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인가. 휴가를 다녀온 주인장은 곰곰히 생각해봤다. 트로이와 킹 아더 - 일명 아더왕 - 이라는 2편의 영화가 뜻하는게 과연 무엇일까? 문화 컨텐츠 사업과 연관된 힘이랄까? 우리나라가 갖지 못한 파워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약간은 부럽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었다.
영화 트로이는 유명 배우의 등장과 화려한 볼거리, 탄탄한 줄거리로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보였던 작품이다. 특히 신화적 소재를 현실과 역사의 시대로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많은 호응을 받았었다. 그 유명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와 '오디세이' 에 걸맞는 대적이었는지라, 영화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여담이지만 대부분의 여자 관객들이 주인공인 브래드 피트의 몸매를 보기 위해 이 영화를 봤다는 후문도 있다. 암튼, 이보다 앞서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책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리스-로마 신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 역시 영화 흥행에 한몫 단단히 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아테네 올림픽이라는 행사까지 맞물렸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트로이의 성공이 100% 작품성에 의해서 이뤄진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아킬레스, 헥토르, 오디세우스 등의 영웅들은 물론 제우스, 비너스, 아폴론 등의 여러 신들과 그 계보까지 줄줄 외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그 문화의 진가를 파악하며 우리 문화와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상당히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것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외국의 신기하고 다양한 문화를 접했을 경우, 대부분 맹목적으로 그것을 맹신하고 흠뻑 빠진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단군신화 하나 모르는 사람들이 그리스-로마 신화는 줄줄 꽤고 있으면 뭐한단 말인가? 아무 의미가 없다. 물론 우리 신화나 영웅담 등 화려한 볼거리가 현재 많이 남아있지 않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 - 그것들을 발굴해 내거나 제대로 연구한 자료 하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 그것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고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풍토 역시 심각하다고 본다.
그래서 주인장은 이 문화 컨텐츠의 힘을 부러워하기도 하면서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리스-로마 신화 중 극히 일부분의 사실이 2시간 30분짜리 영화로 개봉되면 전세계 수십, 수백만 관객들이 호기심에서라도 그 신화를 접해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헐리웃은 문화적으로 그리스-로마 문화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것이다. 막강한 문화적 파워,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그 문화의 힘도 달라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그리스에서 만약 트로이같은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하면 이 정도의 흥행을 거뒀을까? 절대 아니다. 주체가 미국 헐리웃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것이 문화의 힘이요, 오늘날 미국 헐리웃이라는 거대 영화 산업체가 갖고 있는 힘이다.
킹 아더 역시 마찬가지다. 유명 배우는 별로 없다고 해도 이 영화 역시 스토리가 탄탄하고 신화 - 그야말로 전설같은 - 를 역사적 사실로 재해석 했다는 것에 큰 가치를 두고 있다. 특히 아더왕과 연관된 북유럽 켈트 신화와 앵글로 색슨의 문화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비주류 문화에 속하는데 이 영화가 개봉됨과 동시에 켈트 신화에 대한 책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주인장이 말하고 싶은 문화 컨텐츠의 힘이다. 미국은 지금 주변의 다양한 문화를 헐리웃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미국의 문화적 파워로 재생시키고 있다.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여서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이런 헐리웃과 미국의 문화적 파워에 대해서 많은 얘기가 있었고 이에 대항(?)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아직까지 그에 대등한 힘을 가진 상대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런 문화적 파워를 미국은 그들의 막강한 전력으로 승화해 보유하고 있다. 그럼 우리는 그런 미국의 전례를 따라갈 수 없는 것인가? 영화부터 시작해 소설, 서적, 만화, 애니메이션, 사극 등등 각종 영상 매체의 힘과 결합한 신화, 전설, 역사의 존재는 일반인들에게 강하게 다가서고 있다. 더 이상 딱딱하고 자세하고 전문적인 학술 서적만이 그들의 존재를 알리는 유일한 도구가 아니다.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우리는 똑같은 대상을 두고도 아주 다르게 접할 수가 있는 것이다.
미국은 300여년의 짧은 역사를 지닌데 반해 뿌리깊은 전통문화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만의 새로운 문화와 역사를 재창조 시켜야만 했다. 막강한 자본력과 국제적 네트워크로 그들은 전세계의 문화 컨텐츠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무서운 속도로 말이다.
'뮬란' 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는 중국 고대 설화를, '백설공주' 에서는 고대 독일의 전설적 고전을, '고지라' 에서는 일본의 전통 괴수 문화를, '007 시리즈' 에서는 영국의 전통적 국제 영향력을, '잔다르크' 에서는 프랑스를, '글레디에이터' 에서는 고대 로마를, '반지의 제왕 시리즈' 에서는 액션-판타지 세계를, '라스트 사무라이' 에서는 전통 일본 사무라이 문화를, '트로이' 에서는 그리스 신화를, '킹 아더' 에서는 북유럽 켈트 신화를...그 방대한 분량의 문화적 파워는 곧 미국 문화의 힘으로 융합, 발전하게 되었고 오늘날의 미국이 세계에 우뚝서게 한 문화적 원동력이 되었다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콜라' 와 '햄버거' '청바지'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 문화가 전세계를 강타하게 된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사실들을 시사한다. 한때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세계 4대 문명이라는 학술적 용어를 만들면서 유럽이야말로 세계 4대 문명의 후손으로서 세계를 지배할만한 정당성을 지녔다는 오만한 주장을 했었다. 그런 주장을 오늘날 미국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다양한 세계의 사상과 정신을 헐리웃 영화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흡수하고 재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헐리웃에서 개봉하는 각종 대작들은 우리들에게도 좋은 모델이 된다.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힘을 길러야만 한다. 오늘날 중국이 무섭게 성장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런 저력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주인장은 이 영화들을 보고 물론 재미있다, 배우들의 연기가 어떻다, 스토리가 어떻다, 볼거리가 풍부하다 등등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일반적인 영화평은 하고 싶지 않다. 이 두 영화를 통해서 그들의 문화력을 느꼈고 그들이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우리나라도 이런 충분한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서 대하사극이라고 분류되는 TV 프로그램을 한번이라도 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역사라고 하는 부분을 'TV 사극' 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전하고 있다. 물론 '무사' 나 '청풍명월' 처럼 영화로도 대중들 앞에 섰지만 그 흥행면이나 대중들에 대한 인지도 면에서 크게 작용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주인장이 단언하건대 우리나라처럼 사극이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또 그 완성도가 높은 나라는 많이 않을 것이다. 중국식 사극이나 역사물을 보면 영화에서는 몰라도, TV에서는 완성도 높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르다. 이미 '다모' 나 '대장금', 그보다 앞서 '왕과 비' '허준' 등 정통 역사물이 국민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적이 많이 있었다.
우리는 대하사극이라는 문화 컨텐츠 하나만큼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럽다는 소리다. 참고로 예전에 미국에서 '아틸라' 라고 하는 훈족에 대한 사극을 만들었던 적이 있는데 미국에서 그 방송을 보면서 참으로 허접하다고 느꼈었다. 어떻게 영화는 그렇게 화려하고 웅장한 스케일로 만들면서 아틸라의 삶이 TV로 옮겨지자 이렇게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또한 조선시대사에만 국한되어 있던 사극이 이제는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또 장길산, 이순신 등 인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처럼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 역시 칭찬받을만한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나라 문화 컨텐츠 사업의 대표적 힘이라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예전에 주인장은 '바람의 검심' 이라는 일본 만화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때 정말 놀랐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힘을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이건 단순히 '드래곤볼' 이나 '북두신권' 등의 만화책이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만화라고 하는 매개체를 통해서 역사와 시대물이라는 장르가 얼마만큼 변모할 수 있는지, 얼마만큼 인기를 누릴 수 있는지, 어느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줬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시 한번 미국의 힘에 놀랐다. 괜히 강대국이 되는게 아니다. 우리나라 문화의 척도는 무엇이며,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한번 되짚어보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