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오만의 역사
이희진 지음 / 동방미디어 / 2001년 8월
평점 :
품절


저자인 이희진 선생님의 책은 이번이 4권째다(공저 1권 포함). 맨 처음 전쟁사 책(『전쟁의 발견』)을 접하고, 저자가 전쟁사 전공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보다는 식민사학과 관련된 연구로 더 유명한 분이었다. 이 책은 지난번에 읽었던『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와 어떻게 보면 내용면에서 많이 유사한 책이다. 그 책보다 한참 먼저 출간되었기 때문에 내용면에서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기본 골조는 크게 차이가 없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당연히 '식민사학'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일본서기』, 그 와중에서도 임나에 대해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일단 책의 앞부분에는 과거에 방영했던 역사스페셜(필자는 이때 방송을 못 봤지만, 대강의 내용은 들어서 알고 있다)의 내용을 까는(?) 내용들이 나온다. 그래서 자칫 이 책의 주요 흐름이 역사스페셜을 까는 것인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서다보니 파급효과가 크고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공영방송을 까는 것이 독자들의 이해력을 높이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것은 안다. 이미 저자는『전쟁의 발견』에서도 컴퓨터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이용해 전쟁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력을 높이고자 했으니 말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이런 방법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교양서라고 해도 역사서적인데 이렇게 하면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암튼, 저자 개인이 선호하는 방식에 대해서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 책 앞부분에서 역사스페셜 방송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다룬 것은 조금 NG였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으로 앞부분의 내용은 나중에 나온 책이지만, 필자가 이보다 먼저 읽었던『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와 큰 차이가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적은 얘기들을 하고 있어서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필자는『일본서기』를 단순히 2주갑 인상해서 연표를 맞추는 것도 전적으로 믿을 수만은 없다고 보는 쪽이라서...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말 안 하고 넘어가겠다(학계 대다수의 중론을 깨부실만큼 아직 필자가 그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라서). 암튼, 기본적으로『일본서기』가 문제가 있는 책이고, 그 안에 헛점이 많다는 저자의 지적에는 공감한다는 정도만 밝혀두고 싶다. 

앞부분에서『일본서기』얘기가 주축이었다면 그 다음에는『삼국사기』가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서 주로 다루는 것이 바로, 한국고대사학계의『삼국사기』비판(근거없는)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었다. 실제 저자가 언급한 그런 고대사학계의 논문을 필자도 본 적이 있고, 그런 내용의 수업을 들었던 적도 있다. 그리고 필자가 늘 이상하게 생각했던 부분에 대해 저자가 콕 집어주고 있는 것 같아서 시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식의 역사 해석이 문제가 있음을 여러 후학들이 알고 있고, 이를 따르지 않는 연구성과들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쓴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지만, 불과 몇년전에 나온 또 다른 책에서도 저자가 식민사학에 대해서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어서 조금 놀랐다. 분명 식민사학의 잔재는 남아 있지만, 10년 전과 지금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방 직후와 이 책을 썼을 10년 전의 상황도 분명 달랐을 것이고. 그런데 저자의 책을 보면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이 식민사학이 학계를 장악하고 있고,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고 강경하게 주장하고 있다. 만약에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또 다른 책을 준비 중이라면 식민사학의 현실태에 대해서도 좀 자세하게 썼으면 하는 바램이다. 분명히 변화하고 있는 학계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몇몇 사실, 변화하지 않은 몇몇 사실만 계속 언급하는 것은 옳지 못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역시 저자의 '고고학'에 대한 비판은 이어지고 있다. 저자의 책에서 필자가 여러번 지적했듯이 저자가 고고학에 대해 비판하는 부분 중 상당 부분은 잘못된 비판이라는 얘기를 한 바 있다. 이 뒷 책들에 대해서 한 비판을 그보다 앞서 쓴 책에서 다시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겠지만, 몇가지만 적어보도록 하겠다. 

1. 고분에서 출토된 관모나 거울, 대도, 장신구에 대해 저자는 이는 교역에서도 흔히 다루어지는 물건들이므로, 정치적 상황과 상관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물건들은 정치적 상황과 연계해서 해석되는 물건들로서 일반 토기류와는 차원이 다른 위계품들이다. 이를 단순히 교역에서 다뤄졌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그냥 저자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야마모토 타카후미 선생님의『삼국시대 율령의 고고학적 연구』을 보면 이런 부분에 대해 잘 정리되어 있다. 과거의 유물을 현재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 고고학에서의 유물 연대 측정이 오차가 크다고 지적하면서 고고학에서 말하는 연대를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고고학에서는 단순히 자연과학분석에 의존한 탄소연대측정법만 갖고 편년을 하지 않는다. 이는 어디까지나 보조 자료일 뿐이다. 그리고 AMS 연대측정의 경우는 C14보다 더 정밀한 결과를 얻을 수 있고, 그외에도 연대 측정에 사용 가능한 방법은 굉장히 많다. 단순히 탄소연대측정법 하나만 갖고 고고학의 연대 측정이 어떻다~라는 것은 문제가 있는 시각이다. 사이토 츠토무 · 타구치 이사무 선생님의『고고자료 분석법』이라는 책만 봐도 고고학에서 연대측정에 어떤 방법들을 쓰는지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3.『가야연맹사』를 비롯한 가야사 관련 저서를 많이 저술한 김태식 선생님에 대해 저자는 비판을 가한다. 그런데 재밌는 것이 그 선생님을 비판하면서 고고학을 비판한다는 것이다. 김태식 선생님은 정작 고고학자가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그 선생님의 연구성과는 오히려 가야 고고학 전공자들에게도 비판받고 있는데(당장 필자만 봐도 김태식 선생님의 견해는 문제가 있다. 비전공자인 필자가 봐도). 그러한 사실을 거론하지 않고, 책에 이렇게만 써 놓으면 독자들은 이게 정말로 고고학계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4. 저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고고학을 빌미로 생겨난 신화 중 또 다른 것 하나는 정치적 변혁은 반드시 고분 · 유물에 반영된다는 발상이다'라고. 어느 고고학자가 단순하게 그렇게 생각하겠는가? 유물 및 유구에 반영될만한 정치적 변혁이 있을 경우에 그렇다고 하는 것이지. 이는 단순히 정복자들이 피정복민을 학살하거나 쫓아내는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저자는 이를 아주 단순하게 생각한다. 그렇게 따지면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왜 시기별로 토기가 변화하겠는가? 그때마다 주민이 전부 교체됐으니깐? 그리고 변화하지 않는 시기는 주민 교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아니다. 유물의 변화 양상을 단순하게 '정치적 변혁'이라는 용어 하나로 대체하려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순발 선생님의 경우, 백제토기의 탄생 시점을 곧 백제라는 국가의 등장 시점과 맞물려 해석한다. 그리고 그 시기를 3세기로 잡는데, 물론 필자는 이에 반대한다. 문헌에 이미 건국된지 수백년이 지난 백제가 왜 3세기에 등장했다고 해야 하는가? 그런데 분명한 것은 3세기를 기점으로 백제토기에 있어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종의 탄생과 새로운 제작기법의 등장 등등. 이런 부분을 합리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즉, 저자의 저런 생각은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린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유물 해석의 다양한 사례를 저 한줄로 대체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틀린 것이지만, 저런 생각이 기본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맞기 때문이다. 

5. 저자는 나주 반남 고분을 두고 '고분 규모는 참고자료일 뿐'이라고 한다. 잉?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저자는 가야 고분이 백제보다 크지만 가야가 백제보다 강력하지 않았고, 고구려 고분이 전방후원분보다 작다고 고구려가 왜보다 약소국이었다~라고 보지는 않는다...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 크기'뿐'만이 아니다. 예전에 옹관 문화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한 글(클릭)에서도 적었지만, 4~5세기에 등장하는 옹관 문화가 이전 시기의 것과 격을 달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왜 갑자기 4~5세기에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가 6세기에 사그라드냐는 것이다. 그리고 하필 그 시기에 거대한 대형 옹관묘가 나타났다는 것이 관건이지, 단순히 영산강 유역에 큰 무덤이 있어서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만약 고구려나 신라의 경우에도 특정 지역, 특정 시기에 거대 고분군이 존재한다면 분명 이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현상이라 할 수 있겠으나 고구려와 신라의 경우에는 이런 흔적이 없다. 그래서 영산강 유역이 백제사와 맞물려 더 특이한 존재이기도 한 것이고. 하나 더 말하자면, 한성백제 시절에 충남 연기군에서 백제 고분이 1기 확인되었는데, 이는 지금껏 확인된 백제 고분 중 최대 규모의 지하식 석실분이다. 그리고 이를 비롯해 백제 각지에는 지역색이 강한 지방 수장층의 것이라 볼만한 고분군이 많이 있다. 이는 고구려와 신라와는 분명 다른 현상이다. 그래서 필자는 백제의 지방통치제도가 고구려, 신라와 달랐다고 생각한다. 

암튼, 대강 이 정도다. 그밖에 2개의 백제라든가, 백제의 요서진출에 대한 부분은 필자 역시 저자의 지적과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 일단 근거가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뭔가를 얘기하는 것은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헌 몇줄을 두고 이리 해석하고, 저리 해석해서 기존과 다른 견해들을 내놓는 것에 필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필자가 저자의 책에 대해 갖는 생각은 딱 세 가지다. 

   
 

첫째는 아무리 일반 대중들을 위해 쓴 책이라 할지라도 너무 쉽게 다가서려고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기본적으로 역사 관련 교양서라면 어느 정도 전문성을 겸비해야 하는데, 저자는 전문적인 지식 전달의 방법으로 너무 대중적인 방식을 써서 오히려 책의 수준을 낮추는 듯한 안타까움이 늘 배어있다. 특히『전쟁의 발견』에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그 中道라는 부분에 점수를 준다면 그리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다. 

둘째는 식민사학에 대해 열심히 파헤쳐서 아무도 가지 않는 힘든 길을 가는 것은 인정한다.『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에서도 분명히 밝혔듯이, 그건 아무나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 문제는 너무 그쪽에 대한 생각이 강하다보니 생각하는 바가 極으로 치달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위에서 적었듯이 식민사학이 분명 예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그 잔재가 있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늘 한결같지는 않지 않은가? 분명 변화가 있고 그 안에는 부정적인 변화와 함께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부분에서 저자는 늘 골고루 언급하지 않는다. 식민사학이 지금도 남아있고, 어떻게 남아있는지만 언급한다. 그래서 저자의 책을 보면 분명 아닌 것도 있는데, 왜 그렇다는 것만 강조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일반 대중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떻겠는가? 그리고 관련 학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싶다. 

셋째는 고고학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이 눈에 띈다. 문제는 저자가 고고학 관련 논문이나 책은 거의 인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저자가 고고학을 비판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 비판의 대상은 고고학계의 중핵을 이루는 사람도 아니다(김태식 선생님처럼). 또한, 이전에 썼던『잃어버린 백제 첫 도읍지』에서도 언급했지만, 고고학계를 정식으로 비판하려면 그 학문적인 부분을 논리적으로 공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면모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고고학 논문이나 책을 비판하려면 당연히 그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 없이 몇몇 해석, 고고학을 인용한 역사학자의 주장들만 갖고 고고학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실제 이 책의 참고문헌 목록만 봐도 제대로 된 고고학 논문이나 책은 하나도 없었다. 저자의 고고학에 대한 생각은 이 책에서 쓴 것이 그대로 이후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뭐 나중에 다른 책의 서평을 쓴다해도 빠짐없이 나오긴 할 것 같다. 그렇다고 저자가 생각을 바꾸지도 않을 것 같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대 1차 사료인 고고자료와 문헌이 상충된다면 고고자료가 우선시 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나주 반남동 고분군 같은 녀석들 말이다. 이를 단순히『삼국사기』에는 그런 내용이 적혀 있지 않는데, 혹은 백제가 이때까지도 마한을 합병 못 했다고...흥분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수순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고대사 연구에 있어 고고자료를 빼놓고는 고대사를 온전히 복원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했을때 저자의 고고학에 대한 인식은 저자 스스로의 연구에 있어서도 마이너스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이상이다. 전체적으로 쓴지 좀 된 책이라 그런지 최근에 읽었던 것보다 필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나 이번 책에서는 전체적인 일관된 줄기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처럼 아예 식민사학에 대해 비판을 하는 글을 쓰려고 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 책에서는 그것이 뚜렷하게 잡혀 있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책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는 풍겼지만 말이다. 그러다보니 초반부의『일본서기』비판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식민사학 비판까지 이어지던 분위기가 중간 이후로 갑자기 고고학 비판으로 넘어가더니, 무령왕릉이 과장된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하고, 백제의 요서 경략설 등을 비판하는 것으로 이어가고 있었다. 임나 등으로 시작한 내용이 왜로 넘어가더니 이것이 백제로까지 연결된 셈인데, 이 과정에서는 식민사학에 대한 내용이 점점 엷어져 고고학에 대한 비판이 主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앞뒤 연결이 매끄럽지 못 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더 먼저 읽은『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과 비교되면서 더 크게 와닿았던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 

전체적인 역사에 대한 접근법이라든가, 저자의 시각은 이미 책을 통해서든, 온라인을 통해서든 여러번 접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다. 그리고 식민사학 타도(?)를 위한 저자의 열의 또한 인정하지만, 필자가 위에서 말한 세가지는 안타까운 부분이다~라는 말로 끝맺음을 맺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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