 것이든지 필요와 이유에 따라 서로 다른 발전 과정을 거치는가 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자가 발명됨으로써 이렇게 문자에 대한 연구서적이 나오는 것이고, 한글이 발명됨으로써 이렇게 주인장이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쓸 수 있는 것이니 문자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새삼 느끼면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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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100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 삼국통일을 이뤄낸 가장 작았던 나라
김용만 지음, 백명식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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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2006년 <소년한국일보>에 ‘신라 1000년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칼럼을 엮은 것으로 주인장은 이미 개개의 내용들을 살펴본 적이 있다. 이 대목에서 혹자는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김용만은 고구려사 전공자인데 무슨 신라사?' 그렇다. 저자는 고구려 문명사 전공자이다. 기존에 출판된 역사학 관련 서적들을 보면 크게 '전공자'와 '비전공자'가 쓴 책들로 나눌 수 있겠다. 물론 여기에서 비전공자라 함은 비슷한 학문에 몸담고 있지만 세부 전공이 다른 사람을 지칭할 수도 있고, 아예 역사학 관련된 전공과 상관이 없는 사람(소설가, 시인, 사진사 등)을 지칭할 수도 있다. 어쨌든, 주인장은 비전공자가 쓴 책이 크게 장점과 단점 1개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점 - 다른 학문, 다른 분야의 시각(새롭고 참신하고 틀에 박히지 않은)에서 기존 해석과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단점 - 기존 연구성과를 두루 섭렵하지 않아 괴리감이 들고 허황되거나 깊이가 얕은 지식을 나열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봤을때 이 책은 당연히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책이다. 저자는 고구려사 전공자이지만 삼국시대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 2국과 경쟁 · 타협하면서 성장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다른 나라의 역사도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 저자의 신라사에 대한 공부와 노력이 <소년한국일보>에 연재된 칼럼이었으며, 이번에 나온 이 책은 그 노력의 결실이 어느 정도 맺어진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이 책은 신라사 전공자가 바라본 신라사라기보다는, 고구려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공부한 신라사라는 점에서 좀 독특하다 할 수 있다. 그래서 기존의 신라사 전공자가 바라본 시각과 다른 내용도 들어가 있으며, 비전공자인 저자가 바라본 시각이다보니 역시 비전공자인(그럴 수 밖에 없는) 수많은 독자들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놓기도 했다. 신라사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거나, 신라사에 대한 정교한 자료를 얻기 위해서라면 이 책은 분명히 모자라다. 하지만 이 책이 아동서적이고 또한 신라 통사를 개략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오히려 신라사 전공자가 쓴 아동서적(그런 책이 있는지 모르겠지만)보다도 더 독자에게 쉽고 유익하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서론이 조금 길었는데 이제부터 책에 대해 몇마디 적어보고자 한다. 

우선 책을 읽기 전에 표지부터 맘에 들었다. 먼저 나온 '고구려 700년 …'은 표지가 조금 딱딱하다고 해야 하나, 멋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이 책은 그런 느낌 없이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이어 책장을 하나씩 넘겨보자. 저자는 본인의 신라사에 대한 생각을 첫머리에 적어놓았다. 고구려사를 공부하다가 신라사를 바라보았고, 원망스럽고 밉기도 한 신라사를 어떻게 공부하고 생각하게 됐는지 말이다. 아마 신라사 전공자가 이 책을 썼다면 이런 얘기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은 한국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그런 생각이기에 독자는 저자의 말에 충분히 공감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막말로 한국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중에 어느 나라가 가장 좋아요? 라고 물었을때 과연 몇명이나 신라를 꼽을까? 저자는 첫머리에 자신의 생각을 주욱 적으면서 앞으로 책을 읽어나가는 독자와 같이 신라사에 대해 알아보고, 같이 호흡하자는 뜻을 내비친다. 문체도 이야기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아마 이 책을 읽을 어린이들은 저자가 마치 이야기책을 읽어주듯이 이 책을 읽을 것이다. 

일단 책의 목차가 눈에 확 들어온다. 초기 신라-중기 신라-통일 신라라고 하는 시대순으로 구분한 목차가 말이다. 그리고 세부 목차를 살펴보면 초기 신라는 가야, 일본, 고구려 등 신라보다 힘이 강한 나라들과 관련된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중기 신라때에는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 문무왕 등 우리가 쉽게 기억하고 알고 있는 신라 왕들이 등장하며 통일전쟁을 준비하는 신라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며 통일 신라 시대가 되면 한반도의 단일 정권으로서 번성을 누린 신라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 밖에 신라의 과학 기술, 장보고, 문장가, 신라의 귀족사회, 이슬람과 교류한 신라 등 신라 문화사 전반에 대한 내용을 따로 장을 마련하여 적어두고 있어 신라사에 대해 시대순으로 공부함은 물론, 포괄적으로 이것저것 빠짐없이 공부할 수 있게끔 해 놓았다. 

전체적으로 내용면에서는 일반적인 신라사에 대한 서술이 많아서 딱히 새로울 만한 것은 없다. 오히려 1,000년이나 되는 긴 신라의 역사를 너무 압축시켜 놓았다는 생각에 조금 부족함 감이 없지 않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몇몇 임팩트있는 내용들때문에 전체적으로 책의 흐름을 긴장감있게 구성하고 있어 내용이 길지 않은 것이 낫다 싶기도 했다. 

먼저 주인장이 눈여겨 본 부분은 가야에 대한 내용이었다(24~28쪽). 신라 초기 최대 라이벌이었던 가야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는데, 신라가 건국 후 성장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가야사 통사나 가야 문화사에 대한 서적이 많지 않은데, 이는 비슷한 지역에서 성장했던 신라에 비한다면 더욱 초라하다. 현재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신라사 관련 연구성과가 가장 많은 것에 비한다면 가야사는 아직 걸음마 수준일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가야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별로 없고, 심지어 학교에서 국사시간에도 제대로 배우질 못 하고 있다. 그런 어린이들이 아마 이 내용을 보면 이제 부모님이나 주변의 어른들, 선생님들에게 질문 공세를 퍼붓지 않을까 싶다. 가야가 얼마나 세길래 신라가 꼼짝 못 하고 걔때문에 발전을 못 할 정도냐고 말이다. 가야보다 신라가 어떻게 더 강해졌고, 훗날 가야는 왜 더 이상 발전하지 못 해 크게 발전한 신라에게 복속했는지~에 대한 내용도 추가적으로 더 실었으면 좋았을껄~하는 생각이 들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되는 부분이었다.

그 다음 눈여겨 본 부분은 세계와 교류한 신라(34~38쪽)에 대한 내용이었다. 여기에서 저자는 신라가 북방 유목민의 나라라고 하는 일부 학계의 주장을 비판하고 있다. 아무리 무덤양식이 비슷하고, 성씨(김씨)의 기원이 비슷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외부 세력이 신라를 세웠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 한다고 말이다. 신라뿐만 아니라 가야, 고구려, 백제 역시 서역이나 북방 민족과 교류했다는 얘기도 언급하면서 어디까지나 신라가 토착세력+외부세력이 세운 나라임을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을 독자층이 이런 학계의 여러 견해에 대해 다양하게 알고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만약 그렇다면 이 부분의 내용이 충분히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할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그 밖에 경주 남산에 대해 소개한 부분도 좋았다(126~129쪽). 경주 남산을 한번 갔다 온 사람들은 왜 신라가 '불국토'라 불리는지 알 것 같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그만큼 경주 남산에는 수많은 문화유적이 있는데 저자는 그것들이 모두 672점이라고 적고 있다. 아마 경주를 여행간 사람은 많아도 이 남산을 둘러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재미도 없고, 그닥 유명하지도 않아서 경주 여행 코스에 들어있는 경우를 별로 못 봤는데, 아마 경주 남산이 세계문화유산인 것도 모를 것이다. 그렇기에 이 부분은 독자층 뿐만 아니라 그 부모님에게도 좋은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주인장이 이 책의 白眉로 꼽는 부분은 바로 '세계가 놀란 신라의 과학 기술' 부분이다(179~183쪽). 저자는 첨성대, 월성 안의 시간을 알려주는 누각, 누각전이라는 관청과 누각박사, 사천대 박사,『구장산술』이라는 수학 교과서, 의학이라는 국립의과대학과 의학박사,『신라법사방』과『신라법사비밀방』이라는 의학책, 약전이라는 관청,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다라니경, 백추지라는 신라산 명종이, 에밀레종, 경주 안압지의 폭포 등 신라의 뛰어난 과학 기술 관련된 내용들을 주욱 나열하고 있다. 이 내용들은 신라사를 공부하는 전공자에게도 좋은 아이템을 제공한다고 생각하는데, 하물며 어린이들은 '우와~' 하면서 읽을 것이다. 기존 신라사 관련 서적이나 아동서적 등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만 봐도 저자가 얼마나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신라사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마무리를 짓는다. 신라사의 가치가 무엇인지 말이다. 초기에는 가야보다 약했지만 곧 가야보다 발전하여 가야를 정벌하고, 백제나 고구려보다 약했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는 신라라는 사실을 분명히 각인시켜주고 있다. 삼국통일을 이뤘다는 것만으로도 신라사는 큰 의미가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영토의 크기가 나라의 성공과 실패를 말해주는 척도가 아니며, 신라에도 대단히 뛰어나고 화려한 문화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앞서 신라의 과학 기술을 소개한 부분에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라인들의 대외활동, 국가적 위기를 잘 넘긴 강한 생명력 등을 우리는 본받아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끝을 맺고 있는데, 아마 이 책을 다 읽은 어린이들은 신라사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한번 읽어보기를 꼭 권하는 바이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상관할 것 없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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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의 역사와 미래를 말한다
김용운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저자와 제목을 딱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용운과 진순신이 대담 형식으로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역사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언급한 책이다. 이 책이 나온지 꽤 됐는데도 아직껏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책인 것 같다. 이 책은『네티즌과 함께 풀어보는 한국고대사의 수수께끼』,『삼국사기 사서 비교를 통한 삼한사의 재조명』,『재미있는 영산강유역 고대사』를 집필한 김상 선생님의 책들을 보다가 김상 선생님이 인용하신 참고문헌에 있길래 찾아서 읽게 되었다.  

이 책 128쪽에도 나와있지만 진순신 선생님의 얘기에 의하면 '일본에서 가져간 국서가 중국 쪽에서 수리되게 하기 위해서는 '신(臣)'이라고 써야 합니다. 중국의 국서에도 그 사실이 명기되어 있지요.' 라고 적혀 있다. 즉,『삼국사기』등에 남아있는 삼국 후기사를 서술한 부분에 나온 중국과의 외교문서(특히 수 · 당)의 신(臣)이라는 호칭이 단순한 외교 관례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598년 영양태왕이 수나라의 대군을 막아냈음에도 불구하고 3개월 뒤 수나라에 보낸 외교 국서에는 '요동분토신원(遼東糞土臣元)'이라는 표현이 분명히 등장한다. '요동 변방에 사는 신하 (고)원은…' 이라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겠는데, 이것이 당시의 수와 고구려간의 국제관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이 한줄의 내용 때문에 이 책이 어떤 책인가~하고 흥미가 생겨서 당장 구입해서 읽어봤다.  

다 읽은 지금의 기분은...음~뭐랄까. 두 사람의 대담을 글로 옮긴 것이지만 분명 그 안에서 말하는 것은 분명한 삼국(한, 중, 일)의 역사였으며, 하나의 주제를 세 나라의 사례를 들어 살펴보기 때문에 굉장히 신선한 시각에서 삼국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 '비교사' 혹은 '비교사적 관점'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삼국의 역사를 전부 전공하기란 어려운 일이며, 당연히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삼국의 역사에 정통한 학자가 일관된 관점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은 기존에 생각치 못 했던 부분, 혹은 기존에 미처 몰랐던 부분이나 기존에 잘못 알고 있던 부분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 책의 두 주인공은 이미 한국과 일본, 중국 등지에서 유명한 역사연구자가 아닌가. 김용운 선생님은 혹시나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겟지만, 한국수학사를 전공한 몇 안 되는 분이며, 한국과 일본의 역사 혹은 문명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온 분이다. 또한 진순신 선생님이야 뭐 주인장의 부연 설명이 필요없는 역사연구자이자 소설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기존 학계의 시각과는 다른 참신한 시각에서 삼국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대담의 주제는 전체적으로 왕조사 중심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큰 목차를 간단히 살펴보면 '제1부 동아시아의 정신을 탐구한다. 제2부 역사에서 지혜를 얻는다. 제3부 동양적 기초로부터 미래를 조명한다. 제4부 한국의 영세중립과 AU가 세계를 구한다.' 인데 보면 알겠지만 삼국의 역사 쟁점이 되는 부분을 언급하기보다는 삼국의 문화, 문화의 근간이 되는 여러 요소들, 각 문화적 요소가 서로 다른 이유 등을 언급하면서 현재와 과거 역사의 관계를 끊임없이 언급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현재까지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었으며, 앞으로 삼국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나름의 방향성도 제시할 수가 있었다. 그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다른 책에서 다루지 못 했던 부분이 아닐까 싶다.  

특히 주인장이 흥미롭게 봤던 부분은 삼국, 아니 동아시아의 문화적 공통성을 언급할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유교'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었다. 그들은 한국의 유교를 '절대화', 일본의 유교를 '교양', 중국의 유교를 '생활'이라고 표현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유교가 각 나라마다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언급했다. '효'를 강조한 한국, '의'를 강조한 중국, '충'을 강조한 일본 등 유교의 영향 혹은 민족성은 각 나라마다 독특한 성질을 나타나게 하였으며, 그러한 민족성에 따라 유교와 같은 종교를 수용하는데 있어 한국은 '정통성', 중국은 '공존', 일본은 '습합'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다. 이 부분이 정말 재미있었던 것 같다. 유교는 오히려 중국에서 생성되어 각지로 파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교적 정통성이라든가, 엄격한 유교적 이론이 강화된 것은 오히려 한국이었다.  

유교라는 것이 아무리 뛰어나고 대단한 학문 혹은 종교성을 지닌 이론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지나면 (고인 물이 썩듯이) 비판이 생기고, 반론이 생기고, 변화를 겪기 마련인데 한국에서는 주자학이 뿌리깊게 내린 뒤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 했다. 명대에 크게 유행해 일본에도 큰 영향을 끼친 양명학도 배척당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이 부분은 마치 마리우스파 기독교가 로마 밖으로 뻗어나갔던 것을 느끼게 했다. 또한 기록을 남기는 일에 있어서 한국은 '명분', 중국은 '다양성', 일본은 '치밀'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도 많이 공감했다. 왜 삼국이 서로 남긴 기록의 성격과 분량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지 말이다. 명분과 정통성을 챙기는 이런 특징 때문에 오히려 후대 사학자들은 선조들의 역사적 기록을 연구하는데 더 힘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특징 때문에 한자의 본토(중국)에서는 이제 사라져버린 정통과 고전적인 모습을 한국이 간직하고 있을테고 말이다.  

두 사람의 대담은 제1부에서 주로 유교를 포함하는 민족성의 근간을 이루는 것들에 대해서 이뤄졌다. 제2부에서는 조금 민감한 사안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일본의 역사 왜곡이 주로 언급이 되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한국은 '정(政)', 중국은 '정(正)', 일본은 '화(和)'라고 한다. 즉, 일본의 경우, 종교를 받아들이는 태도(습합)나 유교를 대하는 태도(교양)에서처럼 좋으면 받아들이고 나쁜 건 빨리 잊어버리자~는 식이란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자신들의 잘못도 이미 지난 일인데 왜 자꾸 들추냐는 식으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정통과 명분을 강조하는 한국인에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일 것이다. 즉, 이는 각국이 서로 다른 민족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본인을 이해한 적은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유연한 태도로 현재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 밖에 일본의 외교관과 역사관 등을 다루었는데 제2부에서 재밌었던 것은 '충(忠)'에 대한 삼국의 태도였다. 한국은 정몽주식 충이라면, 중국은 의의 충이고, 일본의 개의 충이라는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인데, 싫어도 혹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현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일본식이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오늘날 일본의 성문화가 지극히 개방적인 것도 이런 민족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얘기한다. 중국은 거대한 영토에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외래문화나 외래사상을 많이 포용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것을 중국의 전통 안에 녹여내는데 반해 한국은 정통을 고집하고 있다고 말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대국이 되기 위해서 꼭 명심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했다. 

제3부에서는 근대사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 어째서 한국과 중국에 비해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했고, 한국은 심지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는지에 대한 대담이 이뤄졌다. 그러면서 상업의 중요성이 화두에 올랐다. 알다시피 한국은 상공업을 천시했기 때문에 국가 성장에 있어 한계성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일본이나 중국은 일찍부터 상업적인 성공을 이룬 국가였으며, 특히 일본은 서구 사회와 이른 시기부터 접촉하여 근대화에 가장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和'와 직결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해 사회적 변혁을 통해 크게 성장할 수는 있었지만, 그러한 급진적인 변화는 과거 일본의 전통과 단절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그런 부분은 아쉽다는 말을 꺼냈다. 또한 타국을 침입하여 저지른 만행이나 식민지 경영에 대한 죄과에 대해서는 일본인들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제4부에서는 한, 중, 일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는데 각 나라마다 다른 특징을 하나로 묶어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아시아 공동체를 이뤄야만 한다고 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왕조의 척화정책을 답습한 북한의 폐쇄성이 사라져야 한다는 말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또한 삼국은 서로 다른 말과 서로 다른 스타일의 유교정신을 지니고 있지만 동양 공통의 정신 기반인 한자와 유교를 공유하고 있기에 얼마든지 융합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또한 서구사회에서 동양의 유교정신을 주목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일본이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경제적으로 삼국이 노력한다면 아시아 공동체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 두 사람 대담의 마무리였다. 

어떻게 보면 역사책도 아니요, 어떻게 보면 국가 정책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요, 어떻게 보면 삼국의 문명을 비평한 책도 아니다. 굳이 따진다면 '삼국의 문화 및 문화의 근간을 통해 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삼국은 지형도, 기후도 다르며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민족성이 달랐다. 당연히 역사가 진행된 과정 또한 달랐으며, 그 과정에서 서로간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기도 하였다. 하지만 삼국은 거시적인 안목에서 바라본 동아시아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정치체에 해당하며, 역사적으로 수천년간을 교류해온 역사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지금은 국경이 나눠져 있고, 언어와 정치체제도 각각 다르지만 아시아 공동체를 이뤄 다가올 시대의 든든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역사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며, 역사를 통해 배운 교훈을 어떻게 기억하고 적용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안 읽어보신 분들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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