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 다이어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캐롤 쉴즈 지음, 한기찬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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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흘러간다.


스톤 다이어리, 캐롤 쉴즈, 2015.


  사람이 태어나서 겪는 대표적인 생활사건이 결혼과 죽음이다. 흔히들 사회적인 어떤 ‘사건’들이 인생을 좌우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기본적인 생활사건에서 인생은 충분하고도 길게, 영향을 받는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양한 생활사건 중에서 결혼과 죽음이 차지하는 스트레스 지수도 매우 높다. 『스톤 다이어리』는 이와 같은 인생의 생활사건만으로도 풍부한 이야기를 펼친다. 한 여성의 일대기를 덤덤하게 그리고 있는데 우리의 삶이 아득하게 펼쳐지는 듯하다.

  탄생과 결혼과 출산 그리고 죽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1900년대를 살아낸 데이지 굿윌의 인생이야기는 그 시대의 분위기와 느낌과 어우러져 기인 여운과 울림을 더한다. 기나긴 삶의 이야기는 글의 전개방식과 문체의 유려함에 힘입어 쏜살같이 흘러간다. 

  데이지의 탄생은 비극적이라는 이름을 달고 시작한다. 1905년 캐나다 매니토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의 죽음과 맞닥뜨린 데이지는 그래서 아버지와도 헤어져 어린 시절을 보낸다. 너무나 뚱뚱해서 임신한 것을 몰랐던 어머니, 남편도 이웃들도 임신한 여자의 모습들을 그저 어머니의 평소 풍채로 알았기에 아이의 탄생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 된다. 데이지의 어머니 머시 스톤의 죽음도 함께 겪기에 그날의 그 모습은 사람들 뇌리에 깊게 각인되고 삶의 변화 요인이 된다. 적어도 이웃 여인 클래런틴 플랫 부인은 남편과 헤어지기로 결심하며 머시의 딸 데이지를 맡아 기르는 선택을 한다. 플랫 부인이 머시에게 한 말처럼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남편이 아닌 데이지와 함께 한다. 비록 데이지의 어린 시절을 함께 했을 만큼의 시간이었지만, 더 많은 세월이 지나 클래런틴은 데이지의 시어머니가 된다. 더더 많은 세월이 지나 결과적으로는 데이지를 선택하며 떠난 남편을, 며느리인 데이지가 찾아 나서는 운명이기도 하다.


여자의 삶이란 가슴 아래에서 약동하는 생명을 느끼지 못한다면 양배추 한 접시만도 못한 거라우. 보살필 아이가 있다는 것, 그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기까지 지켜본다는 것, 그게 사랑이지. 우린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또 신 앞에서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남편을 영원토록 사랑할 거라고 서약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낳은 피붙이라우.


  또다시 생활환경이 바뀌게 된 데이지의 생이다. 태어나서 아버지라 부를 만큼 결코 가까워보지 못한 아버지와 함께 살고 그리고 결혼하고, 결혼식과 함께 남편의 죽음을 맞게 되는 미망인의 삶. 1927년 스물 두 살의 데이지는 이로써 사람들로부터 확고하게 불행의 이미지로 덧씌워진 채 정의된다. 그러니, 데이지가 자신의 인생에서 제 존재에 대한 의구심으로 뿌리를 찾고 싶어하는 마음이 드는 것일 게다.


단 하나의 극적인 사건 때문에 한 여자의 인생에 무성했던 엉겅퀴 덤불이 깨끗이 사라질 수 있다니, 실로 부당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세상은 그보다 갑작스러운 반전이라든가 스릴, 사건을 단순하게 정리하려는 절박함에 가능성을 두고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데이지 굿윌 호드의 신혼여행에서 생긴 비극은, 그 반전이 너무나도 괴이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어서, 한창 뻗어 나가는 인생의 평범한 겉모습을 흐리게 만들어놓았다. 솔직히 말해서 원래 그녀의 인생은 다른 사람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조용하고 온화한 것이었다.


  ‘어머닌 살아오는 동안 행복하셨어요?’

  데이지의 딸은 이런 질문을 하려 했다. 그러니, 데이지의 생에선 사랑이 있고 결혼이 있고 출산이 있다. 그렇게 삶은 행복했던 순간도 그렇지 않은 순간도 함께 뒤범벅이며 데이지의 인생을 끌어 왔다.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데이지의 친구들과 데이지의 자녀와 손주들 역시도 태어나고 결혼하고 출산하고 갑작스레 이혼하고 또다른 사랑을 찾고 결혼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생은 누군가와의 만남이 자리하는 부분이 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로 인한 상실감이 인생을 지배하는 또다른 감정이기도 하고. 여기 데이지의 아버지 카일러 굿윌이 자신에게 임신 사실을 말하지 않은 아내로 인해 석탑 쌓는 일에 몰두하는 것, 돈을 잘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내에게서 버림받은 매그너스 플랫이 아내를 용서하지 못하며 오랫동안 백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내며 가지는 감정, 남편을 잃은 데이지가 칼럼을 쓰면서 일에 몰두하며 상실을 달래는 시간들.

  먼훗날의 내가 과거를 돌아보듯 삶을 생각해보면 평범한 어느 날의 기억보다 어떤 사건 중심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생에는 ‘거의 읽히지 않는, 분명코 큰 소리로 읽히지 않는 그런 페이지가 있기 마련’이고 그 페이지 속에 평범한 웃음과 평온이 깃들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 생을 살고 한 여자가 죽음의 순간에 있다. 그래서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걸지도 모른다. 언제든 삶의 여정이란 현재가 아닌 순간이면 아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여전히 미망으로 남아있는 것이 있어서일까.

 

그녀는 역사적 우연 때문에, 경솔함 때문에, 무지 때문에, 기회와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오랜 생에 단 한 번도 다음과 같은 스릴 넘치는 모험을 경험할 수 없었다. 유화, 스키, 항해, 알몸 수영, 에메랄드 보석, 담배, 오랄 섹스, 피어스, 물침대, SF, 포르노 영화, 종교의 무아경, 트러플, 키르슈, 할라피뇨, 베이징 오리, 비엔나, 모스크바, 마드리드, 그룹 세러피, 전신 마사지, 굶주림, 훈장, 견책 등등.


  생각해 보면 여전히 이런저런 이유로 해보고 싶다하면서도 해보지 못한 일들이, 전혀 해보려고 도전해보지 않은 일들이 있다. 내가 눈을 감는 순간 ‘스릴 넘치는 모험’에 대한 경험없음을 아쉬워하고 있다면. 그래서 사람들은 그토록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밑줄을 그어 리스트를 지워나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면 생은 좀더 행복에 가까워지는 걸까. 글쎄 행복이라는 것도 너무나 추상적이고 막연해 보이기도 하면서 온전히 어떤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인생이란, 뭐든 뒤범벅이라 지금 내가 느끼는 행복과 죽음의 순간 돌아보는 행복이란 다를 것이라고, 내 인생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어쨌든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황홀한 순간들, 살아볼 만한 인생으로 기억될지 어떨지 모르게 내 인생이 그냥, 그렇게 흘러간다.


‘정말 황홀한 순간들이 있었나요? 살아볼 만한 인생이었나요? 이를테면 어떤 그림이나 커다란 건물을 바라보거나 책 속의 어느 한 구절을 읽으면서 세상이 갑자기 팽창하는 느낌, 그러면서 동시에 완벽하리만큼 순수한 어떤 핵으로 응축되는 그런 느낌을 맛보신 적이 있었나요? 제 말뜻을 아시겠어요? 모든 것이 갑자기 딱 들어맞는,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인 것 같은 느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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