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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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노래의 도돌이표


힐빌리의 노래-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아무런 정보없이 이 책을 읽은 저녁 일찌감치 차지한 것은 할머니에게, 늙어가는 엄마, 아빠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더 잘해야겠다의 구체적인 내용은 설정하지 않았으니 책을 읽으면서의 반사적이고 수사적인 생각이었겠지만 또한, 다짐이기도 했다. 할모, 할보라는 호칭에 대응해 나의 할매와 할매와 할배로 불리는 부모님에 대한 생각, 나이든다는 생각,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생각 속에 머물러 있을 때 울려대는 전화는 내 다짐이 얼마나 실행력 있는지를 확인하겠다는 듯, 늦은 건 아니냐는 듯 불안하게 들렸다. 이럴 때면 영화나 드라마에선 불길한 음악이 삽입되며 긴장을 조성하는 연출을 했다. 다음 장면에서 중환자실에 앉은 나는 다시금 깨달음은 항상 늦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병원을 오가며 긴장과 불안 상태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저자의 할모와 할보처럼 나의 할매의 굴곡진 삶에 대해 생각했다. 선거 때면 각자의 주장에 소리높였던 때를 떠올리기도 했다. 자식, 손주들의 더 나은 삶을 바라고 지지하면서도 자신이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에 대한 비판에 결코 여유롭지 못했던 할매가 삶의 위기를 넘나들다 기억의 끈을 놓는 시간 동안 할매의 기쁨이 되는 자식들이 연이어 방문했다. 하나같이 연로한 노인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고 아프다는 말에 대해 일상적으로 반응한 것을 자아비판하는 동안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 그 사람의 생애를 거듭 회고하면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낸 할매가 가질 수밖에 없던, 그렇게 형성된 가치관을 이해하지만 수용하지 못한 비판과 함께 다음 선거에는 할매랑 그런 일로 투닥투닥하진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이 책에 대해서도 뭔가 모르게 불편한 느낌을 가지고 감정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비판을 찾고 있었을 테다. 이해는 되지만 수용하기엔 마냥 탐탁지 않은 것은 무얼까 생각하며 저자의 말대로 논문이 아니니까 저자가 겪은 일들에 대해 일단 위로와 공감을 표하며 어쩌면 ‘성공한 삶’이라 불리는 그의 인생에, 힐빌리 문화에서 탈출한 것에 적지않은 박수 또한 보냈다.     

  이 책의 흥미 요소는 이른바 슬럼가로 묘사되는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특성, 특히 저자의 조부모님과 같은 쉽게 볼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의 향연이다. 저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재밌는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초반 이 책을 흡입력있게 몰아갔고 또한 내 조부모님과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더해져 애틋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을 벗어나는 후반부의 이야기, 어쩌면 저자의 생각이 더해지고 설교조처럼 이야기하는 후반부에서는 흥미와는 다른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논쟁적이 될 수밖에 없는 생각들이 펼쳐졌고 복지와 정책, 정치 등의 쟁점이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저자가 자신의 삶을 겪으며 가지는 시각에 대해 자꾸 거리낌이 느껴졌다. 저자의 인식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하는 나의 감정을 느꼈고 저자의 생각에 불안과 위험, 불편함이 들었다. 나에게는 무엇이 그토록 와닿지 않았던 걸까. 모든 생각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 부분 부분 맞다고 수긍하는 점은 있었다. 다만, 그것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시선에 대해서 동조하지 않고 있는 나를, 그리고 감정적인 것을 떠나서 이성적으로도 명확한 근거와 가치관으로 설득하고픈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이래저래 지친 상태로는 ‘그것은 아닌데’ ‘위험한 생각인데’라는 말만이 머릿속에서 어지러이 흩어졌을 뿐이다.

  복지 문제 또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모든 정책은 정치행위와 연관되어 결정되니까. 다만 그 정도가, 그것의 기본 바탕에 대한 합의와 추구해야 할 것은 지켜져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다. 그렇기에 정치적인 형태로, 아니 무조건적으로 복지정책이 나올 때마다 제 것을 뺏긴 양하며 공산주의를 외쳐대거나 복지대상자에 대한 맹렬한 비난이 형성되는 것은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 책 속 저자가 가난과 마약과 폭력이 가득한 그들 힐빌리 문화에서 자신은 벗어났다고 말하며 혐오가 담긴 시선을 건네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 개인의 힘으로, 의지로 벗어나 그곳을 바라보며 지긋지긋함을 느낄 수는 있겠다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 저자에게서 우리나라 6~70년대, 80년대에도 가난한 시골에서 힘겹게 살다가 가족들의 희생을 업고 서울로 공부하러 가 출세한 자가 제 가족과 고향마을에 관여하고 싶어하지 않는 특유의 시선이 느껴졌다. 드라마 속에서 자주 다루던 ‘나는 내 가족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를 강조하는 주인공들의 모습. 대개는 법학을 공부하지만 기업쪽으로 빠지기도 하는. 그런 주인공들. 너희들의 그 가난하고 힘겨운 삶은 모자라 머리와 못난 몸뚱아리 때문이라 말하는 그런 주인공들의 모습이, 언뜻.


우리 집안에서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가족들은 하나같이 다른 배경을 지닌 배우자와 결혼한 사람들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다.

이런 것들을 깨닫는 순간, 그동안 내가 내 삶이라고 생각했던 모습이 산신이 부서졌다. 머릿속에서 나는 과거보다 더 나은 사람이고 강한 사람이었다. 가능한 한 빠르게 동네를 떠났고, 해병으로 복무하면서 나라를 지켰으며,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명문 로스쿨에 진학했다. 내게는 나쁜 영향력도, 성격적 결함도, 어떤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행복한 배우자와 꾸리는 행복한 가정’이라는 가장 소중한 꿈을 이루려면 끊임없이 정신을 차리고 집중해야 했다. 내 자아상은 오만함이라는 가면을 쓴 괴로움에 가까웠다.


  힐빌리 문화에 속한 사람들을 자주 보았고 접하고 있기에 저자처럼 때로는 징글징글하다는 기분에 휩싸일 때가 있긴 하다. 하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방식이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 자신도 느끼고 있듯이 노력이 필요하지만 노력이 아닌 것이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지 않은가. 사회적 자본 말이다. 실력보다 운이 낫고 운보다는 인맥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저자의 경험이다. 이 사회는 어떤 식으로든 이 상황, 가진 자에게는 유리하고 가지지 못한 자에겐 불리한 형태의 방식을 유지하도록 달려갈 것이다. 거기에 맞서 적절한 인식과 대응으로 제동을 걸고 공평과 공정이라 불리는 가치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 체제를 만들어가기 위한 방안을 애써 나가야 하는데 이것이 당연하게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 살고 있다.

  자칫 저자의 이야기는 ‘성공’의 힘은 오로지 자신의 노력과 의지이며,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거대한 사회의 흐름을 따라야 하리라 강조하는 듯이 보인다. 그 흐름이라는 것은 내게 불필요한 것에 대한 외면과 비난은 당연한 것이고 이익이 되고 필요한 것에 대한 줄잡기이고, 그것이 어떻게 불공정하게 이루어지든 상관없이.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힐빌리 문화에서처럼 복지의 대상자인 이들에게는 마구 비난을 퍼부으면서 부정과 사기로 권력과 재력을 형성하는 이에 대해서는 약하게 비난하거나 또는 비난없이 그들의 방법을 수용하는 것은.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한 시선은 이토록 다르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 사람들의 무기력하고 의지없는 삶의 태도에 대해서는 비난하면서 부정과 거짓, 사기, 착취로써 삶의 권력과 재력을 형성한 이들에 대한 비난과 혐오는 없다, 혹은 약하게 있다.  

  힐빌리문화라 불리는 공간에서 성공한 하나의 사례로 얘기되는 저자의 경험담, 성공담에 굳이 열광하지 못할 것도 없긴 하다. 잘 살고 만족한다니 다른 이들 또한 자신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 몇 주 사이 각지에서 모인 친척들의 견해와 친구들,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의 힐빌리문화층과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을 넘어선 혐오를 들으며,  책의 저자가 생각하는 힐빌리 문화와 복지를 떠올리며 이래저래 많은 생각들을 했다. 확실히 저자가 바라보는 복지정책의 시각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사고에 가깝긴 하다. 사람들의 의견과 생각은 다양하고 한자기를 들어 정책을 수립하지는 않지만, 정치적 프레임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속성을 따르기에 쓸데없이 우려가 된다. 이 책이 사례를 넘어선 대안으로 굳어질까,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가 된 이유, 트럼프가 당선된 것 등등 그리고 우리나라의 상황을 대입하게 되면서 이 책은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었다.

  내가 정녕 못마땅한 것은 무엇일까. 힐빌리 특유의 문화적인 특성들이 일반적으로 만연된 빈곤한 자들의 태도들이라는 것은 대체로 수급자들에게서 보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것이 하루이틀 일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지 않는가. 전혀 몰랐다고 할 수 없고 늘 얘기되어 오는 것이고 그렇기에 이들에 대한 지지는 항상 정서적 지지가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되어 왔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마치 새로운 사실인양 하며 정치놀음에 끼워 맞추는 것이 마땅치 않은 걸까. 아님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한 비판이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해지는 것에 대한 불만일까. 저자가 말하는 ‘성공’한 삶에 대한 의문과 회의 때문일까. 결론없이 되풀이되는 문제인식과 해결방안에 대한 답답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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