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섹스 1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이화연.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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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절망할 때조차 상냥한


미들섹스Middlesex, 제프리 유제니디스,,민음사, 2004.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작가의 삶이 소설에 투영되지 않을 리 없는데도 주인공과 작가를 동일시하게 되는, 비슷한 느낌을 받는 때가 있다. 배경 미들섹스는 작가가 살았던 곳이고 작가의 부모님들 역시 그리스계, 아일랜드계 이민 세대다. 그리고 궁금증은 이것일 것이다. 칼처럼 성정체성의 혼란을 작가가 경험했는가.


나는 두 번 태어났다. 처음엔 여자아이로, 유난히도 맑았던 1960년 1월의 어느 날 디트로이트에서, 그리고 사춘기로 접어든 1974년 8월, 미시간 주 피터스키 근교의 한 응급실에서 남자아이로 다시 한 번 태어났다. 전문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1975년 <소아과 분비학 저널>에 실린 피터 루스 박사의 '5알파환원효소를 지닌 유사 양성인간의 성 정체성'이란 논문에서 나에 대해 읽어 봤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제 애석하게도 구닥다리가 되어버린 <발생학과 유전학> 16장에서 내 사진을 봤을 수도 있다. 578쪽 키 성장표 옆에서 검은 막대로 눈을 가리고 서 있는 벌거숭이가 바로 나다.


  소설의 흥미는 첫 번째 문장에서부터 시작한다. <발생학과 유전학> 책자에 검은 막대로 눈을 가리고 있는, 처음엔 여자로 다음엔 남자로, 두 번 태어난 아이. 작가는 칼의 운명에 대해 놀라게 해놓고 잊어버린 듯 1920년대로 거슬러 그리스 산골마을 스미르나에 살던 조부모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때의 그리스는 터키(오스만 제국)와 전쟁 중이었다. 화재와 폭동과 대학살에 남매는 결국 바다를 건넌다. 누에고치를 키우며 실을 잣던 할머니, 데스데모나 스테파니디스의 미국 정착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사촌 지나가 먼저 정착한 미국에서도 데스데모나는 역사적 사건들과 맞닥뜨린다. 경제공황, 금주법과 밀수 시대, 1967년 디트로이트의 흑인폭동… 이런 굴곡진 사건 속에서 데스데모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한 세대를 살아낸다.

  그 가족이 살아낸 곳, 바로 미들섹스(Middlesex)다. 그곳의 한가운데 “역사로 흠뻑 젖은” “비애를 발산하면서도 상냥한” 할머니가 있었다. 칼은 절망할 때조차 상냥한 것이 할머니 세대 그리스 여자들의 특징이라 말한다. 그리고 미들섹스는 ‘괴상한, 과학소설에 나올 것 같은 미래와 과거가 공존하는 집’이라고 표현한다.

  칼의 표현대로 “물려받은 것은 정말이지 희귀하기 짝이 없는 가보로서 다섯 번째 염색체의 열성 유전자다.” '5알파환원효소결핍증'이라 불리는 이 증상은 염색체가 XY인 아이가 태어났을때는 여성생식기로 보이지만 사춘기에는 남성의 2차 성징이 나타난다.

  하지만 칼은 이것 말고 자신도 모르게 할머니 세대의 특징을 물려받았는지도 모른다. ‘절망할 때조차 상냥한’, ‘끙끙대며 신음하면서도 사탕을 건네주는’ 그런 특징 말이다. 그것이 14년 동안을 여자로 자라온 칼, 칼리오페가 이차성징이 나타날 시기에 알게 된 자신의 신체 이상을 겪어 내는 방식으로 보였다. 물론 ‘미들섹스’를 괴상한 집이라고 표현했던 것만큼 자신의 성적 특징과 젠더 상태, 또다른 ‘미들섹스’ 상태의 자신을 괴상하게 여겼을지라도 말이다. 칼리오페로 자라면서 칼은 동성에 대한 애정을 경험하며 혼란을 겪기도 하지만 실제 진단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알면서 또다른 충격과 혼란에 싸인다. 칼을 진단한 루스 박사는 후천적인 성정체성을 더욱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자라온대로 교육받아온 대로의 성을 칼 자신의 성정체성이라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칼리오페의 신체적 상태에 대한 수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칼리오페는….


조부모는 전쟁 때문에 고향에서 도망쳤다. 52년이 흐른 지금,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나도 조부모와 똑같은 방식으로 나를 구하고 있는 거다. 주머니엔 넉넉지 않은 돈을 챙기고 남자라는 새로운 성으로 위장을 한 채 도망을 친다. 배로 바다를 건너는 대신, 여러 대의 차로 대륙을 건넜다. 나는 레프티와 테스데모나가 그랬듯이 새로운 사람이 되는 중이었으며, 내가 막 들어온 이 신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제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의 조부모 얘기가 시작된 것은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이었다고 할까. 가정과 학교가 아닌 사회에서 경험하는 세상은 또한 달랐다. 그리고 ‘게이들의 중심지, 동성애자들의 중심지’라 불리는 샌프란시스코로 들어가 익명성과 자신과 같은 사람들 속에 숨어 그 세계의 문법들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에 대해 신체적 특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특성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보고 느낀다. 젠더에 대한 인식이 더욱 깊어졌다고 할까.

  이 소설은 호기심만 잔뜩 부풀려놓거나 지극히 자극적으로 흐를 수 있는 주제를 작가는 조부모의 인생사, 한 세대의 역사와 접목하여 상당히 재미있고 신비스럽게 보여준다. 마냥 무겁지도 않고 유쾌하고 아이러니가 가득하며 또한 그만큼 덤덤한 문체가 부각된다. 어쩌면 칼리오페와 칼이라는 성정체성 만큼이나 자아만큼이나 혼란스러울 법한데도 칼 자신에 대해서, 상황에 대해서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여지없이 ‘절망할 때조차 상냥하고’, ‘끙끙대며 신음하면서도 사탕을 건네주는’ 느낌 가득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자신의 성정체성을 수용하고  다섯 번째 염색체의 열성 유전자의 발원을 찾아가는 이 이야기를 보면 사람들은 칼이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성정체성을 잘 찾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을까.

  성소수자와 젠더에 대한 인식이 갈등과 대립의 분위기가 지속되는 속에서 단체, 집단으로서가 아니라 칼 혹은 칼리오페와 같은 ‘개인’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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