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저넌에게 꽃을
대니얼 키스 지음, 구자언 옮김 / 황금부엉이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라쿤에게도 꽃을


앨저넌에게 꽃을-운명을 같이 했던 너 Flowers for Algernon (1959년)


http://www.hankookilbo.com/v/b414794e3315451d9cdd761f62ff3f94 


  모피가 될 운명의 라쿤이 제게 겨눠진 총을 잡는 장면은 인간 중심의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인간의 아래로 두어 인간생활의 필요품쯤으로 여기는 인간의 삶, 그러면서도 간혹 멸종동물을 거론하며 공존해야 인류가 생존한다 말하는 지극히 ‘인간적’ 삶. 라쿤을 걱정하는 마음 또한 인간중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 않을 지도 모른다. 라쿤이든 어떤 동물이든 잔혹하게 학대하다가 동물에게 행한 일이 인간에게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거라는 생각. 이미 그런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이 책은 일곱 살 아이의 일기장을 읽는 느낌으로 시작된다. 뭐가 잘못된 건가 싶어 다시 책을 뒤적이게 만든 맞춤법 틀린 노트는 32살의 찰리가 기록하는 자신의 삶이다. 누군가에는 경과보고서쯤으로 불린다. 과학소설, SF소설로 분류되는데 다소 예스럽게 느껴지는 소설 속 배경은 1959년 출간된 작품임을 알고난 후 이해되었다.

  어릴 적 앓은 병으로 지적장애를 안고 빵가게 점원으로 살고 있는 32살 찰리에게 변화가 찾아온 건 뇌수술과 약물치료로 지적장애를 고쳐보겠다는 교수진들의 제안이다. 지적장애로 친구들과 가족에게도 차별을 받으며 자란 찰리는 실험쥐 앨저넌처럼 임상실험에 참여하여 지적장애 치료에 들어간다. 찰리는 글을 배우며 수술과정과 이 변화들을 기록한다. 똑똑한 사람이 되고픈 찰리의 욕구는 엄마에게 사랑 받기 위한 열망이었다. 찰리의 엄마는 찰리가 저능아라는 것에 공포와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꼈고 동생을 낳은 뒤에야 자신이 정상적인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찰리를 바꾸려는 노력을 그만두었다.

  맞는 것 하나 없는 맞춤법으로 글을 채워가던 찰리의 노트의 변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찰리의 지능은 발달하여 아이큐 185로 치닫는다. 어떤 논문이든 척척 이해하는 찰리의 지적능력을 보건대 찰리의 뇌수술은, 교수들의 이 연구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지능이 발달하면서 찰리는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만큼 삶과 인간,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해나간다. 지능이 좋아지면 세상살이는 마냥 좋고 행복할까. 저능아로 살던 때와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 때 모두가 찰리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찰리는 깨닫는다.


지능은 인간에게 주어진 뛰어난 능력들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지식을 추구하다가 사랑을 몰아내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제가 최근에 발견한 다른 사실이 있는데요. 가설로 제시하죠. 애정을 주고받을 줄 모른다면, 지능은 정신적이거나 도덕적인 붕괴로 이어지고, 신경증이나 정신병까지 낳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기적인 목표에 온 정신이 팔려 타인과의 관계를 배척하면, 분명 폭력과 고통만 남게 되겠죠.


  그렇다면 찰리의 부모는, 가족은 어떨까. 아빠는 아들의 머리를 깎으면서도 아들인지 모른다. 제 아들을 못 알아본 엄마는 아들임을 알자마자 폭언과 폭행을 가한다.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찰리의 소망은 가족에게서 완성되지 않는다. 절대 한발자욱도 나아가지 않는다. 다른 모두에게도 마찬가지다. 지능이 좋을 때에도 나쁠 때에서 찰리를 배척하는 동료들과 실험실 표본으로 대하는 교수들에 대한 배신감, 분노, 존재에 대한 허무 등 찰리는 인간적인 저항을 느껴간다. 그리고 앨저넌은 점차 퇴행을 보이고 마침내 찰리가 만들어준 무덤속에서 잠자고 있다.


나는 두렵다. 삶 혹은 죽음 혹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사실이 두려운 게 아니라,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전혀 없었던 것처럼 낭비되는 것이 두렵다. 그런데 입구를 지나가려 하자 내 주위에 압력이 느껴지면서, 동굴의 입구 쪽으로 거친 파도와 같은 움직임이 나를 밀어낸다.


  모든 라쿤에게 꽃이 필요하다. 뒷마당에 있는 앨저넌의 무덤에 꽃을 놓아 달라고 했던 찰리의 소원처럼. 찰리의 친구이자 찰리와 같았던 멋진 쥐 앨저넌에게 꽃을. 털은 솜처럼 부드럽고 눈동자는 검정색이고 둘레가 분홍색인 쥐, 앨저넌에게 꽃을. 그것은 제 무덤에도 꽃을 놓아달라는 찰리의 부탁으로 들린다. 모피가 아니라 한 마리 라쿤이라 말하는 듯한 라쿤의 총을 잡는 손짓이 똑똑하지 않을 때나 지금이나 한 인간이었다고, 감정을 지닌 인간이었다고 외치는 찰리의 절규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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