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 2018년 제4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손홍규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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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문학사상사, 2018-01-18.


  나이가 들어가면서 발랄한 문장보다 무심히 파고드는 묵직한 문장에 마음이 오래 머문다. 패스트푸드를 맛깔나게 먹다가도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기어이 찾아서 먹는 날 같은. 단편을 대상으로 한 문학상 수상작은 저녁쯤이면 찾게 되는 찌개 같다. 이야기나 배경의 색다름이 아니라 익숙함이 주는 묵직함에 빠지게 된다.

  각각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수록되었는데 동일한 주제로 글을 쓴 것만 같았다. 각 작품마다 특정한 기억에 사로잡힌 존재들을 보는 듯했다. 기억에 잡히어 갇힌. 그 기억은 마냥 행복하고 좋은 감정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고달픈 현실의 회피로서 자리하는 기억쯤으로 여겨진다. 기억이란 언제나 현재의 일도 미래의 일도 아니니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땐 언제나 해결치 못한 마음을 건들일 것이다.

  대상 수상작 손홍규의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는 “청년의 어깨에 내려앉았던 늦은 오후의 설핏한 햇살 한 줌”이라거나 “저녁이 기지개를 켰다”는 문자이 주는 해질 무렵의 나른함과 쓸쓸함이 한껏 어리어져 있다. 한껏 지난 시절을 생각하는 불한당 무리들의 현재는 그 과거가 차곡차곡 쌓이어 만든 현실이다. 지금 그들은 기억 어딘가를 돌며 되돌릴 수 없는 그순간의 기억에 빠진다. 되돌아보는 삶은 어찌 후회가 붙지 않는 것이 없는지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울부짖는 마음과 같다.


누군가를 상실한 사람들이 가장 비참하게 돌이켜보는 건, 그이를 상실할 줄 몰랐기 때문에 무심코 떠나보내던 순간의 자신이었다. 갔다 올게 하는 목소리에 응 하고 무심히 대답했던 자신에게 왜 그때 직접 배웅을 해주지 않았는지, 손 한 번 잡아보지 않았는지, 미소를 지어보이지 않았는지,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주지 않았는지, 그토록 사소하기 짝이 없는 행위를 도대체 무슨 이유로 하지 않았는지를 무섭게 따져보기 마련이었다. 청년의 마음속에서는 이런 후회가 잡초처럼 자라나 무성했을 테고 마음에 드리워진 빽빽한 그늘이 빠져나와 주위에 그림자로 드리워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한때는 꿈이 없다라는 말이 그렇게나 쓸쓸하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꿈을 꾸었다는 말이 더 쓸쓸하게 느껴진다. 꿈이 없음은 달라질 수 있음을 내포하지만 꿈을 꾸었다는 그렇지 않음을 이미 종결된 느낌을 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을 지나니 어느 순간 꿈을 포기하기 위해 애쓰게 되어버렸다.”


  정지아의 <존재의 증명>은 기억상실증인 남자가 등장한다. 기억을 상실한 사람이라면 당연하듯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하기 마련이다. 도대체 낯설기만 한 자신이기에 행동 하나도 자연스러울 수 없다. 나에 대한 타인의 기억과 그들의 말 한마디에 나의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그들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그럼에도 무엇이든 의심스럽기만한 그때에 취향이 자신의 본질을 알려주리라 믿는 남자를 보며 이상하게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정찬의 <새의 시선>과 조해진의 <파종하는 밤>은 각각 용산 참사 사건과 산업화의 폐해인 수은중독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사건의 진실을 새로이 기억하는데 카메라가 사용된다. 각각 사진과 다큐멘터리로 그날을 구성하고 기억한다.


정주는 문득 러시아워에 어깨를 부딪치거나 서로 발을 밟고 밟히는 사이였던, 다시 스쳐 갈 일 없으며 형상이 떠오르지 않는 수천수만의 얼굴들이 그리워졌다. 누구도 정주를 알지 못하며 정주 또한 그들을 모르는 세계에서의 불안과,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나 실상은 아는 것이 없는 세계에서의 안식 가운데 선택을 요하는 문제에 불과했다. 환멸과 친밀은 언제라도 뒤집을 수 있는 값싼 동전의 앙면이었고, 이쪽의 패를 까거나 내장을 꺼내 보이지 않은 채 타인에게서 절대적 믿음과 존경과 호감을 얻어 낼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구병모의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의 문장을 생각하면서 기억이란 마냥 편치 않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했다. 기억이란 기억하고픈 대로 기억하려 해도 명백한 사실을 떠올리게 하기에, 기억 속에서 나의 존재를, 내 삶을 절대적으로 호감으로 구성하려 해도 절대로 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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