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트] 비밀의 숲 세트 - 전2권 - 이수연 대본집
이수연 원작 / 북로그컴퍼니 / 2017년 8월
평점 :
감정없음을 소망하며
비밀의 숲 1・2- 대본집, 이수연, 북로그컴퍼니, 2017-08-11.
‘감정적’이다라고 말할 때엔 거기엔 부정적인 뉘앙스를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감정이 없다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본다. 특히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싸이코패스의 전형이라고 본다. 그렇기에 감정적인 것은 부정적이긴 하나 감정이 없는 것에 비해서는 인간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감정적인 이유로 그것을 컨트롤하지 못해 범죄를 일으킨 이들보다 감정을 갖지 않는 이에게 더 큰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누군가의 감정적인 화보다 감정없음으로 인한 해가 ‘나’에게 미칠 가능성을 더 크게 보기 때문일까. 비슷한 맥락일지 법조인에게도 감정을 요구한다. 감정없음보다는 감정을 가지고 사건을 들여다보는 것을 기대하고 그것을 ‘공정’의 한 요소로도 여긴다.
『비밀의 숲』은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관념인가를 알게 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오히려 감정이란 것이 판단을 좌지우지 하는 데 얼마나 깊게 관여하는가를 보여준다. 감정을 관여하는 뇌의 일부가 제거되어 그 기능을 상실한 자가 범인을 잡는 검사일까, 범인 그것도 연쇄살인범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끔 하는 지점에서 『비밀의 숲』은 전개되는데 드라마로 방영되어 많은 인기와 호평을 얻고 각종 상을 휩쓴 『비밀의 숲』에서 가장 흥미있는 부분이 주인공 황시목의 이 감정기능의 제거였다. 그리고 이것이 공정한 생각을 하는데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감정없음은 곧 싸이코패스라던 익숙한 공식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정확한 의료계의 입장은 모르겠다만.
감정적으로 휘둘리는 사람들 속에서 사건을 명확히 인지하고 그에 따른 판단을 내리는데 부족함이 없는 캐릭터로 인해 감정과 사고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라는 뻔한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세상의 온갖 인간관계와 무수한 사연의 연결망에서 침착하고 사리분별을 가지고서 판단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에 황시목처럼 “범인은 잡는 겁니다. 잡아서 뭘 하는 게 아니라.”와 같은 사고로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이 타당하게 보인다. 특히나 그토록 힘들게 힘들게 이룬 촛불의 힘이 몇몇 특정한 판사들의 손에서 휘둘리는 한해를 경험하고 나서 이들에게 감정없음을 요구하고 싶어졌다. 이들의 뇌기능을 상실시켜 버릴까보다….
우리는 팩트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완전히 묻혀버렸을 때 팩트를 경위님이 직전에 건져냈어요. 그걸 살리느냐 마느냐가 결정하는 건, 지금 당장의 상황이 아니에요. 한여진이란 사람이 지금까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가, 거기 달렸죠.
특정 판사들의 이름이 연일 실검에 등장하고 또 등장하고 또 등장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마치 싸이코패스처럼 굳어진 채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처음이야 힘들었겠지만 그 이후로는 너무나도 당당하고도 뻔한 패턴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서 황시목의 저 대사가 어쩜 그리도 맞아 떨어지는가 싶다. 그렇게 스스로도 기존의 상식을 깨고 논리가 모순에 빠지는 채로 판결을 내리는 것이 당장의 상황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거였다.
한해를 마감하는 이즈음 문득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인터넷을 오갔는데 이들 법조인들의 이름이 무더기로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씁쓸하다. 그동안 검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검사들의 소명의식과 역할에 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각성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는데 넘어야 할 산은 무더기였다. 아주 제대로 그동안 다소 간과했던 판사들의 매우 저열한, 권력지향의 ‘인간적인’ 모습을 만나고 있다.
우리 검찰은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사정기관으로서, 실패했습니다. 검찰의 가장 본질적 임무에 실패했습니다. 이 실패의 누적물이 이창준 전 검사장이며 우리 모두는 공범입니다.
검찰도 법원도 언론도 관공서도 모두 저 말에 해당된다. 그들이 해야 할 역할을 하는데 실패했다. 적어도 그 이유가 그들이 가진 감정때문이었음을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권력과 재력에 친화적인 감정, 학연과 지연과 혈연에 매달리는 감정, 그들끼리의 세상에서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잘 살고자 하는 욕망 가득한 그 감정들. 겨울의 찬기운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감정없음이 보고픈 2018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