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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1
김진명 지음 / 해냄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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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국 정부의 어떤 공무원도 다른 나라 지도자의 암살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 특별명령 11905

1976년 美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한번,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이 재차 되풀이한 명령이다. 대개의 역사 소설의 추론이 그러하듯 이 책 역시 이 한줄의 명령에서 새로운 역사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과 현재까지 내려오는 한-미간의 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10.26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쾌하면서도 빠른 펜터치로 그려내고 있는 이 소설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아류작 정도로 생각하면 부담없이 즐길 수 있지 않나 한다.

자주국방을 외치던 박정희 대통령, 그런 그의 독재를 끝마친 김제규, 그 이후 집권한 전두환-노태우 등의 신군벌 세력, 마침내 문민정부를 외친 김영삼과 김대중까지 지난 수십년전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격변의 한국史를 이룩했다. 그리고 지금 한반도는 다시금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 역사를 장식 중이다.

내용은 기존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는 미국과 당시 한국의 관계를 보다 세밀하게 그려낼 뿐이다. 미국의 사주를 받은 김제규는 박정희를 죽인다. 이후 자주국방과 미사일, 핵에 대한 언급이 대한민국에서 사라지고 강력한 정책 아래 대한민국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 마지막은 희망적인 필체로, 김대중이 미대통령에게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내보이고 해피엔딩(?)으로 결실을 맺지만 어딘지 모르게 주인장이 보는 김진명 소설의 마무리는 늘 빈약하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내용을 독자가 부담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는데서 오는 유일한 오점이라고 해야 할까. 늘 마지막을 허무하게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참신한 소재로 고루한 내용을 재구성하는 건 분명 그만의 능력이리라.

주인장을 비롯한 한국 현대사를 조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박정희 통치하 대한민국과 미국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을 것이다. 이승만 이후 친선적 관계를 맺어온 미국. 한국의 생존과 그 뿌리를 같이한 것이 극동의 미국이었다. 냉전시대 미국과 함께 세계를 두고 다퉜던 구소련의 KGB는 미국 CIA와의 대결에서 패하고 세계를 CIA의 정보망 아래 두는 것을 방치했었다. 청와대 도청사건을 비롯해 그동안 한국이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박정희 시절 대한민국이 독재와 폭압으로 얼룩진 역사를 보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월남파병, 눈부신 고속 성장, 활발한 대외 활동, 자주 국방을 노력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혹자는 그를 뛰어난 지도자로, 혹자는 그를 다시없는 독재자로 규정하지만 객관적으로 한번 보자. 그는 분명 한국사에 한획을 그은 인물이다.

주인장은 그 시기 역사에 대해 그다지 잘 아는 편은 아니다. 김제규의 10.26 사건에 대해서도 막연히 미국이 공작을 꾸민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정규, 비정규적으로 박정희 시절 한국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했었다는 건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버렸다. 이와 관련, 당시 한국은 전투기를 비롯한 각종 무기에 있어서도 미국의 뜻에 맞지 않는 자주국방을 실현시키려고 했었지만 모두 실패했고 이런 현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 주인장에게 이 책은 비록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었지만 상당히 났曆?있는 역사 재해석의 장을 마련해 준 셈이었다. 그리고 그런 결과에 주인장은 물론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그(저자)가 이처럼 현대사를 보고 있듯이 주인장도 나름대로의 현대사를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새삼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언젠가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무시무시한 영화였다. 주인장은 가끔 되새긴다. 전세계를 상대로 미국이 당찬 도전장을 내민다면? 100%의 승산이 없을 경우 강자는 모험을 하지만 약자는 확률 게임을 한다. 주인장이 보는 나름대로의 인생 철학이다. 전세계 국가가 쏟는 국방비보다 많은 국방비가 한해 미국이라는 帝國을 강력하게 덧칠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미국과 맞설 수 있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는 것 또한 주지해야 할 것이다.

왜 늘 역사는 아이러니할까? 일제의 극악무도한 칼날이 명성황후의 몸을 갈기갈기 찢을때 우리는 분노하고 치를 떨었다. 그런데 왜 미제의 사주를 받은 김제규의 총알이 박정희 대통령의 몸을 관통할 는 별말이 없는 것일까? 우리는 잊고 있는 사이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한번 되새겨보자.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또 어떻게 전개되야 옳은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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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유목제국사
르네 그루쎄 / 사계절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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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쎄의 이 책은 이제 중앙아시아 분양에서 하나의 고전으로 분명히 평가받게 되었고, 어느 언어로 씌어진 개설서이든 아직도 이 글을 능가하지 못 하고 있다.'

주인장의 생각이 아니다. 이 책을 번역한 김호동, 유원수, 정재훈(이 세 사람은 몽골을 비롯한 유목민족史의 대가들이다)이 옮긴이의 말에서 남긴 문구다. 개인적으로 주인장도 이런 대우를 받는 역사가가 되고 싶다. 뭐 주인장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역사가라도 이런 찬사를 받는 것을 간절히 원할 것이다. 지금 주인장은 감히 이런 찬사를 받고 있는 책에 대해서 서평을 쓰려고 한다.

유목제국사, 처음 이 책을 접한 주인장은 지금까지 유목민족사에 관한한 르네 그루쎄만한 역사가를 보지 못 했다. 물론 주인장의 유목민족사 지식 수준이 얇고 공부한 기간도 짧기에 이런 결론 아닌 결론을 내리는 것이 다소 성급한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주인장이 본 책과 논문 중에서 르네 그루쎄의 작품(주인장은 이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은 대단한 정도다. 그는 유목민족의 역사, 끊임없는 정복과 재정복의 역사를 유목민의 시각으로,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옮긴이들도 그랬겠지만 주인장은 이 유명한 사가의 놀라울 정도의 지식 보유량에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그런 이 책의 서평을 쓰고자 결심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군인이라는 몸으로, 없는 시간을 쪼개서 책을 읽고, 또 읽고 느끼면서 주인장은 처음 이 책을 읽을 때와는 많이 다른 결과들을 얻었다. 그리고 그 다른 결과에 대해 쓰려고 한다. 예전에도 주인장은 이 책을 읽고 이 문제에 대해 글을 잠깐 쓴 적이 있다. 바로 '한국사와 유목제국사와의 관계' 다. 이 정도까지 쓰면, 눈치빠른 사람들이라면 '고구려' 와 '발해' 를 문득 떠올릴 것이고, 더 나아가 '단군조선' 과 '부여' 등을 떠 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북방민족, 유목민족...우리 역사에 이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세력이 있을까? 분명 단군조선 시대와 거수국 시대, 열국시대를 거쳐 우리 민족은 대륙 동북방에 웅거하면서 북으로는 유목세력, 남으로는 대륙계 세력과 공조, 지배 등의 관계를 가지며 존속해 왔었다. 그리고 세계사(한국사나 동양사가 아닌)에 족적을 남길 만큼의 세력들도 등장하니 주인장은 고구려와 발해를 꼽곤 한다. 이미 고구려같은 경우는 연구 성과나 관련 저서들이 엄청나게 쏟아진 상태로 '정착형 기마민족' 이라는 표현도 어느정도 보편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더 말할 필요는 없다 하겠다.

또 발해 역시 고구려의 뒤를 이어 검은담비의 길(Sable Road)을 통해 북방을 가로지르며 활약했었다. 그런 고구려, 발해의 흔적이 왜 르네 그루쎄의 책에는 표현되지 않을까? 르네 그루쎄가 몰라서? 아니다. 그의 책에 이들은 분명히 언급되어 이싸. 하지만 극히 소수의 지식(단편적인 지식)만이 기록되어 있다. 주인장이 본 르네 그루쎄의 유목제국에 고구려와 발해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문명화된 민족의 북방 진출로 이뤄진 결과여서 그럴까?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도 의구심이 든다. 왜냐하면 그는 유목민족과 접촉한 문명권에 대해서 언급하면서도 전성기 백제나 고구려, 발해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장이 아쉬워하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대륙을 휘저은 고구려와 백제, 유목민족의 유입으로 수혈에 성공해 강성해진 신라, 발해 등등...모든 게 유목민족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북벌 3황제(효명제. 효장제, 효화제)와 그 이전 시기때 활약한 차태왕의 고구려, 그리고 고구려 주도하에 이뤄진 백제, 선비, 흉노 등등의 연합 전선, 르네 그루쎄는 흉노와 후한과의 대결만 그려내고 그 과정에서 고구려의 역할을 묵과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구려와 백제가 차지한 대륙 동북방을 막연하게 오환, 선비 등의 거주지로만 적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 지역에 흔히 야만, 잔인, 비문명화된 수렵과 목축을 일삼는 유목민만이 수십세기 지냈다고 인식하게끔 말이다.

아울러 남북조 시기, 북위와 북방의 유연을 언급하면서 고구려는 단지 유연의 동쪽 끝 경계인 요하를 차지하고 있는 세력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는 4~5세기, 고구려가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데 고구려를 제외하다니, 그는 발해를 두고 '퉁구스-고구려계' 라고 분명히 적고 있으면서 발해를 문명화된 '퉁구스-고구려계' 가 다수의 퉁구스계 유목민을 다스리며 세운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즉, 고구려-발해의 계승적 의미보다 문명화한 고구려-잔여 세력의 문명화한 발해 건국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르네 그루쎄는 고구려보다 발해를 더 많이 서술하고 있다. 아마 발해의 유목민족적 흔적이 더 많이 녹아 들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주인장은 나중에 꼭 책을 쓸 것이다. 북방 유목제국사의 역사에 꼭 고구려의 전신인 단군조선과 부여, 고구려의 후진은 발해까지, 단군조선-부여-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북조(北朝)의 역사를 집어넣을 것이다. 대륙 동북방에서 수천년 존재하면서 수많은 유목 민족과 공존해온 한민족이 아닌가. 그런데 한민족의 활약상이 왜 없단 말인가? 한국사학계도 다원적인 변화, 연구가 이뤄져야 하지는 않을까? 왜 북방사를 한국사학계는 등한시하고 있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주인장은 유목제국사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했던 것처럼 유목민족사의 개설서로 참고하고, 또 인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 책에 한국사가 거의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장은 곰곰히 생각해봤다.

왜? 중요하지 않아서?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지 않아서?

아니다. 그럴리가 없다. 한 무제와 흉노(묵특대선우의 거대제국)와의 대결, 그 시기 단군조선과 위만조선은 분명 아시아의 3강 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무제가 흉노 정벌 이전에 위만조선을 두고 흉노의 한팔과도 같다고 하면서 1년여의 장기전에도 불구하고 위만조선을 정벌했던 것에서 볼수 있듯이 우리는 이 사건이 예삿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위만조선이 붕괴되지 않았다면(강력한 일국체제에서의 변환을 의미하는 것이지, 한4군의 실생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무제 휘하 한의 용장들이 마음껏 흉노를 공격할 수 있었을까? 무제 - 선제(宣帝) 시대 흉노가 붕괴되고, 서흉노가 추강 유역에서 격파된 뒤 역사에서 사라진 일련의 사건들, 그리고 훈의 등장, 좀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혼란기 후 성립된 후한 왕조, 그리고 서흉노의 소멸, 분열되어 남흉노는 한의 번병이 되고 북흉노만이 동흉노의 맥을 잇게 된 흉노와 동북방의 고구려, 다시 3강 체제가 성립된 것이다. 이 시기 고구려는 주변 세력을 연합해 후한 공략전을 계획할 정도로 강성했다. 이미 요서를 지나 하북 지방이 고구려에 의해 쑥대밭이 되고 후한은 이에 화해하기 바빴다. 여기서 고구려는 동북방 연합체의 구심점임에도 불구하고 그 하위 개념인 선비, 오환, 흉노의 활약만이 서로간의 긴밀한 연계성 없이 전개되고 있다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그리고 고구려의 전성기인 4~5세기, 유연, 북위, 고구려, 남조(송)의 등장은 다시 4강 체제라는 다소 변화된 다원적 천하관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르네 그루쎄의 책은 유연-북위간의 패권 다툼과 돌궐(이후 등장하는 위구르 포함), 거란 위주로 서술하고 있다. 거란이 있던 열하 일대 혹은 송막 지방이 고구려의 영토였고, 내몽골고원 일대까지 고구려의 세력권이었으며 유연과 지두우를 분할하고, 북위와 북연을 두고 다툰 고구려를 빼고 어떻게 당시 동북방 상황이 설명 가능하겠는가? 그 결과 고구려의 위성국(주인장이 보는 고구려-북위 관계)이 主가 되어 역사 전개는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134p의 '기원후 500년경 최초 '몽골의 제국들' : 유연과 에프탈' 이라는 제목의 지도에는 이런 것들이 잘 나타나 있다. 동, 서위로 갈라진 북중국 위로 추강 유역과 옥서스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에프탈, 전 북막의 지배자인 유연(혹은 돌궐과 고차 혹은 철륵), 요하 중상류 이남의 거란이 전부다. 어째서 북위와 동, 서위의 고관대작 및 지배층이 고구려의 고씨 족벌들이며 고로 북위나 거란 등이 고구려의 영향 아래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르네 그루쎄의 책을 보며 느낀 거라면 그는 한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이게 그의 거의 유일한 오점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고구려 멸망 후 대륙 동북방에서의 변화를 마치 유목민족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비교했다. 잡다한 부족 연합체의 해체후 전 지배층이 다시 여러 부족을 연합해 나라를 세우는 식으로 말이다. 틀린 건 아니지만 너무 유목민족적 성격만 강조하는 아닌가 싶다. 발해 건국 이전, 거란, 발해 지배층, 돌궐, 당과의 관계가 복잡 미묘하게 얽혀 있음에도 거기서 고구려民의 활약상은 제외됐다. 그렇기에 검은 담비의 길에 대한 언급도 없다. 사마르칸트까지 상인 및 사절단을 파견한 고구려의 언급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유목민족과 한민족, 어떻게 보면 차이가 있고 어떻게 보면 모호한 경계다.

하지만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아닐까?

고구려 차태왕의 백제(마한)-선비-흉노 연합 전선이 후한을 도륙하는 건 무시할만 하고, 조조 휘하 사마의의 오환 정벌은 대단한 일이라도 된단 말인가? 광개토호태왕과 장수태왕 시절 동아시아를 제패하고 고구려 독자적인 천하관을 이룩한 일은 별일이 아니고 겨우 북중국과 서역 일부를 지배한 북위는 대단한 세력이란 말인가? 일시 강성해져 당을 휘젓고 다니던 돌궐제국은 두려우며 해동성국이라 불리며 당이 함부로 하지 못 하던 발해는 단순한, 스쳐 지나가는(고구려 이후 요, 금이 생기기 이전에 있던 나라) 나라일 뿐이란 말인가?

뭐 이 정도니 이정기나 고선지를 들춰내선 뭣하랴?

안타까움, 이 책은 엄청난 지식 못지 않게 엄청난 안타까움도 느끼게 해 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우리 나라에는 아직 이런 사가가 없다. 주인장이 그 자리에 오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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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단편선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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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책 겉면에 있는 이 문구가 마음에 들어 책장을 하나씩 넘기게 됐다. 한창 인기있는 프로그램인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 선정도서라고 써 있기도 하지만 워낙 이런 교양서적 쪽은 관심이 없는터라 평소에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솔직히 톨스토이가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서 언젠가 한번 글을 읽어보고자 했는데 이번 기회에 이렇게 책을 읽게 돼서 한편으로는 기분 좋기도 하다.

이 책은 몇십페이지 내외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처음 이 책을 읽을때는 그저 단순한 동화책이겠거니~하고 느꼈는데 점점 읽을수록 단순한 동화책 같지만은 않았다. 이 책에는 신(神)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항상 신을 생각하고 신과 함께 살며 결국은 신의 은총을 받는다는 사상, 또한 사랑이라고 하는 인간 원천의 마음을 중시하는 사상, 탐욕을 버리고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상 등, 약간은 허무맹랑하고 비현실적인 내용 전개 속에서 저자는 인간 본연의 삶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번역자인 박형규는 톨스토이 문학 번역에 관한한 최고의 권위자로서 그는 이 단편들이 톨스토이 '민화' 시리즈의 효시라고 말하고 있다. 민중들과 함께 하는 삶, 국가의 근본인 백성들에 대한 삶에 대해 간단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문체로 빚어내는 그의 책은 보는 이로 하여금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것이 바로 톨스토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아니나 다를까, 책은 첫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전부 여느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 역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톨스토이만의 독창적인 내용 전개는 단순한 소재와 단순한 구도를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완성해내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동화책도 민화집도 아니다. 여느 곳에서 읽는, 어린이가 글을 배우기 위해 보는 잡화도 아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글에 빠져들게 하고 뭔가 느끼게 하는 그런 매력을 지닌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불교를 믿고 있지만 만약 기독교를 믿는 절실한 신자였다면 이 책을 읽고 더 느끼는 것이 많지 않았을까 한다.

주인장도 글 쓰는 것을 좋아해 가끔 이런저런 글을 쓰지만, 동화책이나 민화집만큼 쓰기 어려운 것도 없는 것 같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며, 누구나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만 한다. 이 말은 곧 저자 역시 상당한 작품 집필력과 풍부한 상상력을 가져야만 가능하다는 얘기가 되겠다. 거기에다가 계몽력과 숨겨진 진의(眞意)를 갖추려면 더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평소 교양서적은 독서하는데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하는 주인장이다.

이 단편선은 주인장에게 있어서 단순한 윤활유 역할을 넘어 군생활하는데 있어 포근한 마음과 여유까지 갖게 한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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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민족과학 이야기
박성래 지음 / 두산동아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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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학, 하면 먼저 어떤 것이 연상되는가? 주인장은 처음 민족주의, 전체주의 이런 것들이 생각났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민족과학이란 의미가 한번의 거부감을 느끼게 한후 걸려져 와 닿게 된 것도 사실이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과거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는 우수한 게르만族에 의한 민족과학이 존재한다고 하며 그 우수성을 자랑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가 밝히는 민족과학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물론 저변에는 우리 민족의 우수한 과학 기술과 역사성 등이 깔려 있지만 그 본질은 우리의 옛것을 잘 지키고 새롭게 발전시키자는 온고지신적인 뜻이 담겨져 있다 하겠다. 이렇게 이해한 연후에는 '민족과학' 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없으리라.

저자는 민족과학의 의미를 다시 한번 짚어주고 민족과학이 나가야 할 길과 우리 국민 모두가 힘써야 할 방향을 제시한 다음, 우리 민족과학의 원류를 밝혀 위대한 민족과학 유산과 과학자들을 되짚어보는 것으로 책을 풀어 나갔다. 여기서 그는 과학이 비록 보편적인 학문일지언정(특수성이 있다면 한국의 만유인력의 법칙, 미국의 만유인력의 법칙 등이 다 달랐을 것이다) 사회적 소산물인 만큼 그 시대와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예를 든 것이 금속활자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는 1234년, 13세기 한국에서 시작됐다. 쿠텐베르크는 이보다 2세기나 뒤진 후 금속활자를 발명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단 우리가 세계 최초라는 데 이의는 없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묻는다. 세계 최초가 무슨 의미인가? 금속활자가 우리나라와 유럽에서 끼친 영향은 어떠한가?

한번 여러분도 생각해보자.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

책 168~169p에 보면 재밌는 일화가 있다. 95.2.25 '정보화 문제에 대한 선진 7개국 각료회의(벨기에 브뤼셀)' 에서 미국의 전 부통령 앨고어는 '한국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했지만 유교가 책의 상품화를 저해했고, 왕립인쇄소가 보다 대중적인 한국책을 찍기보다 중국 고전만 인쇄했기에 인쇄술이 더 이상 발전하지 못 했고, 고로 인류 역사상 첫번째 정보 혁명인 인쇄술은 쿠텐베르크에게 공이 크다' 고 한 것이다. 이는 그의 친구인 사학자 제임스 버크에게 배웠다고 한다.

기분이 어떤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왠지 기분이 찜찜한 건 왜일까? 저자는 말하고 있다. 솔직히 동양사에 있어(더 자세히 말하면 한국사) 인쇄술은 크게 역사적인 비중으로 자리잡은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에 반해 서양사에서는 인쇄술의 발명이란 엄청난 변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서양사적 영향으로 우리도 인쇄술이 중요한가 보다~하고 우리가 세계 최초라고 뒤늦게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서구 문명, 문화가 전세계를 관리(?)하는 세상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저자는 그것이 옳지 못 하다고 얘기하면서 민족과학에 대해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아쉬운 건 민족과학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전통과학의 원류를 고대가 아닌 중세 이후로 잡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에서는 자기들이 4대 발명(종이, 인쇄술, 나침반, 화약)의 주인공이라고 자랑하면서 1세기 한나라 장형(張衡)이 만든 세계 최초의 지진계인 지동의(地動儀), 그 이전 쓰였다고 보이는 자석 이용장치인 사남(司南) 등을 복원해 두고 있다고 말한다.

http://mi2.emimg.com/wimg/tn.tsp?n=73829811
지동의(지진관측기)

책 중간중간 보면 알겠지만 저자는 중국 -> 한국 -> 일본으로의 문화 전차론을 기본 베이스로 깔고 있다. 주인장이 또 아쉬운 점이다. 일단 기원전 수십세기전 대륙 동북방에는 단군조선(흔히 고조선으로 부르는)이라는 우리 고유 문명 사회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고대복식-그 원형과 정체' 라는 책을 보면 알겠지만 상고 시대때부터 우리는 독창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복식, 갑옷, 무기 등등 그 분야는 지극히 광범위하다. 주인장은 엄청난 수레와 마차 등을 사용한 고구려인 역시 선조들의 것을 물려받아 보다 발전시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미처 그것까진 보지 못 하고 있다. 고작 3세기 칠지도와 금속기술(칠지도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인 지식도 부족하다), 7세기 첨성대와 천문과학에 대해 얘기하며 우리 민족 과학의 원류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 잠깐 내용을 살펴보자. 152~153p에 보면 그는 무령왕릉과 천마총을 비교하며 무령왕릉에는 겨우 철모 1개, 천마총에는 큰 솥 4개, 판장쇠 422kg, 숱한 철제부장품들이 있다고 하면서 철제품이 더 많은 신라가 더 강력한 나라이며 이게 신라 통일의 원동력이 아닐까 하면서 글을 써 나가고 있다. 일단 그는 무령왕릉이 처녀분이 아님을 몰랐고, 천마총의 구조가 적석목곽분으로서 도굴이 불가능하다는 점, 왜 그때 천마총이 신라에 등장했나?(큰 솥의 용도만 생각해도 의심이 갈텐데 말이다) 이런 것들을 간과하고 있었다. 즉, 역사적, 시대적 자료의 결여로 인해 그의 주장에 반박의 여지를 상당히 남겨 놓았다는 것이다.

그가 전통과학의 원류로 꼽은 것은 칠지도와 금속기술(고대), 첨성대와 천문과학(남북국시대), 활자와 인쇄술(고려시대), 측우기와 기상학, 거북선과 선박기술, 동의보감과 한의학(조선시대)이 전부다. 주인장뿐 아니라 이 책을 본 누구나라도 이 책을 보면서 우리 과학의 원류를 고려 이후로 보지, 상고 시대로 보는 이는 없을 꺼라고 생각한다. 박창범 교수의 삼국사기 및 단기고사 등의 상고 서적에 있는 천문관측 자료는 분명 첨성대 이전 우리 민족의 뛰어난 천문 과학 능력을 증명하는 기록들인데도 이런 것들이 모두 결여되어 있다. 물론 자료 수집의 한계는 있었겠지만 말이다.

동두철액과 금속기술이 칠지도와 금속기술보다 먼저 나와야 돼고, 첨성대가 아닌 삼국사기(일식 및 각종 기록)와 천문과학이, 그 밖에 각종 고대 과학 기술이 나왔으면 더 좋았을 껄, 하는 바램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재창조해야 할 과학 유산이나 외로운 선구적 과학자들 편에서는 참신하고 좋은 내용들이 많이 수록된 게 사실이다. 저자는 재창조되야 할 유산으로 석빙고, 앙부일구, 동표, 칠정산, 부채, 24절기 등을 꼽았다. 이들 명칭은 우리들에게 모두 익숙한 명칭들이다. 그만큼 우리들 머릿속에서 오래도록 맴돌았다가 잊혀진지 얼마 돼지 않은 것들이라는 소리일 것이다.

가끔 이런 안건이 건의된다. 우리의 옛 유산들, 특히 무너진 성이나 탑, 건축물들을 그대로 두는 것이 더 좋을까? 아니면 복원하는게 더 좋을까 하는 문제 말이다. 이에 대해서 주인장은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예전에 주인장이 미술사를 배웠을때 그 교수님은(여자분이셨는데 지나칠 정도로 직업 정신이 강한 분이셨다) 이에 대해서 복원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유럽의 각종 유서 깊은 도시에는 옛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모두 복원에 힘쓴 덕분이며 고로 이쪽 분야의 연구가 매우 활발하다는 것이다. 우리도 비록 아직은 문제가 많지만 자꾸 복원을 함으로써 발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반해 주인장 여자친구는 반대 입장이었다. 어설픈 복원은 더 큰 화를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 요지였다. 각각 양쪽은 미륵사지 동, 서탑을 근거로 내세워 주인장이 재밌어했던 기억이 난다.

주인장은 우리의 옛 것에 대해 확실하다면 복원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특히 자격루나 앙부일구 같은 경우 이것들은 대단한 물건들이다. 분명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발명품인 것이 분명한데 우리는 그 복제품 하나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주인장은 고대 유산을 2가지로 분류하곤 한다. 과거에 어떻게 현재에도 이루지 못 하는 것들을 만들었을까? 와 현재에, 최근에 만들어진 것을 고대인들은 어떻게 과거에 그렇게 만들었을까? 이 두가지 말이다. 고대의 합금기술이나 천문역법, 거대한 건축물 등이 후자라면 피라미드, 해시계, 물시계, 불가사의 등등은 전자에 속한 것이라 하겠다. 그 전자에 해당하는 것들을 복원하는 건 고고학계나 사학계에 있어서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 아니라 하겠다. 또한 후자에 속하는 것들을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선조들의 기술과 과학을 가장 직접적이고도 빠르게 계승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의 생각에 주인장은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민족과학이라는 단어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외로운 선구적 과학자들의 소개 부분 역시 좋은 정보가 돼는 부분이다. 역시 고려 이후로 집중된 설명이 아쉽지만 말이다. 우리는 위대한 민족이며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민족이다. 하지만 왜?! 라는 질문에 답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 질문에 저자는 '과학' 이라는 부분을 들춰내 대답하고 있었다. 이렇게 뛰어난 과학 기술을 우리는 고대로부터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우리는 이런 역사를 이어받아 앞으로도 그것을 계승해 나가야 한다는 가명감까지 일깨워준다.

바로 이거다. 우리 민족의 미래와 희망은 밝다. 그것이 또 우리의 살 길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민족과학의 의미를 이해함과 동시에, 과학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함으로써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음으로 해서 얻을 것이 상당히 많은 책이라 본다. 글쎄~책이라는 것이 한사람이 읽을 때마다, 여러 사람이 읽을수록 그 내용이 다르게 느껴지고 얻어지는 게 다른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에게, 몇 번을 읽을수록 공통의 느낌이 나온다면?

과학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는 주인장이다. 그러기에 과학과 역사의 결합, 민족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 이런 것들은 쉽게 다가가기 힘든 것임에 분명하다. 이 책을 읽고 주인장은 특히 전통과학의 원류라는 부분을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곧 국력 신장이다.

그러기에 우리 민족은 옛부터 뛰어난 과학 문화 유산을 보유할 수 있었고, 지금도 세계에서 내노라하는 과학 기술 강국으로 지낼 수 있으며 옛부터 내려온 잠재력을 토대로 장차 엄청난 변혁을 일으킬만한 힘이 있는 것이다. 다만, 요즘 이공계열에 대한 기피 현상과 과학자, 연구자들에 대한 부적합한 대우 등이 사회 이슈화되고 있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한번쯤 우리 나라의 미래와 현주소를 돌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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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연개소문전
김용만 지음 / 바다출판사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먼저 이 책을 내느라 그동안 수고하신 김용만 선생님께 깊은 감사와 함께 수고의 말씀을 드린다. 주인장이 그동안 부대에 있으면서 가장 기다렸던 것이 바로 이 책의 출판이었다. 주인장이 군대에 가기 전부터 선생님은 오래도록 꿔왔던 꿈, 즉 연개소문이라는 영웅(적어도 주인장은 그렇게 생각한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본격적으로 전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고 또한 그것은 주인장을 비롯한 고구려史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바램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주인장이 휴가를 나오자마자 인터넷을 뒤져 이 책의 출판을 확인하고 바로 구입한 것이 이상할리 없을 것이다.

먼저 이 책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얼핏 보고 이 책을 단순한 인물 평전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나온 인물 평전이라면 이도학 선생님이 쓴 '백제장군 흑치상지 평전' 이 있을 것이다. 자료가 극히 없는 상태에서 그 정도의 인물 평전을 쓴 것만도 대단한 일일 것이나 이 연개소문전은 그와는 약간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인물 평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시대史를 조명하는데 집중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인장 역시 이 제목을 보고 어떤 내용일까 하는 막연한 기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료가 극히 없는 상태에서, 중국측에 존재하는 극히 변질되어 있는 사료들, 그 안에서 과연 연개소문이라는 인간을 얼만큼이나 현실 세계로 끌어내 대중들에게 인식시켜 줬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있었다. 연개소문이 태어나기 이전의 고구려부터 태어났을 무렵의 고구려, 연개소문이 살아 숨쉬고 정권을 잡고 활동하던 고구려와 동시대의 당을 비롯한 덩대 천하가 이 안에서 모두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연개소문의 50여년 인생(저자는 연개소문의 사망년월을 663년 10월로 보고 있다)을 통해 본 당대 7세기의 아시아 사회가 바로 이 책이 알리고자 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반세기동안 고구려는 부흥과 좌절, 멸망에 이르는 여러가지 사회적 변환을 거치게 되며 700년이 넘게 계속되어 온 동북아시아의 유일한 패권자(覇權者)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과연 이 반세기동안 고구려에서 일어난 사실들과 당대 최고 집권자였던 연개소문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으며 또한 어떤 사실들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과 달랐던 것일까? 이 책은 그에 대한 대답을 지금 우리에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주인장이 이 책을 그렇게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또 눈여겨 본 것은 바로 '고-당 문명대전' 에 대한 재평가 때문이다. 고구려는 이미 영양태왕때 수(隨)라고 하는 엄청난 괴물을 연거푸 쓰러뜨리면서 700여년 대국의 위엄을 지켰다. 아직까지 동북아시아의 지존은 고구려였으며 초원에서도, 중원 대륙에서도 그런 고구려의 지존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하지만 수 이후 당(唐)이라는 존재가 두각을 드러내면서 고구려의 지존의 자리는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하게 되고 곧 그 위엄은 흔들리게 된 것이다. 이 책은 그 고구려와 당과의, 천하를 두고 결전을 벌인 당대 시대를 조명하고 있다.

먼저 눈에 띄는 내용을 꼽으라면 천리장성(千里長城)에 대한 기존의 해석과 전혀 다른 저자의 해석이 있겠다. 장성이라는 표현에 발목이 묶여 다채로운 해석이 불가능했던 기존의 견해와 달리 저자는 천리장성이란 본성(本城)과 중·소성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방어용 네트워크(Network)였던 거지, 만리장성과 같은 성격의 경계선이 아님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는 뒤에 나오겠지만 신성과 요동성, 건안성 등 앞으로 벌어질 고-당 문명대전에서 고구려의 서부 방어 진지들이 어떻게 적의 침입을 막아냈는지 얘기해 줄 중요한 전제조건이기에 저자는 천리장성에 대한 얘기를 서두에 이미 꺼내놓은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저자는 고-당 문명대전이 단순히 천하를 발아래 두고자 하는 당 태종 이세민의 야욕에 불탄 단순한 당의 침략과 고구려의 방어, 이런 구도로 이뤄진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다. 고구려는 당시 이미 만리장성의 북쪽과 초원과의 경계라 할수 있는 난하 상류 일대 동쪽을 지배하고 있던 동북아시아의 패자였었다. 그런 고구려가 단순히 당이라고 하는 신흥 대국의 침입이 있을때까지 묵과하고 있다가 수세적인 입장에만 놓였을까?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조선상고사나 환단고기가 말하는 연개소문의 중원대륙 정벌은 100% 거짓이란 말인가? 저자는 이에 대해서 부인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기준 잣대가 될만한 사료가 없는 지금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리라.

제 1차 고-당 문명대전에서의 안시성 전투에 얽힌 미스테리는 주필산 전투에 대한 재해석으로 비로소 의문이 풀리며 앞서 말한 신성과 건안성, 즉 천리장성이라고 불리는 요동 방어 시스템의 놀라운 효과는 수십만 당군을 한줌 이슬로 날려버리며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대를 이어 벌어진 제 2차 고-당 문명대전에서의 당측의 변칙 전술과 고구려측의 끈질긴 임전무퇴 정신에 대한 내용은 읽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까지 하는 것이다.

저 멀리 사마르칸트의 강국(康國)에까지 사신을 보내 당을 좌우에서 협공하려고 했던 고구려, 그리고 당을 압박하며 일인천하일통의 과대팽창야욕을 억제하려 했던 설연타, 철륵과의 연합 전선을 펼친 고구려, 허무하게 무너진 백제의 부흥을 도우며 당과 신라 양측을 상대하며 꿋꿋히 버티던 고구려, 이렇듯이 이 책은 당대 아시아 전체에 걸쳐 외교권을 형성하며 천하를 경영한 고구려에 대해서 유감없이 그 실체를 밝혀주고 있다.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내용이 전개되는 중간중간 저자는 기존에 잘못 알려져 있고, 잘못 연구되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은 역사 소설이 아니다. 기존에 나온, 연개소문이나 고구려에 대한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은 단순히 헛된 망상이나 거짓을 실을 수 없는 것이다. 아울러 역사에 근접한 사실을 기록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이 책이 읽기 쉽고 이야기 형식으로 내용을 전개한다고 해도 그 담긴 내용들은 결코 가벼운 의미의 내용들이 아님을 인식해야만 한다. 저자는 7세기의 아시아를 새롭게 재해석했다. 막연하게 흐린 역사가 이 책에서만큼은 저자의 의도대로 뚜렷한 선을 그은 것이다.

이 책을 2번 읽어보고, 또 3번째 읽어본 후에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는 주인장은 이 책이 대단히 잘 쓰여진, 또한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영류태왕에 대한 평가가 주인장이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부정적으로 된 면이나 백제의 멸망에 대한 뭔가 조금 모자란 듯한 서술, 연개소문 당사자에 대한 평가 부족 등이 아쉽다 할 수 있겠다. 연개소문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7세기 아시아史를 투영시킨 점은 돋보였지만 정작 그러다보니 그 매개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또한 주인장 같은 사람은 역사책을 볼때 쉽고 이해하기 쉬운 역사책을 원하기도 하지만 풍부한 자료와 다양한 주석이 담긴 역사책을 원하기도 한다. 물론 책을 쓰고 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여기에 적는 내용은 주인장의 어리석은 푸념 정도로만 들으면 될 것이다. 주인장은 연개소문과 7세기 고구려를 엮어내는 이 책이 조금 더 많은 사실들을 책에 담아 다소 지루하고 따분하더라도 가능한 모든 것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램도 한번 해 본다. 그 말은 곧 이 책이 단순한 역사 마니아들만 보는 책이 아닌, 일반 교양서로도 충분하다는 말이 되겠다.

뛰어난 전략가이자 영웅이었던 연개소문은 그렇다고 일국의 지도자로서도 성공한 케이스는 아니었다.

이런 연개소문을 저자는 그동안 그렇게 표현하려고 갈망했었던 모양이다.

고구려의 문명대국으로서의 존재 가치에 대해 오래도록 책을 내고 연구하며 글을 써온 저자의 생각이 이 책을 통해 연개소문이라는 인물을 대표해 표출된 것이 아닐까 하며 이만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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