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약용 살인사건
김상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제대로 된 역사소설을 하나 읽었다. 책에서도 적고 있듯이 정약용의 유배지였던 강진을 셀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던 작가는 이 책을 '역사'에 방점이 찍힌 역사소설이 아니라 '소설'에 방점이 찍힌 역사소설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즉, 역사적 사실에서 모티프를 얻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제 역사에서 소재를 얻었다는 내용이지, 책의 전반적인 이야기 구성이 사실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실제 역사적 사실에서 소재 하나 얻었음에도 이야기 전개에 현실감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작가의 연출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설프게 역사적인 소재 한두개 얻어서 소설에 집어넣고는 마치 실제 역사에 근거해 사실적인 내용을 소개하는 양, 떠들어대는 소설보다 훨씬 흡입력 있는 소설이 바로 이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나름대로 극찬(?)을 하는 이유는 주인장이 이 책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일단 이 책을 처음 읽게 된 것은 그 제목이 흥미로워서이다. 현장에 이 책을 있길래 누구 것이냐고 물어봤더니 후배가 한달 전에 사두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이라고 했다. 남의 책을, 그것도 새 책을 먼저 읽는 것이 미안했지만 제목이 흥미로워서 먼저 읽겠다고 하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일단 정약용과 살인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가 궁금했다. 주인장이 알기로 정약용은 살해되지 않았는데 왜 이런 사건이 붙었을까? 아니면 정약용이 어떤 살인사건과 강하게 연관이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정약용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 했지만 분명 그런 것은 없었다. 그런데 왜 이런 제목이 붙었는지 정말 궁금했다. 거기다가 책 표지에는 마치 정약용이 엄청난 음모에 휘말리고 있는, 힘없는 일개 실학자임에도 그를 둘러싸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떠들썩했던 것처럼 적고 있어 더욱더 그랬다. 반역? 하지만 그건 너무 고리타분했다. 암튼 이런저런 생각 끝에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작가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우연이었다. 정약용이 유배지에 온 죄수임에도 거처를 자주 옮겼다는 것에 촛점을 두고 어떻게 유배된 죄수가 그렇게 자유로웠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가 쓴 문집들을 하나씩 살펴보다가 그가 강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연관이 있었다는 점에 착안해 결국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가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신임을 얻어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라는 하나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정말로 작은 사실에서 출발해 결국은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정약용의 유배생활에 대해 잘 묘사한 셈이다. 이 점이 일단 주인장이 꼽고 싶은 첫번째 장점이다. 거창하게 사서(史書)에 나와있는 몇줄의 기록을 짜집기해가며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에 살만 약간 더 붙여 이게 정말 역사인양 떠들어댄 책들에 비한다면 이 책이야말로 진짜 역사소설에 가까웠다. 마치『상도』『운부』『팔기군』등의 역사소설을 읽었을때 느꼈던 느낌과 비슷했다. 주인장은 실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사서의 기록들 사이를 뛰어난 상상력으로 보완해주는 것이 진정한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삼국지연의』가 무수한 논란 속에서도 최고의 소설로 인정받는 것 또한 이 때문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 꼽은 것은 작가의 강진에 대한 묘사였다. 고을길 하나하나, 주막집에 대한 묘사, 산세와 주변 지리 등 작가가 강진에 애정을 갖고 수도없이 그 곳을 다녀간 흔적이 책에 그대로 남은 듯 했다. 그만큼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리라. 그와 더불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에 대해서도 애정어린 필체로 꼼꼼하게 묘사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 주었다. 영화 '혈의 누'를 다들 보셨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전체적인 구성이 그 영화와 상당히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은 약간 다르지만 말이다.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이를 둘러싼 이중삼중의 이야기들, 정약용을 둘러싼 다소 허무하면서도 집요한 음모와 숨겨진 이야기들,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이야기의 전개까지 조선시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해서 이런 이야기가 써지는 것이 가능하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음란서생'이 지극히 현대적인 시각미와 관점을 갖고 만들어진 영화이고 '혈의 누'가 조선시대 살인사건과 검시관 등에 대해 재조명한 영화였다면 이 책은 그 중간쯤의 위치에서 당시 정약용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게 해준다 하겠다.

한국사에서 가장 역사기록이 풍부하고 왕실공식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은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인정받았던 조선시대이다. 그럼에도 기록과 기록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일들은 잔뜩 있었을 것이다. 정사 이외에 야사가 그만큼 많은 시대도 조선시대가 아닌가. 이런 것들은 모두 훌륭한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실제 그러한 소재들로 영화나 책, 사극 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얼마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황진이'(영화는 큰 호평을 못 받는다고 들었지만)도 이러한 시류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물며 조선시대에도 이럴진대 고대사는 더 말할 것이 무에 있으랴. 주인장이 가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소설을 보면서 더 흥미를 느끼고 더 재미를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이처럼 역사기록이 풍부한 시대임에도 소설적 소재가 더 많다는 다소 모순적인 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주인장은 이 책을 이틀에 걸쳐 짬짬히 시간을 내서 읽었다. 아마 마음먹고 읽으면 일사천리로 읽어나갈 수 있을테고 그만큼 재밌다고 말하고 싶다. 한번쯤 읽어보길 권하고픈 책이기에 이처럼 몇자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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