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


비밀의 계절 The Secret History, 도나 타트, 이윤기 (옮긴이), 문학동네.

  [2015 출간 비밀의 계절]

  온라인을 휩쓴 실시간 검색어를 따라가다 본 사진들 때문에 여전히 멍하다. 수많은 사람이 나와 같을 테니 온라인이 들끓고 있는 것일 테다. 얼마 전 인천초등생여아사건도 있었으니 더욱 더, 극악무도한 ‘청소년’에게 분노하면서 ‘소년법’ 폐지를 청원하는 목소리가 폭발하고 있다. 차곡차곡 쌓여 있던 것이 표출되는 시점이 지금인 모양이다. 이제, 변화가 있을까?

  이 집단의 ‘어린’ 학생들이 추구하는 것은 뭘까. 두려움이 있었던지 처벌을 받을 것인지를 아는 선배에게 물어보는 행동에서는 지독한 생각없음과 극악성에 또한번 놀란다. 시뻘건 피가 온몸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서 함께 한 다섯이 본 것은 과연 무얼까. 처음 벌인 일도 아니라고 하는 이 행동에서 그들이 추구한 것은 뭘까. 모자이크된 상황에서도 가해자로 추정되는 아이의 시뻘건 입술색깔이 눈에 띄었다. 그것과 피해학생에게서 흘러내리는 시뻘건 피는 너무도 대비되어 보였다. 그들 머리속에 차지한 생각들은, 지배한 생각들은 과연 뭔가 생각해보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폭행에 대한 놀라운 기사들이 뜨고 있어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인천초등생살인 범인들과 이번 중학생들의 폭행을 보면서 ‘광기’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렇게 『비밀의 계절』이 떠올랐는데 사실, 재밌게 읽은 책이라 이 사건과 이 책을 비교하면 책에게 한없이 미안해진다. 작가 도나 타트의 데뷔작인데 작가가 2014년 퓰리처상을 받아서인지 2015년에 또 재출간되었다.

  그리스 고전을 연구하는, 그리스 시대 살았을 듯한 특별한 캐릭터의 향연 속에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추리와 심리 묘사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것엔 항상 호기심으로 인한 매력이 상승되는 법이니까. 작가는 이런 비밀클럽의 엘리트를 동경의 눈으로 보는 리처드 페이펀을 화자로 내세워 이야기를 이끈다. 미국 서부에서 의대를 다니던 리처드는 의대를 그만두고 동부의 햄든 대학교로 옮겨와 고전어학과에 입학한다. 특히 지도교수 한명에 다섯 명의 학생들로 이뤄진 이 그룹에서 리처드는 동경과 열등감을 느끼며 주변인인듯 주위를 맴돌게 된다. 어쨌든 문학과 철학을 논하며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고 디오뉘소스 제祭, 칼레파 타 칼라(아름다움은 공포다)와 같은 탐미적 책들에 대해 배우고 논하는 것에 리처드는 상당한 매력을 느끼고 만족감을 가진다.


그날의 주제는 인간의 자아상실, 플라톤의 네 가지 신성한 광기 및 인간이 지니는 보편적인 광기에 관한 것이었다.

가장 신비스러운 것이 바로 이러한 광기다. 우리는 종교적 접신 현상이 원시사회에나 잇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버릇이 들어 있으나 이러한 현상은 문명화한 세계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성에 의한 통제기능을 상실한다는 것은 우리같이 이성의 통제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다.


  그들이 참으로 착실한 학생들이었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언제나 진지하게 토론하고 배움을 실천하는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가장 신비스러운 광기, 종교적 접신 현상을 경험하고픈 이들은 실제로 디오뉘소스 제를 실행한다. 광기와 자아상실, 이것에 대한 매혹을 성공한 것에 그들은 만족감을 느꼈을까? 어쩌면…. 우발적인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다면이 아니라 그들의 제의에 다섯명이 완벽하게 참여하여 함께 그 일이 치러졌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신비롭고 초현실적이며 접신 상태에 대한 만족감이 벌어진 사건에 의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목격한 자에 의해 소거되어야 하는 현실에 맞닥뜨렸을 뿐이다. 그리고 이 제의로부터 또다른 죽음이 이어진다.

  비밀의 계절은 그리스 시대를 재연하는 듯한 생생한 캐릭터가 전체적인 분위기를 신비스럽게 만드는데 이것은 리처드가 이들을 우러러 보는 듯한 시선 덕분이기도 하다. 천재적인 다섯 명의 행태들, 그들이 열성적으로 공부하는 내용들은 상당히 매혹적이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를 이야기하는 이성과 광기, 쾌락과 열정, 그리스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 사이의 비교…그들만의 세계, 그들만의 생각, 그들만의 것. 그들이 욕망하는 세계는 진정 광기였던가. 광기 앞에서도 이성적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을까.

  줄곧 ‘아름다움은 곧 공포’라 했던 그들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든 그것 앞에서 전율한다’고 한 이들은 공포와 전율의 세계를 만끽한다. 사건이 주는 결과는 예측가능하고 타당하게도 이들 모두가 죄책감에 푸욱 빠지는 것이다. 다만 죄책감에 빠진다는 것이 잘못을 반성하고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그들이 광기에 사로잡혀 벌인 일들을 회피하고픈 마음, 그들에게 돈독했던 우정과 사랑은 어디로 가버렸으며 그들이 추구했던 세계는 파괴되었다. 원시적 순수성이라는 게 무엇인가. 원시가 곧 순수의 세계이고 문명이 악의 세계라는 단순한 구조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가. 그들 비밀의 세계가 끝이 나는 순간, 거대하고 신비스럽고 천재적으로 보였던 그들 하나하나의 모습은 순식간에 비이성적인 철부지로 전락하고 만다. 물론 작가는 나름 이들의 체면을 유지하긴 하지만, 신비가 사라진 그들을 바라보는 리처드처럼 그들은 땅 위로 내려앉는다. 하지만, 리처드의 선택이 그들과 함께 하는 순간 또한 이야기는 달라진다.


흥미 있는 질문 하나 해볼까? 버니에게는 최후의 순간이었을 터인 바로 그 순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두 눈이 휘둥그레진 버니("야, 장난이 지나치잖아!")를 보던 바로 그 순간에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겠느냐는 것이다. 버니에게 당하고 살던 내 친구들을 돕는다는 생각? 아니다. 공포? 아니다. 죄의식도 아니었다. 사소한 것들이었다. 모욕, 야유, 피해망상, 몇 달 동안 내 머리를 떠나지 않던 것은, 버니로부터 받은 수백 가지의 사소한 능멸, 갚아주지 못한 능멸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그것에서 더도 덜도 아니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연민이나 회한의 느낌 없이, 벼랑으로 미끄러지는 버니, 그러다가는 뒤로 넘어지면서 숨을 거두는 버니를 바라보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생각의 틀에 빠진다는 것은 재밌는 일이긴 하지만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생각없음 역시도 마찬가지. 그들이 벌인 수많은 토론들이 공허하게 울리고 있다. 한때의 아름다움을 얻고자 하는 욕망에 빠져 길게 회한과 후회로 살아가는 이들. 역시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도 그랬고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그렇듯이, 균형과 통제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 이상으로 아름답고 무서운 것은 없다.” 아름답다는 건 잘 모르겠고, 확실히 무서운 것은 틀림없다. 자기 자신에게도 그렇지만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물론 제도의 균형과 통제가 합당하지 못한 정의로 발현될 때면 그에 대해 반발하며 해방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느낀다. 하지만 인간 위주로 인간에 의지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인간성의 균형과 통제를 상실하는 것만은 욕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007 출간 비밀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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