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청춘은 지나가지 않았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마음산책, 2004-04-25 .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폭우 속에 침수된 차량 바퀴 위에 올라가 있는 고양이 사진이 인터넷에 실렸다. 주욱 뻗은 한 팔이 물의 깊이를 가늠하는 것 같기도 하고 위태롭게 물길로 미끄러지는 모습 같기도 했다.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새벽녘 날카롭게 그르렁거리는 고양이들의 울음소리에 잠을 깬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네들은 멀리로 재빨리 지나가기보다 오히려 조용히, 움직이지 않는 것을 선택하고 있었다. 분명 들고양이들인데 휴지통을 배회하며 주차된 차량 아래로 들어가 숨어 있기만 할 뿐이다. 조용한 발걸음으로 재빨리 지나가지 않았다. 세월의 변화만큼이나 고양이들의 생존전략도 변한 것인가. 또다시 태풍과 비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저 수많은 고양이들이 차량들이 차량의 주인들이, 마을의 주인들이, 그것을 쳐다보는 모든 이들이 걱정된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한 문장은 이렇듯 청춘에 관한 문장이었다. 여전히 이 문장에 눈이 머문다. 이 책은 2004년 초판 출간되어 10년 뒤에 같은 제목의 2편이 출간되었다.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는 책들.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는 문장들. 아니 시간이 흘러 어느덧 마음에 남게 된 문장들. 어떤 책이든 글이든, 마음에 와닿는 계기나 때가 따로이 있다. 삶의 위로가 되는 문장들이 때마다 다른 것은 내가 느끼는 감정과 경험과 상처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마다마다에 어떤 식으로든 위로가 되어 주는 책이, 글이, 문장이 있다. 나를 위로해주는 것은 8할이 글이 되는 건가.

  시간은 정말 재빨리 지나갔다. 예전에 좋아하던 문장들을 다시 보면 아련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그 문장을 좋아하던 시절의 나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보면 시간은 재빨리 지나간 것 같지만 대부분 하루는 재빨리 지나가기보다 별볼일없이 지나갔다. 별볼일없이 살아왔다는 것만큼 편안하고 다행인 인생이 어디 있으랴 싶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욱 크게 남은 것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 ‘미련’이다.

  이 책을 읽으며 지난 시절 켜켜이 내가 좋아한 책들을, 이야기를, 문장을 읽고 싶어졌다. 또한 미련일지도. 내가 살아온 생애 나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한, 희망을 주기도 절망케도 한 문장들이 그리워진다는 것. 사춘기, 청소년기라는 시절의 감수성의 차이이기도 하겠지만. 그 시절의 책들에 문장들에 마음이 쏠리는 것 역시도 ‘지나간 시절’이라는 데서 오는 감정이리라.

  김연수의 청춘의 시절 감성 역시도 남달라 보인다. 작가는 이백과 두보의 시에 특히 애착을 느끼고 있고 다시는 산문을 쓰는 일은 없을 꺼라 말하고 있지만 2004년 이후 출간된 작가의 소설이 아닌 에세이, 산문집을 나는 읽었다. 물론 지금도 작가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그의 글은 첫 문단 데뷔작과는 너무도 다른 깊고 섬세한 감성이 있다. 첫작품만 생각하며 김연수를 기억했다가는 동명이인이라 생각할 정도로. 작가는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우리가 변한 게 아니라 우리가 변했기 때문에 세월이 흐른 것이다.”라고 하지만 글쎄 세월과 변화의 관계의 주종을 따지는 일이 뭐 중요한가. 세월은 흘렀고, 어쨌든 변했다는 사실이 현재의 사실인데. 변했다는 사실에 깊은 회한만이 없다면야 변한 것이 또 그리 슬퍼할 일도 아닌 것이고.


가끔 아무런 후회도 없이, 아쉬움도 없이 세월을 보내던 그 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렇게 흘러가던 세월의 속도다. 그 시절이 결코 아니다. 다시 한 번 그렇게 세월을 보낼 수 있다면 간절히 손꼽아 수학여행을 기다릴 수 있다면. “어텐션 플리이즈, 바우”의 세계를 소망할 수 있다면. 깜짝 놀라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면.


  표현의 섬세함이나 깊이, 감성. 그리고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청춘에 대해, 지나간 시절에 대해 가지는 사람들의 마음은 같아 보인다. 이제 3~40대-작가는 35세이 이 산문집을 썼다-에 느끼는 감정은 노년과는 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노년에 지나간 시절을 생각하는 마음씀은 중년에 바라보는 그것과 얼마나 다를까. 생각하니 노년에서 바라보는 중년의 시절 역시도 청춘이다. 그러니 아직, 내 생에 청춘은 지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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