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이의 포트폴리오
커트 보니것 지음, 이영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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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새해!


멍청이의 포트폴리오, 커트 보니것, 2017.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가는구나! 쓰레기 날의 다음날이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음에도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을 2018년엔 너무도 미안하게도 말이다. 그래서 소설 속 작가의 “쓰레기 날의 다음날이다”는 말은 빼고 싶었지만, 새해라고 다를리 없는 어제의 지속이기에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가는구나! 쓰레기 날의 다음날이다!”를 외친다. 더구나 책 제목은 『멍청이의 포트폴리오』다. 새해 인생의 포트폴리오를 잘 정리해보려는 생각은 이제까지 경험한 바 부질없다로 귀결되기에 작심삼일조차도 하지 않는 새해를 맞았다. 그냥 살아야지. 새삼스럽게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지 못해 씁쓸하고 자괴감에 빠지지 말고. 시니컬과 아이러니, 유머에 특출난 작가의 책을 보면 좀더 새해가 주는 무게감을 덜어낼 수 있을까.

  『멍청이의 포트폴리오』는 커트 보니것의 미발표작을 모은 책이다. 그동안 커트 보니것의 책속 인물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갑기까지 했다. 생전에 발표하지 않은 책들이 세상에 나온 것을 보면 작가는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다. 시니컬하고 유머러스한 말들을 내뱉었을 듯하지만 그건 뭐 알 수 없으므로.

  일곱 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단편소설과 에세이다. 미발표작이라는 것이 너무 확연히 드러난 것은 마지막 SF소설로 접속사가 쓰여진 채 이어지지 않고 있다. 더 이상 그 말 뒤에 다른 말을 접속하지 않을 커트 보니것은 벌써 11년 전인 2007년에 사망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이 작가는 아직 살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후세계에 관한 키보키언 박사의 이야기들을 많이 봐서 그런가. 단편 하나하나마다 아이러니가 가득 담겨 있다. 사망한 작가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건 그렇지만 왜인지 자살시도와 화재 사고 사망에 이르게 된 계단의 사고가 우연한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닥터 키보키언 박사보다도 나이 든 데이비드 힌든이 생각나기도 하고.

 

시간에 사로잡히는 것은 거의 미친 짓이고 허우적대는 꼴이며 비극에 대한 반응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고요한 이 순간, 행복했던 시절로 가고 싶다는 소망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고 확신했다.

 -  「‘소심한’과 ‘멀리 떨어진 곳 사이에서」


  경험이니 시간에 관해서는 항상 과거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니 딱히 행복한 2017년이 아님에도 이미 경험했다는 이유로 2017년이 2018년보다 더 행복하게 느껴진다. 이런 비극이라니. 미래를 희망하는 일에 주저한다는 것만큼 서글픈 일이 있을까. 처음의 한탄은 결국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을 지 모르겠다. 젊은 화가 데이비드 힌든의 이유는 보다 확실하다. 2주전 사망한 아내와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리고 또한 제 눈앞에서 고기를 낚아 올리던 어부의 실족사를 경험하게 되는 순간 그는 완전한 분노에 휩싸일 정도다. 그렇게 시간이 인간을 가져가버린 것에 대해. 다행히 찰나의 순간 닥터 키보키언 박사의 도움으로 어부는 살아나고 죽음의 순간에 지난 시간을 경험했다는 말에 데이비드 힌든은 시간탐험을 하기로 결심한다. 어떻게? 키보키언 박사가 오는 순간에 맞추어, 잠시 숨을 넘어가는 순간을 만들어서, 그러니까 임사체험을 통해서 말이다.


그는 아주 잠깐 죽어서 영원을 탐험한 뒤 다시 살아나, 산 자들에게 그들이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가장 거대한 성운만큼이나 영원한 우주의 일부라고 말할 것이다. 시간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더 이상 살인자가 아니다.

 -  「‘소심한’과 ‘멀리 떨어진 곳 사이에서」


  그의 이 탐험은 위와 같은 말을 하기 위한 중대한 목적을 갖고 있다. 그는 이 시간여행, 참험을 위한 시간을, 타이밍을 만든다. 그러나 아니러니의 작가가 만든 결말은….

  「멍청이의 포트폴리오」는 양부모가 물려준 유산을 사기꾼들에게 뺏겨 탕진할 것 같은 청년을 쫓아다니며 가족과 명예를 위해서는 돈의 소중함을 알고 계획에 맞게 활용해야 한다며 가르치는 주식 포트폴리오 매니저의 이야기를 담았다. 다만 이 매니저는 그가 그토록 청년에게 돈을 소중히 투자해야 한다고 위치는 이유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청년은 매니저의 말에 따라 돈보다도 더 가족을 소중히 하고 있는 모습을 실천하고 있다. 주식 매니저가 실제로 원한 것은, 그것이 아닐 텐데도.


 “나의 행복을 이렇게 순순히 보내버릴 거라고 생각했나요?”

 “내가 당신의 행복이라고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뭐죠?” 

- 「스노우, 당신은 해고예요」


  참, 해고도 쉽고 사랑도 쉽다. 「스노우, 당신은 해고예요」에는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일관하는 두 남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예쁜 여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를 거라는 빠진 남자, 젊고 예쁜 여자라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집착하는 중년의 남자, 아내가 있는. 정말이지 예쁜 외모를 지녔기에 자신의 행복이라고 따를 것을 종용하는 남자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세상의 온갖 짜증을 끌어모아도 모자랄 듯하다. 이 편견 속에 휘둘리지 않은 알린 스노우에게 박수를!

  중년, 노년, 신혼의 미국인 세 커플이 파리를 여행하는 「프랑스 파리」 역시도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각각의 커플들이 마주치는 상황과 그들이 생각하는 삶의 순간들과 사랑이 펼쳐지는데 웃음과 페이소스가 묻어난다.

  이 감정은 아마도 작품마다마다 등장하는 어리숙한 멍청이들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분노와 적의보다 웃픈 느낌이 이 책 전체에서 느껴진다. 지독하게도 처참해 보이는 순간에도 연민, 페이소스를 느끼게 하니 적의와 악의가 가득한 사람들보다도 이들 소심하고 나약한 멍청이들이 있는 세상이 좀더 살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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