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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 -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화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그저‘나’
다른 사람, 강화길, 한겨레출판, 2017-08-29.
왜, ‘다른’ 사람이어야 할까. 그저 ‘나’이기만 하면 안되는 걸까.
다른 사람이기를 강렬하게 열망하는 『다른 사람』은 읽지 말까 싶을 정도로 짜증스러웠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오를 대로 오른 짜증이라는 감정이 불편함임을 알았다. 소설속 상황은 마냥 현실같아서 지겨우리만치 그 상황에 ‘또’, 어김없이 ‘또’ 있다는 현실이 불편하고 감정적으로 피폐함을 느끼게 했다. 그러니 책을 덮고 싶을 수밖에.『82년생 김지영』과 마찬가지로 익숙한 상황을 글로 보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소설『다른 사람』. 문득 이 소설을 보면서 환상소설로 빠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나는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걸까.
단편집『괜찮은 사람』이 확장된 이 소설은 반복적 폭력에 놓인 ‘여성’의 상황과 내면의 목소리를 들춘다. 내면의 목소리는 절대 들리지 않는다. 그들 내면에서만 맴돌기에 절대 타인은 알 수 없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내 감정에 우선하여 의미를 부여하기에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각자 가지는 내면의 목소리는 항상 한사람의 것처럼 같기만 하다.
소설을 읽다 보면 으레 특정한 누군가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되고 그의 시선을 따라 상황을 보게 된다. 대체로 주인공, 화자의 시선을 따라 상황을 보게 되고 그렇기에 주인공은, 화자는 절대적으로 ‘선’이기를, 되도록 막말을 하지도 않고 타인을 이해하는 언행을 하기를 바라게 된다. 당연한 응원을 주기 위해서. 그러나 진아를 피해자로만 바라보던 시선은 한순간 무너진다. 그것은 진아와 수진이 피해자인 동시에 같은 상처를 받는 이에게는 가해자였기에 그렇다. 진아와 수진 그리고 유리가 겪는 고통은 분노할 수 없을 만큼의 무력함이 흘러 참으로 비참하고 애절하다. 이들은 현재의 고통의 원인을 과거에서 찾는데 어김없이 어머니로부터 전해진 무력화되고 일상화된 폭력에 놓였던 것을 보여준다.
할머니가 옆에 있는 한 수진은 영원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녀가 그렇게 열망하고 노력했던 ‘다른 사람’.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우습게 볼 수 없는 사람. 절대 강간당하지 않는 사람. 수진은 단 한 번도 할머니를 원망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수진은 사실 늘 원망했다. 사람들이 그녀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밖에 대접받지 못하는 이유를 원망했다. 어쩌면 바로 그것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니, 바로 그것 때문이다. 사실 수진은 누가 어떻게 해도 상관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술 먹고 한 번쯤 건드려도 상관없다고. 왜냐하면 어차피 쟤는 춘자 딸이니까. 바로 세상의 빚을 모두 짊어지고 있는 애니까!
피해자들에게 사회가 ‘어떻게’ 했는지를 목격한 이들이 현재의 폭력에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은 오로지 감추고, 감추고, 감추는 것이다. 진아도 수진도 그들 상황에서 오로지 서로에 대한 견제와 미움으로 삶을 버티어내는 모습은 아프게 다가온다. 같은 고통과 상처를 받는 피해자들이 가해자가 아니라 서로를 고통의 근원, 원인으로 돌리며 스스로의 피해를 지우려는, 감추려는 모습은 왜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렀나를 깨닫게 한다.
나도 유리를 그렇게 험담했었지. 그때는 몰랐어.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누군가 나를 학대하도록 내버려두는 마음과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걸 말이야.
그래서 이 소설은 미투 운동을 생각나게 한다. 마침내 진아가 각성한 것처럼 같은 일을 겪는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야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해야 함을. ‘다른’ 사람일 필요없이 그저 ‘나’이기만 하면 되는 세상, 그러한 인식들이 사회에 머물기를.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우습게 볼 수 없는, 절대 강간당하지 않는 그런 “다른 사람”일 필요가 없는 그저 “나”이기만 하면 되는 그런 세상이 되기 위해선 필요한 일들을 한창 사회가 시작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보여준 불편한 현실이 피해자들의 각성을 계기로 달라질 현실을 기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