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그만둬도 괜찮아

- 하루에도 열두 번씩 그만둘까 버텨볼까 고민하는 여자에게, 

유재경, 북포스, 2013.


  여름의 긴 휴가를 즐기고 난 다음, 아 가기 싫어!

  직장인이라면 휴가 첫날부터 시작해 마지막까지 내뱉는 말이다. 아, 회사가기 싫어!

  그럴 때 누가 “그래 가지마, 그만둬”라고 말해준다면 감사…잠깐 그렇겠지만 또 이성을 끈을 붙잡고서 왜 그만두면 안되는지를, 그만 둘 수 없는지를 주절주절 늘어놓게 된다. 직장인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은 내 의지일 것이니까 타인의 ‘그만둬’라는 말은 결정적 한방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만둠으로 인해 단절되는 그 지폐와의 연결이 삶을 지탱하는 것이라….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라는 병이 있는데 이 병은 시베리아

   농부들이 걸리는 병이라는데 날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곡괭이를 팽개치고 지평선을 향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간다는데 걸어가다 어느 순간 걸음을

   뚝, 멈춘다는데 걸음을 멈춘 순간 밭고랑에 쓰러져 죽는다는데


   오르다 말고 걸어가다 마는 어떤 일생

     - 천양희, 어떤 인생 중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천양희 시인의 <어떤 인생> 속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병에 걸려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잔상이 머릿속에 남는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를 안다는 것. 그 견딜 수 없음을 알아챌 수 있다면.

  헬조선, 열정페이. 이 나라에서 직장인으로 산다는 건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병에 걸린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정해진 휴가일을 사용하는 일이 불법인양 이뤄지는 문화, 휴가보상금으로 만족하는 문화, 휴일없이 연장근무를 강조하는 문화, 휴식이 게으름인 문화… 그런 문화속에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성과를 내기 위해 쉼없이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멈춰지는 삶을 맞게 될 것이다. 특히 이 땅에서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은 가사일 또한 여성에게 온전히 짐지워진 상황에서 더욱 더 자신을 옥죄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다가 저자처럼 소진되어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쓰러지는 날이 있게 되리라.

  완벽한 커리어우먼이 되기 위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하던 저자는 그것에 만족을 느꼈고 그러한 삶이 행복인줄 안다. 하지만 정신과로 찾아가 울면서 상담을 받으러 갈 정도의 상태를 경험하고 난 후 삶에 휴식이 필요함을 느낀다. 쉰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그 속에 활력과 전진이 있음을 만족이 있음을 행복이 있음을 알게 된다. “삶에서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더할지, 무엇을 강화하고 무엇을 변화시켜야 할지”를 저자는 깨우쳐 가며 더 행복한 삶으로의 전진을 한다.

  물론 완벽한 커리어 우먼이 되기 위해 살았던 저자의 스타일은 이 휴식이라는 것, 삶에서 멈춰 내고 덜어내는 것을 찾기 위한 방법도 일하는 느낌과도 비슷한 면이 있었다. 쉬지 못하는 이유라거나 쉬어야 할 이유, 그 당연성에 대해서 어느 순간 강박적으로 찾으며 자신이 쉬고 있은 것에 대한 타당성을 찾으려 보여서 안타까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생활방식이 줄곧 자신이 채찍질해가는 스타일이던 저자가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한 자신만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저자는 자신의 스타일로 자신이 살아온 생활방식, 자신을 이끌어가던 신념을 조정해 갔다. 그 노력이 놀라웠고 응원하게 된다. 우리에게 오랜 세월 체화된 암묵의 방식들을 바꾸는 일은 얼마나 힘든가.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했다. 그 노력으로 저자는 쓰러지기 전, 아니 쓰러져서 다시 일어났다.

  사실 세상은, 아니 직장은 내가 없으면 안될 듯이 굴어도 없어도 잘 돌아간다. 그것을 알게 될 때 은근한 씁쓸함이 든다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그렇게 존재감을 획득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없다고 없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은 결국 끊임없이 일을 ‘시키기’ 위한 방식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것에 걸려 나 없으면 일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의 취미와 욕망을 누르며 너없음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짓 회사의 소리에만 귀기울였는지 모른다. 어쩌면 더욱 열심히 일하거나 적절하게 쉬면서 일하거나, 그 모든 것에서 중요한 것은 ‘자아’를 잘 조정하는 일이 아닐런지. 그리고 언제든 “그만둬도 괜찮다”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전제하고 있을 때 자유로운 생활을 더 구가하며 직장인의 삶도 잘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쉼,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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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전환’이 나를 스토커로 만들다



How to Live 갈림길에서 삶을 묻다의 저자

윌리엄 브리지스



■ ‘가장 영향력 있는’???


  세계적인 유력 일간지 중의 하나로 꼽히는 『월스트리트 저널』은 기업과 금융관계 기사 보도를 1차적 목적으로 창간한 신문이다. 미국 뉴욕시에서 발행되는 이 신문은 정확한 보도와 넓은 취재범위, 작은 것에 대해서도 세심한 취재가 신문의 호평과 성공을 이끌고 있다. 이 신문은 자주 ‘가장 영향력 있는’ 시리즈를 선정한다.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십 전문가,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사상가,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기업인,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철학자 등등……. 그리고, ‘가장 영향력 있는’ 컨설턴트???

  기업과 금융 쪽에 관심이 별로 없기에 이런 주제에 흥미를 갖지도 못하고 너무 자주 월스트리즈 저널발 ‘가장 영향력 있는’ ○○인 리스트를 들어왔기에 여기 10인의 컨설턴트라는 글에도 별로 놀라움을 가지지 않은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나의 관심이었다. 나의 머리가 얼마나 따로 놀았는가를 알려주는 것은, 분명 아내가 사망했다는 글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보고 순간적으로 ‘남자야?’라고 했다는 점이다.

  어느 때는 작가 소개나 책의 소개에 내용이 아닌 이러한 외형적인 수식어와 홍보가 글을 읽는데 방해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읽기도 전에 놀라야 하나? 다른 사람들은 다 놀라워하는데 내 맘에 안들면 그만큼 내가 부족한 건가? 따위의 생각도 들기도 하고 말이다. 반면, 당연 그렇게 대단한 사람의 생각을 읽게 된다는 데 대한 기대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저러한 수식어로 홍보된 이 책은 내게 기대에 대한 충족과 만족을 줄 것인가, 과도한 홍보만도 못한 감흥을 줄 것인가!?


■ 그의 ‘전환’이 나를 스토커로 만들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전환’의 모든 것을 아내와의 사별로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나는 제법 일찍이도 아내와 사별했나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무려 37년간이나 아내와 함께 했고 황혼 무렵의 아내와의 사별은 충분히 충격적이고 쓸쓸하겠거니 했다. 그러다 어느 글에선가 ‘아내와 살고 있다’라는 글을 보고 내 머리가 멈춰버렸다. 이것이 무언가. 분명 아내의 사망으로 쓸쓸함과 인생의 전환을 주구장창 나열하던 상황에 그 무슨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는 말인가. 그 때부터 쓸데없이 나는 이 사람의 스토커가 되어 기록을 찾게 되었다. 저놈의 ‘영향력 있는’이라는 조사 때부터 탐탁치않은 마음이 폭발한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람의 기록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거야. 겨우 위키피디아에서 작년에 사망했다는 것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나이 79세. 잠시 경건한 마음으로 애도하고 다시 뒤적였다. 정말, 아내가 죽고 ‘전환’을 열렬히 주창하더니, 새로운 아내로 ‘전환’한 것인가?

  아내와의 사별이 자신의 인생에서 ‘전환’에 이르게 되는 그 모든 이야기들이 그의 재혼이야기로 옮겨가면서 이 ‘변화와 전환’에 관한 개념과 이야기는 지극히 윌리엄 브리지스의 지극히 개인사적인 결혼과 재혼이야기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는 아내와 사별하기 전에도 충분히 ‘전환’에 대한 개념을 강조하고 이야기를 하던 컨설턴트였다. 왜 갑자기 ‘전환’에 대한 그의 논점이, 아니 그에 대한 설명이 개인사적으로 흘러가며 변하게 되었을까. 물론 나는 그의 다른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대략의 책 검색을 통해 그가 이 분야로 직업전환을 하면서 가졌던 그의 기본적인 생각, 메시지는 같았다.

  나는 이 책이 왜 그가 재혼을 한 당위성(?), 필연성(?)을 지나치게 알리기 위한 글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지 모르겠다.


■ 윌리엄 브리지스의 인생 전환


직업 전환 : 영문학 교수 → 변환관리 컨설턴트


 마흔이란 나이는 서양의 남성에게도 흔들리는 시기인 걸까. 저자는 사회에서 사회적인 지위를 충분히 얻은 영문학 교수의 직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의 전환을 이룬다. 자신이 살고 있던 거주지까지 바꿔가며 그가 하고자 한 것은 ‘전환관리’에 관한 컨설턴트였다. 그는 학생들에게 영문학을 가르치는 대신 경쟁 시장에 뛰어들어 기업인들에게, 조직에게, 개인에게 삶의 변화와 전환에 대해 조언하는 일을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보란 듯이 성공한다. 그가 이러한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긴 그때는 그의 나이 마흔이 넘은 때. 그의 삶의 마흔이 지나면서 그의 생에 찾아온 어떠한 흔들림을 그는 잘 이겨내었다.

  분명 영문학 박사로서, 교수로서도 그는 전문직 종사자로서 전문가였다. 그러나, 어느날 문득 ‘변화와 전환’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일에 몰두하기까지 곧바로 성공이 보장된 길은 아니었다.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의 저서가 베스트 셀러가 되고 이를 바탕으로 강연과 컨설팅을 더욱 확장하면서 그는 확고하게 이 ‘전환관리’ 분야에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인생 전환 : 사별, 그리고 재혼


 이쯤되면 이 작가를 부러워할 사람이 많겠다. 아니 부러워할 남자들이 많겠다. 26세에 19세의 아내를 만나 37년간 결혼생활을 했다.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농담이 들어가 있는 진담으로 남편은 아내가 죽으면 울지만 화장실에서 웃는다고 하지 않는가!

 육십이 넘은 나이에 암으로 사망한 아내에 대한 안타까움과 상실감이 없지 않았다고 하진 않겠다만, 어쨌든 그 나이에 너무나 잘 극복하고 19세 연하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여 결혼에 성공한다. 과정이야 어떠하든, 그냥 표면적인 상황을 놓고 보자면 참 성공한 인생 아닌가.

  사실,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하는데 오랜 세월 함께한(실질적인 갈등도 물론 있었고, 힘들었다고 토로하고 있긴 하지만) 아내가 있었고 그리고 육십이 넘은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또한 약 20년 정도의 생활을 함께 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성공했다. 물론 그는 그의 아내와의 관계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뉴잉글랜드 출신인 자신과 캘리포니아 출신인 아내는 시작부터 하나가 되기 어려웠다고 한다. 미국의, 미국인의 특성을 잘 모르기에 이 차이가 우리나라의 지역적인 편견이 가득한 경상도와 전라도의 관계쯤 되는가 생각해봤다. 이런 지역적인 차이 이외에도 성격적으로도 맞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뻣뻣하고 합리주의자였고,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며 논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그의 아내는 외향적이었고 에너지가 넘치고 카리스마가 있는, 그러나 왠지 모를 그늘이 있는 여자였다고 말한다. 정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다른 부류의 사람, 그것이 그가 말한 아내와의 관계였다.

  또한 그의 아내는 결혼 당시 매우 어린 나이였다. 그리고 성격적으로 맞지 않은 저자와 37년을 사는 동안 한번의 외도경험이 있었다. 저자는 아내의 이 외도를 받아들이지 못해 10년여 동안 제대로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고 그녀가 위급한 상황에 도움을 청할 때 무시했다고 한다. 나아가, 암으로 사망하는 아내가 죽기 2년 전, 이미 아내와의 관계를 정리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는 구구절절 아내를 잃은 슬픈 남자의 심정을 토로한다.


p90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심정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경험이 매우 특별한 일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아내가 죽은 이후로 하루하루는 완전히 텅 빈, 그러나 완전히 꽉 차 있는 시간들이었다. 삶은 공허했지만,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 동안 나는 처리해야 할 일들 사이에서 몽유병환자처럼 아무 생각 없이 지냈다. 생각이 너무 마비된 나머지 가끔은 주변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 까맣게 잊고 지내기도 했다. 마치 피노키오가 되어 거대한 고래에게 삼켜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내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과 단절한 채 지냈다.

 

p96 사별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이런저런 파멸의 징후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중요한 것은 이미 깨어진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애쓰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해 보려는 나의 마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의식의 저 깊은 곳에서 나는 온전하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놓아버린다는 것은 잡고 있던 것을 놓는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깨어진 관계를 다시 회회할 수 있느냐 없느냐와는 상관없이 길고 긴 탐험의 과정이다.


p98 그때까지 그녀의 존재가 나를 얼마나 성장시켰고 돌아보게 했으며, 좀 더 믿을 수 있게 만들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알게 된 두 번째 사실은,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는 외롭고 고립된 청년이었던 내가 결혼을 통해 성장했다는 것이다. 아내의 죽음으로 오랫동안 알고 있던 단 하나의 친밀한 관계를 맺는 방법을 잃었다. 아내는 천성적으로 세상에 ‘무심하게’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불평하기도 했다. 많은 부분을 아내와 감정적으로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우리 주위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p99 나에게는 그녀의 죽음이 곧 현실의 시간으로 다가온 것처럼 여겨졌다. 나 자신을 반만 믿게 된 상실감은 사랑하는 사람을 갖게 된 유일한 경험이었다. 따라서 아내의 죽음은 우리의 관계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 능력까지도 없애는 일이었다. 아내의 사랑뿐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능력까지 없애는 일이었다.

      아내가 떠나면서 내가 경험한 외로움과 영원히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이 죽었다고 느꼈을 때 느낀 치명적인 외로움을 구별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필요했다. 아내는 나와 인간을 연결하고 나와 내 자신을 연결해 주는 그 자체였기 때문에 아내를 잃은 것은 처음에는 넓고 무서운 세상에 버려진 채 홀로 모든 것을 막아내야 하는 어린 시절의 환상같이 생각되었다... ‘마치 추방당한 기분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p100 아내가 죽자, 일상적인 현실에서 느끼고 흥분할 수 있는 연결고리와 단단한 기반을 잃은 것 같았다.


  이렇게 생활한 그이기에 그가 재혼하게 된 것은 확실한 ‘전환’ 아니겠는가. 상실감으로 세상과 단절한 이가 아내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1년 반 정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결혼하기까지 놀라운 전환이다. 특히 두 번째 재혼에서의 적극성은 놀랍다. 그가 말한 성격을 가늠하고 죽은 아내와의 관계를 생각해보면과 18살 연하의 수잔에 대한 사랑과 재혼은 그의 적극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물론 그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하고 나이차에 대한 고민도 하고 주저하지만 결국 그녀에게 전화를 걸고 데이트를 하며 나아가지 않았는가. 그토록 상실감이 커서인지, 그는 아내가 죽은 지 1년 반만에 수잔과 재혼한다.


p290 아내의 죽음과 나의 재혼에 연관된 전환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성공적인 전환에 대한 그 어떤 가르침도 따르지 않았다.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 하지만, 정답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우리의 삶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와 같은 인간들이 필요 없는 세계가 되기 때문에, 그 책은 존재 이유를 없앤다. 유일한 존재로 사는 방법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역경의 여정을 지나고 그러면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세계와 부딪히며 살면서 자신의 방식으로 살지 않는 것은, 자신의 삶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옷걸이에서 내려져 새로운 코트처럼 입혀지길 기대하면서 옷장에 걸려 있는 밝고 신선한 삶은 없다.

  

   그는 자신의 첫 번째 아내를 용서하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이것저것 적어 놓은 글을 그녀가 죽자 태워버렸다. 볼 수가 없었노라 이야기했지만....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변화를, 전환을 거부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이 책의 주장과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어색하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그냥 아내와의 관계에서의 에세이는 에세이대로 그의 경력에 맞는 '전환'에 대한 주제는 분리시켰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묘하게 아내에 대한 반감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듯한 글을 보며, 요즘은 스토리텔링기법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지만 왜인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스토리...경험의 내용은 다르고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변화하는지는 물론 개인적인 것이긴 한데, '전환'에 있어 탁월성을 인정받은 것은 그의 경력일까, 아니면 이 책과도 연관이 있을까. 그의 전환에 대한 활동은 40세즈음에 시작되었음을 보면 아내의 사별 이후 '전환'에 대한 각성이 아니라 '전환'에 아내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한 것은 아닌지....이게 중요한가..아무튼, '전환'이 필요한 .그 시기에 전환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이것이 그의 메시지다.


참고자료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William_Bridges_(author)

∙윌리엄브리지스 컨설팅 홈페이지 http://www.wmbridges.com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chorental&logNo=110187473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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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의자 위의 노인 윌 듀란트

 

 


  베란다에 앉아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다. 까딱 까닥 흔들의자가 흔들리며 저 멀리 푸른 초원을 한번씩 쳐다보면 새가 지저귀고 하늘은 맑고 조용하다. 이런 오후의 어떤 날을 맞고 있는 인생의 후반기, 노후의 삶을 상상해본다. 하얀 머리 나부끼며 인생의 많은 지혜와 경험을 생각해 보는 의자 위의 한 노인의 모습은 내가 아니다. <철학이야기>와 <문명이야기>의 저자 윌 듀란트다. 96세, 한 세기를 살아간 이 사람이 회고하는 자신의 과거의 모습은 어떨까.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그는 1885년에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이민 온 프랑스계 캐나다인이었으며 매우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가톨릭 교구 성베드로 부속학교에서 수녀님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의 부모는 성직자의 삶을 희망하였다. 물론 그 자신도 사제라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열여덟에 다윈, 헉슬리, 스펜서의 책을 읽게 되면서, 이들이 무신론자이었기에 종교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로써 성직자의 길을 바라는 부모와 갈등하게 된다.

  결국 그는 성직자의 길이 아니라 1905년 가톨릭교회와 사회주의를 결합하려는, 사회주의 철학을 실험하게 된다. 1907년에는 졸업하여 기자로 일을 하기도 했고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기하학을 시튼 홀 대학교에서 가르쳤다. 1909년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은 후 격한 공감을 느끼게 된다. 스피노자가 종교의 신념을 부정하고 진리를 추구하다 파문당한 것에 자신을 투영했기 때문이다. 또한 가톨릭과 사회주의를 결합하고자 했던 자신의 꿈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게 된다. 이러한 그의 공감은 그가 신학교를 떠나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는 수중에 40달러만 쥔 채 1911년 그가 가르치고 있던 신학교를 떠나게 된다. 

  신학교를 떠나 뉴욕의 페러 모던 스쿨로 옮기면서 그는 그의 아내를 만나게 되고 결혼하면서 다시 철학 공부를 하게 된다. 1917년 콜럼비아 대학에서 ‘철학과 사회문제’로 박사 학위를 받고, 콜럼비아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된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으로 수업을 졔속 진행할 수는 없었다.

  그는 성인 노동자들을 가르치는 학교를 조직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철학, 문학, 과학, 음악, 예술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했다. 그리고 우연히 그의 강의를 듣게 된 출판업자(Little Blue Books 시리즈의 발행인인 줄리어스)의 제안으로 책을 출간하게 된다. 처음에는 강연을 원고로 만든 작은 팸플릿이었지만 1926년 단행본으로 출간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철학이야기’이다. 월 듀란트는 강의 자체도 돈을 위한 목적이 아니었기에 출판업자의 제안을 단박에 거절하였지만 대단한 인기를 거둔 시리지의 출판자인 출판업자 역시 끈질겼던 탓에 철학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월은 이 책을 위해 11년간의 준비를, 그리고 500권의 철학서 원전을 읽었으며 3년간 썼다고 한다. 당연,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어 월 듀란트의 경제적인 안정을 보장하여 이후 문명이야기의 시리즈를 발간하는데 주요한 기폭제가 된다.

  그리고 이후 그의 삶은 사랑하는 아내와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얻고 책을 읽으며 문명이야기 시리즈를 발간하는데 주력한다.

 

아내와 함께 동행하는 길

 

   월 듀란트는 1913년 뉴욕의 페레 학교에서 아이다 카우프만을 만난다. 그녀는 13살 어린 그의 제자였으나 그들은 사랑에 빠졌고 그들은 결혼한다. 그들 사이에는 에덜이 태어났고 아들 루이스를 입양한다. 그가 에이리얼이라 부르는 그녀의 아내는 50년 이상의 세월 동안 그의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그녀는 아내로서가 아니라 그의 저작에 공저자로서 문명이야기 시리즈를 엮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가 철학이야기의 성공으로 경제적 여유를 얻게 되어 문명이야기를 출간하는데 전념하는 동안 그의 아내는 함께 있어 주었고 긴 여행에 동행했다. 또한 공저자로 책의 집필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에이리얼은 공저자로 인정받지 못하다 1961년 문명이야기 시리즈 제7권부터는 공저자로 공식 인정을 받게 된다. 그 중 1968년에 출판된 10권 <루소와 혁명>은 그와 에이리얼에게 퓰리처 상을 안겨주었으며 1977년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포드 대통령으로부터 ‘자유 훈장(Medal of Freedom)’을 수여 받는다.

   그는 평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힘을 쏟았던 행복한 사람인데, 더구나 그 작업을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새 책에 대한 구상을 펴던 그는 점점 몸의 이상을 느꼈고 결국 에이리얼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그 또한 심장병으로 눕게 되었다. 그의 아내가 죽은 후 13일 후 그 역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9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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