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커트 보네거트 지음, 김한영 옮김, 이강훈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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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행복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커트 보네거트 저, 문학동네, 2011.


  잭 키보키언은 ‘죽음의 의사’로 불린다. 실존인물로 1999년 2급 살인혐의로 8년 2개월간 복역 중 2007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존엄사를 더 이상 방조하지 않겠다”가 가석방 조건이었다. 박사는 1987년 디트로이트 지역 신문에 ‘죽음 상담가’ 광고를 내고 1990∼1998년 약 130명의 존엄사를 도우며 환자와의 상담 장면을 촬영했다. 커트 보니컷은 이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책으로 엮었다. 기자가 된 커트 보니컷이 잭 키보키언 박사의 도움으로 사후세계 경험을 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내용의 이야기다.

  인도주의자로서 작가는 인도주의를 “훌륭한 시민정신과 보편적 품위”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인도주의 실천의 한 방법으로 글을 쓰며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나는 사후에 어떻게 되든 우리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기자 커트 보니것이 누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기에 이러한 결론으로 가는가. 커트 보니것은 셰익스피어, 아돌프 히틀러,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셸리, 아이작 뉴턴, 공상과학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  등 유명인들과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을 만난다. 애견을 지키려다 심장발작으로 사망한 건설 노동자 살바토레 비아지니를 만나서는 개를 위해 죽은 기분을 묻는다. 그의 대답은 이렇다. “베트남전쟁에서 개죽음 당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셸리에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나는 오늘 천국에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셸리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역대 최고의 예지력과 영향력을 갖춘 공상과학 소설 [프랑켄슈타인, 근대의 프로메테우스]를 썼습니다. 그때가 1818년이었으니, 1차 대전이 그로부터 딱 일 세기 후에 일어났군요. 그건 독가스, 탱크와 비행기, 화염방사기와 지뢰, 가시철조망처럼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키는 온갖 발명품이 사용된 전쟁이었습니다.

 나는 메리 셸리가 우리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민간인과 어린이에게 투하한―그리고 또다시 그러겠다고 약속한―원자폭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는 부모인 윌리엄과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 남편 퍼시 비시 셸리, 그리고 그와 그녀의 친구인 존 키츠와 바이런 경에 대해서만 열광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단순히 질문만을 할 커트 보니것이 아니다. 비비언 핼리넌이라는 “화려한 태평양 연안 가문의 여주인”이라 불리는 죽은 여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작가는 화려하다는 뜻을 알아낸다.


이젠 암호가 풀렸습니다. <뉴욕 타임스>의 “화려하다”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외모가 아름답고 품위있고 부유하지만, 사회주의자라는 뜻입니다.

과연 그들은 얼마나 “화려”했을까요? 비비언의 변호사 남편인 고 빈센트 핼리넌은 부동산 투자에서 번 돈을 짊어지고 1952년에 진보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사람이란, 심지어 캘리포니아에서도 얼마나 익살맞고 귀여워해질 수 있는지요?

이렇게까지 익살맞고 귀여워질 수 있습니다. 빈센트는 노동운동 지도자 해리 브리지스를 목청 높여 변호했다는 이유로 육 개월 형을 살았습니다. 해리 브리지스는 매카시즘 시대에 공산주의자라는 죄목으로 기소된 사람이었지요. 비비언은 1964년 인권을 옹호하는 시위에서 숙녀답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삼십 일 동안 감방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셰익스피어에게는 작품을 직접 쓴 게 맞느냐는 질문을 하는 등 삶과 죽음의 경계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그저, 궁금한 것을 묻고 그들이 살아 새전에 한 일들과 현재의 상황을 연결시켜 묻는다. 단지 그들이 지금 현재 살아 있지 않다 뿐이지 누군가를 인터뷰할 때면 할 수 있는 질문들을 한다. 그러니까 그들이 지금 죽어서 내세에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지도 모른다. 여전히 아이러니와 유머가 가득한 짧은 인터뷰를 보면 작가가 선택한 인터뷰이가 성인이나 영웅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히틀러나 마틴 루서 킹 목사를 죽인 제임스 얼 레이,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을 곡괭이로 죽인 칼라 페이 터커도 있다. 이렇게 스무명이 넘는 인터뷰이들과 인터뷰하면서 위트와 유머들을 동원해 작가는 사회의 모순을 꼬집는다.

 

알렉스 삼촌이 특히 인간 일반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한 점은, 사람들이 행복할 때 행복하다는 걸 도통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삼촌 자신은 즐거울 때 즐겁다는 걸 인정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무더운 여름철에 우리는 사과나무 그늘에서 레모네이드를 마시곤 했다. 알렉스 삼촌은 하던 말을 멈추고 불쑥 이렇게 말했다. “이게 행복이 아니면 뭐가 행복이지?”

나 역시 느긋하고 자연스러운 기쁨이 밀려올 때면 큰 소리로 외친다. “이게 행복이 아니면 뭐가 행복이지?”


  그러나 역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다. 현재의 삶에서 행복이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순간순간의 작은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터뷰 과정에서의 위트와 유머들이 유쾌하게 다가온다. 때론 책을 읽는 순간,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인가라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한바탕 웃고 또 한바탕 사회모순에 대해 인간들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는 사후세계로 간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안타깝게도 사후세계로 간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도와준 닥터 잭 키보키언도 훌륭한 인터뷰어 커트 보니컷도 현재에 없다. 사후세계에 있다. 이들을 만나서는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떤 말들을 듣게 될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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