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의 역사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
조르주 장 지음, 이종인 옮김 / 시공사 / 1996년 4월
평점 :
품절


드디어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권을 읽고 서평을 쓴다. 뭐 늘 그렇듯이 서평이라고 해봤자 대단한 것은 아니고 단순히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정리하는 차원이지만 한권, 두권 쓰다보니 어느새 약간의 의무감(?)을 동반한 취미 생활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전에는 그냥 그때 그때 읽은 책, 혹은 누구의 추천을 받아서 읽은 책, 공부하면서 읽은 책 등을 무작위로 골라 서평을 썼는데 어느날 갑자기 서평을 시리즈로 나오는 책에 따라 주욱 정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예전에도 시리즈로 나온 책의 서평을 적어본 적은 있지만, 앞으로 계속 출간될 책의 서평을 그에 맞춰 주욱 정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그것도 나름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얼마 전 예비군 훈련을 가면서 부터이다. 2박 3일 예비군 훈련을 하는 동안 비가 많이 왔었는데, 그때 군복바지 건빵주머니에 시공 디스커버리 1~2권씩 넣어두고 읽다보니 꽤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물론 이 시리즈는 예전부터 분량이 작으면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주인장이 즐겨봤던 책인데, 예비군 훈련을 받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한번 꺼내 읽어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짬짬히 시간을 내서 1권부터 주욱 읽어보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안 읽어본 1권을 구입해서 이렇게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이다.

1권은 제목 그대로 문자의 역사, 즉 사람이 사용하는 문자가 어떻게 생겨났고, 인류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현재 어떤 형태인지를 서술하고 있었다. 책의 첫장을 펼치니 딱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있었다. '사건을 문자로 기록하는 사람은 왕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다.' 과연 그럴까? 하긴 조선시대 양반들을 생각하면 그렇긴 했다. 하지만 문자가 없이도 세계를 정복했던 칭기즈칸과 몽골의 기병들이 있었고, 문자가 없이도 신석기시대 ·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국가를 형성하고 대규모 전쟁을 수행하질 않았던가? 가까운 한국 고대사만 살펴봐도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글자를 아는 식자(識者)가 왕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다는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최고 군통수권자인 왕의 자질을 웅대한 기상과 당당한 체격, 뛰어난 군지휘력 등으로 평가하지 않았는가?

어쨌든 그냥 계속 읽어나갔다. 저자는 14세기 중엽 프랑스의 성직자이자 궁신인 장 프루아사르를 언급했다. 그는 푸아티에 전투로부터 시작되는 그 시대의 전사(戰史)를 쓰기로 마음먹었고, 영국의 귀족과 전투에서 포로가 된 프랑스 기사들을 찾아다니면서 기록을 수집해『프랑스, 영국, 스코틀랜드, 스페인, 브리타니, 그리고 플랑드르의 연대기』라는 책을 썼던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자가 남긴 역사에 길이 남기고 싶은 사실들. 그것을 문자로 남김으로써 우리는 그 시대의 역사에 대해 보다 생생히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순신이 남긴『난중일기』나 유성룡이 남긴『징비록』같은 기록들이 남아있어 전쟁에 대해 선조들이 남긴 기록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과연 이러한 문자 생활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어째서 특정 시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을까?

책의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저자는 인류가 전해오는 이야기를 보존하기 위해 문자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보다 더 세속적인 이유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물론 전해오는 이야기를 보존하기 위함도 있지만, 인류는 문자를 만들어서 농축산물의 수확량을 기록하거나 신전의 종교 공동체의 구성원이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를 기록했으며, 역사적 사건을 보존하기 위해 특정 사건에 대해 연대기적 성격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면서 법전과 과학서, 문학작품들이 문서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문자체계를 통해 각각의 기록들을 남겼던 것이다. 모두들 알다시피 가장 최초의 인류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흥하게 된다. 그리고 문자체계 역시 이 곳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였으며, 얼마 안 있어 중국과 이집트 등지에서도 독자적인 문자체계를 갖추게 된다. 그러면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권력자가 등장하게 된다.

『총 · 균 ·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문자가 집약적 농경을 실행하여 잉여 생산물이 많았으며, 인구의 숫자가 많아 다른 지역보다 정치적 집단으로 성장할 여지가 많은 곳에서 빨리 생겨났다고 말한다. 이는 글 써서 먹고 사는 사람들을 먹여 살릴 정도의 경제 구조가 갖춰져 있다는 의미가 되며, 그렇기에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중국 등지에서는 글 공부로 먹고 사는 소수의 사람들이 권력의 정점에 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남자아이의 귀는 등에 달려 있다. 등을 때리면 말을 잘 듣는다.'는 격언이 있었던 것처럼 어릴때부터 글공부를 시키기 위해 혹독하게 다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집트에서는 왕이 자기를 신이라 생각하여 쓰기, 읽기, 산수 등을 배우려 하지 않았을 때 필경사들의 위력이 더욱더 강해졌다고 적고 있다. 세계사 어디에서나 등장하는 허수아비 왕에 대한 내용 같았다.

덧붙여 저자는 중국의 문자체계를 언급하면서 B.C 2,000년 경에 만들어진 문자가 아직까지 큰 변화없이 계속 쓰인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적고 있다. 사실 그렇다. 서양에서는 알파벳이라고 하는 아직 획기적인 문자체계가 각지로 뻗어나가면서 크레타 선문자, 이집트 상형문자와 신관문자,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 등이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된 것에 비해 중국에서 뻗어나간 한자는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지로 뻗어나가 오늘날까지 쓰이니 말이다. 저자는 한자에 아직도 모든 문자의 첫걸음이자 중요요소인 그림문자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지적했으며(日, 山, 木, 田 등은 모두 그림문자라고 해도 무방한 글자들이다), 정교한 원칙을 따르는만큼 굉장히 시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했다. 가령 '용(龍)'자에 '귀(耳)'자를 붙이면 '귀머거리 농(聾)'이 되는데 용의 귀로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을 표현한 것이니 이것이 굉장히 시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또한 반듯한 네모꼴을 유지하며 사전에 정한 필순에 따라 글을 쓰기 때문에 시각적 효과가 뛰어난 아라비아 문자처럼 장식성이 굉장히 강하다는 것도 지적했다. 여담이지만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한글의 네모난 규격성은 중국의 한자에서 따온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저자는 알파벳의 탄생을 문자의 역사에 있어 혁명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알파벳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언어들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쓰이니 말이다. 물론 알파벳의 등장으로 인해 사라진 다른 어려운(?) 문자들한테는 안 됐지만 말이다. 암튼 이 부분에서 주인장이 놀랐던 것은 29자로 이뤄진 아라비아 알파벳이 굉장히 아름답고 장식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저자는 아라비아 서체의 진정한 장점으로 '무궁무진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알라와 마호메트의 얼굴을 그리지 못 하게 한 이슬람교 덕분에 아라비아 문자는 모스크나 기념비를 장식하는 주된 요소가 되었고, 아라비아 서예 그 자체가 뛰어난 예술품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와 문자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는 동양에서도 그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군주나 조상의 이름과 똑같은 한자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자가 아라비아 문자처럼 장식성이 강한 글자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피휘(避諱) 역시 특정 문화와 문자와의 밀접한 관계를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중세 유럽으로 시 · 공간을 바꾼다. 중간에 저자는 문자의 출현시기를 지도로 표현했는데 B.C 600년 그리스인들과 에트루리아인들이 로마에 정착하여 공회당의 '검은 돌'에 라틴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중세가 될 때까지 새로운 문자의 출현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즉, B.C 3,500~2,500년 사이에 선진적인 몇몇 지역에서 문자가 발생하기 시작하여 B.C 1,000~700년 무렵 페니키아 알파벳이 각지로 퍼져나가는 등 혁신적인 변화가 이뤄진 다음, 라틴어의 등장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혁신적인 문자의 변화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페니키아 알파벳에서 기원한 여러 알파벳들이 사용하기 편하고, 발전속도나 전파속도가 빠른 실용적인 문자체계였음을 반증하는 사실일 것이다.

이후 중세시대에는 로마에서 기원한 라틴어가 여러 필경사들에 의해 쓰이게 되는데, 대략 1,000년간 수도사들이 필경기술을 독점하였다. 당시 유럽에서 글을 쓸 줄 아는 세속인은 거의 없었으며, 심지어는 서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였던 샤를마뉴 역시 문맹이어서 모든 결재 문서에 십자표시만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들 수도사들은 고대 문명국가에서 활약한 필경사들과는 다른 존재였다. 앞선 시대의 필경사들이 혹독하게 훈련받아 국가 통치수단의 하나로 활약하면서 권력의 정점에 섰던 것과 달리, 중세 유럽의 훈련받은 수도사들은 스스로 문장을 만들지도 않았고, 창작작품을 하지도 않았으며 단지 글씨를 베끼기만 했었다. 이는 문자의 수요에 따른 공급에 기인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대신 그들은 서예의 대가로서 아름다운 서체를 많이 만들어냈다고 한다. 즉, 앞선 시대와 달리 문자가 권력의 한 도구가 아닌 상품가치가 있는 발명품으로서 활용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수도원의 필경사들은 예술가가 되었고, 그들의 작품은 걸작으로 취급되었다. 심지어 12~13세기가 되면 대학교 주변에 수많은 책들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을 위한 필경사들이 더 많이 필요해졌고, 길드와 협동조합이 생길 정도였으니 이들이야말로 제대로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글을 아는 관리와 달리 정말 순수하게(?) 글씨만 주구장창 베껴쓰고 돈을 벌었으니 말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니 한국사도 대략 이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조선때부터 중국과 교류하면서 한자를 사용했을 것이라 추정되는데 이는 B.C 1세기 창원 다호리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유물을 통해 증명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의 한자는 실용적인 목적이 강했으리라. 하지만 고대 삼국시대가 되면 문자(한자)는 역사 서술, 법전, 약학서, 문학작품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면서 이전 시대에 비해 한자를 활용하는 사람의 숫자가 많이 늘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자는 일반인들이 배우기에는 어려운 문자체계였으며, 이 당시의 필경사들은 권력의 정점에까지 서지는 못 했지만 권력 통치의 일부분을 담당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동시대 중국에서 문자 사용을 기준으로 관리를 선별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렇기에 동시대 중국에서는 여러가지 서체가 만들어져 쓰였으며, 명필(名筆)이 쓴 글자 몇자는 큰 상품가치가 있는 물품으로 취급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은 이후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가 되면 심화되기에 이른다.

여기까지 읽으니 어디나 문자의 역사는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오래전부터 문자를 사용해온 경험과 기억이 있는 지역에서의 이야기다. 저자는 철저히 그런 지역들(소위 4대 문명이라고 불렸던 4개 문명권) 위주로 언급하고 있다. 아무래도 그 지역들에서 이른 시기부터 문자를 사용해온 역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문자가 없다고 해서 그 지역이 낙후되었거나 문화적으로 후진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만, 아무리 위대한 역사를 지닌 지역이라 해도 그 지역에 대한 역사나 관련 기록이 문자로 남아있지 않으면 오늘날 별로 쓸모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구려가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결국은 당과의 전쟁에서 패했고, 관련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그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페르시아가 그리스와 대결하여 국제적으로 정치적 우위에 섰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리스측 기록을 통해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 등의 역사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것도 꼽을 수 있겠다. 그렇기에 오늘날 문자는 그 민족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날 전세계의 지식은 70% 정도가 영어로 표현되기에 전세계 사람들은 영어를 공부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전세계 지식의 70%가 이집트 상형문자로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영어를 그렇게 공부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저자는 인쇄술의 보급으로 인해 문자는 더 이상 필경사들의 밥벌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과 밀접하게 결합하게 되었다고 서술한다. 초창기 문자는 중앙정부의 권력장악에 큰 도움을 주었으나 알파벳과 같은 문자체계가 각지로 전파되면서 각국의 문자해독률이 높아졌고, 문자는 더 이상 중앙정부의 권력신장을 촉진시키는데 도움을 주지 못 했기 때문이다. 투표를 할 수 있는 인구가 늘어났고, 결국 국민이 정부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된 것도 모두 문자의 발달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문자를 해독할 줄 알면서 입으로만 전해지던 지식이 눈에 보이게 되었고, 인간의 지능과 인식능력 등 잠재적 가능성이 문자 체계 속에서 빛을 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자는 인쇄술이 개발되면서 대량으로 원고를 생산함으로써 한층 더 발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봤을때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목판 · 금속인쇄술을 발달시킨 우리 역사상 어째서 많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갖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쇄술이 대중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발달했는지를 살펴보면 그것은 또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문화가 세계적으로 볼품없거나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책의 뒷부분에는 역시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도 인위적인 한글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는데, 보면 볼수록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 이하 집현전 학자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소리가 나는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자형을 만들고 초성, 중성, 종성으로 이뤄진 구조를 갖춘 것을 보면 얼마나 대단한가 절로 감탄하게 된다. 비록 한자를 비롯해서 주변 국가의 글자들에서 모티프를 따오기는 했지만 그 결과물은 철저히 인공적인, 기존의 문자체계와 전혀 새로운 문자가 아닌가. 어렵게 만든 한글이 당시 기득권층의 한자 사랑(?)에 힘입어 사라지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암튼 얼마 안 되는 분량이지만 한장 한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다. 물론 지면상 많은 내용을 싣지 못 했기에 내용의 중심이 유럽과 중국 등에 치우쳐졌겠지만(상대적으로 인도나 마야, 잉카 등에 대한 서술은 거의 없었다) 그런 부분은 확실히 아쉬웠다. 또한 문자의 역사라고 해서 반드시 문자가 있었던 지역에 대해서만 서술할 이유는 없으며, 문자가 없는 지역과의 비교 · 분석도 있었으면 좋았을 껄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에 반해 중세 유럽의 수도사, 필경사들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한 부분은 눈여겨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주인장은 중세 유럽에서는 기존에 만들어진 단어를 그냥 사용했을 뿐이며, 동양처럼 과거제도를 통한 공부만 하는 범생이들을 관리로 임용하는 제도도 없었던 바 문자의 발달상 별로 볼게 없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종교적인 이유에서든지, 실용적인 이유에서든지 문자 활용도가 발전했다기보다는 서체 그 자체가 발전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떤 것이든지 필요와 이유에 따라 서로 다른 발전 과정을 거치는가 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자가 발명됨으로써 이렇게 문자에 대한 연구서적이 나오는 것이고, 한글이 발명됨으로써 이렇게 주인장이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쓸 수 있는 것이니 문자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새삼 느끼면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라 100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 삼국통일을 이뤄낸 가장 작았던 나라
김용만 지음, 백명식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저자가 2006년 <소년한국일보>에 ‘신라 1000년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칼럼을 엮은 것으로 주인장은 이미 개개의 내용들을 살펴본 적이 있다. 이 대목에서 혹자는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김용만은 고구려사 전공자인데 무슨 신라사?' 그렇다. 저자는 고구려 문명사 전공자이다. 기존에 출판된 역사학 관련 서적들을 보면 크게 '전공자'와 '비전공자'가 쓴 책들로 나눌 수 있겠다. 물론 여기에서 비전공자라 함은 비슷한 학문에 몸담고 있지만 세부 전공이 다른 사람을 지칭할 수도 있고, 아예 역사학 관련된 전공과 상관이 없는 사람(소설가, 시인, 사진사 등)을 지칭할 수도 있다. 어쨌든, 주인장은 비전공자가 쓴 책이 크게 장점과 단점 1개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점 - 다른 학문, 다른 분야의 시각(새롭고 참신하고 틀에 박히지 않은)에서 기존 해석과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단점 - 기존 연구성과를 두루 섭렵하지 않아 괴리감이 들고 허황되거나 깊이가 얕은 지식을 나열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봤을때 이 책은 당연히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책이다. 저자는 고구려사 전공자이지만 삼국시대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 2국과 경쟁 · 타협하면서 성장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다른 나라의 역사도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 저자의 신라사에 대한 공부와 노력이 <소년한국일보>에 연재된 칼럼이었으며, 이번에 나온 이 책은 그 노력의 결실이 어느 정도 맺어진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이 책은 신라사 전공자가 바라본 신라사라기보다는, 고구려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공부한 신라사라는 점에서 좀 독특하다 할 수 있다. 그래서 기존의 신라사 전공자가 바라본 시각과 다른 내용도 들어가 있으며, 비전공자인 저자가 바라본 시각이다보니 역시 비전공자인(그럴 수 밖에 없는) 수많은 독자들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놓기도 했다. 신라사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거나, 신라사에 대한 정교한 자료를 얻기 위해서라면 이 책은 분명히 모자라다. 하지만 이 책이 아동서적이고 또한 신라 통사를 개략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오히려 신라사 전공자가 쓴 아동서적(그런 책이 있는지 모르겠지만)보다도 더 독자에게 쉽고 유익하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서론이 조금 길었는데 이제부터 책에 대해 몇마디 적어보고자 한다. 

우선 책을 읽기 전에 표지부터 맘에 들었다. 먼저 나온 '고구려 700년 …'은 표지가 조금 딱딱하다고 해야 하나, 멋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이 책은 그런 느낌 없이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이어 책장을 하나씩 넘겨보자. 저자는 본인의 신라사에 대한 생각을 첫머리에 적어놓았다. 고구려사를 공부하다가 신라사를 바라보았고, 원망스럽고 밉기도 한 신라사를 어떻게 공부하고 생각하게 됐는지 말이다. 아마 신라사 전공자가 이 책을 썼다면 이런 얘기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은 한국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그런 생각이기에 독자는 저자의 말에 충분히 공감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막말로 한국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중에 어느 나라가 가장 좋아요? 라고 물었을때 과연 몇명이나 신라를 꼽을까? 저자는 첫머리에 자신의 생각을 주욱 적으면서 앞으로 책을 읽어나가는 독자와 같이 신라사에 대해 알아보고, 같이 호흡하자는 뜻을 내비친다. 문체도 이야기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아마 이 책을 읽을 어린이들은 저자가 마치 이야기책을 읽어주듯이 이 책을 읽을 것이다. 

일단 책의 목차가 눈에 확 들어온다. 초기 신라-중기 신라-통일 신라라고 하는 시대순으로 구분한 목차가 말이다. 그리고 세부 목차를 살펴보면 초기 신라는 가야, 일본, 고구려 등 신라보다 힘이 강한 나라들과 관련된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중기 신라때에는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 문무왕 등 우리가 쉽게 기억하고 알고 있는 신라 왕들이 등장하며 통일전쟁을 준비하는 신라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며 통일 신라 시대가 되면 한반도의 단일 정권으로서 번성을 누린 신라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 밖에 신라의 과학 기술, 장보고, 문장가, 신라의 귀족사회, 이슬람과 교류한 신라 등 신라 문화사 전반에 대한 내용을 따로 장을 마련하여 적어두고 있어 신라사에 대해 시대순으로 공부함은 물론, 포괄적으로 이것저것 빠짐없이 공부할 수 있게끔 해 놓았다. 

전체적으로 내용면에서는 일반적인 신라사에 대한 서술이 많아서 딱히 새로울 만한 것은 없다. 오히려 1,000년이나 되는 긴 신라의 역사를 너무 압축시켜 놓았다는 생각에 조금 부족함 감이 없지 않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몇몇 임팩트있는 내용들때문에 전체적으로 책의 흐름을 긴장감있게 구성하고 있어 내용이 길지 않은 것이 낫다 싶기도 했다. 

먼저 주인장이 눈여겨 본 부분은 가야에 대한 내용이었다(24~28쪽). 신라 초기 최대 라이벌이었던 가야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는데, 신라가 건국 후 성장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가야사 통사나 가야 문화사에 대한 서적이 많지 않은데, 이는 비슷한 지역에서 성장했던 신라에 비한다면 더욱 초라하다. 현재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신라사 관련 연구성과가 가장 많은 것에 비한다면 가야사는 아직 걸음마 수준일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가야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별로 없고, 심지어 학교에서 국사시간에도 제대로 배우질 못 하고 있다. 그런 어린이들이 아마 이 내용을 보면 이제 부모님이나 주변의 어른들, 선생님들에게 질문 공세를 퍼붓지 않을까 싶다. 가야가 얼마나 세길래 신라가 꼼짝 못 하고 걔때문에 발전을 못 할 정도냐고 말이다. 가야보다 신라가 어떻게 더 강해졌고, 훗날 가야는 왜 더 이상 발전하지 못 해 크게 발전한 신라에게 복속했는지~에 대한 내용도 추가적으로 더 실었으면 좋았을껄~하는 생각이 들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되는 부분이었다.

그 다음 눈여겨 본 부분은 세계와 교류한 신라(34~38쪽)에 대한 내용이었다. 여기에서 저자는 신라가 북방 유목민의 나라라고 하는 일부 학계의 주장을 비판하고 있다. 아무리 무덤양식이 비슷하고, 성씨(김씨)의 기원이 비슷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외부 세력이 신라를 세웠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 한다고 말이다. 신라뿐만 아니라 가야, 고구려, 백제 역시 서역이나 북방 민족과 교류했다는 얘기도 언급하면서 어디까지나 신라가 토착세력+외부세력이 세운 나라임을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을 독자층이 이런 학계의 여러 견해에 대해 다양하게 알고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만약 그렇다면 이 부분의 내용이 충분히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할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그 밖에 경주 남산에 대해 소개한 부분도 좋았다(126~129쪽). 경주 남산을 한번 갔다 온 사람들은 왜 신라가 '불국토'라 불리는지 알 것 같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그만큼 경주 남산에는 수많은 문화유적이 있는데 저자는 그것들이 모두 672점이라고 적고 있다. 아마 경주를 여행간 사람은 많아도 이 남산을 둘러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재미도 없고, 그닥 유명하지도 않아서 경주 여행 코스에 들어있는 경우를 별로 못 봤는데, 아마 경주 남산이 세계문화유산인 것도 모를 것이다. 그렇기에 이 부분은 독자층 뿐만 아니라 그 부모님에게도 좋은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주인장이 이 책의 白眉로 꼽는 부분은 바로 '세계가 놀란 신라의 과학 기술' 부분이다(179~183쪽). 저자는 첨성대, 월성 안의 시간을 알려주는 누각, 누각전이라는 관청과 누각박사, 사천대 박사,『구장산술』이라는 수학 교과서, 의학이라는 국립의과대학과 의학박사,『신라법사방』과『신라법사비밀방』이라는 의학책, 약전이라는 관청,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다라니경, 백추지라는 신라산 명종이, 에밀레종, 경주 안압지의 폭포 등 신라의 뛰어난 과학 기술 관련된 내용들을 주욱 나열하고 있다. 이 내용들은 신라사를 공부하는 전공자에게도 좋은 아이템을 제공한다고 생각하는데, 하물며 어린이들은 '우와~' 하면서 읽을 것이다. 기존 신라사 관련 서적이나 아동서적 등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만 봐도 저자가 얼마나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신라사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마무리를 짓는다. 신라사의 가치가 무엇인지 말이다. 초기에는 가야보다 약했지만 곧 가야보다 발전하여 가야를 정벌하고, 백제나 고구려보다 약했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는 신라라는 사실을 분명히 각인시켜주고 있다. 삼국통일을 이뤘다는 것만으로도 신라사는 큰 의미가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영토의 크기가 나라의 성공과 실패를 말해주는 척도가 아니며, 신라에도 대단히 뛰어나고 화려한 문화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앞서 신라의 과학 기술을 소개한 부분에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라인들의 대외활동, 국가적 위기를 잘 넘긴 강한 생명력 등을 우리는 본받아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끝을 맺고 있는데, 아마 이 책을 다 읽은 어린이들은 신라사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한번 읽어보기를 꼭 권하는 바이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상관할 것 없이 말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중.일의 역사와 미래를 말한다
김용운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저자와 제목을 딱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용운과 진순신이 대담 형식으로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역사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언급한 책이다. 이 책이 나온지 꽤 됐는데도 아직껏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책인 것 같다. 이 책은『네티즌과 함께 풀어보는 한국고대사의 수수께끼』,『삼국사기 사서 비교를 통한 삼한사의 재조명』,『재미있는 영산강유역 고대사』를 집필한 김상 선생님의 책들을 보다가 김상 선생님이 인용하신 참고문헌에 있길래 찾아서 읽게 되었다.  

이 책 128쪽에도 나와있지만 진순신 선생님의 얘기에 의하면 '일본에서 가져간 국서가 중국 쪽에서 수리되게 하기 위해서는 '신(臣)'이라고 써야 합니다. 중국의 국서에도 그 사실이 명기되어 있지요.' 라고 적혀 있다. 즉,『삼국사기』등에 남아있는 삼국 후기사를 서술한 부분에 나온 중국과의 외교문서(특히 수 · 당)의 신(臣)이라는 호칭이 단순한 외교 관례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598년 영양태왕이 수나라의 대군을 막아냈음에도 불구하고 3개월 뒤 수나라에 보낸 외교 국서에는 '요동분토신원(遼東糞土臣元)'이라는 표현이 분명히 등장한다. '요동 변방에 사는 신하 (고)원은…' 이라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겠는데, 이것이 당시의 수와 고구려간의 국제관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이 한줄의 내용 때문에 이 책이 어떤 책인가~하고 흥미가 생겨서 당장 구입해서 읽어봤다.  

다 읽은 지금의 기분은...음~뭐랄까. 두 사람의 대담을 글로 옮긴 것이지만 분명 그 안에서 말하는 것은 분명한 삼국(한, 중, 일)의 역사였으며, 하나의 주제를 세 나라의 사례를 들어 살펴보기 때문에 굉장히 신선한 시각에서 삼국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 '비교사' 혹은 '비교사적 관점'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삼국의 역사를 전부 전공하기란 어려운 일이며, 당연히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삼국의 역사에 정통한 학자가 일관된 관점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은 기존에 생각치 못 했던 부분, 혹은 기존에 미처 몰랐던 부분이나 기존에 잘못 알고 있던 부분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 책의 두 주인공은 이미 한국과 일본, 중국 등지에서 유명한 역사연구자가 아닌가. 김용운 선생님은 혹시나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겟지만, 한국수학사를 전공한 몇 안 되는 분이며, 한국과 일본의 역사 혹은 문명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온 분이다. 또한 진순신 선생님이야 뭐 주인장의 부연 설명이 필요없는 역사연구자이자 소설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기존 학계의 시각과는 다른 참신한 시각에서 삼국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대담의 주제는 전체적으로 왕조사 중심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큰 목차를 간단히 살펴보면 '제1부 동아시아의 정신을 탐구한다. 제2부 역사에서 지혜를 얻는다. 제3부 동양적 기초로부터 미래를 조명한다. 제4부 한국의 영세중립과 AU가 세계를 구한다.' 인데 보면 알겠지만 삼국의 역사 쟁점이 되는 부분을 언급하기보다는 삼국의 문화, 문화의 근간이 되는 여러 요소들, 각 문화적 요소가 서로 다른 이유 등을 언급하면서 현재와 과거 역사의 관계를 끊임없이 언급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현재까지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었으며, 앞으로 삼국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나름의 방향성도 제시할 수가 있었다. 그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다른 책에서 다루지 못 했던 부분이 아닐까 싶다.  

특히 주인장이 흥미롭게 봤던 부분은 삼국, 아니 동아시아의 문화적 공통성을 언급할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유교'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었다. 그들은 한국의 유교를 '절대화', 일본의 유교를 '교양', 중국의 유교를 '생활'이라고 표현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유교가 각 나라마다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언급했다. '효'를 강조한 한국, '의'를 강조한 중국, '충'을 강조한 일본 등 유교의 영향 혹은 민족성은 각 나라마다 독특한 성질을 나타나게 하였으며, 그러한 민족성에 따라 유교와 같은 종교를 수용하는데 있어 한국은 '정통성', 중국은 '공존', 일본은 '습합'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다. 이 부분이 정말 재미있었던 것 같다. 유교는 오히려 중국에서 생성되어 각지로 파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교적 정통성이라든가, 엄격한 유교적 이론이 강화된 것은 오히려 한국이었다.  

유교라는 것이 아무리 뛰어나고 대단한 학문 혹은 종교성을 지닌 이론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지나면 (고인 물이 썩듯이) 비판이 생기고, 반론이 생기고, 변화를 겪기 마련인데 한국에서는 주자학이 뿌리깊게 내린 뒤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 했다. 명대에 크게 유행해 일본에도 큰 영향을 끼친 양명학도 배척당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이 부분은 마치 마리우스파 기독교가 로마 밖으로 뻗어나갔던 것을 느끼게 했다. 또한 기록을 남기는 일에 있어서 한국은 '명분', 중국은 '다양성', 일본은 '치밀'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도 많이 공감했다. 왜 삼국이 서로 남긴 기록의 성격과 분량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지 말이다. 명분과 정통성을 챙기는 이런 특징 때문에 오히려 후대 사학자들은 선조들의 역사적 기록을 연구하는데 더 힘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특징 때문에 한자의 본토(중국)에서는 이제 사라져버린 정통과 고전적인 모습을 한국이 간직하고 있을테고 말이다.  

두 사람의 대담은 제1부에서 주로 유교를 포함하는 민족성의 근간을 이루는 것들에 대해서 이뤄졌다. 제2부에서는 조금 민감한 사안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일본의 역사 왜곡이 주로 언급이 되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한국은 '정(政)', 중국은 '정(正)', 일본은 '화(和)'라고 한다. 즉, 일본의 경우, 종교를 받아들이는 태도(습합)나 유교를 대하는 태도(교양)에서처럼 좋으면 받아들이고 나쁜 건 빨리 잊어버리자~는 식이란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자신들의 잘못도 이미 지난 일인데 왜 자꾸 들추냐는 식으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정통과 명분을 강조하는 한국인에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일 것이다. 즉, 이는 각국이 서로 다른 민족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본인을 이해한 적은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유연한 태도로 현재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 밖에 일본의 외교관과 역사관 등을 다루었는데 제2부에서 재밌었던 것은 '충(忠)'에 대한 삼국의 태도였다. 한국은 정몽주식 충이라면, 중국은 의의 충이고, 일본의 개의 충이라는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인데, 싫어도 혹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현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일본식이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오늘날 일본의 성문화가 지극히 개방적인 것도 이런 민족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얘기한다. 중국은 거대한 영토에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외래문화나 외래사상을 많이 포용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것을 중국의 전통 안에 녹여내는데 반해 한국은 정통을 고집하고 있다고 말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대국이 되기 위해서 꼭 명심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했다. 

제3부에서는 근대사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 어째서 한국과 중국에 비해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했고, 한국은 심지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는지에 대한 대담이 이뤄졌다. 그러면서 상업의 중요성이 화두에 올랐다. 알다시피 한국은 상공업을 천시했기 때문에 국가 성장에 있어 한계성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일본이나 중국은 일찍부터 상업적인 성공을 이룬 국가였으며, 특히 일본은 서구 사회와 이른 시기부터 접촉하여 근대화에 가장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和'와 직결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해 사회적 변혁을 통해 크게 성장할 수는 있었지만, 그러한 급진적인 변화는 과거 일본의 전통과 단절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그런 부분은 아쉽다는 말을 꺼냈다. 또한 타국을 침입하여 저지른 만행이나 식민지 경영에 대한 죄과에 대해서는 일본인들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제4부에서는 한, 중, 일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는데 각 나라마다 다른 특징을 하나로 묶어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아시아 공동체를 이뤄야만 한다고 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왕조의 척화정책을 답습한 북한의 폐쇄성이 사라져야 한다는 말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또한 삼국은 서로 다른 말과 서로 다른 스타일의 유교정신을 지니고 있지만 동양 공통의 정신 기반인 한자와 유교를 공유하고 있기에 얼마든지 융합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또한 서구사회에서 동양의 유교정신을 주목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일본이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경제적으로 삼국이 노력한다면 아시아 공동체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 두 사람 대담의 마무리였다. 

어떻게 보면 역사책도 아니요, 어떻게 보면 국가 정책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요, 어떻게 보면 삼국의 문명을 비평한 책도 아니다. 굳이 따진다면 '삼국의 문화 및 문화의 근간을 통해 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삼국은 지형도, 기후도 다르며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민족성이 달랐다. 당연히 역사가 진행된 과정 또한 달랐으며, 그 과정에서 서로간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기도 하였다. 하지만 삼국은 거시적인 안목에서 바라본 동아시아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정치체에 해당하며, 역사적으로 수천년간을 교류해온 역사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지금은 국경이 나눠져 있고, 언어와 정치체제도 각각 다르지만 아시아 공동체를 이뤄 다가올 시대의 든든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역사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며, 역사를 통해 배운 교훈을 어떻게 기억하고 적용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안 읽어보신 분들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국시대 과학자들은 정말 대단해 - 삼국 시대를 빛낸 과학자들
김용만 글, 시은경 그림 / 계림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주인장이 예전에『삼국시대 여성들은 정말 대단해』라는 책의 서평을 올린 적이 있다. 그리고 오늘은 여성이 아닌 과학자들에 대한 얘기를 한번 해 볼까 한다. 아~먼저 이 얘기를 해야할 것 같다. 앞서 나온 책과 이번에 나온 책의 제목을 보면 뭐가 딱 떠오르는 것이 없나 한번 물어보고 싶다. (4~5초 정도 고민해보고 ^^) 그렇다. '여성'과 '과학자'는 지금까지 역사의 주체로 대접받지 못 한 대상이었다.『삼국사기』를 비롯한 정사류에 여성이나 과학자에 대한 기록이 많이 실려있는가? 아니면 발굴조사로 밝혀진 옛날 사람들 중에 여성이나 과학자에 대한 내용이 많이 있는가? 정답은 'No'다! 이전 책에서 저자는 말한 적이 있다. 역사는 지금까지 남자의 역사였던 'Hi스토리'였지 'Her스토리'가 아니었다고 말이다. 당연히 시중에 이런 삼국시대 과학자에 대한 책이 나온 적도 없다. 여성에 대한 책이 처음 나왔던 것처럼 말이다. 하물며 어린이용 책이야 말할 것도 없고~그렇기에 주인장은 일단 적지 않은 기대를 하고 책장을 펼쳤다. 

그럼 목차를 한번 보자.

1장. 기술자가 왕이다.

       임금님은 대장장이! - 석탈해

       기술자가 신이다! - 고분 벽화에 그려진 기술자 신들

       백제 기술자는 높은 직급의 관리였다

       옷감 짜는 왕비 - 세오녀

2장. 뛰어난 작품을 만든 기술자들

       황룡사 9층탑을 건설한 백제 기술자 - 아비지

       백제의 후예 - 아사달과 아사녀 전설

       탁월한 불교 예술의 장인 - 양지

       금당 벽화를 남긴 종합 예술인이자 과학자 - 담징

3장. 후대에 이름을 남긴 기술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의 창업주 - 유중광

       신라의 무기 기술자 - 신득

       성덕 대왕 신종을 만든 주종대박사 박종일

       무령 왕비의 은팔찌에 이름이 새겨진 다리

       일본에 술 빚기를 전한 백제의 기술자 - 수수허리

       뛰어난 침술로 이름 높았던 안작득지

       말의 병을 고친 수의사 - 승려 혜자

       기록에 남은 삼국시대 의사들

4장. 놀라운 삼국시대의 기술

       고대 금속 공예 기술의 최고 경지 - 백제 금동 대향로

       백제의 놀라운 초정밀 기술의 결정체 - 운모장식

       신라의 자동 로봇 - 만불산

       동아시아 예술의 꽃 - 고구려 고분 벽화

       신라 과학의 결정체 - 석굴암

       고구려 건축 기술의 종합체 - 성

       제왕의 학문 - 천문학

       해상왕 장보고를 만든 배무이 기술

       목판 인쇄술의 시작 - 다라니경

       신라에도 있었다 - 해시계, 물시계

       삼국 시대의 냉장고 - 신라의 석빙고

5장. 과거로부터 배워 미래를 준비하자

       이유부터 살펴보자 - 왜 조선 시대에는 과학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 삼국 시대 기술 발전의 원인

       기술자를 꿈꾼다면 구진천을 배워라

       미래는 어떨까 - 지식과 기술의 시대

일단 여기서 퀴즈 한번 내보자. 목차 중에서 4장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몇개나 되는지 한번 짚어보자. 일단 주인장이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던 챕터를 한번 짚어보겠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위의 책 표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어린이용 책이다). 먼저 2장의 양지, 3장의 유중광과 안작득지, 4장의 만불산, 신라의 해시계와 물시계를 꼽을 수 있겠다. 명색이 역사 공부하는 대학원생인데 이렇게나 모르는게 많다. 창피하게시리. 암튼 목차에서부터 독자를 압도하는 포스가 느껴졌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어린이책이라고 무시할게 못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저자는 석탈해 얘기를 하면서 돌궐 얘기를 빼놓지 않았다. 아마 대장장이 출신이 왕이 되는 사례를 따진다면 석탈해보다 돌궐이 더 적합할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게 돌궐의 역사를 알려주는 책은 주인장이 알기로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렇게 석탈해와 비교해서 이해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저자는 대무신왕이 부여를 공격할때 도움을 준 부정씨 세력을 대장장이 집단으로 이해했다. 솥을 만들어서 갖고 왔으리라는 해석인데, 이 부분에 대해 주인장은 아직 판단 보류 중이다. 왜냐하면 솥을 갖고 온 집간이긴 하지만 저절로 밥이 지어져 고구려군이 배불리 밥을 먹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식량을 담당했거나 경제적으로 고구려군을 원조해준 집단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암튼 이 부분은 실제 역사 기록이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알려주기 위한 Tip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뒤이어 저자는 기술자에 대한 얘기와 고구려 수레 및 다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특히 주인장은 27쪽의 삽화가 마음에 들었는데,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한번 보자. 당시 고구려의 교통수단을 말이다. 어린이들이 이 삽화를 보면서 부모님과 어떤 얘기를 나눌지 궁금하다. 요즘도 당연히 다리가 있고, 자동차가 있으니까 이 삽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일지, 아니면 옛날에 무슨 나무 다리를 저렇게 크게 지을 수가 있냐고 물어볼지 말이다. 어쨌든 고구려와 신라가 수천대의 수레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해 줌으로써 어린이들이 조선시대의 가마꾼에서 벗어난 인식을 갖게끔 한 것은 참 바람직한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밖에 백제와 신라에서 박사라는 관직이 있었고, 이들이 높은 벼슬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이는 아마 어른이라고 해도 관련 전공자가 아니면 모를 내용일 것이다. 요즘 '박사' 혹은 '박사님'이라고 하면 흰머리에 수염을 기르고 하얀 실험용 가운을 걸친 모습을 많이 떠올리는데, 과거의 박사도 별반 다르지 않은 존재였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지적 탐구를 했으며, 각종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고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의 사회적인 대접을 받았었고 말이다. 뒤이어 신라의 길쌈 문화와 주몽과 활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줌으로써 이 책을 주로 읽을 독자들에게 기술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이 책을 읽힐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어떻게 키우고 싶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보여줌으로써 단순히 흰색 와이셔츠에 안경 쓰고 책상에 앉아 컴퓨터나 두들기는 일보다는 이렇게 발전 가능성이 있는 기술직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주인장이 주의깊게 봤던 부분은 양지에 대한 것인데 처음 접하는 내용이었다. 석장사에 대한 내용도 그렇고,『삼국유사』에 남아있는 양지의 작품들도 그렇고 말이다.『삼국유사』는 분명 읽어봤을텐데 기억이 안 나는 것은 주인장의 관심사가 아니었으리라. 어쨌든, 이런 대단한 예술작품을 만들었던 장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할 것이라 생각한다. 영묘사의 장륙불상과 사천왕상 및 전각과 탑의 기화, 사천왕사 탑의 팔부신장, 법림사의 세 부처와 좌우 금강신, 석장사의 3천 부처 벽돌탑, 분황사 모전석탑의 인왕상, 문무왕 화장터로 추정되는 능지탑의 소조상, 감은사 동서 쌍탑의 사리구 등 양지의 손길이 미쳤다고 하는 작품들은 오늘날 하나같이 국보급 대접을 받는 문화재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양지의 손길을 탔다니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이 사람은 정말 하늘이 내린 인재(天才)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그가 신라인으로 유학을 갔든, 중앙아시아에서 귀화한 사람이든 그건 중요치가 않다. 이런 대단한 인물이 한국사에 이름을 남겼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며, 그것을 지금껏 모르고 살아온 내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일일 것이다.

양지에 이은 등장인물은 담징인데 저자는 그가 금당 벽화를 남겼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주인장이 알기로 그런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금당벽화를 그린 인물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담징은 다만 고구려에서 건너가 채색과 종이와 먹을 만들고, 연자방아를 만들어 줬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예전에 이 사실을 수업 시간에 듣고 관련 자료를 찾아봤지만 역시 담징이 호류사 금당 벽화를 그렸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찾기는 어려웠다. 다만, 호류사에 남아 있는 백제 관음상이나 옥충주자, 천수국 만다라수장을 봤을때 고구려나 백제, 신라의 장인들이 건너가 그것들을 만들었던 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이 부분은 주인장도 관련 자료를 추가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은 자제하도록 하겠다.

그밖에 유중광에 대한 얘기도 처음 알았는데, 곤고구미[金剛組]라는 회사가 578~2006년까지 무려 1428년이라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고건축 전문 건축회사라니 정말 놀랄 따름이었다. 오늘날 한국의 고건축을 복원하거나 수리할때 일본의 문화재 복원팀이 건너온다는 얘기는 여러번 들었지만 정말 안타깝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또한 무령 왕비의 은팔찌에 이름이 새겨진 다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국사책이나 일반 역사책에서도 잘 나오지 않는 내용이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읽고 놀랄만 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이 은팔찌를 보면 그 세공의 정밀함이나 문양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된다. 주인장은 개인적으로 이국적인 느낌의 이 팔찌를 만든 사람이 중앙아시아 계열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추측을 해 보기도 한다. 이미 백제는 금동대향로 등 엄청나게 아름다우면서도 국제적인 물건을 만들었던 나라였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침술로 유명한 안작득지나 수의사로 이름을 날린 혜자 스님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기병을 다량 보유했고 그만큼 목장에서 기르는 말도 많았을 고구려에서 말을 고치는 수의사(馬醫)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고구려사를 다룬 연구서적에서 혜자 스님의 마의 활동을 알리는 경우는 없었다. 당연히 국사책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이런 부분이 바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그밖에 저자는 왕유릉타나 소수니, 독치자 등의 유명했던 의사를 소개하고『고려노사방』이나『백제신집방』,『신라법사방』,『신라비밀법사방』과 같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서적을 인용하여 삼국시대 약재나 의료술에 대한 내용을 Tip으로 다루고 있었다. 아마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인삼이 고구려, 백제의 주요 수출품이었고 고구려가 백제를 제압한 후 백제의 인삼 교역권을 빼앗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으면 부모님이나 아이들이 충분한 지식을 쌓을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언급하자면, 106쪽의 고려 진주조개 이야기나 107~110쪽의 만불산 이야기는 정말 어린이들에게 동심의 나래를 펼치게 할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저절로 움직이는 만불산 기계장치는 아마 지금 만들라고 해도 못 만들 것이다. 고려 진주조개와 같은 정교한 세공품 역시 마찬가지다. 정말 그런 것이 있다면 눈으로 보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신라시대 해시계와 물시계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만약 그런 것들이 지금까지 기적적으로 남아 있어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마치 왕흥사지 목탑 주변에서 발견한 운모장식판을 봤을때 느꼈던 그런 카타르시스가 전해질 것이다. 그 운모 장식판을 처음 뉴스에 실린 사진으로 접했을때 어찌나 놀랐는지 아직도 그때 기억이 난다. 콧바람에도 날아갈 정도로 얇고 가볍고 깨지기 쉬운 운모를 아름다운 장식품으로 만들 정도면 그것을 만든 사람의 기술력은 어느 정도이며, 그 노력은 또 어느 정도이겠는가.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5장. 과거로부터 배워 미래를 준비하자'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조선 시대 학문을 배운 선비보다 장인과 상인이 낮은 계급이었기 때문에 기술자의 사회적 지위가 크게 낮았고, 당연히 조선 시대에 과학 기술이 발전하지 못 했다고 강변한다. 게다가 조선은 사치를 멀리 하고 상업 발전을 억누르는 사회였으며, 외국과의 교류도 적고 전쟁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술력의 중요성을 깨우치지 못 했다. 그에 비해 도자기 전쟁이라고 불리는 조-일전쟁(임진왜란)을 통해 일본은 엄청나게 많은 도자기 기술자들을 잡아가 일본 도자기를 전 세계적인 교역품으로 만들어냈다. 당연히 양국간의 국력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삼국 시대에는 왜 과학이 발달했는지도 알려준다. 삼국간의 치열한 경쟁은 상대방보다 내가 더 잘 살게 하기 위해 기술력의 발달이 요구됐던 사회였다. 산업 스파이가 오고 갔으며, 기술을 이전해주는 대가로 군대를 빌려오기도 했다. 저자는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삼국 시대의 기술 발전의 원인을 알려주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은 왜 삼국 시대에 비해 조선의 기술력이 쇠퇴할 수 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마무리를 짓는다. 기술에는 조국이 없지만 기술자에는 조국이 있다고 말이다. 과학 기술의 중요성을 알고 많은 이들이 과학에 관심을 쏟아 국가 발전에 힘쓴다면 삼국 시대처럼 우리 나라가 더 부강해지고, 더 풍족해질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자칫 학교에서 덜 배우고, 오해하기 쉬운 과학 기술에 대해 저자는 이 책을 봄으로써 그런 부분을 메꿀 수 있게 하고 있다. 이전에 나온 여성에 대한 책처럼 이 책 역시 독자들에게 스스로 역사가 무엇이며, 과학자가 왜 중요한지, 기술 발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데 중요한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주인장은 개인적으로 이전 책보다 이 책의 삽화가 어린이용 책에는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르시아 문화 살림지식총서 144
신규섭 지음 / 살림 / 200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한권 소개하고자 한다. 여자친구 집에 있어서 한번 펼쳐 봤다가 흥미로운 내용이 많아서 단숨에 읽어버린 책인데, 아마 다른 분들도 부담없이 1시간여 정도만에 다 읽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이 책을 주인장이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중 가장 큰 것은 '아! 내가 페르시아에 대해서 너무나도 모르고 있었구나~'라는 사실이었다. 마치 한창 히타이트에 꽂혀서 관련 서적들을 뒤졌을 때의 그런 느낌이랄까? 세계사책에서, 혹은 페르시아 역사를 부차적으로 다루던 역사책 등에서(주로 그리스 관련 서적이었던 것 같다) 봐 왔던 페르시아와는 전혀 다른 내용들이 있었기 때문에 읽으면서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불과 100쪽도 안 되는 책을 보면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머리를 '탁! 탁!' 치면서 본 적은 독서를 시작한지 어언 20여년이 넘었지만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목차는 간단하다. 순서대로 한번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1. 페르시아 문화 새롭게 엿보기 

2. 중세 학문의 본향 

3. 이란계 이태백 

4. 인류 최초의 문명 

5. 불교와 페르시아 

6.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7. 쉬아파와 수피즘

8. 돈황과 서역 

9. 올리브 나무 사이로 

10. 이란의 현대 문화

한번 목차를 보자. 여기서 딱 느껴지는 것이 없는가?? 주인장은 3번과 5번 목차를 딱 보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태백이 이란계라고? 또 페르시아가 불교와 관련이 있다고?? 주인장은 페르시아사에 대해 많이 알지 못 한다. 기껏 알고 있는 것을 꼽자면 예전에 페르시아 아케메네스조의 시조인 키루스 대왕에 대한 역사소설을 한번 읽은 적이 있고(서평도 썼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과 관련된 책 몇권과 영화(300)를 봤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으로 알렉산더와 페르시아의 전쟁 관련된 부분을 읽어보기도 하였다. 다시 되돌아보면 주인장이 알고 있는 페르시아는 그리스라는 자그마한 나라를 좌지우지하던 중동의 거대 제국, 다민족 국가, 엄청난 영토와 막강한 군사력,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을 남겼던 나라였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주로 전쟁(혹은 군사부분) 관련된 내용을 주로 공부했던 것이 사실이며, 그 이상은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3번과 5번 목차를 보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목차에서 한번 놀란 주인장은 '페르시아 문화 새롭게 엿보기'(일반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부분인 듯 싶다)라는 장의 첫 줄을 읽고 또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이란은 왜 아랍연맹에 가입하지 않았을까?'

'어...진짜~그러게 왜 가입 안 했지?' 생각해보니 이란은 이라크를 위시한 아랍국가들과 정치적인 행보도 다르게 행했었다. 왜 그럴까? 저자는 당당히 말한다. 이란은 아랍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인장은 또 혼란을 겪었다. 이란은 왜 아랍 국가가 아니라는 것이지? 주인장이 알고 있는 아랍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단순히 '이스라엘을 제외한 주변 국가'였기 때문에 이런 혼란은 당연했다. 저자도 책에 적고 있지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물론 주인장처럼 이런 얘기를 들으면 놀랄 것이다. 저자는 세계 이슬람권 중 중동 이슬람권은 크게 아랍 이슬람권과 페르시아 이슬람권으로 분류가 가능하며, 그 중 이란은 페르시아 이슬람권이라고 했다. 페르시아 이슬람권의 신앙은 조로아스터교와 불교로 이어지는 고대로부터 전해진 범신론적인 토대 위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이슬람교는 유일신 사상인데 왠 범신론? 책을 읽을수록 복잡해져만 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점점 이해가 갔다. 조로아스터교, 불교, 마니교의 전통을 갖고 있던 페르시아는 외래 종교인 이슬람이 들어오자 쉬아(시아) 이슬람을 주창하였으며, 순니 이슬람과는 차별성을 두었다고 말이다. 오늘날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이슬람권은 이란,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중앙아시아 일부 지역 등으로 대략 3개국 4개 지역권이며 중앙아시아에 2천 5백만 명, 서남아시아에 1억 4천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즉, 아랍 이슬람권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22개국의 셈족 지역이며, 페르시아 이슬람권은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아리안족 지역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불과 3페이지 정도 읽었을 뿐인데, 주인장이 페르시아에 대해서, 아니 그보다 중동의 역사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全無하다는 생각에 할말을 잃었다. 내 지식이 요 정도밖에 안 됐구나. 하아~한숨만 나왔다.

책장을 하나씩 넘길 때마다 주인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읽어나갔다. 페르시아의 과학 기술이 동시대 서양보다 뛰어났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알코올이 페르시아인 의학자 라지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또 처음이었다. 또한 저자는 제2의 아리스토텔레스로 불리던 '알파라비', 이슬람 신학의 최고봉 '가잘리', 이슬람 사상과 관련하여 순니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파를 창시한 '알아쉬아리', 이슬람 최고의 학당으로 불리는 내저미예 대학을 설립한 셀주크 왕조의 재상 '내저몰 몰크', 대수학의 아버지 '알콰레즈미', 지구 공전을 주장한 '나시룻딘 투시', 무슬림 의학의 선구자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의학자로 꼽히는 '라지', 시대를 초월한 최고의 의사로 꼽히는 '이븐 시나', 전설적인 무슬림 연금술사 '자비르 이븐 하이얀' 등을 언급하면서 이들이 페르시아인으로서 학계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소개하는 책자나 언론을 많이 못 봤다고 비판했다. 주인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대단한 인물들의 이름을 왜 주인장은 거의 다 처음 보는 것을까? 학교에서는 대체 뭘 가르치는 거지? 그 흔한 갈릴레이의 일화는 소개하면서 왜 나시룻딘 투시라는 이름은 알려주지 않는거지??

책은 점점 쇼킹(?)한 내용을 담는다. 이태백은 이란계란다. 중국인이 아니라. 아무리 당 왕조가 국제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을 세계제국이었다지만 그 훌륭한 한시들을 남긴 詩仙 이태백이 페르시아 사람이라니. 또 저자는 세계 최초의 문명을 이룩한 수메르인은 이란 고원의 원주민으로서 북동 지역에서 메소포타미아 평원으로 이주한 것이라고 한다. 즉, 이란 고원의 중앙부에서 발원한 문화를 갖고 이라크로 넘어가 찬란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저자는 하심 라지의『이란 고대 종교』라는 책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책은 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페르시아가 불교 국가였다는 사실, 안세고나 안현과 같은 인물이 모두 페르시아인이었고, 심지어는 보리 달마도 남천축인이 아니라 페르시아 사람이라는 사실들을 밝히고 있는데 깜짝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니체와 짜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에 대한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아마 페르시아사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사람들에게 그나마 알려진 것이라면 짜라투스트라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주인장도 이는 알고 있었지만 자세한 것은 잘 몰랐기에 이 부분도 재밌게 읽어 나갔다. 저자는 석가, 노자, 공자, 소크라테스 등의 성인이 기원전 5세기 경에 동-서양에서 거의 동시에 태어난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모두 그보다 이른 시기 조로아스터라는 선구자가 사상적 토대를 닦아 놓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 니체는 조로아스터가 30세에 산에 들어가 10년 고행 끝에 설교를 시작한 것에 비해, 예수는 불과 40일간의 고행 끝에 설교를 시작했기 때문에 예수의 가르침에는 청년 특유의 결함(미숙과 경솔)이 있었다고 비판했다고도 한다. 정말 놀라운 사실이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정말 참신한 내용들이 가득해서 정신이 없었다.

또한 쉬아파와 수피즘에 대해서도 얘기했는데, 수피즘에 대한 것을 읽다 보니 도교의 무위자연과 상당히 비슷한 사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페르시아의 애르펀이나 이슬람의 수피즘을 한국에서는 단순히 신비주의로 번역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또한 저자는 회교와 이슬람교의 차이점도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 회교는 중국의 소수 민족인 회족이 믿는 이슬람교를 지칭하는 것일 뿐, 큰 차이는 없지만 대부분 회교를 이슬람교의 卑稱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정말 짧지만 그 내용은 굵직굵직한 것들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란 영화를 언급하면서 이란의 현대 영화들이 페르시아 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몰랐는데 2002년 한해에만 국제 영화제에서 100여 개 이상의 상을 휩쓴 것이 이란 영화라니 정말 놀랄 따름이었다. 이걸 보면서 우리 나라가 이랬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그 밖에 저자는 이란의 시, 예술, 문학 등을 언급하면서 포스트 모더니즘 사회에서 페르시아 문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고,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치 서양이 그들의 막장 사회를 개혁할 대안으로 동양의 유교에 주목하는 신 유교주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몰랐던 제3세계의 문화와 역사가 오늘날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전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주인장은 이 100쪽도 안 되는 책에서 처음 알았다니, 그 사실이 한탄스러웠다. 주인장, 아니 주인장같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 중에 과연 페르시아 문화나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다 덮은 지금...다른 분들이 이 책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는 모르지만 한번쯤은 이 책을 읽어봤으면 하는 생각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arine 2009-06-20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림총서는 워낙 다양한 필자들이 나오다 보니 함량미달의 책도 종종 있어서 고를 때 주저하곤 하는데 이 책은 읽어 보고 싶네요.

麗輝 2009-06-20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오셨네요. ^^ 살림지식총서 안 그래도 시리즈가 워낙 많아서 마린님 말씀대로 잘못 고르면 엉망인 책들이 많은데...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안 그렇더라고요. 분량이 얼마 안 되는데다가 볼만한 내용들이 많이 있으니깐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듯 합니다. 물론 저자가 조금 과대해석한 부분도 적지 않지만(페르시아 불교 관련된 부분) 전체적으로 무난한 책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