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蟲性)스런 나라


저스티스맨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도선우, 나무옆의자, 2017-06-07.


   이마 위 두 개의 탄알 구멍이 난 채로 발견된 피살자. 이야기는 살인 현장과 피살자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연쇄’살인이라는 말이 붙으니 적어도 한건 이상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과연 끝은 있을까. 몇 명의 살인에 ‘성공’하게 되는가. 살인의 동기는 무엇이고, 살인자는 누구이며, 살인자는 잡히는가. 살인이 일어날수록 범인이 누군가에 대한 궁금증은 증가될 수밖에 없지만, 이 책은 범인이 누구인가보다 왜 그 일이 일어났는가에 집중되는 책이다.

  살인의 동기는 범인의 입을 통해 드러나지 않는다. 피살자가 사망한 이유는 범인이 드러났을 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된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에 관해 자료를 찾고 분석하고 추측하는 일들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닉네임 저스티스맨의 추리가 가장 설득력을 얻으며 폭발적 인기를 얻는다. 저스티스맨의 까페는 가입자수 증가와 함께 저스티스맨의 추종자들로 넘쳐난다. 사건이 이어지는 동안 전혀 용의자를 특정치 못하는 경찰들로 인해 저스티스맨의 인기는 더욱 높아가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저스티스맨이 바로 범인이 아닌가라는 의심 또한 얻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 사건이 벌어지고 저스티스맨이 살인 사건의 벌어지게 된 ‘이면’의 사건들을 추리하면 네티즌들이 그에 대해 설전을 벌이는 패턴이 반복된다. 연쇄살인의 동기는 대체로 누군가를 ‘마녀사냥’ 당하게 한 가해자라는 특징을 보인다. 술 취해 노상에서 구토와 배면을 한 직장인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이, 성폭력 동영상을 유포한 이,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 이 등등. 사건들은 독립적인 듯 하면서 맞물려 흘러간다. 연쇄살인의 피해자가 인터넷 폭력의 가해자로 추정하는 만큼, 사람들은 왜 인터넷상에서 이토록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고 무책임하게 타인의 신상을 게시하는가에 대한 저스티스맨의 분석 또한 유의미하다. 소설은 연쇄살인의 범인을 찾는 것보다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이 무분별한 폭력, 마녀사냥이 되어 가는 인터넷 게시글의 세계를 더욱 조명하고 싶어하는 듯 보인다. 


사람들은 가끔 자신이 살아온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을 혐오하며 자괴감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러한 자의식 과잉이 뒤틀린 욕망으로 발현되는 순간이 바로 부당함으로 피해를 본 타인의 삶을 목격했을 때라고 저스티스맨은 주장했다.

그것은 피해자일 것으로 추정되는 타자의 처지에 밑도 끝도 없이 분개하여 정의감처럼 느껴지는 감정을 불사르고, 그 감정의 정체를 미처 분간하기도 전에 일방적인 옹호를 칼날처럼 내세우며, 가해자의 원인일 것으로 추축되는 대상을 무차별적으로 질타함으로써 자신의 자괴감을 희석하려는 자구책의 전형일 따름이라고, 비열함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라고 그는 모질게 평가했다.


  그렇기에 저스티스맨은 최근 순식간에 인터넷 세상을 뒤흔든 ‘204번 버스’ 또는 ‘맘충’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첫 번째 연쇄살인의 피해자가 이른바 ‘오물충’ 사건을 일으킨 자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오물충의 만행’이라는 게시물로부터 촉발되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를 달구고 언론에 나오고 신상이 공개되어 직장을 잃고 가족들에게도 외면당한 ‘오물충’. ‘204번 버스 또는 맘충’은 또 어떤가. 버스기사가 아이만 내렸다며 울부짖는 엄마를 무시하고 내려주지 않고 내달렸다는 게시물 하나로 촉발된 204번 버스기사에서 맘충 사건으로 번져버린 사건. 며칠째 난리부르스였던 이 사건은 마치 누군가에게 화를 전가하는 형태로 이어져 처음엔 버스기사를 향한 날선 분노에서 다음에는 아이 엄마에게로 그 다음에는 허위·과장된 글을 게시한 목격자에게로 옮겨갔다. 순식간에 폭발적으로 벌어진 이 사건 후에 기억되는 것이라곤 냄비처럼 끓어오르는 사람들의 ‘화’를 쏟을 대상을 찾아가는 모습과 어디든 ‘충충’거리는 글들이었다. “피해자일 것으로 추정되는 타자의 처지에 밑도 끝도 없이 분개하여 정의감처럼 느껴지는 감정”이라는 저스티스맨의 분석이 적확하게 느껴진다.

  인터넷을 하지 않는다면 이런 것들도 모를 테지만 현대 사회에서 인터넷을 보지 않고서 무언가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어떤 형태로든 인터넷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접하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상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은 모르는 말들이 더 많아졌고 아무리 뜻을 유추하려 해도 알 수 없는 단어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온갖 비하와 조롱의 언어, 충(蟲).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조사에 따르면 가장 불쾌한 신조어로 ○○충을 꼽았다. 가장 싫어하면서도 가장 빈번하고 가장 널리 쓰이는 이 단어. 왜 우리는 이토록 인간들에게, 인간들의 행동 하나에 혐오와 멸시 가득한 말들을 붙이고 있는 걸까. 아름답고 살기좋은 나라에서 살고자 하는 희망을 좀먹으며 이 나라는, 참으로 충성(蟲性)스러운 나라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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