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아드
마릴린 로빈슨 지음, 공경희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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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임스들

길리아드, 메릴린 로빈슨, 마로니에북스, 2013.


  길리아드를 길+일리아드의 합성어로 생각하며 길에서의 이야기로 느꼈는데 책을 읽고 나서 이 느낌과 생각이 다르지 않음을, 그 생각을 이어가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길르앗(Gilead)은 요르단 북서부를 가리키고 선지자 엘리야의 고향이다. 구약성서 <창세기> 31장에 ‘길르앗의 향유’와 함께 나온다. 이렇게 보면 이 책이 종교적인 색채를 띠리라   짐작하게 된다. 이 책에선 화자가 살고 있는 지명이기도 하다. 책의 화자는 제임스 목사이며 그는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편지를 쓴다. 일흔 일곱의 제임스 목사가 자신이 죽고 나면 그 오랜 시간 동안을 아버지가 없이 살아갈 일곱 살 아들에게 남기는 이 편지는 아버지와 아들의 나이차로 인해 서글픈 감정이 들게 만든다. 아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이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이 편지는 아주 길고 오래 이어진다. 자신이 살아온 나날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아들이 살아갈 나날들을 위한 이야기이기에 진중하다. 작가의 문체 역시 담백하고 마치 시골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집을 떠나 길에서 사망한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는 길에 동행한 어린 존 에임스 목사의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자신의 생을 덤덤하게 얘기한다.

  존 에임스들의 이야기라고도 붙일 수 있을 만큼 길리아드에는 존 에임스가 많이 등장한다. 먼저 존 에임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역시 존 에임스이며 목사이다. 존 에임스 목사의 친구인 보턴 목사는 친구 이름을 붙여 아들의 이름을 존 에임스 보턴이라 짓는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존 에임스들의 생과 갈등이 등장한다. 존 에임스 목사는 아들에게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가계를 전하는 것이기도 하면서 그 시대의 역사의 흐름이기도 하다.  그의 첫 번째 아내는 출산 중에, 딸은 태어나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존 에임스 목사는 오랫동안 홀로 살아오다 노년에 나이 차이가 많은 아내와 결혼하고 아들을 둔다. 삶이 좀더 건강하게 이어진다면 좋으련만 존 에임스 목사는 점점 기력이 약해져 갈 수 없다.

  존 에임스 목사가 다소 정적으로 느껴진다면 목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좀더 동적이다. 두 사람의 갈등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대로 목사인 집안에 신자와 무신론자와의 갈등, 종교 노선의 갈등이 있다. 존 에임스의 할아버지는 쇠사슬에 묶인 예수의 환상을 보고 노예해방을 위해 투쟁한다. 조부는 남북전쟁 참여를 권하는 설교를 하고 북군 소속 군목으로 참전하며 전쟁에서 한쪽 눈을 실명한다. 이런 조부와는 달리 아버지는 평화주의자라서 갈등이 반복되고 존 에임스의 형은 독일 유학을 하면서 무신론자가 되어 돌아와 아버지와 갈등을 빚는다.

  길리아드는 존 에임스들의 터전이다. 존 에임스 목사의 동료이자 친구인 보턴은 아들의 이름을 존 에임스 보턴이라 짓는다. 존 에임스 목사에게는 이것이 달갑지 않은데 존 에임스 보턴이 마을에서는 알아주는 문제아로 낙인된 때문이다. 보턴 집안 역시 목사인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이 지속된다. 존 에임스 목사가 이 보턴 부자의 갈등에 개입해 중재하지만 망나니같은 보턴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내적인 갈등과 편견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존 에임스 목사의 이 마음을 무색하게 보턴은 가족에 대한 책임과 난관을 헤쳐 나갈 방법과 용기를 얻고자 하는 진지한 가장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갈등이 ‘노예해방’에 대한 관점과 이어진다면 존 에임스 보턴이 표면적으로 드러낸 갈등 역시 인종차별, 흑인에 대한 차별을 드러낸다.


목사로 산다는 것은 인생에서 매우 특별한 일이지. 사람들은 목사가 다가가는 걸 보면 얼른 화제를 바꾼단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들이 서재에 찾아와서는 아주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지. 삶의 겉모습 속에는 많은 것이 있어. 모두 그걸 알지. 많은 악과 두려움, 죄책감이 있고, 도저히 외로움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큰 외로움이 있기도 하단다.


  존 에임스가 목사인 만큼 사람들은 그에게 종교적인 믿음과 영혼의 평안을 얻고 싶어하는 모양이다. 그가 목사가 묵직하게 앉아 갈등들을 지켜보고 있거나 자신을 찾아와 내면을 털어놓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것이 활동적인 모습과 대비되면서 잘 어울린다. 그 나지막한 영향력이 좀더 단단하게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가리라 여겨진다. 이 책은 존 에임스 목사님의 설교도 함께 한다. 곳곳에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아들의 삶에 길잡이가 되고픈 목사의 마음도 갈등을 지켜보며 갖는 생각도 일찍 생을 마감한 아내와 아이에 대한 그리움도 남겨질 아내와 아들에 대한 마음도 편지에는 담겨 있다.


물론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살아오면서 쓸쓸해서 책을 읽은 시기와 나쁜 친구라도 친구가 없는 것보다는 나은 시기가 묘하게 번갈아 나타난 데 감사하지. 살면서 늘 두 감정이 번갈아 나타나지. 인간적인 것들에 굶주리게 되면 책이 들려주는 불운함이나 화려함, 뻔뻔스러움에 끌릴 수도 있단다. 네게 그런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만.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잠언27:7).” 생각지 않은 엉뚱한 곳에서 쾌감이 발견되기도 하지. 그것은 아비로서의 지혜다만, 신의 진실이자 내 오랜 경험에서 알게 된 것이기도 하단다.

  

  이 편지는, 아니 소설은 썩 잘 썼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퓰리처상을 받은 작품이지만 문체에서 느껴지는 강렬함은 없다. 하지만 목사의 설교를 계속 듣고 있는 느낌보다는 할아버지에게 듣는 인생사로 더 다가왔다. 이리저리 생각나는 대로 쓴 편지는 격정적인 토로보다는 조용히 뒤따르는 느낌이 들고 잠깐 딴 생각이 들게끔 해서 글을 놓치는 지루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1880년에서 1950년대의 조용한 시골마을의 정경이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그때의 사회 역시도 마냥 조용하게 흘러가지 않았겠지만 종교, 신과 믿음에 의지하며 그 가르침대로 살려 했던 목사의 삶의 노력들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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