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파도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지막 파도가 남았다

아홉 번째 파도, 최은미, 문학동네, 2017-10-31.


  작가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했다. 『아홉 번째 파도』는 사랑의 이야기인가, 난 고개를 갸우뚱하며 책을 덮었다. 작가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줄곧 사랑따윈 어디 있나 하며 ‘사회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말에 다소 당황했고, 난감했고, 허무했다.

  사랑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응원하는 일도 거기에 빠져들지도 않았다. 내 머릿속에 감성은 어디로 보내버린 건가, 사랑에 대한 정형화된 틀을 가지고 있는 건가. 어떤 상황을 보는 시각이 한정적인 건가.

  소설은 가상의 도시 ‘척주’를 배경으로 살인사건 용의자 추적과 핵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주민들간 갈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폐광지대인 이곳엔 과거에도 자살로 판명된 의문의 사망사건이 있었고 핵발전소 유치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약왕성도회라는 사이비집단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다. 어린 시절 척주에서 살다가 다시 돌아온 보건소 약사직 송인화가 사건의 중심에 얽혀 있다.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누구인지, 왜 죽였는지를 추적해 가며 과거와 현재의 사건이 이어지고 그 상황에서 충격적인 비밀들이 드러난다. 충격이라고 했지만, 사실 충격이랄 것도 없이 이야기의 전개를 가늠할 수 있다. 핵발전소 유치와 같은 갈등 상황에서 이권을 얻기 위한 이가 결국 승리하리라는 것을. 답정너처럼 그들이 바로 모든 열쇠를 쥐고 있음을. 그러니까 결국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이의 끝없는 욕망과 광기로 치달을 이야기가 되리라는 것을.

  그래서 소도시 느낌의 척주시는 늘 언제나 팽팽한 긴장감이 쌓여 있다. 업무만이 아니라 사람들간의 개인적인 관계도 긴장과 대립으로 팽팽하다. 누군가와 마음을 터놓고 나눌 새없이 편가르기가 자연스레 형성되는 곳에서 송인화와 사회복무요원 서상화와 과거의 연인 국회의원 보좌관 윤태진과 송인화의 이야기가 있다. 척주 출신으로 고교시절 콜타르에 빠지고 난 뒤 후유증에 시달리는 윤태진의 좌절과 분노가 송인화와 대비되어 생생했다. 

 『아홉 번째 파도』라는 제목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하다가 러시아 화가 이반 아이바좁스키의 그림명이라는 것에서 이해가 되었다. 그림 「아홉 번째 파도」에는 산처럼 우뚝 솟아 폭풍우치는 바다에 난파된 배와 이제 해가 떠오르는 듯 붉은 빛과 구름들이 어우러져 있다. 폭풍우가 이제 끝나려는 듯 해가 떠오를 모양이지만 러시아 선원들에게 ‘아홉번째 파도’란 폭풍이 몰고 오는 가장 치명적인 마지막 파도라고 한다. 난파된 배에서 지쳐 쓰러진 선원들이 러시아인들이라면 ‘아홉 번째 파도’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인데, 그들은 쓰러지지 않고 마지막 아홉 번째 파도에 맞서기 위한 대비를 할까. 그대로 쓰러져 버릴까.

  소설 『아홉 번째 파도』에서 본 것은 끝없이 덮치는 파도였다. 휘몰아치는 파도에 송인화도 서상화도 윤태진도 난파된 배를 겨우 붙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 척주시라는 바다에서 욕망과 광기에 가득한 이들이 벌이는 파장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 한 개인의 욕망이 동일한 욕망으로 뭉쳐져서 만들어내는 거대한 포말. 쉬이 사그라들지 않고 끊임없이 덮쳐오는 거대한 파도. 그들이 만다는 비리가 악이 덩어리지는 척주시의 모습은 이제까지 쉬이 만나는 모습이었고, 앞으로도 여전히 볼 모습들이다. 한 개인이 소소하게 희망하던 삶의 꿈들이 무참히 일그러지는 모습들 또한 쉬이 보는 모습이다.

  개개인들의 삶을 더 이상 비참하게 하지 않고 행복한 세상에 살기 위해 이런 사회문제들을 파헤치고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거대한 구조만을 바라보다가 언뜻 언뜻 개인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누구든 다르고 개인적이긴 하지만 크고 중요한 것 역시도 개개인에게 다른데 문득 대를 위해 소는 희생됨이 마땅하다는 사고, 우선되어야 하는 가치에 대한 차이, 무엇이 대이고 소인가에 대한 생각들이 아홉 번째처럼 밀려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