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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신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평점 :
대리 뮌하우젠증후군을 앓는 당신
당신의 신, 김숨, 문학동네, 2017.
『당신의 신』에는 「이혼」「읍산요금소」「새의 장례식」세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각각의 단편을 관통하는 공통의 주제는 이혼과 폭력이다. 소설 속 여자들은 모두 이혼을 겪었다. 이혼이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 여자의 남편들도 이혼을 겪었다. 이혼이란 부부가 겪는 일이지만 남자보다 더 힘겨운 이혼 전후의 여자의 트라우마가 세밀하게 담겨 있다. 그것은 이혼의 원인이 남자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혼한 남녀를 대할 때 사람들이 가치중립적이지 않고 ‘이혼녀’에게 더 큰 시선을 두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의 딸들이 이혼을 생각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행동으로 결과로 만들었다면 그들의 어머니는 끊임없이 이혼을 생각만 할 뿐 실행하지 못한다. 모두에게 이혼의 이유는 어김없이 ‘남편의 폭력’이고 도망치지도, 이혼하지도 못하는 이유는 ‘자식’이다. 한사람에 의해 폭력은 자행되고 그 폭력은 반복되어 되물림된다. 자식을 위해서 이혼하지 못하지만 자식들은 그 상황 자체가 지옥일 뿐이다. 한 사람이 참는 것으로 가정의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는 자신의 가정을 꾸려서도 그 폭력성을 보인다.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의 도식화는 우스울 정도로 여자는 폭력적인 남편을 만나는 것으로 남자는 그 스스로 폭력적인 남편이 되는 것으로 귀결된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객관적 통계로도 드러난 ‘어머니’들의 모습이자 ‘여성’의 모습이기도 하다. 조금 달라진 세상이라고, 묘사가 있다고 한다면 여성들이 이혼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이제는 이혼함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전자의 상황에서 참고 감당해야 하는 여성의 삶은 이제 이혼 후 감당해야 삶에 대해 세세하게 끄집어내고 있다.
『당신의 신』속 남편들은 그들이 자식일 때 당한 폭력을 아내들에게 행함으로써 피해자에서 가해자의 위치로 이동한다. 남편의 폭력 때문에 이혼하고 그후에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정녕 여성에게 결혼이란 ‘맞아 죽기 위한 계약서’를 작성하는 일만 같다. 결혼은 ‘아내’라 불리며 남편에게 폭력당하는 여성의 존재를 만든다. 이혼한 후에는 이혼녀라는 명명으로 남성들에게 폭력당하는 여성을 만든다. 이혼녀에겐 성희롱과 추행이 당연하다는 듯 성폭력이 뒤따르고 이혼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늘 따갑다.
최초의 폭력은 어디서 기원한 걸까. 아버지의 폭력을 두려워하고 혐오하던 아들들은 왜 같은 아버지가 되고 마는 것일까. 아버지의 폭력에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어머니를 연민하고 혐오하던 딸들은 왜 폭력당한 채 살아가는 것일까. 왜 이혼을 하고서도 삶을 온전히 버티어내는 것에 힘겨워할까. 제 폭력에 힘겨워 하는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자 「이혼」속 남편은 시를 쓰는 아내를 향해 말한다.
“네가 날 버리는 건 한 인간의 영혼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 가지야. 그러므로 앞으로 네가 쓰는 시는 거짓이고, 쓰레기야.”
새장 속 십자매를 향해 ‘죽어’라고 말하는 폭력당한 소년의 한마디 말은 십자매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이 폭력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음을 곁에 두고 영혼이 파괴된 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게 한 인간의 영혼을 파괴한 자들이 하는 저런 말에 어떤 대꾸를 해야 할지 좋을 런지…. 여성을 ‘모성’이라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신처럼 받드는 그들의 이율배반적인 행태들은 환멸스럽다. 그들이 정의하는 ‘모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모성(母性)이 어머니의 것이라면 남편들은 왜 아내에게 어머니의 것을 보이기를 강요하는가.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고 받아내는 제 어머니의 모습을 아내에게 요구하는 그들, 나약함을 가장하며 더할 수 없는 영혼 파괴자의 신인 그들이 제 영혼의 안전을 염려한다. 제 영혼의 안전을 그들이 파괴한 것에 대고 찾는다. 이에 대해 아내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만 남편의 말 속에 갇히고 만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신이 아니야.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
결혼은 누군가를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한 선택이다. 그래서 작가는 행복하지 않은 결혼에 맞서 “이혼이 불행이 아니기를 바라”고 바란다. ‘이혼’이 불행인 것이 아니라 이혼을 하게 된 원인 속에 이미 불행이 있다. 가정폭력이라는 이름, 그 떨치지 못한 폭력과 불행의 트라우마가 ‘결혼’을 통해 재생산되는 현실이다. 그런데 명쾌하게 ‘이혼’이 결혼으로 인한 불행을 단절시키는 것을 끝나지 못함이 얼마나 크나큰 비극인가. 아내는 남편들을 위한 신이 아니다. 아내는 남편들의 ‘어머니’도 아니다. 그들의 ‘폭력’은 아내가 ‘신’이 되어 어루만져주고 ‘신’이 되어 참아줘야 하는 것이 아니다.
루게릭병으로 인한 신체장애를 가지고 살았던 스티븐 호킹이 사망했다. 천재 물리학자로 칭송받은 스티븐 호킹의 사망 소식에 문득 소설 속의 저 말이 떠올랐다. 25년간의 결혼생활이 이혼으로 끝난 후 스티븐 호킹이 재혼한 사람은 그를 돌봐주던 간호사 일레인이였다. 신체적 고통과 함께 이혼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호킹 박사를 간호하고 돌봐주며 호킹 박사의 영혼을 구원하는 존재처럼 행동하던 일레인. 그러나 일레인은 호킹 박사에게 지속적으로 폭력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을 앓는 일레인은 호킹 박사에게 ‘신’이 되기 위해 결혼한 것일까. 그 자신은 그렇다고 생각했을까. 일레인처럼 『당신의 신』속 남편들이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을 앓는 환자들 마냥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