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씽 (예담)
니콜라 윤 지음, 노지양 옮김 / 예담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누구도. 아무도.


에브리씽 에브리씽 Everything, everything


 

 세상 밖은 위험해. 하지만 가장 위험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야.


  세상 모든 것에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SCID라는 중증복합면역결핍증. 이 병을 앓고 있어서 17년 동안 집 밖으로 한 번도 나간 적 없는 매디는 다행히 의사인 엄마 덕분에 그리고 엄마가 돈이 많은 덕분에, 병원이 아닌 무균 처리된 집안에서 세상을 알아간다. 특정한 것에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 만큼 매디에게는 정말로 세상밖은 위험할 지 몰랐다.

  책과 인터넷, 상상 속에서 세상을 알아가는 매디에게는 3D의 생생한 현실감이 필요했겠지만 매디의 현실은 어김없이 무균처리 되어 배달되는 2D의 세상이다. 옆집으로 이사 온 올리가 아니었다면. 17세 소녀가 가지는 자연스러운 반응일까. 창밖으로 훔쳐본 올리는 생생한 3D로 자리잡아가고 매디의 생각은 올리가 가득하다. 불치병에 걸린 소녀와 조숙하고 용감한 소년의 사랑과 우정. 소설 『에브리씽 에브리씽』은 이 흔한 이야기를 매우 경쾌하게 그리고 아주 재밌는 스타일과 일러스트로 표현하고 있다. 동화같은 느낌과 함께.

  왜 사춘기 소년소녀들은 그토록 부모들 말은 듣지 않으면서 이성의 말에는 맹목적인가. 또래 올리와 함께 균이 제거되지 않은 세상밖으로 나가고픈 매디의 의지는 강해지면서 누워만 있는 세상이 아니라 좀더 다른 세상을 갈구하게 된다. 처음엔 그저 아주 작은 정도의 바람을 가져보지만 점점 더 원하게 되는 세상. 그 세상에 바로 올리와 함께 하는 자연과 사랑이 있다. 결국 엄마가 보여주는 세상과 올리가 보여주는 세상에서 매디는 위험과 사랑을 선택했다. 엄마의 걱정과 눈물이 억압으로 느껴진다면야 더욱 더 불꽃같은 삶과 자유를 원하게 될 수밖에. 마침내 무균의 집을 탈출해 온갖 균들의 세상으로 나간다. 매디에게는 그것조차도 환상이었다. 다만, 그 온갖 균 하나로 인해 죽을 정도로 아프기 전까진.


이게 전부(everything)가 아니란 걸 알아.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보다는 낫잖아.


  『에브리씽 에브리씽』이 생각난 건 귀엽고 깜찍한 매디가 생각났다기 보다, 인터넷을 장식한 ‘세가와 병’ 때문이다. 세가와 병이란 도파 반응성 근육긴장 이상이라는 질환으로 뇌성마비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왼발목을 다쳤는데 오른발을 절단한 의사 얘기를 듣고 우리나라는 안 그러겠지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황당한 사건들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기사화되지 않은 많은 오진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생명을 잃은 경우도 많았다. 며칠전만 해도 타인의 진료기록으로 멀쩡한 사람을 수술한 의사가 있었다. 이번 세가와 병 오진 기사는 한순간의 판단으로만 벌어진 일이 아니라 그 충격의 강도가 높다.

  서모씨는 3살 때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 때문에 병원에서 뇌성마비 판정을 받고 13년 동안 치료를 받았다. 상태가 악화되어 몸을 가눌 수도 없었던 서씨는 물리치료실에서 뇌성마비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듣게 되어 다시 찾은 병원에서 세가와 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세가와 병 치료약을 먹은 지 이틀 만에 오래도록 누워있어야 했던 서씨는 걸을 수 있었다. 서씨는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군데의 병원을 다녔다고 했고 기간도 13년이었다. 한 곳에서 한 의사에게만 진료를 받은 거라면, 어쩌면 그 의사가 한번 내린 진단에 대해 재고할 여지없이 환자를, 병을 대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몇 년 동안 여러 곳의 병원에서 똑같이 오진을 한다는 사실이 쉽게 수긍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 이상을 감지한 것은 물리치료사라니…. 기사로는 알 수 없으니 마치 오진에 대해 일부러 의사들의 카르텔이 형성된 것은 아닌가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에브리씽 에브리씽』에서도 그랬듯.

  13년 세월 동안 뇌성마비로 살아야 했던 서씨가 뇌성마비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뻤을까. 단 이틀이면 나을 수 있는 병을 13년 동안 투병해야 했던 아이를 본 부모들은 기뻤을까. 이 거짓말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의 서씨가, 그의 부모님의 표정이『에브리씽 에브리씽』에서의 매디의 모습을 생각나게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가장 고통스럽게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그 사람의 행복이었음을 알았을 때 매디의 기분을 상상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주는 비극. 그 비극의 최종이 죽음이라면 차라리 원하는 삶을 살고 최종을 맞이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 매디가 알게 되는 진실. 17년의 오진에 대해 안 순간 매디 역시 기뻐하지 않았다. 기뻐할 수 없었다. 매디의 오진은 명백히 의도적인 오진이었기에 그것이 주는 충격은 헤아릴 수 없다. 상실과 충격이 인간의 마음에서 일으키는 폭력의 강도를 가늠하게 한다. 그러나 사랑이란 이름이 가하는 폭력 또한 만만치 않다. 사랑의 눈으로만 세상을 읽고 보게 되는 일도 많다. 매디 또한 사랑쪽으로 기울어 올리의 말에 행동에 더욱 이끌리게 되어 그뜻을 따르는 것처럼. 사랑이란 누구를 향해 있든 파괴력을 지닌다는, 행동력을 폭발시킨다는 생각이 언뜻 든다. 그리하여 사랑, 마냥 달콤하고 아름답기보다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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