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당한 사람들
토머스 컬리넌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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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상식 때문에…


매혹당한 사람들, 토머스 컬리넌, 비채, 2017.


  이 소설이 주는 매력이 크기에 몇 번이나 영화화되었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난 매혹당하지 않았다. 소설 도입부에서부터 시작되는 긴장감이 존 맥버니의 등장에서 시작되었기에 이미 그를 ‘문제적’으로 낙인찍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소설은 전개될 내용을 친절히 알려주었다. 다가올 미래를 알지 못할 때에야 갈팡질팡하게 되는데 그때만 해도 ‘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은 ‘존’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전하는 대신 다른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목소리로 존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존에 대해 잘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하지 못하겠다. 적어도 안됐다라는 생각은 갖기로 했다. 스무살 청년인데다 시작은 전쟁에서의 부상이니까.


그때만 해도 나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악이 존재하는지 알지 못했다. 우리 안에서 악이 어떻게 쌓여가는지 우리 중 누구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어떻게 작은 사악한 생각이 다른 사악한 생각 위에 쌓이고, 마침내 우리 안에 얼마나 엄청난 양의 악이 쌓여가는지……. 그러다가 한순간 뱉은 단 한 마디의 고약한 말이 어떻게 우리 마음속의 방아쇠를 당기는지를.


  소설은 1864년 남북전쟁 시기의 미국 버지니아에 위치한 판스워스 여자 신학교를 보여준다. 교장과 교사인 두 명의 자매, 나이가 각각 다른 다섯명의 학생들, 한명의 흑인 노예가 지내고 있는 이곳으로 부상당한 북부 연방군 소속 존 맥버니 상병이 기거하게 된다. 노예해방을 둘러싸고 찬반 입장으로 나뉜 전쟁에서 적지에 낙오된 존은 판스워스 신학교의 구성원들에게 ‘기꺼이’ 도움 받을 자격을 얻는다. 부상당한 다리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지만 구성원들 모두가 존의 회복을 도우며 존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소설은 신학교 구성원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회복해가는 존의 상태를 들려준다.  


“선생님은 아주 행복했던 적이 있나요?”

“있었지. 아주 오래전에……. 하지만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단다.”

“무엇 때문에 끝났어요?” 어밀리아가 궁금해했다.

“이성과 상식 때문에.”


  행복이 끝난 것이 “이성과 상식을 차렸을 때”일까, “이성과 상식을 버렸을 때”일까. 신학교의 모두가, 한때 존 상병과 함께 하는 시간에서 행복했다면 그들의 이성과 상식은 ‘어떠한 상태’였던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등장인물 모두에게 이성과 상식이 있는가를 묻게 된다. 전쟁은 어떤 형태로든 피폐한 상황 속으로 인간의 사고를 물고 가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이성과 상식은 욕망에 맞추어 존을 해석하고 대한다.

  소설을 덮은 후에 이 책의 제목은 ‘매혹하는’ 사람들이 어울린다 생각했다. “돈과 정조와 목숨까지 그에게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던” 모두는 단 한사람도 수동적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언제든지 존에게 무엇이든 바칠 준비를 ‘철회’할 수도 있었다. 매혹은 당할지언정 사랑은 하지 않았던 판스워스 학교의 여자들은 각각의 결핍과 상처에 대한 위로를 함께 살고 있는 서로에게서 얻지 못한다. 얻으려 하지 않는다. 내면에 가득한 그 결핍은 공공연한 비밀인 채로 그들 각자를 위치지우고 경계지우는 요인이 된다. 그들은 전쟁 중의 판스워스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한 노력을 ‘존’에게만, ‘존’을 통해서 얻으려 한다. 각자의 필요와 욕망이 존에게 전해지는 순간 적지에서 부상당한 존에게 그것은 권력과도 같은 힘이었을까. 벗어날 수 없는 덫이었을까.  


침입자가 지는 경우도 많아. 한 번은 애벌레가 붉은 개미의 보금자리를 공격했는데 애벌레가 개미한테 매혹당한 건지 아니면 잠깐 방심했던 건지, 개미들이 산산조각나고 말았어. 조그만 개미들이 촉수로 그를 어루만지는 듯했는데 얼마 안 있어 애벌레 꼬리 쪽에서 액체 같은 게 몇 방울 나왔고, 개미들이 그 액체를 아주 맛있게 나누어 먹는 것처럼 보였거든. 그렇게 애벌레 진액을 다 빨아먹고 나서 개미들이 힘을 합쳐 애벌레를 바닥에 파묻어버렸어. 내 눈에는 나중에 먹으려고 그러는 것 같았어.


  폭풍이 치고 난 후의 고요가 뭔 일이 있었던가 싶게 일상을 들이미는 고요가 떠오른다. 소설이 끝난 후에 그렇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어제와 별스럽지 않은 일상이 되어갈 하루하루가 다시금 비밀과 경계가득한 일상이 흘러갈 것이다. 한때나마 행복한 순간은 있었던가? 이 소설에서 다른 무엇보다 행복에 관한 물음이, 인간의 이성과 상식에 관한 질문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불행을 알게 된 순간 순수한 기쁨을 느끼는 게 불가능해“진다는, 그것은 ”오직 순수한 상태에서만 가능한 일“이라는 해리엇의 말을 떠올리며 결코 판스워스 학교에서 행복을 느끼는 존재는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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