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민족과학 이야기
박성래 지음 / 두산동아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민족과학, 하면 먼저 어떤 것이 연상되는가? 주인장은 처음 민족주의, 전체주의 이런 것들이 생각났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민족과학이란 의미가 한번의 거부감을 느끼게 한후 걸려져 와 닿게 된 것도 사실이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과거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는 우수한 게르만族에 의한 민족과학이 존재한다고 하며 그 우수성을 자랑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가 밝히는 민족과학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물론 저변에는 우리 민족의 우수한 과학 기술과 역사성 등이 깔려 있지만 그 본질은 우리의 옛것을 잘 지키고 새롭게 발전시키자는 온고지신적인 뜻이 담겨져 있다 하겠다. 이렇게 이해한 연후에는 '민족과학' 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없으리라.

저자는 민족과학의 의미를 다시 한번 짚어주고 민족과학이 나가야 할 길과 우리 국민 모두가 힘써야 할 방향을 제시한 다음, 우리 민족과학의 원류를 밝혀 위대한 민족과학 유산과 과학자들을 되짚어보는 것으로 책을 풀어 나갔다. 여기서 그는 과학이 비록 보편적인 학문일지언정(특수성이 있다면 한국의 만유인력의 법칙, 미국의 만유인력의 법칙 등이 다 달랐을 것이다) 사회적 소산물인 만큼 그 시대와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예를 든 것이 금속활자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는 1234년, 13세기 한국에서 시작됐다. 쿠텐베르크는 이보다 2세기나 뒤진 후 금속활자를 발명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단 우리가 세계 최초라는 데 이의는 없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묻는다. 세계 최초가 무슨 의미인가? 금속활자가 우리나라와 유럽에서 끼친 영향은 어떠한가?

한번 여러분도 생각해보자.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

책 168~169p에 보면 재밌는 일화가 있다. 95.2.25 '정보화 문제에 대한 선진 7개국 각료회의(벨기에 브뤼셀)' 에서 미국의 전 부통령 앨고어는 '한국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했지만 유교가 책의 상품화를 저해했고, 왕립인쇄소가 보다 대중적인 한국책을 찍기보다 중국 고전만 인쇄했기에 인쇄술이 더 이상 발전하지 못 했고, 고로 인류 역사상 첫번째 정보 혁명인 인쇄술은 쿠텐베르크에게 공이 크다' 고 한 것이다. 이는 그의 친구인 사학자 제임스 버크에게 배웠다고 한다.

기분이 어떤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왠지 기분이 찜찜한 건 왜일까? 저자는 말하고 있다. 솔직히 동양사에 있어(더 자세히 말하면 한국사) 인쇄술은 크게 역사적인 비중으로 자리잡은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에 반해 서양사에서는 인쇄술의 발명이란 엄청난 변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서양사적 영향으로 우리도 인쇄술이 중요한가 보다~하고 우리가 세계 최초라고 뒤늦게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서구 문명, 문화가 전세계를 관리(?)하는 세상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저자는 그것이 옳지 못 하다고 얘기하면서 민족과학에 대해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아쉬운 건 민족과학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전통과학의 원류를 고대가 아닌 중세 이후로 잡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에서는 자기들이 4대 발명(종이, 인쇄술, 나침반, 화약)의 주인공이라고 자랑하면서 1세기 한나라 장형(張衡)이 만든 세계 최초의 지진계인 지동의(地動儀), 그 이전 쓰였다고 보이는 자석 이용장치인 사남(司南) 등을 복원해 두고 있다고 말한다.

http://mi2.emimg.com/wimg/tn.tsp?n=73829811
지동의(지진관측기)

책 중간중간 보면 알겠지만 저자는 중국 -> 한국 -> 일본으로의 문화 전차론을 기본 베이스로 깔고 있다. 주인장이 또 아쉬운 점이다. 일단 기원전 수십세기전 대륙 동북방에는 단군조선(흔히 고조선으로 부르는)이라는 우리 고유 문명 사회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고대복식-그 원형과 정체' 라는 책을 보면 알겠지만 상고 시대때부터 우리는 독창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복식, 갑옷, 무기 등등 그 분야는 지극히 광범위하다. 주인장은 엄청난 수레와 마차 등을 사용한 고구려인 역시 선조들의 것을 물려받아 보다 발전시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미처 그것까진 보지 못 하고 있다. 고작 3세기 칠지도와 금속기술(칠지도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인 지식도 부족하다), 7세기 첨성대와 천문과학에 대해 얘기하며 우리 민족 과학의 원류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 잠깐 내용을 살펴보자. 152~153p에 보면 그는 무령왕릉과 천마총을 비교하며 무령왕릉에는 겨우 철모 1개, 천마총에는 큰 솥 4개, 판장쇠 422kg, 숱한 철제부장품들이 있다고 하면서 철제품이 더 많은 신라가 더 강력한 나라이며 이게 신라 통일의 원동력이 아닐까 하면서 글을 써 나가고 있다. 일단 그는 무령왕릉이 처녀분이 아님을 몰랐고, 천마총의 구조가 적석목곽분으로서 도굴이 불가능하다는 점, 왜 그때 천마총이 신라에 등장했나?(큰 솥의 용도만 생각해도 의심이 갈텐데 말이다) 이런 것들을 간과하고 있었다. 즉, 역사적, 시대적 자료의 결여로 인해 그의 주장에 반박의 여지를 상당히 남겨 놓았다는 것이다.

그가 전통과학의 원류로 꼽은 것은 칠지도와 금속기술(고대), 첨성대와 천문과학(남북국시대), 활자와 인쇄술(고려시대), 측우기와 기상학, 거북선과 선박기술, 동의보감과 한의학(조선시대)이 전부다. 주인장뿐 아니라 이 책을 본 누구나라도 이 책을 보면서 우리 과학의 원류를 고려 이후로 보지, 상고 시대로 보는 이는 없을 꺼라고 생각한다. 박창범 교수의 삼국사기 및 단기고사 등의 상고 서적에 있는 천문관측 자료는 분명 첨성대 이전 우리 민족의 뛰어난 천문 과학 능력을 증명하는 기록들인데도 이런 것들이 모두 결여되어 있다. 물론 자료 수집의 한계는 있었겠지만 말이다.

동두철액과 금속기술이 칠지도와 금속기술보다 먼저 나와야 돼고, 첨성대가 아닌 삼국사기(일식 및 각종 기록)와 천문과학이, 그 밖에 각종 고대 과학 기술이 나왔으면 더 좋았을 껄, 하는 바램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재창조해야 할 과학 유산이나 외로운 선구적 과학자들 편에서는 참신하고 좋은 내용들이 많이 수록된 게 사실이다. 저자는 재창조되야 할 유산으로 석빙고, 앙부일구, 동표, 칠정산, 부채, 24절기 등을 꼽았다. 이들 명칭은 우리들에게 모두 익숙한 명칭들이다. 그만큼 우리들 머릿속에서 오래도록 맴돌았다가 잊혀진지 얼마 돼지 않은 것들이라는 소리일 것이다.

가끔 이런 안건이 건의된다. 우리의 옛 유산들, 특히 무너진 성이나 탑, 건축물들을 그대로 두는 것이 더 좋을까? 아니면 복원하는게 더 좋을까 하는 문제 말이다. 이에 대해서 주인장은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예전에 주인장이 미술사를 배웠을때 그 교수님은(여자분이셨는데 지나칠 정도로 직업 정신이 강한 분이셨다) 이에 대해서 복원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유럽의 각종 유서 깊은 도시에는 옛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모두 복원에 힘쓴 덕분이며 고로 이쪽 분야의 연구가 매우 활발하다는 것이다. 우리도 비록 아직은 문제가 많지만 자꾸 복원을 함으로써 발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반해 주인장 여자친구는 반대 입장이었다. 어설픈 복원은 더 큰 화를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 요지였다. 각각 양쪽은 미륵사지 동, 서탑을 근거로 내세워 주인장이 재밌어했던 기억이 난다.

주인장은 우리의 옛 것에 대해 확실하다면 복원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특히 자격루나 앙부일구 같은 경우 이것들은 대단한 물건들이다. 분명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발명품인 것이 분명한데 우리는 그 복제품 하나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주인장은 고대 유산을 2가지로 분류하곤 한다. 과거에 어떻게 현재에도 이루지 못 하는 것들을 만들었을까? 와 현재에, 최근에 만들어진 것을 고대인들은 어떻게 과거에 그렇게 만들었을까? 이 두가지 말이다. 고대의 합금기술이나 천문역법, 거대한 건축물 등이 후자라면 피라미드, 해시계, 물시계, 불가사의 등등은 전자에 속한 것이라 하겠다. 그 전자에 해당하는 것들을 복원하는 건 고고학계나 사학계에 있어서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 아니라 하겠다. 또한 후자에 속하는 것들을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선조들의 기술과 과학을 가장 직접적이고도 빠르게 계승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의 생각에 주인장은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민족과학이라는 단어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외로운 선구적 과학자들의 소개 부분 역시 좋은 정보가 돼는 부분이다. 역시 고려 이후로 집중된 설명이 아쉽지만 말이다. 우리는 위대한 민족이며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민족이다. 하지만 왜?! 라는 질문에 답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 질문에 저자는 '과학' 이라는 부분을 들춰내 대답하고 있었다. 이렇게 뛰어난 과학 기술을 우리는 고대로부터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우리는 이런 역사를 이어받아 앞으로도 그것을 계승해 나가야 한다는 가명감까지 일깨워준다.

바로 이거다. 우리 민족의 미래와 희망은 밝다. 그것이 또 우리의 살 길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민족과학의 의미를 이해함과 동시에, 과학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함으로써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음으로 해서 얻을 것이 상당히 많은 책이라 본다. 글쎄~책이라는 것이 한사람이 읽을 때마다, 여러 사람이 읽을수록 그 내용이 다르게 느껴지고 얻어지는 게 다른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에게, 몇 번을 읽을수록 공통의 느낌이 나온다면?

과학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는 주인장이다. 그러기에 과학과 역사의 결합, 민족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 이런 것들은 쉽게 다가가기 힘든 것임에 분명하다. 이 책을 읽고 주인장은 특히 전통과학의 원류라는 부분을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곧 국력 신장이다.

그러기에 우리 민족은 옛부터 뛰어난 과학 문화 유산을 보유할 수 있었고, 지금도 세계에서 내노라하는 과학 기술 강국으로 지낼 수 있으며 옛부터 내려온 잠재력을 토대로 장차 엄청난 변혁을 일으킬만한 힘이 있는 것이다. 다만, 요즘 이공계열에 대한 기피 현상과 과학자, 연구자들에 대한 부적합한 대우 등이 사회 이슈화되고 있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한번쯤 우리 나라의 미래와 현주소를 돌아보는 건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