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 평전 - 위대한 폭군 미다스 휴먼북스 4
천징 지음, 김대환 외 옮김 / 미다스북스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재밌는 책을 봤다. 고속도로 휴게실 할인코너에서 운 좋게 좋은 책을 하나 건짓 듯 하다. 처음에는 할인코너를 미처 못 보고 돌아섰는데 동생이 "오빠, 진시황 평전이라는 책 있어?" 라고 물어보길래 잽싸게 가서 구입한 책이다. 물론 50% 할인가에 말이다. 어쨌든, 진시황에 대한 몇몇 책들을 읽어봤지만 대부분은 진시황, 인간 그 자체보다 그의 치적과 연결된 정치사적인 부분에 대해 다룬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만리장성과 흉노 정벌, 뭐 그런 것들 있지 않은가. 물론 주인장은 아직 쓰루마 가즈유키가 쓴『중국 고대사 최대의 미스터리 진시황제』라는 평전을 읽어보지 않았기에 오늘은 위에 소개한 책에 대해서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일단 이 책은 그다지 어려운 내용이 없다. 우리가 대개 알고 있는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기 때문에 어려운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두어번 읽으면 이해하는데 크게 어려운 일은 없을 듯 싶다. 게다가 책 뒷부분에는 전국시대 6국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도 나와 있어서 당시 6국에 대한 정보를 얻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주인장이 무엇보다도 흥미롭게 생각한 부분은, 저자가 분명 관련 분야의 전공자로서 관련 분야의 연구성과들을 소개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흥미를 잃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는 점이다. 독자들이 궁금해할만한, 혹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주제들을 한두개 던져두고 이를 자문자답(自問自答)하는 형식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어서 그 점이 좋았던 것 같다.

이전에 주인장이 한번 언급했듯이 진시황 출생의 비밀(어찌보면 상당히 널리 알려져있는 진시황 관련 의문들 중 하나일 듯 싶다)을 책 초두에 꺼내놓으면서 그는 관련 연구자들의 여러 견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나중에 자신의 생각을 게재했다. 읽으면서 내심 '이거 중국 학자들이라고 진시황의 출생에 대해서 일부러 정통성을 부여하는 쪽으로 해석하고자 여불위와 관련된『사기』의 기록을 무시하는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관련 문헌과 연구자료들을 뒤적거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주인장이 몰랐던 부분도 많이 알게 되었고 진시황 출생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주인장은 그간『사기』의 기록이 사실일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런저런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에서는『사기』의 기록 자체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는 언급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주인장이 지금껏 생각했던 것들을 재고할 필요가 생겼다.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저자는 차근차근 진시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주인장이 또 흥미롭게 본 부분으로는 여불위와 진시황의 정치 스타일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치세기간이 짧은 장양왕과 집권 초반 중부(仲父)에게 정치를 일임했던 진시황 시절, 여불위는 수년간 진나라를 제국으로 만들고 다듬기 위해서 부던히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실은『여씨춘추(秋)』로 세상에 빛을 선보였는데 여불위가 빈객 3,000명을 모아 만든 책이라고 한다. 그만큼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학자들이 내놓은 지식들이 총체적으로 들어있는데 이 책의 내용을 한글자라도 고칠 수 있으면 천금을 주겠다 했으니 그 자부심이 대단했으리라. 

그러면서 저자는『여씨춘추』의 정치 스타일은 진시황과 달랐다고 적고 있다. 알다시피『여씨춘추』는 패도(覇道)에 어울리는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덧붙여 그는 일부에서『여씨춘추』를 두고 너무 틀에 맞춰 쓰다보니 내용의 헛점이 있다는 비평도 하지만 그것은 모두 여불위의 뜻이 그러했기 때문이라 적고 있다. 즉, 그는『여씨춘추』라는 책을 만들면서 일종의 '사상 통일'을 꾀했던 것이다. 즉, 글의 형태만 스탠다드한 표준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렇게 틀을 맞춤으로서 그 안에 들어가는 내용에 대해서도 통일성을 강조했다는 소리였다. 그간『여씨춘추』에 대해서 막연히 그러한가 보구나~라고만 생각했지, 이런 깊은 뜻이 있는지는 미처 몰랐다. 순간, 진시황이 행했던 수많은 정책들이 떠올랐다. 분명 그 정책들은 진시황이 혼자서, 당대에 갑자기 천재적으로 떠올려 만든 것들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학자와 정치가들이 수백년간 서쪽 변방의 진나라에서 고생하면서 이룩한 것이다. 그리고 여불위는 그것들을 통일하려 하였고.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 책 뒷부분에 가면 저자는 진시황의 업적을 말하면서 '왜 사람들이 진시황의 정치 · 군사 · 경제적인 통합 정책은 언급하면서 사상적인 통합 정책은 얘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그렇다. 어찌보면 이 사상 통합이라는 것이야말로 가장 공들여야 하며 가장 오랜 시간에 걸쳐 철저하게 이뤄져야 할지도 모른다. 정신세계에 대한 개혁적인 정치변화를 어찌 그동안 무시했을까. 흉노를 정벌한 것은 조나라 무령왕도 호복기사를 통해 행한 적이 있었고, 만리장성을 쌓은 것 역시 북쪽에 적을 두고 있는 위나라, 조나라, 연나라 등에서 행했던 것이다. 화폐와 글자가 다양했지만 그 또한 특정 국가 혹은 지역을 중심으로 몇개의 화폐와 글자로 구분되어 사용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상 통일은 아무도 해내지 못 했다. 물론 패도에 입각한 정책 아래 법가사상이 중시되었지만 여불위의『여씨춘추』에서 알 수 있듯이 진나라는 사상 통합을 이룩한 나라가 분명했고, 그것은 분서갱유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도 잘 나타났다. 이 또한 주인장이 간과했던 부분이었다.

전체적으로 저자는 진시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 시대상에 대해서 서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마 이 부분때문에 이 책을 두고 일반적인 전국시대를 소개한 역사책과 다를 바 없다고 평한 독자들도 몇몇 봤다. 하지만 분명 주인장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몇몇 부분에서 저자는 흥미로운 주제들을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제들은 자뭇 지루할지도 모를 스토리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그렇게 흥미로운 주제들은 위에 언급한 것 말고 더 있었다. 

책 막바지에서 저자는 진시황이 어떻게 천하를 얻을 수 있었는가? 라는 아주 원론적이면서도 기초적인 화두를 던졌다. 그러면서 이내 '그럴 수 밖에 없었다'라는 결론을 먼저 꺼내놓고 이야기를 풀어놨다. 법가사상에 치중해 수백년간 내공(?)을 쌓아가며 빡쎄게 나라를 운영했던 진시황 이전의 군주들 덕분에 진시황은 그런 힘을 모아 거의 2년마다 일국을 멸망시켜 천하통일을 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덧붙여 그는 중국은 통일될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이며 진시황이 뭐 새롭게 천하통일을 한 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중국은 주나라 이래로 주욱 중국(中國)이라는 명칭 아래 하나의 통일된 존재였으며, 봉분된 국가들이 여럿 있었지만 여전히 하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춘추5패와 전국7웅의 시대를 거쳐 진시황이 진(秦)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모은 것 뿐이니 천하통일이라는 용어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도 했다. 이 부분에서 '역시 중국 학자라 어쩔 수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시 진시황은 과거 6국의 영토보다 더 많은 영토를 차지했으며 그 영향력도 더 많이, 더 넓은 지역까지 행사했었다. 그럼에도 이미 중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변화라는 식의 서술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만리장성을 두고 북방에 대한 방어적인 의미도 있지만 화이(華夷)를 구분하는 의미도 있다고 언급하였다. 이 역시 앞의 논리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리라. 

몇몇 부분에서 다소 작위적인 해석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진시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고자 했던 책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전문적인 내용이 추가되고 보완될 부분만 수정된다면 진시황 관련 연구서로 손색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확실히 진시황은 수천년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주 중 한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패도적으로 통치했고 6국의 정복된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자국의 백성에게도 가혹한 통치를 부여했다. 그렇기에 그의 꿈은 만세황제가 아닌 2세 황제로 끝이 날 수 밖에 없었다. 6국을 정복하고 천하통일에 매진할 때라면 그의 패도적인 정치는 그 위력을 발휘하겠지만 일단 제국이 완성되면 제국은 더 이상 '말 위에서 다스릴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진시황을 보면 아스라이 스러져간 고구려의 모본왕이 생각난다. 분명 군사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장기적인 고구려의 국가정책상 그의 의지는 엇나갔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치적은 이후 중국사에 그대로 남아 근간을 이루었다. 한대 정치제도가 대부분 진의 그것을 본땄으며, 한 역시 진의 패도를 부정하고 들고 일어나 진의 유물을 그대로 받아먹어 강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대외적으로 고구려의 후계자로 자처하던 고려가 신라 정치제도의 상당부분을 계승한 것처럼 말이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하나 읽어 이렇게 소개하고자 몇자 적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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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고학 강의
한국고고학회 엮음 / 사회평론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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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마 처음일 것이다. 김원룡 선생님의『한국고고학개설』이후에 한국사 전반을 다룬 고고학 개설서가 나오기는 말이다. 안 그래도 한국고고학에 대한 개설서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주인장처럼 고고학을 배우는 학생들도 그렇고, 고고학에 뜻이 있어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어려움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최근에는 각종 고고학회 학회지와 고고학 관련 잡지, 저널 등이 많이 발간되어 일반 대중들도 고고학을 접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역시 고고학 개설서 1권 읽는 것만큼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1973년 김원룡 선생님의 책 초판이 나온 이후로 수많은 판본들이 출간되었고 아직도『한국고고학개설』은 대학에서 중요한 교재로 쓰이고 있다. 수십년이 지났건만 그 책에서 아직도 많은 정보들을 얻는다는 점에서 김원룡 선생님께 새삼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고고학계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많은 선생님들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내놓은 결과물이 바로『한국고고강의』라는 책이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원래 이 책은 대학교 및 대학원 교재로 쓰기 위해 몇몇 뜻있는 분들이 모여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점점 인원이 보충되고 프로젝트가 커지고 분량이 늘어나면서 번듯한 개설서 1권을 만들게 되었고 그 결과물은 만족할만한 것이었다. 주인장이 몸담고 있는 연구소에 계시는 많은 선생님들도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셨고 연구원들 또한 각종 도면과 도판 작업에 참여했기 때문에 상당히 애착이 가는 책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는 잡담이었고 책 내용에 대해서 간단하게 언급해보고자 한다.

일단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최근 한국고고학계의 연구현황이 잘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김원룡 선생님의 책이 고전(古典)에 가까운 대접을 받고 있는만큼 최신 연구성과가 그 안에 표현되지 못한 반면, 이 책에서는 각 분야별 전공자들에 의해 최신 연구성과가 잘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국사의 공간적 범위를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전부로 설정하고 있어 상고사 및 고대사를 이해하는 시각을 크게 넓힐 수가 있다. 더불어 문헌사학적 시각이 아닌, 고고학적 시각에서 쓴 책이어서 유물과 유적을 통해 한국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고고자료만으로 한국사를 이해하고 알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흥미로울까,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해준다는 뜻이다.

또한 각 장마다 '시대개관-연구사(혹은 연구논점)-중요 유적과 유물'이라는 기본적인 틀을 갖추고 있어 각 시대마다 그 시대 문화를 이해하는데 적합한 구조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즉, 고고학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추지 않아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기본적인 내용을 이해함은 물론이요, 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파트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각 시대별로 서로 같은 분야의 문화적 내용들을 비교하며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물론『한국고고학개설』도 이러한 구조로 되어 있지만 분량이 적어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많았었다. 그에 반해 이 책에서는 풍부한 도면과 도판, 표 등을 제시하고 그에 합당한 설명이 부가되어 있기 때문에 전문성이라는 측면에서 봤을때 그렇게 어려운 책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덧붙여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을 꼽자면 원삼국시대를 언급하면서 북부, 중부 및 서남부, 동남부 3개 지역권으로 나눠서 설명하고 북부지역에 대해서는 낙랑을 거론하고 있어 주목된다. 또한 고구려 이외에 북방의 패자였던 부여에 대해서도 약간의 보충설명을 더하고 있으며 백제 부분에서는 영산강유역을 따로 언급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그리고 문헌사적으로, 혹은 미술사적 시각에서 주로 다뤄왔던 통일신라와 발해에 대해서도 다양한 고고자료들을 제시하고 있어 기존의 고고학 관련 서적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간 한국고고학의 시 · 공간적 범위가 확대되었음은 물론이요, 그에 따라 더 많고 다양한 자료들이 축적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 하겠다.

다만 단점이라면 편집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분량이 편집되어 보다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없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고, 그 다음으로 각 분야별 전공자마다 생각하는 바와 학문적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용어 사용이라든가, 기본적인 역사인식에 있어서 일관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책이 비록 한국고고학회라는 한국고고학계를 대변하는 집단의 주도 아래 출간되었지만 이 책의 내용이 곧 '국정교과서'처럼 한국고고학계 전체의 입장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므로 읽으면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명의 집필자들의 원고를 일일히 다듬어 편집한 5명의 편집위원들 덕택에 훌륭한 책이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 책도 개정판이 지속적으로 나올 것이라 생각하며 이보다 더 좋은 최신 정보를 실은 개설서가 앞으로도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야만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책들이 나오기 전까지 이 책은 충분히『한국고고학개설』의 빈자리를 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평소 고고학이 무엇인지 궁금했던 분들이나 고고학에 뜻을 둔 학생들, 고고학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책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이만 글을 줄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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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암살사건
김재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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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강제규필름 등의 영화사에서 시나리오 관련 작업을 하기도 했으며 이런저런 분야에서 꽤 이름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책의 내용을 보기 전에 주인장이 이 책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였다. 이전에 읽었던 정약용 살인사건과 함께 최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나 사극이 인기를 얻고 있어 그 분위기에 휩쓸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훈민정음 원류본'을 찾아라? 무슨 내용일까? 설마『환단고기』류의 책에서 말하는 가림토 문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일까? 그러면서 책장을 넘겼다.


결론을 말하면 주인장의 예상과 책의 내용은 상당부분 일치했다. 우연히 소매치기가 훔친 지갑 속에서 훈민정음 원류본의 마지막 페이지 일부가 발견되고 그와 관련해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이 책의 두 주인공은 약간 무대포격인 강현석 형사와 지적인 여교수 서민영이다. 그리고 이 둘이 일본의 거대한 음모에 맞서 싸운다는 식의 스토리가 흘러간다. 일본의 거대한 음모라는 것은 전세계가 인정하는 과학적인 글자인 한글이 한국의 독창적인 문화유산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주인공은 그 사실을 막기 위해서 이런저런 위험과 고비를 이겨내며 훈민정음 원류본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분명 이 소설의 소재는 참신하다 할만하다. 훈민정음이 가림토 문자라고 하는 단군시대 글자에서 본을 떴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오는 것이고 말이다. 재야사학계에서 언급하는 사실들은 충분히 소설적 재미로 활용할만 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좋은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 했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책의 막바지에 이르면 두 주인공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이 유적, 저 유적을 찾아나서는 모든 과정이 일본 우익의 수장 야마다가 파놓은 함정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한국의 식민사학자들이 이를 통해 한글의 뿌리는 일본의 신대글자라는 입장을 발표하기까지 이른다. 물론 일본측의 음모는 밝혀지게 되지만 그 모든 과정 사이의 연관성이 치밀하지 못 하다.


문화재청에서 발굴을 해야한다고 떼를 써서(?) 훈민정음 원류본을 찾아낸다는 설정은 읽으면서 그야말로 코웃음을 치게 했고(문화재청은 그렇게 쉽게 발굴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그것도 공문 1장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흡사『다빈치 코드』를 보는 듯한 몇개 조합을 풀어나가면서 이 유적, 저 유적을 찾아나가는 설정은 그다지 참신하지 못 했다. 분명 서민영 아버지가 남긴 암호문의 암호라든가, 일본측이 일부러 파놓은 함정으로 가기 위한 암호문 등은 한국적 팩션에 어울릴만한 아이템이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몇몇 소재나 아이템이 빛을 잃을 정도로 스토리가 빈약했다. 차라리 2권으로 내용을 늘리면서 보다 정교하게 스토리를 짰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출판사 리뷰를 보니 작가는 오랜 기간에 걸쳐 동경, 오사카 등은 물론 국립중앙박물관, 청계천, 경복궁, 신륵사, 세종대왕릉 등 수많은 장소를 직접 답사하고 여러 역사학자와 인터뷰하고, 다양한 자료 등을 바탕으로 이번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인장이 보기에는 이러한 유적 답사가 소설 속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나중에 따로 비평을 적겠지만 역시 똑같은 훈민정음 창제를 갖고 쓴 소설『뿌리깊은 나무』와 비교한다면 이 책은 정말로 어린애 수준밖에 안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에게는 안타까운 말이겠지만 좋은 점수를 줄만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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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약용 살인사건
김상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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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제대로 된 역사소설을 하나 읽었다. 책에서도 적고 있듯이 정약용의 유배지였던 강진을 셀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던 작가는 이 책을 '역사'에 방점이 찍힌 역사소설이 아니라 '소설'에 방점이 찍힌 역사소설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즉, 역사적 사실에서 모티프를 얻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제 역사에서 소재를 얻었다는 내용이지, 책의 전반적인 이야기 구성이 사실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실제 역사적 사실에서 소재 하나 얻었음에도 이야기 전개에 현실감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작가의 연출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설프게 역사적인 소재 한두개 얻어서 소설에 집어넣고는 마치 실제 역사에 근거해 사실적인 내용을 소개하는 양, 떠들어대는 소설보다 훨씬 흡입력 있는 소설이 바로 이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나름대로 극찬(?)을 하는 이유는 주인장이 이 책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일단 이 책을 처음 읽게 된 것은 그 제목이 흥미로워서이다. 현장에 이 책을 있길래 누구 것이냐고 물어봤더니 후배가 한달 전에 사두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이라고 했다. 남의 책을, 그것도 새 책을 먼저 읽는 것이 미안했지만 제목이 흥미로워서 먼저 읽겠다고 하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일단 정약용과 살인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가 궁금했다. 주인장이 알기로 정약용은 살해되지 않았는데 왜 이런 사건이 붙었을까? 아니면 정약용이 어떤 살인사건과 강하게 연관이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정약용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 했지만 분명 그런 것은 없었다. 그런데 왜 이런 제목이 붙었는지 정말 궁금했다. 거기다가 책 표지에는 마치 정약용이 엄청난 음모에 휘말리고 있는, 힘없는 일개 실학자임에도 그를 둘러싸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떠들썩했던 것처럼 적고 있어 더욱더 그랬다. 반역? 하지만 그건 너무 고리타분했다. 암튼 이런저런 생각 끝에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작가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우연이었다. 정약용이 유배지에 온 죄수임에도 거처를 자주 옮겼다는 것에 촛점을 두고 어떻게 유배된 죄수가 그렇게 자유로웠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가 쓴 문집들을 하나씩 살펴보다가 그가 강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연관이 있었다는 점에 착안해 결국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가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신임을 얻어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라는 하나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정말로 작은 사실에서 출발해 결국은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정약용의 유배생활에 대해 잘 묘사한 셈이다. 이 점이 일단 주인장이 꼽고 싶은 첫번째 장점이다. 거창하게 사서(史書)에 나와있는 몇줄의 기록을 짜집기해가며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에 살만 약간 더 붙여 이게 정말 역사인양 떠들어댄 책들에 비한다면 이 책이야말로 진짜 역사소설에 가까웠다. 마치『상도』『운부』『팔기군』등의 역사소설을 읽었을때 느꼈던 느낌과 비슷했다. 주인장은 실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사서의 기록들 사이를 뛰어난 상상력으로 보완해주는 것이 진정한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삼국지연의』가 무수한 논란 속에서도 최고의 소설로 인정받는 것 또한 이 때문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 꼽은 것은 작가의 강진에 대한 묘사였다. 고을길 하나하나, 주막집에 대한 묘사, 산세와 주변 지리 등 작가가 강진에 애정을 갖고 수도없이 그 곳을 다녀간 흔적이 책에 그대로 남은 듯 했다. 그만큼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리라. 그와 더불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에 대해서도 애정어린 필체로 꼼꼼하게 묘사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 주었다. 영화 '혈의 누'를 다들 보셨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전체적인 구성이 그 영화와 상당히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은 약간 다르지만 말이다.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이를 둘러싼 이중삼중의 이야기들, 정약용을 둘러싼 다소 허무하면서도 집요한 음모와 숨겨진 이야기들,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이야기의 전개까지 조선시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해서 이런 이야기가 써지는 것이 가능하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음란서생'이 지극히 현대적인 시각미와 관점을 갖고 만들어진 영화이고 '혈의 누'가 조선시대 살인사건과 검시관 등에 대해 재조명한 영화였다면 이 책은 그 중간쯤의 위치에서 당시 정약용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게 해준다 하겠다.

한국사에서 가장 역사기록이 풍부하고 왕실공식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은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인정받았던 조선시대이다. 그럼에도 기록과 기록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일들은 잔뜩 있었을 것이다. 정사 이외에 야사가 그만큼 많은 시대도 조선시대가 아닌가. 이런 것들은 모두 훌륭한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실제 그러한 소재들로 영화나 책, 사극 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얼마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황진이'(영화는 큰 호평을 못 받는다고 들었지만)도 이러한 시류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물며 조선시대에도 이럴진대 고대사는 더 말할 것이 무에 있으랴. 주인장이 가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소설을 보면서 더 흥미를 느끼고 더 재미를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이처럼 역사기록이 풍부한 시대임에도 소설적 소재가 더 많다는 다소 모순적인 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주인장은 이 책을 이틀에 걸쳐 짬짬히 시간을 내서 읽었다. 아마 마음먹고 읽으면 일사천리로 읽어나갈 수 있을테고 그만큼 재밌다고 말하고 싶다. 한번쯤 읽어보길 권하고픈 책이기에 이처럼 몇자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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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70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 문답으로 이해하는 고구려 역사 지식과 정보가 있는 북오디세이 6
김용만 지음, 장선환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고구려 관련 서적을 읽었다. 구입한지는 꽤 됐고 예전에도 한번 읽었는데 문득 책장을 보다가 다시금 꺼내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주니어김영사'라는 출판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린이들을 위한 고구려사 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 표지부터 책 내용, 문체까지 일반 고구려사 관련 서적과는 다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간 적지 않은 고구려사 관련 서적을 내면서 다양한 견해들을 선보였던 저자의 노력이 많이 돋보이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서점가에는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역사책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 책은 그러한 책들 중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 이후로 다양한 고구려사 서적이 나왔지만 이 정도의 성적을 줄 정도의 수작(秀作)을 주인장은 아직 보지 못 했다.


일단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고구려사를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어른들이 이 책을 보기에는 너무 수준이 낮냐~그건 또 아니다. 어른이라 할지라도 고구려에 대해 총괄적으로 알고 싶다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들이 보는 책이어서 그런지 목차에서도 기존의 정치사적 서술(누구누구왕~하는 식으로)은 배제했다. 철저하게 흥미 위주의, 특정 테마 중심의 이야기들을 풀어나가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우리가 왜 역사를 알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자극을 주고 있어 단순히 읽고 그치고 마는 책이 되지 않게 하고 있다. 특히 책의 마지막에 동북공정에 대해 소개하고 우리가 왜 고구려를 기억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코멘트를 하고 있어 어린이들에게 참 역사교육에 대해 알려주기도 한다.


주인장이 이 책을 읽으면서 재밌다~고 생각한 점은 생활사적인 면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이다. 일반적으로 어린이 서적이라 하면 글씨가 좀 크고 그림이 매장마다 들어가고(물론 이 책도 그렇지만) 적당히 내용만 채우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을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인터넷을 통한 정보수집 능력은 왠만한 어른들을 능가한다. 그런 상황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온라인상의 자료들을 일찍부터 광범위하게 접하게 되는 어린이들을 만족시키려면 그 책의 수준이 어느정도여야 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장은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주고 또한 어른들이 봐도 무난할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와서, 이 책은 생활사적인 면을 많이 서술했는데 각각의 테마로 묶어서 고구려인의 삶에 대해 종합적으로 이해하게끔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이 하나같이 중요한 것들이어서 어느 것 하나 군더더기살을 뺄 수 없는 것들이라 하겠다.


저자는 강조한다. 고구려도 항상 강력했던 국가는 아니라고 말이다. 한나라가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했던 제국이었을때 고구려는 그야말로 인구 십수만의 소국이었지만 훗날 수 · 당 제국이 한나라와 비교해 큰 발전을 보이지 못 했을때 고구려는 인구와 영토가 수십배 증가했다고 말이다. 즉, 우리가 고구려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넓은 땅과 강력한 군사력이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해나갔던 모습이라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책의 첫머리에 이런 이야기를 적음으로써 저자는 어린이들에게 역사란 무엇인지, 역사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역사를 바라봐야할지를 생각하게 해주었던 것 같다. 비록 주인장이 어린이로 돌아가 순수한 동심을 갖고 책을 읽지는 못 했지만 주인장도 나름대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자녀분들에게 역사공부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하시는 많은 학부모님들이 이 책을 자녀분들과 함께 읽고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많은 것을 얻으실 것이라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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