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9, 10 - 아르네 벨스토르프 작품집, 청년사 작가주의 03 청년사 작가주의 3
아르네 벨스토르프 지음, 윤혜정 옮김 / 청년사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고속도로 휴게소를 잠깐 들렸다가 책을 싸게 파는 코너에 들려서 구입한 것이다. 책을 한번 주욱 훓어봤더니 간단한 내용이 들어있는 만화책 같아서 구입했는데 뭔지는 모르지만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올해의 신인상'까지 받았다니 왠지 재밌을 것만 같았다. 이 책의 작가인 아르네 벨스토르프는 함부르크 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고, 다양한 단편 만화와 일러스트를 출간했다고 한다. 일러스트 작가야 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니깐 크게 신경을 안 썼는데, 뭣 때문에 상까지 받았을까~하는 마음에 책장을 한장씩 살펴봤다.

이 책은 작가의 첫 만화 단행본인데...책의 제목부터가『8, 9, 10(acht, neun, zehn)』으로 이상했다. 8, 9, 10?? 무슨 뜻이지? 그래서 한번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당연히 어떠한 리뷰나 코멘트가 없었다. 그리고 인터넷 서점을 찾아가도 다음과 같은 내용만 정리되어 있을 뿐이었다.  

- 주인공 크리스토프는 이번 학기 낙제를 했다. 부모님은 이혼했으며, 마음에 드는 여자 친구와도 잘 풀리지 않는다. 마치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버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처럼 무료하고, 지치고, 불만이 쌓여 간다. 하지만 크리스토프는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대신, 무심한 듯 보이려고 가면을 쓰듯 얼굴에서 표정을 거둔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된 아르네 벨스트로프는 간결한 연출과 흑백의 톤으로 크리스토프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나간다. -

이게 뭐야?? 알고보니 책 뒷표지에 적혀져 있는 내용을 그대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었다. 원래 왠만한 책들은 기자가 쓰든, 출판사에서 리뷰를 남기든 그 책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인터넷 서점 등에 소개하는 것이 마땅한데 이 책은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아마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하지도 못 했고, 그다지 출판사에서 광고를 적극적으로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하긴 이런 류의 책은 뭔가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할만한 내용이 없는 경우, 비주류 도서라고 해도 무방할만큼 잘 안 읽는 분야이긴 했다. 일단 책에 대한 무미건조한(?) 소개글에 의하면, 이 책의 작가는 인생의 낙오자(?)와도 같은 주인공의 삶을 무덤덤한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한 일상을 소개함으로써 사회에 대한 어떤 비판적인 메세지를 내비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암튼 주인장은 이 책이 무슨 내용을 갖추고 있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 한채 책장을 한장씩 한장씩 펼쳐봤다.

일단 이 책의 구성은 8, 9, 10이라는 약 90쪽 가까이 되는 본문 내용 말고도 여러가지 단편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 단편들은 이 책의 프롤로그 · 에필로그 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작가의 개인적인 사상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먼저 '무제_내가 만화를 사랑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작가는 무한한 상상력의 나래를 펼 수 있는 만화를 좋아하는 한 아이를 등장시킨다. 그는 무료하게 학교에서 일과를 보내고 반복되는 지루한 삶을 사는 것 같다. 그러면서 저녁에는 재빠르게 돌아와 만화책을 읽는다. 아마 작가에게 있어서 만화는 일상을 탈피할 수 있는 삶의 도구이면서 그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길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뒤이어 등장하는 '눈'을 보면 작가의 성격이랄까? 그런 것을 내비치는 것 같았다. 작가는 눈밭에서 눈싸움을 하는 연인을 등장시키고 있다. 남자는 약간 이기적이면서도 여자를 잘 배려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과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여자가 왜 화가 났는지를 모르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작가 본인이 그러한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이 2편의 단편을 보면서 '광수생각'이 떠올랐다. 다만 둘의 차이점을 고르자면 광수생각에 비해 이 작가는 텍스트를 거의 넣지 않아 대부분을 이처럼 상상과 추론에 맡기고 있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본문을 잠깐 언급하자면...그야말로 크리스토프라는 학생의 삶을 무덤덤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편의 드라마라고 말하기도 뭐한 너무나도 일상적인 한 아이의 삶을 말이다. 그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어머니와 둘이서 살아가고 있었다. 크리스토프는 가족의 불화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낙제를 했고, 무료한 삶에 빛을 제공한 여자친구 미리암과의 만남으로 근근히 생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모든 일에 소극적이며, 별 관심을 가지지 못 하고 있다. 미리암과의 만남 속에서 그는 키스나 섹스와 같은 스킨쉽을 통해 자신의 불만이나 생각을 분출하려고 하는 듯 하지만 그것 뿐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하고 정이 들기 위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고, 크리스토프는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온다. 가정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그는 그렇게 본래의 삶으로 돌아온다. 제목인 8, 9, 10은 어쩌면 그저 그렇게 시간이 흐르듯이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삶을 사는 주인공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크리스토프의 삶이 유럽(더 세부적으로는 독일)의 일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대변한 것인지, 어떤 건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가는 불행한 한 아이의 삶을 잘 그려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밖에도 몇편의 단편들이 책 뒷부분에 실려져 있는데 주인장이 이 책을 보면서 놀란 것은 이 책에 정말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사실이었다. 다양한 캐릭터는 서로 다른 그림체로 그려져 있으며, 서로 다른 분위기를 내고 있어 마치 여러 명의 작가가 한 책에 각자 자신의 작품을 실은 것과 같은 느낌을 들게 할 정도였다. 그리고 장르도 굉장히 다양한데, 드라마나 코믹적인 요소는 물론 약간 몽환적인 분위기의 작품까지 작품의 범위가 굉장히 폭 넓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서양인(작가)과 동양인(주인장)이라는 문화적 차이점 때문에 이 책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을 수도 있다(결국 이 작가가 신인상을 왜 탔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 그렇기 때문에 2번 정도 책을 봤음에도 불구하고(200쪽이 조금 안 되는 분량이지만 만화이기 때문에 2번을 읽어도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는다)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작품들이 있었다. 물론 주인장은 제대로 이해했나~싶었지만 분명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이해한 작품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작품 속에 텍스트가 별로 없다는 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이건 작가의 개인적 성향이니 어쩔 수 없는 도리일 것이다.

암튼 일반적인 만화와는 상당히 다른 작품을 보면서 나름 철학적(?)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