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안식처일 수 있을까

 

잘 있지 말아요 - 당신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특별한 연애담, 정여울, RHK, 2013.

 

 

   37편의 문학과 연극, 영화에서 뽑은 사랑, 연애, 이별, 인연에 대한 이야기. 이토록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작품을 본 사람들이 그 작품으로부터 사랑이야기를 한다. 세상의 수많은 이들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랑, 그 속엔 연애와 이별과 인연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정여울의 이 에세이는 주제가 사랑에 관한 것이라서인지 상당히 말랑말랑하다. 문학비평이나 다른 비평에세이에서 사용하는 단어의 결에서 차이가 있다.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가 보다 감성적이다. 사회학과 비평 용어로의 설명 대신에 문학으로 연극으로 영화로 접근하는 평범한 생각들을 전하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여울은 현대인의 마지막 안식처로 사랑을 이야기했는데, 사랑이 안식처일 수만 있을까. 사랑이 지닌 의미 때문에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만 사랑이란 수만 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이 사용된 사람에 의해 각각의 의미를 만들곤 한다. 그 다른 사랑의 모습은 타인에게 갈망을 공감을 느끼게도 거부를 느끼게도 한다. 누군가는 사랑이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지만, 사랑에도 옳고 그름의 문제는 있다. 흔하게 얘기되는 불륜과 폭력이 동반된 그런 류를 ‘사랑’이라 부르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말한다. 사랑으로 생긴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해야 한다고.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사랑으로 생긴 상처는 또 다른 사랑으로 덧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사랑으로 상처 입은 사람은 새로운 사랑에 빠지기가 어렵다. 아직 옛사랑을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더더욱.

 

   이성복 시인의 시 편지의 끝 문장에서 따온 에세이의 제목은 “잘 있지 말아요”다. ‘잘 있지 말아요’란 말은 애타는 감정의 조용한 떨림, 울음 같은 표현이 아닐까. 요즘의 참혹한 뉴스판 연애와 사랑에 관한 기사에서 이 의미를 지닌 말을 따온다면 “죽여 버린다” “가만 안 둔다”가 아닐까. 글로 써놓고 보니 더욱 더 섬뜩하다. ‘잘 있지 말아요’라는 문장이 주는 이별에 대한, 사랑에 대한, 서릿발같은 감정은 오히려 사랑의 충만함을 더욱 부각시켜 주는 듯하다. 이쯤되면 사랑의 완성은 이별할 때 말하는 이별어로 성립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지만,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세상 안쪽을 관찰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세상의 사각지대도 있다. 월플라워처럼 벽에 기대 혼자 파티를 견디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만 간신히 보이는 세상의 비밀도 있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모든 풍경이 달라지는 것처럼 사랑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듣고 들어도 막상 경험이라는 위치에 올라서면 미처 몰랐던 사각지대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사각지대에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느냐가 사랑을 정의하는 나만의 방식이 될 것이다. 사랑이 아니더라도 여기 저자가 추려낸 37편의 작품은 그 자체로도 읽어볼 얘기들이다. 거기에서 사랑을 읽어내든 다른 것을 읽어내든 말이다.

 

당신의 마음에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내게 없을지라도, 당신을 만나고 홀로 사랑하게 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 것. 이런 마음은 보답 없는 사랑에 몸을 던져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영혼의 존엄이다.

 

  하지만 사랑을 영혼의 존엄이라 얘기하는 저자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곁들여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마냥 한방향으로만 흐를 내 ‘사랑의 정의’가 위험한지 아닌지, 그 사랑에는 타인에 대한 존엄이 있는지, 정말로 그것을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지를 느껴보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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