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한국고고학저널
국립문화재연구소 지음 / 국립문화재연구소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현재 한국 고고학계의 최신 정보를 잘 정리한 유일한 잡지! 보다 더 많은 부수가 발행되어야 하겠지만, 그나마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 ^^ 유적과 유물에 대한 새로운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약성경과 신들
주원준 지음 / 한님성서연구소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마지막 리뷰 이후에 근 10개월만에 쓰는 리뷰 같다. 그만큼 그동안 게을렀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각설하고, 오늘 소개할 책은 오랜만에 종교 관련 서적으로 정했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를 잠깐 소개하자면, 저자이신 주원준 선생님이 모 학회에서 관련 주제로 발표하는 걸 듣고 나서였다. 발표 내용도 워낙 신선했지만(기존에 성경 혹은 예수에 대한 책들을 몇 권 읽어봤는데 이런 시각에서 접근한 책은 없었다), 뒷풀이때 선생님과 나눈 대화 속에서 고대근동학 및 구약학은 물론, 개신교나 천주교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 주효했다. 거기다가 예전에 읽었던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이라는 책의 번역자와 동일 인물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역시나 구약학이나 고대근동학 이외에도 종교와 관련된 역사 전반에 능통하시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했고.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프롤로그에서 간단하게 고대 근동의 지리학적 개념, 언어, 탈신화화와 재신화화(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큰 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님), 성경의 번역과 성경의 현주소? 등을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쪽 지식이 거의 없는 필자와 비슷한 처지의 독자들에게는 이 부분이 상당히 고맙지 않을 수가 없다. 8장 정도밖에 안 되는 분량이지만, 이 책을 읽기 전 꼭 알아야 하는 필수 지식들이 다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살펴보면, 고대 이스라엘인의 종교심을 이해하면서 당대 역사와 문헌들에 접근해야지, 과학과 합리성에 의존해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부터 언급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성경에 신화의 언어가 풍부하다는 표현이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그러면서 앞으로 당대 이스라엘인들이 고대 근동의 종교와 문화를 공유하면서도 어떻게 차별화했는지를 서술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밖에 고대근동학의 정의(막연히 고대 근동을 연구하는 학문은 성서고고학, 히타이트 고고학 등으로 불리는 줄로만 알았다)라든가, 고대 근동의 시간적 폭, 고대 근동의 언어를 기준으로 한 지역 구분 등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신선했던 것은 독일의 신약성서학자인 불트만(Bultmann, R.)이 제시한 탈신화화(脫神話化, Entmythologisierung)’라는 개념이었지만 말이다. 신화의 껍데기를 벗겨내어 현대인들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해석학적 틀을 제시한다는 개념. 그런데 역시나 그 용어가 갖는 표면적 의미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잘못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다(김원룡 선생님이 처음 제창하신 원삼국시대라는 용어나 애덤 스미스의국부론에 드러난 자유방임경제및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개념들도 모두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있으나 최근에 이를 새로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들이 늘어나는 것처럼). 암튼, 저자는 신화는 마냥 겉의 신화적 요소를 껍질 까듯 벗겨버리고 속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21쪽에 적절한 표현이 나온다. 성경은 바나나처럼 껍질은 버리고 과유만 얻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양파처럼 껍질과 과육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서 그 자체를 온전히 섭취해야 한다, 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책 초반부에서 가장 와 닿는 구절이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탈신화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신화화(再神話化, Remythologisierung)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증거물이 바로 창세기의 첫째 장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당시 고대 근동의 모든 나라들이 섬기던 자연신들을 하느님이 1주일 만에 만들어버린 피조물(소위 말하는 天地創造)로 전락시켰으니 이 정도면 말 다 했다(비교가 부적절할지도 모르지만 마치 마블 코믹스의 슈퍼영웅 세계관을 보는 듯 했다. 첩첩산중처럼 쌓여있는 수많은 영웅들 중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 아이언맨, 엑스맨, 헐크, 토르, 고스트헬 등은 중하급 영웅들이며, 그보다 훨씬 뛰어난 초신적 영웅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 결과, 뿌리 깊은 자체 신화가 없는 미국인들의 손을 거쳐 세계 각지의 신화적 영웅은 탈신화화하고 재신화화를 거쳐 새롭게 등급이 매겨진 셈이 됐다. 그에 따라 천둥의 신 토르는 북유럽에서 최고신에 준하는 지위를 얻고 있지만, 마블 코믹스에서는 슈퍼맨 정도의 레벨에 불과하다. 물론 슈퍼맨은 최고 레벨의 영웅이 아니고 말이다. ^^; 고대 근동의 수많은 도시국가 및 제국의 수많은 신들이 많아봤자 그보다 높은 레벨의 신에게는 한줌거리도 안 된다는 식의 이스라엘인들의 시각도 이와 비슷한 것 같아 한편으로는 재밌으면서도 신기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저자는 성경 번역이 사실적 일치가 아닌 상징적 일치를 더 고려해서 이뤄져야만 한다고 역설하기도 한다(사실 이런 부분은 실제 종교인이 아닌 필자에게는 큰 의미가 없지만, 역사로서의 성경을 이해하는 데에도 좋은 시각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을 다 살펴봤을 때 우리가 얻는 것은 바로 무엇인가? 라는 것까지! 이후 책에서 이야기할 것들을 맛보기로 다 보여주고 시작하기 때문에 이미 해당 분야의 지식이 상당한 사람에게는 다소 밋밋한 책일 수도 있겠으나 필자처럼 無知한 독자에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책이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책 내용 중 필자가 주의 깊게 읽었던 부분과 그에 대한 필자의 생각 등을 정리하는 식으로 진행하도록 하겠다.

 

본론은 크게 6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첫째는 하늘(), 둘째는 달(), 셋째는 바람(), 넷째는 강(), 다섯째는 피(), 여섯째는 가시나무(). 일단 고대 근동하면 딱 연결되는 주제라면 달이나 강 등이 떠오를 수 있겠고, 일반적인 신화와 연결되는 것이라면 하늘과 바람 피 등이 있겠다. 그러나 책을 읽기 전까지는 대략의 이미지만 떠올릴 뿐, 앞으로 저자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명확히 알아내기는 어렵다. 그만큼 이 책이 주는 기대감이 크다는 뜻도 되겠지만.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하늘신(天神)은 동서고금을 떠나 항상 최고신의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신화속 신과 영웅들은 모두 하늘에서 살며,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있는 생명을 관장하고, 모든 천재지변을 관장한다. 비도, 구름도, 눈도, 태풍도 모두 하늘이 없으면 존재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늘신은 고대 근동에서도 최고신의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야훼는 그런 자연신과 동일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하늘()은 있을지언정 하늘신(天神)은 없다. 하늘은 그저 공간적 범위, 하느님이 만든 피조물 중 하나이자 하느님이 계시는 공간일 뿐이지 절대 그 하늘 자체가 신적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늘의 하느님이라는 호칭이 야훼 하느님만의 것은 아니었다. 페르시아의 공식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의 대표적 호칭도 이러했는데, 이스라엘인들은 이러한 페르시아의 종교관을 과감히 차용했다. 이를 두고 저자는 바빌론 유수 이후 이스라엘인들이 대제국 페르시아의 문화적 영향력이 확산되자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결과물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 그 호칭이 담고 있는 페르시아의 신과 신앙까지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 호칭만 가져와 자신들의 신에게 선사한 것이다(페르시아인들의 타종교에 대한 관용이야 이미 널리 알려졌지만, 이런 사실들을 당시 페르시아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자신들의 종교가 타 종교를 변화시켰다고 좋아했으려나? 실제 저자는 신바빌론 제국의 마르둑 사제들이 제국 내 왕권 신학을 정립하기 위해 신들의 족보를 새로 정리했다는 내용을 적고 있는데, 당시 이러한 종교정책의 부작용이나 반대 입장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이는 고구려 내에서 부여 신화를 고구려 신화 안에 흡수하는 과정에서도 적용 가능한 사례일 수 있어 자못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그들이 야훼 신앙을 지키려는 굳은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관은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마태오 복음의 하늘의 너희 아버지’, ‘하늘의 내 아버지와 같은 오늘날 우리가 쉽게 중얼거리는 표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늘은 하느님과 동의어가 됨으로써 탈신화화를 넘어 재신화화가 완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주제부터 흥미진진하게 끝을 맺으면서 두 번째 주제로 바로 넘어가겠다. 두 번째는 이다. 고대 근동은 달신이 왕권 신학의 핵심 상징으로서 중교와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 유일한 지역이다(일반적으로 태양신이 보편적이다, 지근거리의 제우스-쥬피터를 보라. 더불어다빈치 코드에서 예수의 얼굴이 쥬피터의 그것을 따왔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대사도 떠오른다). 실제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동부와 서부에 따라 달신의 지위가 달랐으며, 시간에 따라 달신의 지위가 변하기도 한 것 같다.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 페르시아 제국의 팽창과 함께 하느님 또는 하늘의 개념이 유입된 것처럼, 달신 숭배사상은 신아시리아 제국의 팽창과 함께 찾아온 종교적 위험요소였다. 그렇게 이스라엘인들은 달 역시 피조물로 만들어 버리고, 달신의 흔적을 깨끗하게 지워버린 것이었다. 이를 두고 저자는 고대 근동 세계관의 전복이라고 하면서 창세1장을 고대 이스라엘 탈신화화의 헌장이라는 표현으로 대변하고 있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바람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환인이 환웅을 보필해서 내려 보낸 이들이 바로 풍백(風伯)을 비롯해 우사(雨師)와 운사(雲師)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농경문화를 대표하는 신들로 알려져 있는데, 저자는 그중 바람신은 해양 민족에게도 중요한 신이라고 이야기한다. 고대 근동에서 바람은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으며, 계절별로 각각 다른 바람이 불어왔다고 한다. 그만큼 바람은 사람들의 삶 속에 친근하게 다가왔을 것이고, 바람신 역시 다양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구약성경에서 바람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야훼와 관련된 바람만 존재할 뿐이다. 바람은 하느님의 종일뿐더러, 바람이 불면 하느님이 현현한다는 징조로 쓰였다(영화나 드라마에서 신이 바람소리를 나면서 순식간에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장면을 많이 봤을 것이다. 아마 이와 비슷한 개념 아니었나 싶다). 그러면서도 재밌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신학자들이 루아흐(바람, )가 주님이 지나가신 흔적이요, 표징일 뿐이지 그 자체는 아니라고 주절주절 설명하고 이해시키려고 했다는 점이었다. 오랜 시간 계속되어 온 그들의 끈질긴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네 번째는 인데, 개인적으로 책을 읽기 전 관심 있던 부분이었다. 메소포타미아 하면 2개의 강(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이 떠오르는 만큼 강과 관련된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시 저자는 도입부에 이런 표현을 쓴다. ‘현대인은 나일 강과 나일 강의 신을 따로 떼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고대 근동인들에게 하늘신 없는 하늘이나 강의 신 없는 강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의미 없는 세상이나 사랑 없는 연인들과 같은 표현이다라고 말이다. 으음~쉽게 이해가 됐다. 그렇지. 그런 시대에 살던 사람들에게 요즘의 잣대를 들이밀어서는 안 되겠지.

 

처음 나오는 것은 나일 강이다. 고대 근동의 신 대부분이 자연 현상에 기반을 둔 인격신임에도 불구하고 나일 강은 강 자체가 아니라 강의 범람만이 인격화되었다고 한다(상당히 흥미로운 현상인데, 그만큼 나일 강의 범람이 갖고 오는 사회적 변화가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 저자도 구약성경이 나일 강 범람의 신인 하피신에게 유독 침묵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는 그만큼 나일 강 범람이 미친 문화적·사회적 영향이 컸다는 소리를 역설적으로 나타낸 게 아닌가 싶다. 더불어 혹시 중국에도 황하가 아닌, 황하 범람에 대한 이런 신화적 요소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지닌 강으로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나오는데, 본디 이 두 강은 고대 근동에서 신을 의미하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점차 이들의 신성은 사라지는데, 그건 바로 수메르시대부터 일곱 주신의 하나이자 최고신 아누(하늘신)의 아들이요, 풍요의 신 두무지의 아버지인 엔키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는 앞서 언급했던 신들의 계보 정리로 최고신의 지위를 얻은 마르둑의 아버지가 되기도 하는데, 지하수의 신이자 대표적인 선신(善神)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엔키의 흔적 또한 앞서 살펴본 하피신의 흔적만큼이나 구약성경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이 역시 이스라엘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다양한 고대 근동의 종교적 모티프를 차용하는 과정에서, 선별적으로 그들에게 유리하고 이로운 것을 수용하되 자신들이 함부로 삼키지 못하는 거대한 신성들은 아예 건드리지 않고 제외시킨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역시 고대 이스라엘 신학자들의 합리성과 치밀함이 엿보이는 부분이리라.

 

암튼, 이 두 강 역시 탈신화화를 거쳐 이집트의 북쪽 경계를 의미하는 지리적 용어로 쓰이거나, ‘저 멀리 북쪽 끝을 의미하는 신화적 강의 의미로 쓰였다(마치 무협소설에서 막연한 무림의 북쪽 끝을 가리키는 용어 北海처럼 말이다). 그밖에 강은 심판의 의미도 있는데, 구약성경에서는 이것이 정의를 판결하는 강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한다고 한다. 이 역시 강의 신은 사라지고 탈신화화한 표현인 셈이다. 특히 이 부분에서 저자는 현재 성경 번역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데, 확실히 기존의 단순히 안개’, ‘로는 확실하게 의미 전달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고대 근동 언어를 당대인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보다 확실하게 성경이 담고 있는 의미가 전달된다는 저자의 생각이 잘 표현된 챕터가 아니었나 싶다.

 

다음은 . 초반에 나오는 담을 통해 본 단군과 단 지파에 대한 이야기가 다소 흥미로웠다. 단순히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 혹은 비상식적(?)인 아마추어들의 이야기에도 이렇게 각주를 할애해 비판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해야 하나? 암튼, 창세기를 보면 일종의 말놀이(pun 또는 wordplay)로 민족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에돔족의 조상 에사우가 아돔을 찾았기 때문에 에돔이 되었다~는 식이다. 이는 라시드 앗 딘의집사3부작(칭기스칸기-부족지-칸의 후예들)에서도 나오는 비슷한 내용인데, 수렵 집단에서 흔하게 확인되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문자화된 역사를 남기기 상대적으로 어려웠던 비정주문명에서 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유대인들이 왜 헤롯왕의 이스라엘 통치를 탐탁지 않게 여겼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접한 뒤에 본격적으로 피의 신 이야기로 향했다.

 

피의 신 하면, 좀 잔인하고 희생제의를 해야 할 것만 같고 이런 것만 떠올렸는데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딱히 그렇지만도 않았다. 피는 치유나 생명의 의미가 강했다고 한다. 물론 고대 근동에는 다무라는 피의 신이 있었지만, 구역성경에서 피는 단순히 사람이나 동물의 혈액을 의미한다고 했다. 하지만 피가 갖고 있는 상징성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렇기에 그리스도가 흘린 피는 죄악이 씻겨 나가는 상징이요, 생명의 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런 인식 속에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면서 흘린 예수의 피가 어떻게 비춰졌을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최후의 만찬 장면을 언급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라는 표현은, 예수 역시 고대 근동의 종교심을 공유했다는 근거이며, 그가 셈족의 일원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피를 상징하는 음료로 포도주가 사용되는 것 역시. 그리고 그 말은 곧 최후의 만찬에 모인 사도들 역시 셈족의 종교심을 소통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구원자의 피가 온 세상과 인류를 깨끗하게 만든다는 셈족의 종교심은 이스라엘인에게는 자연스러웠지만, 로마인(인도-유럽어족)들에게는 그렇지 못 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말을 곧 인육식사로 오해했고, 그것이 곧 그리스도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져 로마의 박해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물론 지금까지 그리스도교가 살아남은 것을 보면, 예로부터 이러한 문화적 인식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초대 교부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마지막은 가시나무(조성모 노래 말고. ^^;;). 나무는 뭐 우주목, 세계목 등등으로 불리며 동서 신화 곳곳에서 신적 존재로 숭배받아온지 오래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나무는 거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바로 가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이스라엘인이 아시리아인과 달리 나무를 인격체로 표현하면서 나무에 종교적 심성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무도 종류에 따라 신성과 숭배 정도가 다른데, 그중 가시나무야말로 고대 근동 종교와 구약성경을 꿰뚫는 상징이자 신양성경의 핵심 상징이요, 유다교 라삐들과 교부들의 성찰에도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한 나무라고 적고 있다(기존에 가시나무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설명한 책은 본 적이 없다. 물론 관련도서를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여기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건 2가지 같았다. 첫째는 가시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이와 연결되는 것으로서 현재 천주교의성경, 개신교의표준새번역에서는 이를 모두 단순한 관목인 떨기나무로 번역하는데, 그렇게 되면 본래의 상징성이 잘 표현되지 않기 때문에 번역상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이자 영웅설화라고도 할 수 있는길가메쉬 서사시를 보면 길가메쉬가 가시에 찔리는 고통을 무릅쓰면서 진리를 얻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건 곧 가시가 참진리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표상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예전에는 그 가시나무가 작은 덤불의 일종으로 보았으나, 최근에는 이를 가시가 달린 높이가 10m 이상 자라는 거대한 야자나무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덧붙였다. , 저자는 수종의 일치보다는 그 나무에 얽혀 있는 의미를 고스란히 전달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럼 숨 가쁘게 달려온 고대 근동의 종교적 모티프와 구약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해보자. 이 책은 따로 에필로그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프롤로그의 마지막 챕터인 ‘7. 그러면 과연 무엇이 남는가?’를 한 장으로 떼어 마지막 에필로그로 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암튼, 제일 처음에 나온 이야기임에도 마지막까지 기다려 몇 자 더 적어보고자 한다.

 

여기까지 주욱 읽고 나면, 그럼 이스라엘인들은 고대 근동의 모든 종교관을 다 수용해서 그걸 탈신화화하고, 야훼라는 하나의 신적 존재를 만들어서 거기에 귀속시키는 재신화화 작업 밖에는 한 것이 없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처음에 저자의 발표를 들으면서 필자도 똑같은 의문이 들었으니깐). , 고대 이스라엘 종교의 고유성은 없는가? 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는 것이다(마치 고대 삼국의 문화 중 문화를 제외하고, 우리 민족 고유의 것이 얼마나 있는가? 라는 질문과 같은 맥락일 게다. 솔직히 이렇게 물어봤을 때 뭐라고 답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고).

 

저자는 사실대로 이야기한다. 사실 고대 이스라엘의 배타적 고유성이라고 할 만한 것은 거의 없다고. 그리고 이는 당연하다고, 왜냐하면 고대 이스라엘도 고대 근동 세계의 일부였으며, 오히려 제국을 이루지 못한 약소국이었기 때문에(실제 책 중간에는 강대국의 휘하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도시가 믿던 신을 못 믿고 上國의 신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된 사례도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큰 제국의 문물과 종교적 상징을 무작정 받들고 섬기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들을 자신들의 신앙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성찰의 기준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것을 고대 이스라엘의 영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배타적 고유성이란 비어 있지만(), 사실은 한 분을 향하는 태도’, 영성으로 꽉 차 있는 비움이라고 하고 있다. 이는 불교의 과는 분명 다르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한편으로는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적 심성은 블랙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반적으로 블랙홀로 모든 것이 들어가고 화이트홀로 모든 것이 빠져나간다~고 알려져 왔으며, 그 중간을 이어주는 통로가 바로 웜홀이라고 한다(물론 블랙홀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론적인 존재지만). 그렇게 봤을 때 블랙홀처럼 고대 근동의 여러 종교를 빨아들인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웜홀을 통과하듯 그 종교적 모티프들을 탈신화화하여, 재신화화를 거쳐 화이트홀로 뱉어낸 것만 같았다. 블랙홀과 웜홀, 화이트홀이 하나로 연결되었지만(입구-통로-출구) 각자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고대 근동의 종교 또한 그리스도교와 동시대에 존재하고 서로의 종교적 모티프들을 공유했지만, 결론적으로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간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하면, 우리가 흔히 환빠라고 말하는 집단이 숭배(?)하는환단고기류의 책들도 이런 시각에서 접근하면 어떨까 싶다. 이렇게 탈신화화하여 재신화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이야기도 변모하면, 단순히 위서다, 진서다~라는 이분법적 평가에서 벗어나 좀 더 생산적인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제 슬슬 끝을 내야겠다. 전체적으로 오랜만에 읽은 책이 생각 외로 유익하고 알차서 좋았으며, 성경에 대해서도 좀 더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과거에는 늘삼국사기삼국유사를 읽으면서 당대인들의 시각에서 이해해야지, 지금의 시각으로 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보다 한 번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절실히 느꼈다.

 

좋은 책을 읽게 해주신 주원준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arine 2012-06-12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에 들렀는데 역시나 좋은 책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제 마음에 쏙 드는 책들만 소개해 주셔서 늘 감사드려요^^

麗輝 2012-06-12 14:10   좋아요 0 | URL
marine님, 너무나 오랜만에 뵙습니다. ^^
그간 게을러서 책을 멀리했더니 이제서야 인사를 드리네요~
암튼, 잘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거짓과 오만의 역사
이희진 지음 / 동방미디어 / 2001년 8월
평점 :
품절


저자인 이희진 선생님의 책은 이번이 4권째다(공저 1권 포함). 맨 처음 전쟁사 책(『전쟁의 발견』)을 접하고, 저자가 전쟁사 전공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보다는 식민사학과 관련된 연구로 더 유명한 분이었다. 이 책은 지난번에 읽었던『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와 어떻게 보면 내용면에서 많이 유사한 책이다. 그 책보다 한참 먼저 출간되었기 때문에 내용면에서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기본 골조는 크게 차이가 없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당연히 '식민사학'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일본서기』, 그 와중에서도 임나에 대해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일단 책의 앞부분에는 과거에 방영했던 역사스페셜(필자는 이때 방송을 못 봤지만, 대강의 내용은 들어서 알고 있다)의 내용을 까는(?) 내용들이 나온다. 그래서 자칫 이 책의 주요 흐름이 역사스페셜을 까는 것인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서다보니 파급효과가 크고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공영방송을 까는 것이 독자들의 이해력을 높이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것은 안다. 이미 저자는『전쟁의 발견』에서도 컴퓨터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이용해 전쟁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력을 높이고자 했으니 말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이런 방법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교양서라고 해도 역사서적인데 이렇게 하면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암튼, 저자 개인이 선호하는 방식에 대해서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 책 앞부분에서 역사스페셜 방송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다룬 것은 조금 NG였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으로 앞부분의 내용은 나중에 나온 책이지만, 필자가 이보다 먼저 읽었던『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와 큰 차이가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적은 얘기들을 하고 있어서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필자는『일본서기』를 단순히 2주갑 인상해서 연표를 맞추는 것도 전적으로 믿을 수만은 없다고 보는 쪽이라서...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말 안 하고 넘어가겠다(학계 대다수의 중론을 깨부실만큼 아직 필자가 그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라서). 암튼, 기본적으로『일본서기』가 문제가 있는 책이고, 그 안에 헛점이 많다는 저자의 지적에는 공감한다는 정도만 밝혀두고 싶다. 

앞부분에서『일본서기』얘기가 주축이었다면 그 다음에는『삼국사기』가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서 주로 다루는 것이 바로, 한국고대사학계의『삼국사기』비판(근거없는)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었다. 실제 저자가 언급한 그런 고대사학계의 논문을 필자도 본 적이 있고, 그런 내용의 수업을 들었던 적도 있다. 그리고 필자가 늘 이상하게 생각했던 부분에 대해 저자가 콕 집어주고 있는 것 같아서 시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식의 역사 해석이 문제가 있음을 여러 후학들이 알고 있고, 이를 따르지 않는 연구성과들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쓴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지만, 불과 몇년전에 나온 또 다른 책에서도 저자가 식민사학에 대해서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어서 조금 놀랐다. 분명 식민사학의 잔재는 남아 있지만, 10년 전과 지금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방 직후와 이 책을 썼을 10년 전의 상황도 분명 달랐을 것이고. 그런데 저자의 책을 보면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이 식민사학이 학계를 장악하고 있고,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고 강경하게 주장하고 있다. 만약에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또 다른 책을 준비 중이라면 식민사학의 현실태에 대해서도 좀 자세하게 썼으면 하는 바램이다. 분명히 변화하고 있는 학계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몇몇 사실, 변화하지 않은 몇몇 사실만 계속 언급하는 것은 옳지 못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역시 저자의 '고고학'에 대한 비판은 이어지고 있다. 저자의 책에서 필자가 여러번 지적했듯이 저자가 고고학에 대해 비판하는 부분 중 상당 부분은 잘못된 비판이라는 얘기를 한 바 있다. 이 뒷 책들에 대해서 한 비판을 그보다 앞서 쓴 책에서 다시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겠지만, 몇가지만 적어보도록 하겠다. 

1. 고분에서 출토된 관모나 거울, 대도, 장신구에 대해 저자는 이는 교역에서도 흔히 다루어지는 물건들이므로, 정치적 상황과 상관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물건들은 정치적 상황과 연계해서 해석되는 물건들로서 일반 토기류와는 차원이 다른 위계품들이다. 이를 단순히 교역에서 다뤄졌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그냥 저자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야마모토 타카후미 선생님의『삼국시대 율령의 고고학적 연구』을 보면 이런 부분에 대해 잘 정리되어 있다. 과거의 유물을 현재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 고고학에서의 유물 연대 측정이 오차가 크다고 지적하면서 고고학에서 말하는 연대를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고고학에서는 단순히 자연과학분석에 의존한 탄소연대측정법만 갖고 편년을 하지 않는다. 이는 어디까지나 보조 자료일 뿐이다. 그리고 AMS 연대측정의 경우는 C14보다 더 정밀한 결과를 얻을 수 있고, 그외에도 연대 측정에 사용 가능한 방법은 굉장히 많다. 단순히 탄소연대측정법 하나만 갖고 고고학의 연대 측정이 어떻다~라는 것은 문제가 있는 시각이다. 사이토 츠토무 · 타구치 이사무 선생님의『고고자료 분석법』이라는 책만 봐도 고고학에서 연대측정에 어떤 방법들을 쓰는지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3.『가야연맹사』를 비롯한 가야사 관련 저서를 많이 저술한 김태식 선생님에 대해 저자는 비판을 가한다. 그런데 재밌는 것이 그 선생님을 비판하면서 고고학을 비판한다는 것이다. 김태식 선생님은 정작 고고학자가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그 선생님의 연구성과는 오히려 가야 고고학 전공자들에게도 비판받고 있는데(당장 필자만 봐도 김태식 선생님의 견해는 문제가 있다. 비전공자인 필자가 봐도). 그러한 사실을 거론하지 않고, 책에 이렇게만 써 놓으면 독자들은 이게 정말로 고고학계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4. 저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고고학을 빌미로 생겨난 신화 중 또 다른 것 하나는 정치적 변혁은 반드시 고분 · 유물에 반영된다는 발상이다'라고. 어느 고고학자가 단순하게 그렇게 생각하겠는가? 유물 및 유구에 반영될만한 정치적 변혁이 있을 경우에 그렇다고 하는 것이지. 이는 단순히 정복자들이 피정복민을 학살하거나 쫓아내는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저자는 이를 아주 단순하게 생각한다. 그렇게 따지면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왜 시기별로 토기가 변화하겠는가? 그때마다 주민이 전부 교체됐으니깐? 그리고 변화하지 않는 시기는 주민 교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아니다. 유물의 변화 양상을 단순하게 '정치적 변혁'이라는 용어 하나로 대체하려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순발 선생님의 경우, 백제토기의 탄생 시점을 곧 백제라는 국가의 등장 시점과 맞물려 해석한다. 그리고 그 시기를 3세기로 잡는데, 물론 필자는 이에 반대한다. 문헌에 이미 건국된지 수백년이 지난 백제가 왜 3세기에 등장했다고 해야 하는가? 그런데 분명한 것은 3세기를 기점으로 백제토기에 있어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종의 탄생과 새로운 제작기법의 등장 등등. 이런 부분을 합리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즉, 저자의 저런 생각은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린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유물 해석의 다양한 사례를 저 한줄로 대체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틀린 것이지만, 저런 생각이 기본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맞기 때문이다. 

5. 저자는 나주 반남 고분을 두고 '고분 규모는 참고자료일 뿐'이라고 한다. 잉?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저자는 가야 고분이 백제보다 크지만 가야가 백제보다 강력하지 않았고, 고구려 고분이 전방후원분보다 작다고 고구려가 왜보다 약소국이었다~라고 보지는 않는다...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 크기'뿐'만이 아니다. 예전에 옹관 문화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한 글(클릭)에서도 적었지만, 4~5세기에 등장하는 옹관 문화가 이전 시기의 것과 격을 달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왜 갑자기 4~5세기에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가 6세기에 사그라드냐는 것이다. 그리고 하필 그 시기에 거대한 대형 옹관묘가 나타났다는 것이 관건이지, 단순히 영산강 유역에 큰 무덤이 있어서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만약 고구려나 신라의 경우에도 특정 지역, 특정 시기에 거대 고분군이 존재한다면 분명 이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현상이라 할 수 있겠으나 고구려와 신라의 경우에는 이런 흔적이 없다. 그래서 영산강 유역이 백제사와 맞물려 더 특이한 존재이기도 한 것이고. 하나 더 말하자면, 한성백제 시절에 충남 연기군에서 백제 고분이 1기 확인되었는데, 이는 지금껏 확인된 백제 고분 중 최대 규모의 지하식 석실분이다. 그리고 이를 비롯해 백제 각지에는 지역색이 강한 지방 수장층의 것이라 볼만한 고분군이 많이 있다. 이는 고구려와 신라와는 분명 다른 현상이다. 그래서 필자는 백제의 지방통치제도가 고구려, 신라와 달랐다고 생각한다. 

암튼, 대강 이 정도다. 그밖에 2개의 백제라든가, 백제의 요서진출에 대한 부분은 필자 역시 저자의 지적과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 일단 근거가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뭔가를 얘기하는 것은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헌 몇줄을 두고 이리 해석하고, 저리 해석해서 기존과 다른 견해들을 내놓는 것에 필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필자가 저자의 책에 대해 갖는 생각은 딱 세 가지다. 

   
 

첫째는 아무리 일반 대중들을 위해 쓴 책이라 할지라도 너무 쉽게 다가서려고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기본적으로 역사 관련 교양서라면 어느 정도 전문성을 겸비해야 하는데, 저자는 전문적인 지식 전달의 방법으로 너무 대중적인 방식을 써서 오히려 책의 수준을 낮추는 듯한 안타까움이 늘 배어있다. 특히『전쟁의 발견』에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그 中道라는 부분에 점수를 준다면 그리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다. 

둘째는 식민사학에 대해 열심히 파헤쳐서 아무도 가지 않는 힘든 길을 가는 것은 인정한다.『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에서도 분명히 밝혔듯이, 그건 아무나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 문제는 너무 그쪽에 대한 생각이 강하다보니 생각하는 바가 極으로 치달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위에서 적었듯이 식민사학이 분명 예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그 잔재가 있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늘 한결같지는 않지 않은가? 분명 변화가 있고 그 안에는 부정적인 변화와 함께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부분에서 저자는 늘 골고루 언급하지 않는다. 식민사학이 지금도 남아있고, 어떻게 남아있는지만 언급한다. 그래서 저자의 책을 보면 분명 아닌 것도 있는데, 왜 그렇다는 것만 강조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일반 대중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떻겠는가? 그리고 관련 학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싶다. 

셋째는 고고학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이 눈에 띈다. 문제는 저자가 고고학 관련 논문이나 책은 거의 인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저자가 고고학을 비판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 비판의 대상은 고고학계의 중핵을 이루는 사람도 아니다(김태식 선생님처럼). 또한, 이전에 썼던『잃어버린 백제 첫 도읍지』에서도 언급했지만, 고고학계를 정식으로 비판하려면 그 학문적인 부분을 논리적으로 공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면모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고고학 논문이나 책을 비판하려면 당연히 그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 없이 몇몇 해석, 고고학을 인용한 역사학자의 주장들만 갖고 고고학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실제 이 책의 참고문헌 목록만 봐도 제대로 된 고고학 논문이나 책은 하나도 없었다. 저자의 고고학에 대한 생각은 이 책에서 쓴 것이 그대로 이후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뭐 나중에 다른 책의 서평을 쓴다해도 빠짐없이 나오긴 할 것 같다. 그렇다고 저자가 생각을 바꾸지도 않을 것 같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대 1차 사료인 고고자료와 문헌이 상충된다면 고고자료가 우선시 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나주 반남동 고분군 같은 녀석들 말이다. 이를 단순히『삼국사기』에는 그런 내용이 적혀 있지 않는데, 혹은 백제가 이때까지도 마한을 합병 못 했다고...흥분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수순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고대사 연구에 있어 고고자료를 빼놓고는 고대사를 온전히 복원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했을때 저자의 고고학에 대한 인식은 저자 스스로의 연구에 있어서도 마이너스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이상이다. 전체적으로 쓴지 좀 된 책이라 그런지 최근에 읽었던 것보다 필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나 이번 책에서는 전체적인 일관된 줄기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처럼 아예 식민사학에 대해 비판을 하는 글을 쓰려고 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 책에서는 그것이 뚜렷하게 잡혀 있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책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는 풍겼지만 말이다. 그러다보니 초반부의『일본서기』비판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식민사학 비판까지 이어지던 분위기가 중간 이후로 갑자기 고고학 비판으로 넘어가더니, 무령왕릉이 과장된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하고, 백제의 요서 경략설 등을 비판하는 것으로 이어가고 있었다. 임나 등으로 시작한 내용이 왜로 넘어가더니 이것이 백제로까지 연결된 셈인데, 이 과정에서는 식민사학에 대한 내용이 점점 엷어져 고고학에 대한 비판이 主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앞뒤 연결이 매끄럽지 못 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더 먼저 읽은『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과 비교되면서 더 크게 와닿았던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 

전체적인 역사에 대한 접근법이라든가, 저자의 시각은 이미 책을 통해서든, 온라인을 통해서든 여러번 접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다. 그리고 식민사학 타도(?)를 위한 저자의 열의 또한 인정하지만, 필자가 위에서 말한 세가지는 안타까운 부분이다~라는 말로 끝맺음을 맺도록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석 : 사라져버린 세계의 흔적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0
이베트 게라르 발리 지음 / 시공사 / 1995년 4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시공 디스커버리를 꺼내 들었다. (필자의 게으름이 갈수록 커가는 듯. T.T) 이 책은 지난번에 읽었던 9권『공룡, 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내용상 겹치는 부분이 꽤 있었다. 그럼에도 별 5개를 준 이유(지난번에는 별 4개)는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이 그만큼 더 풍부하기 때문이다. 미리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지난번 책에서는 공룡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만 다루고, 그 수준 또한 개략적인 내용들이 많았던 것에 비해 이번 책에서는 '고생물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관련 내용들을 하나하나 다루고 있었으며, 내용 또한 상세했기 때문에 지난번보다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실제로 책의 분량도 지난번 책에 비해 30여쪽이 더 많기도 했다).

책 표지를 펼치면 아주 흥미로운 내용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동토에서 통째로 얼어붙은 매머드에 대한 이야기를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마치 살아서 튀어나올 것만 같은 그런 매머드를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 매머드가 발견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사실 이 내용은 필자도 처음 본 것이었다). 당시 매머드가 발견된 곳은 시베리아, 베레조프카 강변이었으며 그것을 발견한 라무트족 사냥꾼은 이르쿠츠크 총독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때는 1900년 8월. 이듬해 5월 과학 아카데미가 파견한 과학자들은 1만 6,000루블의 조사비를 들고 해당 조사지역까지 장장 6,000㎞를 이동했고, 9월 2일 비로소 매머드와 조우할 수 있었다(우와...정말 넓은 땅!). 9월 14일, 낙엽송 사이로 매머드 사체가 보였으며, 꽁꽁 얼어붙은 땅에서 매머드를 떠(?) 가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과학자들은 주변의 얼음을 녹이기로 결정했고, 매머드 위로 통나무집을 지었다(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참 대단했다). 얼음은 잘 녹았겠지만, 문제는 꽁꽁 얼어있던 매머드마저도 녹아버려 부패하기 시작했다는 문제가 생겼다(당연한 결과겠지만...당시 어쩔 수 없었으니). 이후 6주에 걸쳐 과학자들은 매머드 사체를 해체했고, 10월 10일 드디어 그 각각의 덩어리들을 가죽 포대에 집어넣고 이동할 준비를 끝마쳤다. 단 하루만에 가죽 포대는 꽁꽁 얼었고, 10월 15일 빙원 위에는 1톤이 넘는 매머드의 조각난 사체를 운반하는 행렬이 장관을 이루었다.

순간 외찌가 떠올랐다. 외찌 역시 발견 직후 매우 거칠게 다뤄져 애초의 양호한 상태에 손상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클릭). 그런데 지금 매머드에 대한 일화를 보니 이건 뭐 더 심한 훼손이 이뤄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책장을 열어 한 4~5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 상당히 흡입력이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필자가 잘 몰랐던 내용이기도 했고, 필자가 전공하는 고고학과 맞물려 당시 학문 수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운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책의 본문을 살펴봤다.

제1장은 <신화와 전설>이다. 암모나이트부터 시작해서 정체를 알 수 없어 거인의 것이라 추정되온 거대한 뼈(대부분 공룡과 매머드와 같은 이미 멸종된 대형동물들의 뼈), 용과 악령, 유니콘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발견된 여러 종류의 화석을 놓고 다양한 해석을 내려왔다. 이러한 해석들이 현대인의 눈에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비칠지도 모르며, 어처구니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을 설명하려 노력한 것이라는 사실만은 인정해야 한다. 지식이 부족해서 화석의 비밀을 밝히지는 못했지만, 마침내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그 역사 속에서 화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선학의 연구성과를 중요시 여기는 것이다. 한때 필자가 이미 출간된지 오래된 학회지(20년 된 것도 있고, 더러 10년 이상 된 것도 있었다)를 모으고, 읽는 것에 대해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연구성과는 의미가 없다. 새로운 학문적 성과가 계속 나오는데 요즘 것도 아닌 그것들을 왜 보냐?' 아니,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그럼 연구史는 왜 필요하며, 우리가 지금 연구하는 분야의 토대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모든 후학들이 無에서 有를 창출하고 있는 것인가? 저자는 예로부터 인류가 끊임없이 자신들을 둘러싼 알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것이 오늘날 고생물학의 탄생과 발전을 가져왔다고 보고 있었다. 필자 역시 그에 동의했음은 물론이고.

르네상스 시절, 사람들은 그 알 수 없는 자연현상에 대해 이런저런 얼토당토않는 말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든가, 베르나르 팔리시와 같은 몇몇 선구자적인 인물들은 합리적인 접근법을 통해 화석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밖에 파비오 콜로나라든가, 닐스 스텐센과 같은 학자가 조개껍질 및 물고기 화석을 현재 생물과 비교해 그 정체를 밝혀내기 시작했다. 특히 스텐센은 '지층은 아래쪽에 있는 것일수록 역사가 오래된 것이다'라는 지질학의 기본원리를 기술하여, 화석을 발견장소에 따라 연대순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화석의 역사를 아는 데에 있어 지질학이 빠질 수 없는 필수학문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당시 그의 활동은 학자들 사이에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과학적 발견과 신학적 신조를 양립시킬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몇몇 학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화석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자 사람들은 점점 새로운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 유럽에서 자취를 감춘 동물들은 그럼 과연 어디로 갔을까? 사람들은 바다 밑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홍수로 인해 모든 동물이 싹 다 멸종해버렸다는 이야기들도 나왔다. 19세기의 천변지이설(天變地異說)이라든가, 지구의 기후변화설, 인위적인 종의 절멸설 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당시 사람들은『성경』에 기반한 역사를 연구했기 때문에 천지창조는 B.C 4004년에 일어났다는 얘기가 나오거나, 천치창조가 발생하고 대홍수가 나기까지 1600년이 경과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을 믿었었다. 이는 지금이야 우스운 일이지만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혁신적인 생각이었다(현대인 중에서도 1600년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와중에 지구의 나이가 7만 5천살이며, 아담과 이브가 태어난 것은 6,000~8,000년 전이라는 정말 대담한(?) 이야기를 하는 뷔퐁 같은 사람도 있긴 있었다. 그리고 카를 폰 린네가 屬과 種의 개념을 확립해서 수만 개에 달하는 동식물의 이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점차 지질학, 생물학이라는 학문이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화석에 대한 연구 역시 점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제3장 <과학자의 시대>가 되면 주인공으로 퀴비에가 등장한다. 그는 '대이변설'과 '종의 불변설'로 지구와 생물의 역사를 설명했다. 그는 '미지의 동물 사체가 많이 발견되고 있는데 어째서 현존하는 동물 사체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지구에 어떠한 혁명(Revolution)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며, 그로 인하여 과거의 동물이 멸종되어 현존하는 동물에게 자리를 내주었기 때문이다.'라고 보았다. 이는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했는데,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 구체제를 완전히 뒤엎었던 것처럼 대이변이 일어나 오랫동안 존속되어 온 동물세계를 파괴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물론 그러한 대이변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퀴비에도 답변을 못 했다. 그리고 당시에 생물이 진화한다는 식의 생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고). 퀴비에는 나폴레옹이 프랑스 원정때 약탈해온 따오기 미라를 보고 5,000년 전의 유해와 현존하는 동종의 동물 사이에 다른 점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5,00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종은 변하지 않는다고 봐야 옳았다. 하지만 그런 퀴비에에 반대하는 생각이 나타났다. 바로 라마르크가 '생물변천설'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라마르크의 생각은 이후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에게 이어졌다. 물론 도르비니처럼 퀴비에의 '종의 불변설'에 경도된 학자도 있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학계는 크게 두가지 주장이 대립되고 있었다. 하지만 다윈이 등장하면서 학계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진화론이 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것이다.

그렇게 책은 제4장 <선사시대의 제왕>으로 넘어가는데, 이 부분의 내용이 앞의 9권과 비슷한 면이 많았다. 이구아나돈에 대한 잘못된 사람들의 생각, 공룡 화석을 발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활동하는 발굴단 등등. 그렇게 책은 마무리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모든 시공 디스커버리 책은 맨 뒷부분에 '기록과 증언'이라고 하여 앞의 올칼라 본문과 달리 부록식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장을 따로 마련해 두는데, 이 책에서는 그 부분이 白眉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내용이 괜찮고 유익하다.

먼저 성군 루이와 레바논 화석이라는 것은 이 책에서 처음 봤는데, 십자군원정때 이미 유럽에 알려진 물고기 화석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런 화석들이 유럽에서 유통(?)되고, 음성적으로나마 소문이 들렸다는 생각을 하니 흥미로웠다. 그밖에 당대 천재라고 불렸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지층 및 화석에 대한 생각을 소개한 것도 재밌었다. 그 중 한 대목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내용은「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고(手稿)」의 일부분이다.

   
  조개껍질이 토양의 성질이나 하늘의 섭리로 만들어졌다고 믿는 사람들이여! 당신들의 머릿속에 조금이라도 이성이 존재한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조개껍질에는 성장의 흔적을 나타내는 선이 새겨져 있지 않은가. 또한 크든 작든 간에 조개들은 먹이를 먹어야만 성장이 가능하다. 그리고 먹이를 찾기 위해서는 이동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땅 속에서 이동을 한단 말인가.

조개껍질이 옛날부터 그곳에 있었다고, 그리고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토양과 계절의 장난 때문에 생겨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여! 나는 당신들한테 이렇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그런 힘이 작용한 것이라면 발견된 생물의 종류와 나이가 같아야 할 것이다. 종류와 나이가 각기 다른 다양한 생물들이 같은 장소에서 발견될 수 있는가. … 그리고 그것이 토양의 힘 때문이라면 '화살' 또는 '뱀의 혀'라고 불리는 물고기들의 이빨과 뼈가 그 곳에 섞여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바다생물이 해변으로 밀려온 게 아니라면, 그만큼 다양한 동물의 유해가 한곳에 집중되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산에서 발견된 조개껍질이 별의 작용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별의 어떠한 작용이 이토록 다양한 종류의 조개껍질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재밌다. ^^ 뭔가 요즘에도 다 빈치의 이러한 일갈(!)은 시사하는 바가 많은 것 같다(아마 필자랑 같은 느낌을 받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듯 싶다).

그리고 이 책에서 재밌는 점은 이 책의 저자인 이베트 게라르 발리가 자신이 썼던 다른 책이나 논문들(지질학 혹은 고생물학, 고고학 관련 서적들)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해 실었다는 점이다. 대개 이 부분에는 옛날 학자들의 고전이라든가, 옛날 이야기, 소설 등이 주로 실리는데(본문의 객관적인 사실을 방증해 줄 수 있는 보충자료의 성격이랄까?), 저자 본인의 저술을 그대로 원용하는 것이 독특했다(물론 앞의 그러한 내용들도 같이 포함되어 있긴 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만큼 이 책의 학문적 수준을 높여주는 효과를 나타냈고, 지식 습득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유용하게 작용했다고 본다.

특히 책 후반부에 수록된 <화석화의 과정>, <고생물학의 역할>, <돌에 남겨진 발자국>, <석탄숲>, <오모 계곡, 300만 년의 전시장>, <현대적인 화석발굴단>, <산업발전에 공헌하고 있는 화석들>, <미고생물학의 놀라운 세계>, <고생물학자의 임무와 기술> 등의 소챕터들은 상당히 유용했다(35쪽 가량의 분량인데 이는 전체 책의 무려 17%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고고학과 어떻게 보면 밀접한 연관이 있겠지만, 분명 자연과학적인 방법론이 더 많이 동원되는 학문이 바로 고생물학일 것이다. 특히 현장에서야 비슷한 면이 많겠지만, 연구실에서의 작업은 많이 다른 것이 사실이고. 고생물학에 대한 어려운 개설서보다는 이 책 한권으로 간단한 흥미를 유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공 디스커버리 편집부에서 일부러 9권과 10권을 이렇게 나란히 출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잘 짜여진 조합이라는 생각도 든다. 암튼,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말이 있듯이 작은 책자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광개토태왕의 위대한 길
김용만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저자가 오랜만에 고구려 관련 연구서적을 냈다. 인물평전의 형식을 띤 책으로는 『연개소문』이후로 2번째인 것 같다. 오래전부터 광개토태왕과 관련한 책이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있어왔던 터에 이렇게 나오게 되니 반갑기도 하고, 어떤 책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되는 바도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진작에 책을 읽긴 했지만, 다른 일로 바빠 차일피일 서평쓰는 것을 미루다가 이제서야 이렇게 쓴다.

필자는 먼저 광개토태왕에 대한 책이 나왔다는 것 자체를 중요시하게 여긴다. 사람들은 한국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역사가 무엇이냐고 물었을때 대부분 고구려를 꼽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고구려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코 광개토태왕이 압도적인 1위를 하지 않을까 싶다. 즉, 어느 순간부턴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고구려-광개토태왕이라는 하나의 이미지가 고정적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중에 나온 광개토태왕 관련 서적들을 보면, 생각보다 적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필자가 갖고 있는 책만 봐도 윤명철의『광개토태왕과 한고려의 꿈』(2006), 전경일의『광개토태왕, 대륙을 경영하다』(2007), 다케미쓰 마코토의『고구려 광개토대왕』(2007-번역서는 2009) 등이 전부다. 그에 반해 <광개토태왕비문(이하 비문으로 총칭)>에 대한 책은 한중일 삼국을 망라하여 상당히 많긴 하지만. 이처럼 관련된 문헌이나 자료가 별로 없어서 역사가 아니라 거의 신화 속에 머물러 있는 인물이 바로 광개토태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광개토태왕을 실제 역사 속의 실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한 최초의 시도가 아닐까 한다. 더불어 이미 연개소문에 대해 그러한 작업을 했던 저자이기에, 이 책에서 실시한 복원 작업 또한 상당히 흥미로웠다.

책의 내용을 본격적으로 살펴보면...저자는 크게 서론(1부. 광개토태왕 시대로 들어서기), 본론(2부. 광개토태왕의 정복 활동), 결론(3부. 고구려와 광개토태왕) 식으로 큰 틀을 정하고 그 안에 13개의 세부 장을 두었다. 1부에서는 광개토태왕의 등장 이전에 대한 역사적 개론, 그리고 비문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며, 2부에서는 우리가 자주 접했던 광개토태왕의 정복 활동(물론 이 중 상당 부분은 비문의 내용에 해당한다)이, 3부에서는 광개토태왕을 중심으로 본 당대 고구려와 우리들이 인식해야 할 중요한 사실들을 중점적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필자가 흥미롭게 살펴본 부분들을 찬찬히 뜯어보겠다.





1. 1년의 연대 오차 수정

저자는 비문에 나오는 연대와『삼국사기』의 연대가 1년 차이가 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냈다. 이는 그동안 '어? 이건 뭐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니야? 1년 차이나는 거?'라고 쉽게 생각하고 넘어갔던 부분이었고, 필자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삼국사기』의 기록을 무조건 비문의 연대에서 1년씩 밀어버리면 안 된다고 한다. 지금껏 학계에서는 광개토태왕의 즉위년을 391년으로 당기고, 고국양왕의 말년 기록을 광개토태왕의 업적으로 인정하는 선에서 그쳤지만, 그렇게 되면 동시기 백제, 신라에서 벌어진 사건들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비문을 기준으로 광개토태왕의 즉위년을 391년(신묘)으로 보고, 내물 36년은 390년(경인), 실성 즉위년은 401년으로 수정하였다.

그렇게 된다면, 고구려는 400년 경자대원정을 통해 단순히 백제-가야-왜 연합군을 물리친 것에서 그친게 아니라 아예 신라 정권을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실성 즉위년을 402년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딱 1년의 오차를 수정함으로써 저자는 광개토태왕이 400년에 벌인 경자대원정의 목적이 보다 분명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더불어『삼국사기』에서 비문에 적힌 고구려의 신라 구원 작전을 의도적으로 감췄다고 보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이희진은『전쟁의 발견』에서 '신속한 작전 덕분에 한반도 남부에서 왜까지 걸쳐 있던 反 고구려 세력권이 붕괴되었다.'(131쪽)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면서 5만이라는 대군을 동원한 이유에 대해 '왜군이 그정도 수준의 전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적을 압도하고, 주변 국가들에게 고구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함(121~124쪽)'이라고 적고 있는데(그러면서 미군이 수십만 대병으로 그레나다를 침공한 사례를 들었는데, 정작 미군이 동원한 병력은 수십만이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뭔가 설명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저자의 책을 보면서 뭔가 새로운 시각으로 당시 상황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보다 분명한 전쟁명분이나 목적을 상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저자는 광개토태왕 즉위년, 거란 공격 시점, 한성백제와의 전쟁 기사(관미성 함락기사 포함), 후연의 목저성 침입 시기, 광개토태왕 서거년 등에 대해 연대를 조정하였다. 비문과 문헌의 오차를 수정함으로써, 당시 여러 사건들이 일어난 연대표부터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필자는 책에 한없이 집중하고 있었다.

2. 담덕의 인간적인 면

저자는 담덕이 어린 시절,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고 어떤 상황 속에서 컸는지에 대해 서술하였다. 또한, 소수림왕-고국양왕의 재위시 있었던 사건들을 보다 상세히 살펴보면서 큰아버지와 아버지에게서 담덕이 무엇을 물려받았는지를 언급하였다. 또한, 소수림왕이 실시한 여러 정책들에 대해 다소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예를 들면 율령반포가 갖는 의미, 태학 설립이 갖는 의미, 불교 공인이 갖는 의미 등). 막연히 문헌에 적혀 있는 문구를 그대로 해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당시 시대상황과 결부시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소년 담덕의 인간적인 면모 또한 차근차근 그려지는 것 같았다.

3. 신라사에 끼친 고구려의 영향

저자는 고구려의 신라 구원 전쟁(400년 경자대원정)이 신라사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라고 재차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신라가 고구려의 신민으로 지냈던 100여년의 시간은 퇴보가 아닌 발전을 위한 시기였으며, 신라사를 앞세우기 위해 고구려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

당시 신라에서는 마립간 호칭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시기가 고구려의 신민으로 있던 시기와 겹치며 또한 김씨 족단의 왕위 독점 시기와도 맞물린다. 이 마립간이라 불리는 지도자는 기존의 귀족층과는 한층 격이 높은 존재로 자리매김하는데 그 배후에는 고구려라는 강력한 조력자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우경 등과 같은 선진 농경기술을 비롯해 거문고와 탈춤, 천문지식과 척도, 가람배치 및 율령 등 다방면에 걸쳐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다. 이는 신라 중기 지방관의 명칭이 고구려 것과 동일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개중에는 각배와 같은 중앙아시아의 문화양상도 있는데, 저자는 고구려가 중국이나 서역에서 받아들인 문화를 신라에 전파해준 중개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적고 있다.

이처럼 저자는 광개토태왕의 남해안 원정은 고구려의 문화와 제도를 한반도 남쪽에 광범위하게 전파해 삼국 간 일체감을 심어줌으로써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닦은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물론 신라에 비해 가야에 대해서는 이 정도의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 했지만). 기존에는 단순히 정치-군사-외교적인 관점에서 고구려가 신라를 구원했고, 그 결과 어떠어떠한 일이 벌어졌다...라고 접근했지만 저자는 보다 거시적인 안목, 새로운 안목으로 당시 사건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4. 보다 구체화된 후연과의 전쟁 과정

250~263쪽에 걸쳐 저자는 후연과 고구려와의 전쟁 과정을 정리하고 있다. 뭐 별거 없겠지~하고 넘어가려는데 처음 보는 내용이 등장했다. 404년 고구려가 후연의 연군을 공격해 100명을 죽인 것에 대해 지배선은 그 곳에 있던 모용황의 사당을 광개토태왕이 부수고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한 것으로 해석한 바 있다. 그러나 저자는 더 나아가 당시 고구려와 후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고, 그 결과 후연군 5,000명이 죽으면서 후연이 패배했다고 해석했다(저자가 인용한『자치통감』의 기록은 그간 학계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영토 확보까지 이어지지는 못 했고 말이다. 405년 1월 곧바로 후연이 고구려 요동성을 공격한 것을 보면 말이다.

저자는 왜 연군까지 진출한 고구려가 바로 후연에게 요동성을 공격받아야 했는지? 에 대해 404년 11~12월 무렵 왜군이 고구려 대방계를 침입했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즉, 당시 고구려는 2개의 전선을 유지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는 대방계에서 곧 왜군을 몰아내고 후연과의 전쟁에 전념한다. 그런데 뒤이어 등장한 기록들은 어째 이상하기만 하다. 404년 11월 사냥을 나섰다가 호랑이와 이리에게 물려죽거나 얼어죽은 병사가 5,000명이라는 기록, 405년 1월 요동성 공격에서 후퇴하다가 큰비와 눈을 만나 대다수의 병사가 죽었다는 기록, 406년 1월 3,000리나 행군해 지친데다 추위에 시달린 병사들의 시체가 길을 덮었다는 기록들 모두. 이를 두고 저자는 고구려와 후연간의 전쟁 기록이 의도적으로 은폐되었고, 오늘날 이렇게 남게 되었다고 보았다. 더불어 요서 의현지방에서 발견된 고구려 불상을 통해 이 시기 고구려가 대릉하 일대까지 진출했다고 주장했다.

기존 연구에 비해 후연과의 전쟁 과정이 보다 구체화됨에 따라 당시 고구려의 대외전략에 대한 일면을 엿볼 수 있었다.

5. 광개토태왕이 남긴 vision

광개토태왕은 고구려를 王國에서 帝國으로 만든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혼자 그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은 아니다(불가능하기도 했고). 저자는 그래서 소수림왕-고국양왕으로 이어지는 선대 왕들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으며, 광개토태왕의 신하들과 그러한 유능한 신하들이 생겨나게 된 배경(율령 반포, 태학 설립 등)에 대해서도 언급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광개토태왕이 만능 엔터테이너에다가 슈퍼맨이었다~라고 보는 기존의 신화적 이미지가 많이 변화된 것이 사실이다. 마치 한글을 세종대왕 혼자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상식화되면서 세종대왕을 한국사상 둘도 없는 위대한 군주로 평가하는 시각이 많이 변화한 것처럼 말이다. 그게 아마 이 책에서 저자가 추구하는 첫번째 목표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두번째 목표는 바로 광개토태왕이 행한 업적을 제대로 살펴보자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를 필자는 vision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는 당시 고구려인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고, 새로운 이상과 꿈을 심어주었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한걸음 한걸음의 내딛음은 곧 고구려라는 국가의 vision이 되었고, 고구려가 제국으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본다. 물론 그가 행한 內治의 흔적은 기록에 많이 남아있지 않다. 저자도 최대한 기록을 짜내어 몇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분명 그보다 더 많은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고, 그 결과 고구려는 富國强兵을 이루었다. 그리고 오늘날 광개토태왕의 업적은 어떤 식으로 다가서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단순히 국민 정서를 자극하기 위해서, 공허한 외침에만 그칠 '만주는 우리땅!'과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광개토태왕이 거론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행동을 해서 고구려가 제국이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생각의 場을 넓혀주는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상 몇가지 부분에서 필자가 흥미롭게 봤던 내용들을 언급해봤다.

광개토태왕은 진즉에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져야 했지만, 1,500년이 넘어서야 조금씩 그의 실체가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다시 그의 실체를 올바르게 다듬는 작업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러한 작업의 초석이 되기에 충분하며, 이제 앞으로 '영웅' 광개토태왕이 아닌 '인간' 광개토태왕의 면모를 밝혀내는 작업들이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덧글.

죽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행복하다고 선포하지 말지어다. 한 인간을 인정하게 되는 것은 다만 죽음의 순간일 뿐이다.

『외경서』, 시라시드 11:27~28

광개토태왕이 죽고 난 후, 그의 아들 거련은 <광개토태왕비>를 세워 아버지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의 어떤 면모를 기억해야 하는지 고구려와 주변 국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다(고구려 역대 군주 중 이런 아버지와 아들이 또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년이 넘는 기간동안 그러한 기억의 재생산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신비로운 일이기까지 하다. 그 신비로운 현상 속에서 광개토태왕이 신화적 인물이 됐는지도 모른다. 이제 진정으로 광개토태왕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 그가 살아 생전 행복했고, 여러 백성들이 인정하고 사랑하는 군주였음을 널리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