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어니스트 볼크먼 지음, 석기용 옮김 / 이마고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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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이 책은 전쟁이라는 극히 폭력적인, 그러면서도 비인간적인 행위가 순수과학자들과 어떻게 연계되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대 전장에서 가공할 전투력을 보여줬던 전차(戰車)부터 현대전에서 가공할 파괴력을 보여줬던 핵무기까지 수천년간 인간이 사용해온 무기들은 모두 다 그 시대 과학자들의 발명품이었고, 순수과학을 주도해야 했던 과학자들은 그들의 지식을 인명 살상과 문명 파괴에 사용해왔던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주저없이 말한다. "결정적 무기의 추구가 과학을 발전시켰다." 고 말이다. 실제 저자는 각 시대마다 전장에서 선보였던 획기적인 군사무기들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렇다고 그가 주장하는 것이 소위 말하는 전쟁에서의 기술결정론은 아니다. 다만, 그는 어느 시기에나 선진적인 군사문화를 보유하고 있는 집단이 있었음을 밝히고 그러한 군사문화는 곧 주변으로 확산 · 전파되면서 또 다른 군사문화를 재생산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과학자들이 전쟁에 얼만큼 동조했는지를 말이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마사다의 열심당원을 공격하는 로마군에 대해 묘사함으로써 자신이 앞으로 어떤 부분에 대해 말할 것인지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당시 마사다 요새는 난공불락이라고 불렸다. 사방이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으로 둘러싸인 고지대 평원에 자리잡은 마사다는 고대 중동의 축성법이 거의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만큼 완벽을 자랑하는 요새였기 때문이다. 마사다의 수조와 군량 저장소는 적군과의 장기전을 가능케 했고, 두꺼운 돌벽을 6m 높이로 쌓아서 만든 성벽은 적의 침입을 막아내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성벽 곳곳에는 망루가 설치되어 있어 수 km 밖의 적군의 움직임도 관찰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그 안에 들어가 농성을 하던 960명의 열심당원은 이제 곧 마사다 요새로 쳐들어올 로마 제10군단 병력 5,000여명을 맞이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은 흔히 벌어졌던 중동에서의 공성전을 상기하며 전의를 불태웠을 것이다. 하지만 로마군은 전혀 요새로 진격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로마군에 배속된 수학자들은 로마군 사령관 플라비우스 실바 장군에게 절벽의 한쪽 면에다 마사다의 1차 방어벽에 곧장 닿을 수 있는 높이 30m, 길이 80m의 흙으로 만들 경사로에 대해 보고를 했다. 그리고 경사로를 만드는데 정확히 얼만큼의 흙이 필요한지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수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설계도를 따라 포로로 잡힌 수천명의 유대인들이 동원되어 경사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백명의 로마 공병들은 거대한 크기의 공성용 기계인 충차(衝車)를 조립하기 시작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발리스타(ballista)라고 불리는 거대한 석궁 모양의 원거리 공격기계를 조립하였다. 그 옆에서는 발리스타로 발사하기 좋도록 큰 바위들을 동그랗게 깎는 로마의 장인들도 보였으며 그렇게 6개월동안 로마군은 기묘한 전투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렇게 차근차근 진행된 전투 결과, 마사다 요새는 함락되었고 로마군은 거의 전력 손실이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이는 로마군의 전형적인 전쟁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수백년간 로마는 주변 민족들을 압도하면서 대제국을 이룩했었다.

그렇게 저자는 전차와 합성궁, 강력한 철제무기, 고대 그리스 과학자들의 열정, 영국의 장궁과 석궁, 대포와 대포를 방어하기 위해 진흙으로 보강한 성벽 등등 한 시대를 풍미한 무기와 그 무기를 방어하기 위한 또 다른 무기, 그보다 앞서가기 위해 더욱더 발전된 무기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일관되었다. 즉, "과학자는 언제나 자신의 지식을 국가를 위해 사용했고 그것은 전쟁에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순수과학 분야의 발전이 이뤄졌고 그로 인해 군사 외적인 부분에서도 발전을 이뤘던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 시절,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기 위해 동원된 각종 과학기술이 전혀 다른 효과를 얻어냈던 것을 들 수 있다. 전국을 병참기지화하는 과정에서 운하가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으며, 전투에서 활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지도는 이후 지질학, 천문학, 수학의 발전을 가져왔고, 전함을 만들기 위해 닥치는데로 나무를 베다보니 조림학이 발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전쟁을 위해서 동원된 과학기술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문명의 발달이라는 또 다른 부수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는 순수과학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가 전쟁에 이용될 줄 모르고 계속적으로 연구를 해왔던 것과 함께 동전의 양면을 장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인슈타인처럼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대 전쟁에 대해 저자는 이처럼 동전의 양면과 같은 부분을 가감없이 소개하고 있었다.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동양의 전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어 그 점이 아쉽기는 했다. 동 · 서양이 분명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상호간의 문명 교류를 이뤄왔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시각은 이슬람 문명 이동으로는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나마 언급된 이슬람과 중국은 종교와 이념 때문에 과학문화가 뒤쳐진 문명으로 소개될 뿐이었다. 어쨌든, 서양의 시각으로만 바라본 과학과 전쟁의 야합이라는 측면만큼은 훌륭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로 가게 되면서 저자는 보다 적나라하게 과학과 전쟁의 야합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물론 책 전반부에서 견지했던 입장은 그대로 고수한채 말이다. 자신의 과학기술이 전쟁에 이용될 줄 모르고 연구에 전념한 과학자, 전쟁을 통해 발달한 과학이 일상 생활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 2가지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바로 국가주의 속에서 정치력과 결탁한 과학자들의 양심과 애국심이라는 부분이다. 물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르키메데스도 과학을 경멸하면서 그리스를 전쟁에서 구하기 위해 자신의 지식을 동원했지만 근대에 이르러 그러한 면은 더욱더 부각되기에 이른다. 현대산업의 발달과 제1 · 2차 세계대전을 통해 과학자는 전쟁이라는 배경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남김없이 보여주기에 이른다.

그리고 저자는 거침없이 말한다. 과학은 정치의 시녀가 되었다고 말이다. 독일과 일본이 저지른 충격적인 생체실험과 그로부터 얻은 정보들이 동원된 끔찍한 전쟁, 그리고 전후 엄청난 양의 정보를 놓치기 아까운 미국의 야욕이 적나라하게 책에 소개되었다. 거기다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이 국가안보라는 미명 아래 자국 내에서 생체실험을 자행했다는 엄청난 내용까지 소개되고 있었다. 이 부분은 정말 주인장도 몰랐던 부분인데 읽으면서 섬뜩할 정도였다. 과학이라는 입장에서 전쟁을 바라본 흔치 않는 책이기 때문에 더욱더 전쟁과 과학의 치부가 극명하게 드러났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은 고대 동양에서도 이와 같은 식의 분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제 전쟁사 관련 서적을 봐도 서양 위주의 서술이 많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문헌이나 고고자료의 부재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부분에 대한 연구가 미진한 것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들은 분명 특정 시기, 특정 국가에 대한 내용이지만 얼마든지 시공간을 초월하여 전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적용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은 분명 그 당시 인류가 생각하고 있던 가장 끔찍한 폭력행위이자 최고의 과학기술이 집약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봤을때 이 책은 주인장에게 적지 않은 고민거리를 떠안겨준 책이기도 하다.

2004년도 대학민국학술원 기초학문분야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책이라고 한다. 괜히 선정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이만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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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이야기
강윤동 / 범조사(이루파)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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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우연히 읽게 되었다.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http://cafe.daum.net/alhc)이라는 까페에서 유리왕의 출자와 당시 고구려인의 인식에 대해서 토론하다가 '★明治好太王★'님이 알려준 덕분에 읽게 된 책이다. 중국인이 만주 일대에 퍼져있는 고구려 관련 전설들을 모아놓은 책인데 알고보니 출간된지 상당히 오래된 책이었다. 그간 왜 몰랐었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어쨌든, 소개를 받고 나서 당장 구입해서 읽어봤다. 

전체적으로 분량은 지극히 짧다. 236쪽이라고는 하지만 글씨도 크고 자간이 넓은데다가 전체적으로 어려운 내용이 없기 때문에 주인장도 버스 안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두어시간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다 읽고 난 다음에 문득 든 생각은 드라마 주몽에서 볼 수 있었던 스토리와 비슷하다는 것 정도? 혹시 주몽 작가님이 이 책을 참고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죽 읽으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동명왕편」이외에 딱히 고구려 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은 지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재미도 있었고 소설적인 요소도 충분히 가미하고 있어서 활용하기에는 그만이었다. 단, 이런 전설들이 얼만큼 사료적 가치가 있는지는 차후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책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고구려 건국 이전부터 고구려 멸망 이후, 근대까지 전해지게 된 전설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시기적으로 정리해서 적어놓고 있어서 읽기에 편했다. 다만 주인장 개인적인 아쉬움이라면, 본래의 전설 원문(?)과 역자의 코멘트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확인하기가 힘들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어 원문을 그대로 싣지는 않더라도 역자의 코멘트와 원문 정도는 구분해서 써 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암튼 이는 사족이니 제외하고 책 내용에 대해서 간단하게 언급해보도록 하겠다.

전체적으로 고구려 건국 이전의 신화적인 부분은 우리가 중국이나 우리측 사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과 비슷했다. 하지만 실제 역사기록으로 넘어오면서 우리가 몰랐던 부분들이 상당히 많이 나오고 있었다. 주몽과 대소의 후계자 쟁탈에 대해 묘사한 부분이나(이는 누구나 추측은 하지만 실제 확인할 길이 없는 부분이다) 주몽의 부인이 예씨부인이 아닌 공씨부인으로 기록되어 있는 부분, 적석묘의 기원에 대한 내용,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배경이 낙랑이 아닌 옥저로 나온다는 점, 관나부인의 탐욕에 대한 부분, 강룡석과 호태왕비에 얽힌 전설 등 우리가 그간 역사책에서만 배우던 내용과는 다른 내용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또한 독특하게 고구려 역대 임금의 무덤을 파헤친 도굴에 얽힌 전설도 2개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때문에 이 전설들이 근대에 이르러 도굴이 성행하면서 나름대로 정리된 전설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뭐 이 책만으로는 고구려와 관련된 전설들의 발생과 전파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을 듯 싶다. 하지만 분명히 주목할만한 내용이 많이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주인장은 개인적으로 강룡석과 호태왕비에 얽힌 전설, 만보정 거북이의 전설 이 2개의 전설이 잊혀지지 않는다. 역사서에서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 전개가 이 전설에서는 이뤄지고 있는데 전설이나 신화라는 것이 어떤 역사적인 사실, 혹은 실제적인 사건에 근거하여 생겨난 것이라 했을때 눈여겨 볼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호태왕비와 같은 거대한 비석을 만들때 쓴 원석이 어디서 왔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 그런데 전설은 이를 멋드러지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또한 만보정 거북이와 얽힌 전설 또한 모용씨의 침입으로 고난에 빠진 고구려가 어떻게 국력 회복을 빠르게 할 수 있었는지를 얘기해주고 있었다. 아마 당시에 살았던 평민들의 눈에는 이런 극적인 사건들이 전설화할 수 있는 충분한 요소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신기하기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주인장은 고구려에서 돼지가 상당히 신령스러운 존재였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전설이 하나쯤 없을까 하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또한 고분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여러가지 고구려의 신화적인 부분들과도 연결되는 전설이 없어서 이 책에 나온 내용은 그냥 '이런 게 있구나~'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얻었다. 하지만 분명 고구려와 관련된 전설을 정리한 흔하지 않은 책이기에 한번쯤 여흥 삼아 읽어보는 것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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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의 탄생 - 중국이 만들어 낸 변방의 역사
니콜라 디코스모 지음, 이재정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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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의 반열에 올릴 학술적 성과. 아시아 역사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책.

- 《하버드 대학교 아시아 연구 저널》추천사 -

책 겉면을 감싸고 있는 종이에 써 있는 말이다. 그리고 주인장 또한 이에 동의하는 바이다.

최근 흉노사에 대한 책들을 한권 두권 보고 있는데 이 책 역시 처음에는 단순히 흉노사에 대한 책들 중 하나겠거니~하는 생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장을 한장씩 넘기면서 주인장은 그간 흉노사에 대해 몰랐던 부분들을 알게 된 것 이상으로, 아시아사 더 나아가 역사를 이해하는 거시적인 안목 혹은 합리적인 안목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전『배틀, 전쟁의 문화사』를 보고 기존에 갖고 있던 전쟁에 대해서 재고(再考)해보게 되었는데 이 책으로 인해서 다시 한번 기존에 갖고 있던 이런저런 생각들에 대해서 재고해보게 되었다. 그만큼 주인장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일단 책의 내용 중 주목할만한 부분을 언급하기 전에 이 책의 장점과 단점을 거론해보기로 하겠다.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먼저 고고자료 언급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었다. 전체 책은 1~4부라는 큰 틀 속에 1~8장까지의 텍스트를 갖고 있으며 그 중 1부는 고고학을 통해 얻은 성과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석 기타 등등을 제외한 순수 내용이 412쪽인데 그 중 123쪽이나 고고학 관련 내용이 차지하고 있어 전체의 29.8%임을 알 수 있다. 즉, 흉노를 비롯한 흉노 이전의 유목민족에 대해서 문헌이 알려주지 못하는 내용들을 대부분 고고자료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대한 분량의 고고자료 제시는 저자의 주장을 한껏 돋보이게 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간 소위 북방사(北方史) 연구서적 중에서 고고자료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없지만 이처럼 집중적으로 정리한 것은 보질 못 했다.

그리고 굳이 단점을 꼽자면『춘추』나『좌전』등의 중국 고전을 인용하는데 있어서 문헌 자체에 대한 비판보다는 문헌을 그대로 재해석하는데 주력한 점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역자는 오히려 이 부분을 두고 유교의 대표적인 경전쯤으로 치부하는 이런 책들을 이 책의 저자는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그 안에서 중화문명과 북방문명의 대결구도라는 도식을 이끌어내고 있어 대단하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이 부분은 보다 비판적으로 언급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서술의 시간적 범위가 흉노 이후로 넘어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저자는 북방문명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동방 · 남방문명에 대해서는 다소 간과하는 듯하고 있어 그 부분 역시 비판적으로 봐야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책은 주인장에게 상당히 많은 부분들을 알게 해 주고 있다. 그 중 거의 쇼킹에 가까운 깨달음을 얻고 재고의 여지를 얻은 부분을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한제국은 흉노제국의 중앙집권화를 원했다.

얼핏 보면 무슨 우스운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저자는 위의 주장을 하고 있다. 흉노의 월등히 강한 군사력을 감당하지 못 했던 한 무제 이전의 역대 한제국의 황제들은 흉노에게 방대한 양의 물적자원을 바치면서 국경의 안정과 국가의 평화를 얻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흉노는 끊임없이 한제국의 국경을 침범하고 물자를 약탈해갔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저자는 흉노의 선우가 한제국의 황제와 똑같은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보유하지 못 했기 때문이라고 적는다. 즉, 한제국의 황제는 자기들의 권력구조와 흉노 선우의 권력구조가 같다고 보고 흉노 선우와 협상하고 그에게 약속한 물자를 보내줬지만 흉노는 선우 이외에 각지에 지방 군벌이 존재하던 구조였고 이는 한제국과는 전혀 다른 권력구조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의 황제와 흉노의 선우가 맺은 협정은 선우 휘하의 각 세력가들에게 절대적인 강제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즉, 이런 상황에서 한의 황제는 흉노의 선우가 자신처럼 막강한 중앙집권적 권력을 보유하길 바라면서 막대한 물자를 보내줬다는 것이다. 쇼킹했다.

2. 만리장성은 중국세력이 북방을 정복하고 안정시키기 위해서 쌓은 것이다.

애초 만리장성은 북방세력에 대한 방어의 성격이 강한 인공 구조물이었다. 그러면서 북방세력은 늘 배고프고 가난하기 때문에 약탈을 해야만 했고 그걸 막기 위해서 중국세력은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해석해왔었다. 하지만 만리장성이 실제 방어적인 성격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는 점에서 만리장성은 북방문명과 중화문명을 구분짓는 경계선의 성격이 강하다는 해석이 높은 설득력을 얻었다. 실제 만리장성은 그런 의미가 강한 구조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저자는 더 나아가 만리장성이 중국세력이 북방 진출을 위해 쌓은 구조물이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기존의 여러 견해들과 상당히 상반된 부분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주인장도 주의깊게 봤었고 차후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역시 주의깊게 읽어봐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3. 사마천은 흉노를 미지의 대상에서 현실의 대상으로 끌어내렸다.

사마천의『사기(史記)』에 대해서 주인장은 그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냥 중국 25사의 첫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동양 역사학의 기틀을 마련한 고전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춘추』나『좌전』등에서 북방 세력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인식하고 문화적으로 열등하다든지, 사상적으로 미개하다든지 하는 식의 비합리적인 서술만 일삼았던 것에 대해 사마천은 보다 거대하고 강력하게 통합된 흉노를 그런 식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흉노를 한제국과 동등한 문명체이자 한제국의 라이벌로 인식하고 흉노를 중요하게 취급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흉노에 대해 합리적이고 사실적이며 객관적인 내용을 담기 위해서 노력했고, 흉노를 미지의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한번 붙어볼만한 현실적인 존재로 재창조했다는 것이다. 역사의 무서운 힘과 사마천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상 3가지가 주인장이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최고의 쇼킹한 내용들이 아닐까 싶다. 필시 저자의 이러한 접근법은 비단 흉노사 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도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인장 또한 중국과 흉노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면서 고구려와 중국에 대해서, 고구려와 기타 세력, 중국과 단군조선, 흉노와 단군조선 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자 이전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여겨졌던 부분들이 새롭게 인식되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단 한번 정독을 하긴 했는데 워낙 띄엄띄엄, 3일에 걸쳐 읽다보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을까 염려되어 다시 읽어보고자 한다. 주인장은 역사를 바라보는 방법론적인 면이라든가, 기존의 논지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합리적으로 서술하는 저자의 글솜씨도 일품이지만 다양한 분야의 연구성과(고고학, 역사학, 금석학, 언어학 등)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일관되게 서술한 노력 또한 높이 쳐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전에 소개했던『흉노 : 지금을 사라진 고대 유목국가 이야기』는 흉노사에 대한 개설서이자 비전공자들이 부담없이 볼 수 있는 대중서적의 성격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흉노의 시작과 끝(흉노계 집단의 행보)까지 포괄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 책은 그것과 달리 전문서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대중서적이라는 표딱지를 달고 나왔지만 이 책은 결코 쉽게쉽게 읽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정확히 흉노 세력이 어떻게 발흥하고 어떻게 쇠망해가는지를 정치사적인 관점 뿐만 아니라 문화사, 경제사적인 관점에서도 맥을 짚어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들에 대해 기록한 각종 문헌에 대한 통찰이 필요했음은 물론 방대한 고고자료 역시 동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암튼 주인장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한번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읽고 나면 아마도 주인장과 같이 쇼킹한 부분들을 많이 접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럼 즐거운 독서를 기대하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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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 전쟁의 문화사
존 린 지음, 이내주.박일송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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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단 이 책은 주인장이 몽고메리의『전쟁의 역사』이후로 2번째로 읽은 제대로 된 전쟁 관련 개설서이다. 맨 처음에 이 책을 구입했을 때 문화사(文化史)라는 단어에 약간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전쟁사나 군사사를 정치 · 경제 · 사회적인 부분에서 이해하려는 몇몇 연구성과들은 봤었지만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전쟁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처음 접해본 것 같았다. 그래서 신년을 맞이해 구입은 했는데 조금씩 조금씩 읽으며 끝을 보지 못 했다가 드디어 오늘 마지막 장을 덮었기에 이렇게 후다닥 서평을 쓰는 것이다.

책은 먼저 분량면에서 적은 것은 아니다. 주석을 제외하고도 근 700쪽에 달하는 책인데 내용이 재미있고 참신하기 때문에 분명 읽다보면서 책의 매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럼 주인장이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 몇가지들을 잠깐 적어보고자 한다.

먼저 책의 목차를 보면 이 책이 상당히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전쟁의 역사』에서도 느낀 점이지만 이 책 역시 서구만을 공간적 범위로 정하지 않았다. 고대 중국과 인도의 전쟁 관련 문헌을 통해서 '교묘한 전쟁'이라는 장을 설정하고 있었는데 이 부분은 분명 이 책만의 독창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기사도를 중세 유럽의 전쟁에 나타난 완벽한 모형이라고 평한 것, 독특하게 세포이 부대의 토착적 특성에 대해서 독립적인 장을 마련한 것 등은 분명히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부분들이다. 마지막으로 10월 전쟁에 나타난 이집트군의 효율성과 군사문화에 대한 부분, 테러리즘에 대한 새로운 군사 담론 부분까지 전체적으로 기존의 전쟁사 관련 서적과는 다른 구성과 내용들을 담고 있다는 점, 이것이 이 책의 특징 첫번째다.

특히나 마지막 부분의 테러리즘에 대한 부분은 지금까지 어떠한 전쟁사 · 군사사가들이 건드리지 못 한 부분이었는데 역자 후기를 보니 초판본에서는 에필로그였다가 개정판에서 독립된 장으로 확대된 부분이라고 한다. 특히 테러리즘이라는 전쟁의 실상에 대해 저자는 치밀하게 탐색하여 미국이 행한 최근의 몇몇 전쟁에 대해서 냉철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미군이 실질적인 군사작전이 종결된 이후에도 여전히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테러리즘을 전쟁의 한 형태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미군의 전쟁 담론으로 인한 한계라고 설명한 부분은 정말 망치로 한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기까지 했다.

이 책의 두번째 특징은 '담론(discourse)'이다. 이 책에서 담론이란 용어는 특정의 주제에 대한 가정, 인식, 기대, 가치관의 총체를 의미하는 것인데 저자는 하나의 사회 안에서도 계급, 성별, 직업(전문적인 직업군인의 출현과 더불어 직업이 중요한 구분 요소가 된다) 등에 따라 전쟁에 대해서 서로 다른 담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전쟁은 그 전쟁을 행하는 문화권 혹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인식하는 개념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음을 저자는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담론이라는 용어를 빌린 일련의 전쟁에 대한 모델 형성으로 인해서 주인장은 기존에 뚜렷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 했던 부분에 대해서 어느정도 가닥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일단 종래 학계를 지배해왔던 기술결정론적인 해석을 벗어나서 담론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하니 4~5세기 동아시아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중장기병의 존재, 북위와 백제와의 전쟁 등에 대해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해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쟁, 더 세부적으로 전투는 당시 그 행위를 담당하는 구성원들, 특히 군사정책 입안자들의 입장에서 바라볼때 그 본질을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해석에 있어 이 책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마지막 특징을 꼽자면 시 · 공간을 넘어선 서술이라 하겠다. 뭐 다른 책들도 다 그런 것 아니겠느냐~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르다. 전체적인 목차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분명 저자는 다양한 시 · 공간을 서술의 범위로 삼고 있다. 단, 다른 책들과 달리 세부적인 주제들을 정해 담론이라는 측면에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중세 유럽의 전쟁을 기사도와 기병대 초토화작전이라는 세부적인 주제로 삼은 것, 계몽주의 시대의 전투를 선형 전술로 설명한 것, 제국주의시대 국가들의 피정복민 군대에 대해서는 세포이 부대에 대해서, 낭만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결전, 10월전쟁의 이집트군의 군사정책 등등 상당히 세부적이고 흥미로운 주제들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일단 주인장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은 것은 이 3가지다. 더 세부적으로 꼽자면 어느 것 하나 독특하고 주의깊게 바라볼만한 것이 아닌게 없지만 이 정도만 하고 넘어가자.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이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하나 있다.

저자도 그렇고 역자도 밝히고 있지만 이 책에서 존 린은 군사사 분야에서 새로운 문화사적 접근법의 선구적 저작들이라 할 수 있는 키건의『A History of Warfare』(1993)와 핸슨의『Carnage and Culture: Landmarks Battles in the Rise of Western Power』(2001)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책의 앞부분에 특히 집중되어 있는데 그는 앞선 사람들이 다소 획일적으로 바라본 군사사에 대한 인식을 보다 유연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즉, 동양과 서구가 각각 다른 전쟁 방식을 고수한 것이 아니라 동양이든 서양이든 시대와 국가를 떠나 다양한 담론들이 존재했다는 것이 존 린의 주장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장이 앞서 존 린이 비판한 2명의 저작을 미리 읽지 못 했다는 데에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 책의 서평을 먼저 쓴 이유는 앞선 두 책을 본다해도 주인장이 저자와 똑같은 비판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분명 양자는 다른만큼 각각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앞선 연구성과들 역시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물론 존 린의 앞선 연구성과에 대한 비판이 차후 그 책들을 읽을 주인장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책은 지금까지 주인장이 읽었던 군사사 관련 연구성과 중에서 굉장히 참신하고 독특한 시각에서 바라본 것임은 분명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전쟁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 시간을 들여 이 책을 완독하시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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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문명충돌의 역사 - 종교갈등의 오랜 기원을 찾아서
자크 G.루엘랑 지음, 김연실 옮김 / 한길사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말 그대로 '성전(聖戰)'에 대해서 쓴 책이다. 처음 이 책을 사려고 목차를 둘러볼때 주인장이 신기하게 바라봤던 부분이 바로 '성전과 신성시된 전쟁'이라는 목차였었다. 성전이 신성시된 전쟁, 신성한 전쟁이라는 뜻이 아닐까? 왜 같은 뜻으로 알고 있는 단어를 저렇게 병렬시켰을까? 뭐 이런 의문 때문에 뭔가 이 책은 성전에 대한 새로운 내용을 주인장에게 전해줄 것이라는 강한 기대감에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간 주인장이 인식하고 있던 성전이라는 것은 가장 대표적인 십자군 전쟁이었다. 그리고 순간 성전과 신성시된 전쟁의 의미가 다르다면 십자군 전쟁은 전자일까, 후자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밖에 성전이라 꼽을 수 있는 것이 또 뭐가 있을까...고대 히브리인들의 전쟁, 이슬람교의 확장, 몽골의 침입에 대항한 호라즘제국의 전쟁 뭐 그 정도? 그야말로 성전이라는 개념은 주인장이 인식하기에 기독교나 이슬람교(불교에서는 이런 개념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므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목차에서 이렇게 의문점이 생겨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만족!

실제 전쟁은 한낱 인간의 행위일 뿐이므로 감히 성전이라고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성(聖)'과 '신성시(神聖視)'를 확실히 구분하고 있었다. 전자는 말 그대로 '하나님 자체의 신성(神聖)을 가짐'이라는 의미로 신의 초월성에 바탕을 둔다면, 후자는 '인간들의 숭배 대상이 됨'을 가리키는 말로서 초월론적인 것에 기초를 두는 것이라고 적고 있었다. 그간 주인장이 동일한 의미로 이해하고 있던 개념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첫 부분부터 그렇게 새로운 사실들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가뜩이나 200페이지도 안 되는 자그마한 책을 순식간에 읽어내릴 수 있었다. 덧붙여 말하면 영어로 전자는 'Holy'이며 후자는 'Sacred'이므로 성경은 'Holy Bible'이며 성가(聖歌)는 sacred를 쓴다고 적고 있었다. 단, 성인(聖人)의 경우는 비록 한 인간이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 신격화된 것이지만 신이 직접 그를 선택하여 신성을 허락했기 때문에 그때는 '신성시된'이라는 표현 대신 '성스러운'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사실도 밝혀두고 있었다.

저자는 고대 히브리인의 전쟁을 성전의 시초로 보고 그 안에서 성전의 3가지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1번째 개념은 이스라엘인들이 '선민'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특정 민족, 확실한 지리적 공간, 그리고 그 땅의 소유권을 보장해주는 신 이 3가지가 성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고 적고 있다. 즉,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전쟁이란 곧 정복이며 실리에 밝은 그들은 모든 정복 전쟁을 여호와의 전쟁으로 만들고 여호와 하나님을 '군대의 하나님'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시리아에게 패하고 바빌론 유수를 당하면서 히브리인들의 전쟁은 소부족 단위의 정복전이 아니라 강적들과 맞서 싸워 독립을 쟁취해야만 하는 '복수전'의 양상을 띠게 되었고 군대의 하나님은 '복수의 하나님'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이후 전쟁은 여호와의 토벌대 파견으로 인식되었으며 여기에서 3번째 개념이 생겨나게 된다. 마지막 개념은 요즘의 개념과 비슷한 '전쟁은 곧 파탄'이라는 개념이며 전쟁은 인간이 저지른 일이니 인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에 이르게 되면 더 이상 성전의 개념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서양인(?)이기 때문에 저자는 전체 10개의 목차 중에 초기 8개 목차를 기독교(혹은 고대 히브리인)와 결부시켜 이해하고 있었다. 나머지 2개는 '이슬람의 지하드'와 '독일과 일본의 자살 전술'이었고 말이다. 특히 독일의 자살 전술과 일본의 자살 전술을 논하는 부분은 상당히 신선했다. 저자는 일본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아주 또렷하게 내려오는, 그리고 수천년 된 문서와 전통에 의해 성립된 일본인들의 철학을 철인에 대한 허위 숭배를 포함한 나치들의 겉치레뿐인 잡동사니 철학과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극히 대립적인 견해를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장이 보기에는 일본이 전쟁에서 보여준 극단적인 결백함과 생명에 대한 절대적으로 무관심한 태도는 독일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보여진다. 이 역시 천황에 대한 전적인 숭배일 뿐이고 의미없는, 맹목적인 행위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암튼 이 부분 역시 신선한 내용을 전하고 있어 좋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히브리인의 1번째 개념이 이슬람의 지하드를, 지하드는 십자군과 레콩키스타를 낳았다고 했으며 2번째 개념은 3번째 개념을 낳았고 3번째 개념은 정당한 전쟁을, 그리고 그 정당한 전쟁이라는 개념은 '정당방위'라는 개념과 결합되어 최근의 미국과 이라크와 같은 정당한 전쟁의 현대적 개념을 낳았다고 도식을 설정하기도 했다. 성전이라는 개념을 상당히 개념화하여 도식화까지 해놓았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1번 책을 읽고는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현재 이 책을 2번 읽고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주인장이 저자의 생각을 얼만큼 이해했는지는 확언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여튼 저자는 진정한 평화에 대해 소리높여 외치면서 글을 마치고 있다. 평화란 단순히 '싸워야 할 적이 없고, 교전 상태에 있지 않은 한 나라나 민족의 상태'로서 전쟁의 반대 개념이자 스스로의 실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는 전혀 무관하게 이해되어야만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평화에 대한 개념이 자꾸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평화의 본질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성찰이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이런 일련의 내용들은 비록 적은 분량이었지만 임팩트있게 주인장에게 많은 사실들을 깨닫고 느끼게 해주었다. 전쟁이 어째서 단순히 사람들 사이의 대립과 투쟁이 아닌 사회적으로, 의식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성전'이라는 제목으로 '성전'에 대한 부분만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모든 전쟁의 개념에도 적용 가능한 것들을 싣고 있었다. 그래서 주인장이 앞으로 자주 펼쳐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전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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