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안다는 것


바다생물 이름 풀이사전-생명의 바다에서 건져올린 이름들 

박수현, 지성사, 2008-04-25.


  “집채보다도 더 큰 고래가 헤엄쳐 다닌다는 바다”

  『요람기』속 아이처럼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바다엔 거대한 생물들이 살고 있고 고래가 뭍으로 올라와 소원을 가져다주는 구슬을 내밀거라고. 용의 아들 포뢰처럼 고래를 보고 놀라 울지 않고 고래입으로 걸어 들어가 뱃속을 탐험할 거라고 말이다. 물에 빠져 떠밀려간 기억에 깊은 물이면 공포를 느끼면서도 바다 깊은 곳에 대한 환상과 신비는 여전했다. 바다 세계를 탐험하고픈 꿈을 늘 가진 채 아이는 어른이 되어 뭍으로 떠밀려온 거대한 고래나 심해어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거봐, 엄청나게 크잖아! 나를 만나려고 왔나 봐.”

  아니다. 이건 어린 아이의 말이다. 이제 커버린 나는 해안에서 죽거나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심해어나 고래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우와, 저 밍크고래 발견한 사람 좋겠다. 저게 얼마라고?” 그때, 입안에 회를 자근자근 씹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횟집에서 무심하게 메뉴판을 고르는 어른의 나를 아이의 모습으로 돌려주었다. 식탁에 놓인 ‘모듬회’ 접시가 아니라 바다를 유영하는 생물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이름을 불러보고 싶게 만들어 주었다.『바다생물 이름 풀이 사전』. 친구의 이름을 알고 싶어하듯 펼친 이 책은 그저 바다생물에 관한 정보와 지식만이 아니라 이름에 가득한 신화와 동화적 상상력까지 되살려 주었다. 아이가 꿈꾸었던 바다속 환상을 눈앞에 펼쳐주었다. 고래뱃속을 탐험하고 팠던 것처럼 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언젠간 스킨 스쿠버를 해보리라는 꿈을 갖게 해주었다.

  이 책에선 108개의 부를 수 있는 이름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어류, 연체동물, 절지동물, 자포동물, 극피동물, 포유동물, 해조류, 파충류 등으로 나누어 바다 생물들의 이름과 어원, 생태적 특성 뿐 아니라 신화와 전설을 소개하며 낯선 생물들을 친숙하게 만들어 준다. 선조들이 남긴 어류도감뿐 아니라 많은 문헌에서 어류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내어 지식과 이야기를 함께 담고 있는 것이다. 바다세계를 1,900번이 넘게 탐험했다는 저자의 사진을 통해 한번도 본적 없는 화려한 바다생물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어떤 생선은 ‘어’자가 어떤 생선은 ‘치’자가 붙는 것이 비늘 유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말미잘, 산호, 해파리, 히드라 같은 생물들을 가시가 있는 세포란 의미의 ‘자포’동물이라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자주 먹던 홍합이 먼 바다로 나간 배에 딸려 왔던 외래종 진주담치에 밀려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선조들은 해삼과 굴을 바다의 삼, 바다의 우유라고 했는데 현대 과학자들이 실제 그 성분을 추출해낸 것을 보면서 다시금 선조들의 지식과 통찰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재밌는 이름도 있다. 나폴레옹 피시와 말미잘이 그렇다. 이 물고기는 농어목 놀래기과에 속하는데 2미터에 200킬로그램이 넘을 정도로 크다. 그런데 어쩌다가 나폴레옹이란 이름을 획득했을까. 절대 물고기 전쟁의 강자여서가 아니라 외양 때문이라고 한다. 이 물고기가 성장하면서 이마에 혹이 튀어나오는데 이 모양이 나폴레옹의 ‘모자’를 닮아서라나. 나폴레옹이 아니라 나폴레옹 모자를 닮은 이 물고기는 태평양 지방 원주민들에겐 의식의 제물로 사용되어 왔다고도 한다. 말미잘은 정약용의『자산어보』에 따르면 항문을 닮아 미주알이라 표기하고 있다.

  미주알은 ‘구멍을 이루는 창자의 끝부분’이라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은 사람에 비유하기 곤란하거나 다소 큰 것을 가리킬 때 ‘말’이라는 접사를 붙였다. 항문을 뜻하는 미주알과 말이 합쳐져 말미주알에서 말미잘로 전해졌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말미잘을 본 적은 없지만 이 어원을 떠올리며 항문을 생각하게 될 텐데 그런데 서양사람들은 다르다. 서양에서는 이 말미잘을 시아네모네(Sea Anemone)라고 부른단다. 바다의 아네모네라는 뜻이다. 같은 생물을 보면서도 누군가는 항문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봄에 잠깐 피었다 바람에 지는 아네모네’를 생각했다니 얼마나 사물을 바라보는 생각과 눈이 다른가. 단지 말미잘뿐만이 아니라 바다생물의 이름에는 각 나라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각 나라가 처한 상황과 생물의 유용성에 따라 생물의 이름뿐 아니라 그 생물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던 것을 볼 수 있다.

  자연과 생물에 인간은 ‘인간’의 시각에서 이름을 붙이고 있다. 하지만 생물의 특성을 잘 관찰하여 그 특성을 잘 가려내어 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하면서도 공존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수많은 포획으로 멸종이 되어가는 생물은 협정을 통해 보호종으로 지정하여 포획하지 않는 방법으로 말이다. 생태계를 보호하는 것이 인간 역시도 생존의 길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인류가 지속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 가고 있다. 절대로 ‘창꼬치 증후군’으로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의 규칙이나 관습을 고수하는 경향을 창꼬치 증후군이라 한다. 창꼬치가 수족관 유리벽이 있는 줄 모르고 작은 물고기를 공격하다 실패하자 유리벽을 치워도 변화를 알지 못한 채 물고기를 바라만 보는 데서 붙인 말이라고 한다. 기후변화와 지각변동으로 점점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는 이 변화 속에서 생태계 보존을 위해 노력하는 방법의 하나가 다양한 생물들에 관한 이름을 알아가는 일이 아닐까 한다. 이름을 안다는 것, 그것은 그 생물의 특성을 안다는 것이기도 하다. 생물의 특성을 안다는 것은 고유한 특성을 해치지 않고 보호·유지하며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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