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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 -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 당선작
금태현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평점 :
망고탱고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 금태현, 창비, 2016.11.07.
서른 한가지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가게에 새로운 아이스크림이 생겨나도 망고탱고를 고른다. 다른 맛은 기억에 남지 않고 망고탱고의 맛만 뚜렷하게 기억하는 건 그곳에서 처음 먹은 아이스크림이기 때문일까. 첫사랑에 대한 기억만큼으로 자리잡은 망고탱고가 아니라 정말로 가장 맛있다. 망고탱고를 먹으면 정말로 입안의 혀가 춤을 추는 듯이 느껴진다. 망고스퀘어가 망고탱고로 보여서 시원하고 맛있는 맛을 떠올렸는데 필리핀 세부에 있는 실제지명 망고스퀘어는 그곳에서 살고 있는 하퍼의 삶의 이야기는 전혀 망고탱고의 그 달콤한 맛과는 멀었다.
하퍼는 코피노다. 한국에 익숙한 코피노의 이야기라면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일 텐데 하퍼의 아버지는 병으로 사망했고 어머니는 늙은 일본인과 재혼해 일본으로 떠났다. 이쯤되면 하퍼는 엄마에게 버려진 건가. 그래서 하퍼는 일찍부터 소매치기와 불법 동영상 업로드로 돈을 벌며 세상을 살아간다. 하퍼가 올리는 영상의 주내용은 타인들의 실패나 실수담이다. 참으로 웃픈, 그런 영상들을 올리며 방문자를 유도하여 돈을 벌고, 그리고 또한 끊임없이 경고장을 받는다.
특별히 하퍼가 코피노이기 때문에 그의 삶이 힘들고 어렵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가 마약배달을 하는 상황 역시도 코피노이기 때문은 아니다.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는 재혼한 상황에서 홀로이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을 본 듯할 뿐이다. 그런 아이들을 이용하거나 동정하는 이들이 있어서, 이런 아이들의 삶을 제 마음대로 주무르는 이들이 있어서 하퍼의 삶은 지속되었다. 이제 스무살인 하퍼가 살아왔을 삶에서 하퍼가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 없기에 하퍼의 삶이 그대로 정해져가는 것이다.
하퍼가 악랄하다거나 우울의 바다 속에 빠진 성격은 아니고 허세 가득하고 철없어 보이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그저 뒤통수 탁 치고싶은 철딱서니없는 애로 보이긴 한다. 불법과 범죄로 얻은 돈으로 삶을 살지만 안정적인 미래에 대한 계획이란 미인대회 출신의 여자를 만나는 것인 스무살 청년 하퍼의 삶이다. 물론 그렇게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해 건조히 내뱉는 속에서 힘겨움이 체화된 하퍼의 일상에 애처로움이 느껴진다. 하퍼의 희망, 미인대회 출신의 여인은 베렌이라는 여자로 실현된다. 베렌과의 만남이 하퍼의 인생을 또한번 전환시키게 만드는데 베렌을 잡으러 가는 자에서 베렌과 사랑에 빠져 도망하는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하퍼에게 베렌을 잡기를 요청이란 형식으로 실은 협박한 이는 박사장, 하퍼에게 마약배달을 시키는 자이다. 이들의 관계는 그렇게 거래관계였지만 헤어날 수 없는 잘못된 관계로 위치지으며 하퍼도 베렌도 박사장과 같은 이들의 악랄함 속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한다.
하퍼는 지금 살아있지 않은 아버지, 기억에 없는 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을 경유해 살아계신 어머니가 있는 일본으로 간다. 후쿠오카 그 곳에서 어머니와의 시간을 보내며 기억에 없는 아버지에 대해서도 이미지를 찾아내고 베렌과의 관계 또한 견고해진다. 일본여행에서 하퍼가 느낀 것은 ‘가족’이라는 이미지다. 그가 살아오면서 느끼지 못한 가족이란 말이 주는 따스함, 안정감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며 가족속에서 살고 싶은 꿈을 새롭게 하퍼는 갖게 된다. 가족에게서 분리된 채로 살아내야 했던 하퍼의 삶이 어쩌면 힘겹게 살게 된 근원으로 올라가 이유를 찾아낸 것이라고 봐야 할까. 원인을 찾았고 방법을 찾은 하퍼의 새로운 삶을 기대한다.
나는 우리 네사람이 가족이라는 둘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베렌과 엄마가 나란히 주방에서 밥을 짓고, 나는 고등어를 굽는다. 지금처럼 할아버지와 함께 식탁에 둘러앉는다. 음식이 식탁을 구성하는 게 아니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식탁을 규정한다. 가족 중 누군가 잔소리를 하거나 참견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하퍼의 꿈은 감옥에서 전개된다. 박사장이 끝나지 않을 돈에 대한 욕구 때문에 계략으로 마약운반책으로 붙잡혀 무기징역을 선고받게 되니까. 스무살 청년 하퍼의 삶은 감옥에서 어떻게 이어질까. 이제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를 가지고 삶을 살기를 원할 때에 맞닥뜨린 이 현실에서 하퍼는 박사장을 원망하지도 마냥 억울해하지도 않는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서일까. 꿈꾸듯 여전히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 교도소 댄스 공연에서 춤추며 베렌에게 프로포즈하는 것을 상상하는 하퍼의 삶은 하루 몇 끼를 먹냐는 신부에게 참치맛을 아냐는 식으로 대꾸하던 하퍼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허세가 아니라 진정 웅원하게 된다.
나는 벌써부터 부활절을 기다렸다.
관례대로 누군가 석방을 맞이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석방자 명단에 내 이름도 들어가길 간절히 희망했다. 잘못 불리지 않은, 진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싶다.
어쩌면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을 보자마자 망고탱고를 떠올린 건 하퍼의 춤으로 이어질 이야기의 전개를 알았던 것일까. “기다릴 줄만 안다면 불행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는 말이 판도라 상자속에 마지막 남아 있던 희망에 대한 두가지 해석을 생각하게 한다. 망고탱고를 입속으로 되뇌며 희망일지 절망일지 모를 하퍼 김의 미래를 생각하는 동안 존재하지도 않는 망고탱고가 이미 입속에서 다 녹아 그것이 가졌던 여운만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