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MB의 뒷담화론


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아침을 먹기 전에 불가능한 일을 여섯 가지나 믿어버릴 수 있다는 데는 누구나 쉽게 동의할 것이다.


  진정 탁월한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임을 증명하는 MB부대들이 연이어 검찰 출두하는 모습을 본다. 새삼, ‘인간도 아닌’이라는 욕들이 무색해진다. 이렇게 MB를 호모 사피엔스로 등극하게 한(?) 이론을 펼친 유발 하라리는 얼마 전 TV 강연에도 등장했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인간 종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를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류가 동일종의 직선계보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유발 하라리는 사람들의 이런 오류에 대해 지적한다. 적어도 여섯 종 이상의 인간 종이 존재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한 종만이 살아남아 있는가. 저자는 이것은 우리 종의 ‘범죄를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움직여간 모든 곳에 ‘멸종’이 있었다. 그렇다. 호모 사피엔스가 홀로 살아남기 위해 저지른 잘못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MB가 벌인 행태와 유사하다.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 (…)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사피엔스가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로 이야기다. 허구를 만드는 능력. 상상력. 저자는 사피엔스가 가진 특별한 무언가가 바로 허구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확산시킬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주장한다. 허구적인 이야기를 동일하게 믿는 한 사람들은 그 관행과 규칙을 따르게 되고 설득당하기 쉽다. 이를 통해 유연한 협력을 함으로써 인류가 지속될 수 있다고 말한다.

  상상력은 그 자체로 좋고 나쁨을 가지지 않는다. 아니, 그것을 나쁜 쪽으로 활용할 때 나쁜 것이 되고 좋은 것으로 사용한다면 좋은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 중 누군가는 이것을 좀더 나쁜 쪽으로 활용했고 그런 무리들이 되어 그들만의 사회를 유지시켰다. 이런 활용이 지속적인 세상의 지배자로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가고 있는 중이고 여전히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들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좋은 상상력을 활용해나가고 있다. 인류 문명의 진화로 제시한 세 가지 혁명,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을 거쳐 과학혁명을 맞이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혁명단계를 거치며 인간은 행복해지고 있는가.

  홀로 살아남은 호모 사피엔스의 문명기는 흥미롭게 전개된다. 과거의 모습들을 마치 직접 겪은듯 향수에 젖어 돌아보게도 되는데 수렵채집인 시대를 그리워하는 이 마음이라니! 정착하며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인구, 노동시간, 전염병이 급격히 증가해 간다. 오늘날의 삶이 이 농업혁명기의 삶이 모태인듯 보이며 수렵채집인의 삶이 ‘이상적’으로 보인다. 진정 꿈꾸는 삶인 것마냥 느껴지는데 저자는 바로, 지적한다. 그 시대라고 풍요사회일 수만은 없노라고. 하지만 인간이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밀이 인간을 길들였다는 관점은 오늘날의 현실을 개탄하는 입장에선 참 자조적으로 들리는 말이기도 했다.


행복의 관건은 의미에 대한 개인의 환상을 폭넓게 퍼진 집단적 환상에 맞추는 데 있을지 모른다. 내 개인적 내러티브가 주변 사람들의 내러티브와 일치하는 한 나는 내 삶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으며, 그 확신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꽤 우울한 결론이다. 행복은 정말로 자기기만에 달려 있는 것일까?


  어디 그뿐인가. 미래도 마냥 낙관적이진 않다. 과학기술은 질병을 치료하고 인간 수명을 연장하게끔 해왔지만 과연 이런 기술의 진보는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내려앉을 것인가. 오랫동안 혁명의 혜택이란 항상 권력자들, 가진 자들에게 우선권이 있었다. 한번도 변하지 않은 사실이다. 그러니 발전된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은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뿐. 또한 무한히 뻗어 나가는 유전공학의 세계는 경이롭기도 하지만 무서움을 준다. 역시나 그것 자체로는 어떤 선악을 판단할 순 없을 것이다. 그것을 이용하는, 이용할 수 있는 누군가의 ‘욕망’과 ‘의도’에 인류 전체의 행복 또한 달려 있을지 모른다. 뒷담화론과 이 과학기술혁명에 필수적으로 윤리가 요구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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